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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평에 대한 상상력

[기획] 비평플랫폼 시뮬레이션 #1 <쿼드>

라시내

제196호

2021.03.11

1.
지난 2월 비평플랫폼을 시범삼아 처음으로 가동해 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비평플랫폼은 공연을 만든 사람이 ‘호스트’가 되어 공연을 본 사람들을 ‘게스트’로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프로젝트 이인의 연출가 라시내입니다. 관객과의 대화도 아니고 비평가 좌담도 아닌 이 이상한 자리를 처음 상상하고 제안한 사람입니다. 호스트가 참여자를 초대부터 진행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비평플랫폼의 구성상, 최초 제안자인 제가 첫 번째 호스트를 맡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져서, 첫 번째 비평 대상 작품은 프로젝트 이인의 <쿼드>(2021.01.21.-23. 신촌극장, 원작 사무엘 베케트, 안무/연출 라시내, 최기섭, 출연 강호정 김선주 송명규 유지영, 퍼커션 지미 세르, 의상 정호진)가 선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상상한 비평플랫폼의 기본 형태는 일종의 ‘피드백 품앗이’였습니다. 서로의 작업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고 응원하는 동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피드백을 하는 대신 여럿이 모여서 피드백을 나눈다면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호스트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초대를 하다보면 게스트들 중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혹은 호스트가 개인적으로 면식은 없지만 작업적으로 존경하는 게스트를 초대할 수도 있겠지요. 내가 피드백을 받은 사람이 이후에 같은 자리를 열면 피드백을 돌려주러 가야한다는 약간의 의무만 부여한다면 어떻게든 플랫폼이 굴러가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단출한 생각이 혼자만의 생각에 그치지 않고 체계를 갖춰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연극in 웹진에서 함께해 주었기 때문이 큽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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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이인의 <쿼드>는 사무엘 베케트의 텍스트 ‘쿼드’를 안무 스코어로 읽어낸 작업입니다. ‘쿼드’는 연극으로 상연하기 위해 쓴 희곡이 아니라, 텔레비전 실험극 작품입니다. 베케트가 직접 연출한 <쿼드>는 1981년 독일의 공영방송국에서 처음 방영되었고, 이후 영국 BBC에서도 방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유명한 베케트의 텍스트를 무용의 맥락으로 끌고 들어온 작업의 기획을 고려하여 게스트는 연극계 분들과 무용계 분들을 적절히 분배하기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연극계 창작자로는 프로그램 공동설계자인 김신록 배우와 정진세 연출가, 그리고 구자혜 연출가와 김기일 연출가, 무용계 창작자로는 손나예 안무가와 황수현 안무가, 드라마트루그 손옥주, 시각예술을 베이스로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하상현 작가가 참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프로젝트 이인과 퍼포머로서 그리고 드라마트루그로서 지난 작업들을 함께해 온 하은빈 창작자가 참석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기일 연출가 그리고 손옥주 드라마터그와는 일면식이 없었지만 일전에 두 분이 참여한 작업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어서 다른 게스트를 통해 초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평플랫폼의 취지를 간단하게 설명한 후에 참여자들이 한 사람씩 모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면서 비평플랫폼은 시작되었습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각자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어떤 관심과 맥락에서 프로젝트 이인의 작품과 만났는지 자기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한 시간이 훌쩍 넘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자기소개는 꼭 필요한 순서이므로 시간을 충분히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비평플랫폼의 세부 구성에 대해서 논의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지점 중에 하나가 ‘각자의 맥락을 가지고서 만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평이 초월적인 시선과 객관적인 언어를 자처하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해석은 어쩌면 작품보다도 해석자를 드러내게 마련이라 해석자의 ‘객관적인’ 위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만약 어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자처하는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기실 매우 ‘특권적인’ 위치에서만 가능한 언어일 것이라고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라리 비평이 가장 특이적인 사건으로서 발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비평플랫폼이 창작자를 위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은 무엇보다도 품앗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관과 좋은 눈을 가진 분들이 많기도 하지요.

자기소개가 끝난 다음에는 공연의 세부적인 사실정보를 복기하면서 공연에 대한 하나의 상을 재구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용수들의 의상 색깔은 각각 무엇이었는지, 조명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퍼커션의 구성은 어땠는지 등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기억나는 대로 늘어놓았습니다. 기억이 분명치 않아서 확인이 필요하거나 기술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호스트가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공통의 상을 만든 후에는 게스트 분들이 준비해 온 세 가지 말할 거리를 돌아가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1)좋았던 점, 2)아쉬웠던 점, 3)궁금한 점. 궁금한 점은 호스트에게 궁금한 것이어도 좋고, 다른 관객-창작자 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묻는 것이어도 좋다고 미리 안내를 드렸습니다. 처음 해 보는 시도라서 혹시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하면서 가면 이후 게스트의 의견이나 질문에 영향이 있을까봐 질문을 다 적어 놓았다가 한꺼번에 답변을 드렸는데, 답변이 연결이 될 수 있는 질문들을 연결해서 답변하기도 했지만 몰아서 답을 드리기가 꽤 버거웠습니다. 특히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발생할 수 있는 ‘핑퐁’이 제한되는 느낌이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인칭’에 대한 이야기 등 개념어를 잘 정리해서 더 깊은 논의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뒤로 하자면,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서로의 작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말하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질문자가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질문들만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행복했습니다.

항상 이런 좌담 형식의 자리가 있으면 시간이 한두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만 하면 끝나버리는 것이 아쉬웠던 터라, 기본 시간을 4시간으로 잡았는데 정말이지 그 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 버려 허겁지겁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호스트라서 긴장을 많이 했는지 밖에 나와서 헤어지기 전에 환담을 나누면서는 열이 올랐던 얼굴이 식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체력이 더 있었다면 얼마든지 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그동안 비평에 대한 어떤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둔 이야기를 어렵게 건넸는데, 누군가는 그 말에 답을 해 줄 것 같은데, 그 어떤 목소리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허함이랄까. ‘비평플랫폼’은 어쩌면 어떻게든 이 허무에 깔려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계속 공연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자구책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비평플랫폼이 비평에 대한 대단히 혁신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제가 헤엄쳐 노는 공연예술의 생태계에 어떤 임계점이 와서, 숨을 한 번은 쉬고 싶어서, 더 이상은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어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 보는 것입니다. 저는 비평이 여전히 할 일이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은 저도 종종 비평을 쓰거든요. 비평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작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하지만 내가 오래 앓아서 내놓은 목소리에 누군가 마음깊이 응답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알기에, 다른 이들의 작업에 답해야 할 책임response-ability 같은 것 또한 느낍니다. 비평 이후의 비평, 새로운 비평에 대한 상상력이 분명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1회 비평플랫폼 시뮬레이션 녹취록 다운로드_[critic platform] no.1.pdf

*연극in 웹진에서는 ‘비평플랫폼’을 올해 세 번 더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 시뮬레이션에 함께할 창작자, 즉 기꺼이 ‘호스트’가 될 여러분을 모집합니다. 올해 공연을 예정하고 있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해당사항이 있습니다. 웹진에서는 비평플랫폼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간과 기록을 지원하고 그 과정을 웹진에 게재하겠습니다. 위의 비평플랫폼 사용법을 통해, 비평적인 피드백을 나눠보고픈 예술가는 다음의 메일주소로 신청을 해주세요. (webzine@sfac.or.kr) - 연극i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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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내

라시내
연출가. 공연예술 연구자. 안무가 최기섭과 함께 프로젝트 이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facebook.com/projecty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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