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비평에 대한 경험
[기획] 비평플랫폼 시뮬레이션 #2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김연재_극작가
제197호
2021.03.25
게스트를 꾸릴 때에 게스트가 호스트의 전작들과 본 공연 간의 연속성을 짚어줄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정진세 작가는 극단 동과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공연을 함께 작업한 바 있고 우연 극장장은 해당 공연을 제작한 극장의 대표였습니다. 김신록 배우는 저와는 <김신록에 뫼르소, 870cm×626cm>,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위치와 운동>을, 극단 동과는 <저편의 영원>을 함께 공연한 바 있습니다. 이주요 설치미술가는 저와 극단 동이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 <매립지>의 미술감독으로, 본 공연을 통해 이후 작업을 어떤 시각 언어로 상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장영 극작가와 전진모 연출가에게는 미학적 의제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가는 창작자라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분들은 라시내 연출가, 최기섭 안무가였습니다. 극단 동은 신체행동연기를 연구해온 집단으로, 게스트를 섭외할 때 무용계 창작자를 섭외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두 분이 참석하였기에 움직임과 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이론가, 인류세와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문학 평론가가 게스트로 거론되었으나, 작품의 해석 보다는 자기의 창작 과제와 연관된 비평적 대화를 하는 장이라는 플랫폼의 정체성을 고려하여 게스트로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비평플랫폼을 제안 받았을 때 가장 호감이 간 지점은 “창작자로서의 자기고민 및 자기과제와 연관되어 있는 참여자”를 비평의 주체로 환영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비평이라는 것이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고 따라서 제가 비평의 주체가 되었을 때 언제나 내 식대로 작품을 오독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창작자의 입장일 때는 저의 작품이 어떻게 오독되는지, 저의 작품이 다른 창작자의 이후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습니다. 여기에서 오독이라 함은 창작자의 의도를 알아맞히는 데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개인적이고 특수한 관심사에 입각해서 작품을 읽어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번 시뮬레이션은 비평을 마주하는 저의 태도를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극 장르의 성격이라고 쉽게 말해지는 종합성에 대해서 재고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비평 앞에서의 태도
그런 관성 때문이었는지 저는 비평플랫폼을 진행하며 시종일관 몹시 긴장한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진행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긴장하는 바람에, 2주 지나 도착한 녹취록을 읽고 난 뒤에야, 토론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말과 몸, 타블로, 인류세 등이 토론의 키워드였는데, 해당 키워드에 대해서 참여자들이 서로 비슷한 미학적, 철학적 사투리를 쓰며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종의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공통의 언어를 사용해서 개념 도구를 마련했더라면 보다 심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졌을 거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누군가 다 음에 이런 형식의 비평 플랫폼을 진행한다면 전체적인 토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계획할 수 있는 진행자를 따로 두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개념이 느낌으로만 공유되고 있을 때, 그것을 집어내어 각자가 생각하는 바에 대해 토론하며 공통의 상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각자도생의 토론, 각자도생의 연극
희곡, 연기, 연출, 조명, 음향, 무대, 소품 등등의 분야를 종합해서 하나의 질감으로 완성시켜야 한다는 강박, 질감을 매끄럽게 통일하지 않으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 전체 질감에 맞추기 위해 어느 한 분야가 타협하게 되는 공연 만들기 과정으로부터 해방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연의 성격 때문에 비평플랫폼 시뮬레이션 토론의 의제 또한 쉽사리 모여지지 않았던 것일지 모른다고 저희는 추측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공연에 맞는 토론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럼에도 호스트와 설계자가 사전에 만나서 토론의 목적을 정확히 공유하고 진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면 좋을 듯합니다. 특히 호스트가 비평플랫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두는 일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혹은 날짜를 다르게 지정해서 적어도 두 차례의 토론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새로운 비평 경험
제가 경험한 비평의 형식은 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지나간 공연에 대한 기록물이자 공연의 성취를 평가하는 어떤 것, 대화가 기록되는 인터뷰 형식의 것, 작품의 보완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합평”, 창작자 간에 이루어지는 짤막한 감상과 피드백. 저는 비평과 비평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고, 따라서 비평에 대해서 그 어떤 말도 자신 있게 얹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비평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새로운 비평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토론을 닫는 발언으로, 여러분께서도 지적 노동이 필요한 어떤 자리가 있다면 저희를 불러주시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품앗이’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이죠. 비평이라는 것이 비평가의 텍스트 작업에 국한된 것이 아닌, 예술가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긍정적인 의무라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비평가가 되는 일과 좋은 창작자가 되는 일은 서로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말입니다.
□■■△■ 2회 비평플랫폼 시뮬레이션 녹취록 다운로드_[critic platform] no.2.pdf
- 김연재 극작가
-
작가, 단추학자, 이미지 수집가
<매립지>,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폴라 목> 등을 썼다. 기계 및 광물과 상호침투하는 배우의 몸 그리고 오컬티즘에 관심이 있다.
인스타그램 @publish_seria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