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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언제 들어오나, 사공은 준비됐다

젊은극작가 좌담회 두 번째 “공공/제도의 경험을 가진 극작가들의 이야기”

진행 및 정리_장영(본지 편집위원, 극작가)

제202호

2021.06.10

극작가들은 양분된 시간을 넘나들며 살고 있다. 홀로 하나의 세계를 설계하는 외롭고 기나긴 시간, 그리고 타인들과 함께 세계를 지어나가는 연습실에서의 시간. 문학과 연극, 희곡과 연극, 그 경계에 위치한 극작이라는 작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극작가들의 노동은 연극이라는 협업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동시대 극작가들의 희곡은, 어떤 곳을 비추고 어디로 나아가고자 할까? 젊은 극작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이번 연속 좌담을 기획했다. 두 번째 좌담에서는 희곡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나 공공의 제작극장에서의 경험을 가진 극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기획위원 주
일시_5월 28일 금요일 오후 1시
장소_대학로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패널_김연재(극작가), 도은(극작가), 신해연(극작가), 이홍도(극작가), 장영(극작가)1)
진행_허선혜(극작가)
#극작가-희곡_지원_프로그램 #희곡_플랫폼
오늘은 공공제도의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됐거나, 제작극장 안에서 작업을 해본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본인이 경험한 극작가-희곡 플랫폼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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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서울문화재단의 유망예술지원사업 뉴스테이지 지원을 받았다. 원래 이 사업은 연출부문만 있다가 이후에 극작부문이 생겼다. 2년 단위 지원이었다. 1차 년도에는 작가에게 첫 번째 희곡에 대한 원고료를 지급했다. 정산이 필요 없는 일종의 작가 시상금 같은 것이었다. 2차 년도에는 두 번째 희곡에 대한 시상금 형태의 원고료와 1차년도 때 쓴 희곡을 공연하는 제작비를 지원했다. 시상금 형태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마 개인 사례비의 경우는 극작 부문이 타 분야에 비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출 부문 포함 다른 장르(시각, 음악, 다원 등)의 경우 2년 동안 두 작품의 제작비를 지원받는 데 반해 극작 부문은 한 작품의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다른 장르의 유망예술 지원사업이 그러하듯 공연 기회를 똑같이 갖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생각 했다. 당시 서울문화재단의 행정적인 개편이 있어서, 담당자가 세 번 바뀌었다. 이 과정이 힘들었다. 한 담당자가 모든 분야의 유망예술지원을 다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립극단 ‘희곡 우체통’이 있다. 1년에 몇 작품 뽑아서 1회 낭독 공연을 한 뒤 연말에 이듬해 라인업에 포함될 작품 하나를 뽑는 것이다. 그때까지 길게는 1년을 기다려야 했다. 한 해 동안 낭독 발표한 몇 편의 희곡들 중에 어떤 것을 제작할지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동료 극작가들의 불만이 많았던 제도였다. 제작공연으로 가지 않은 작품들의 경우에는 낭독의 형식으로 이미 작품이 발표된 바 있으므로 다른 공모에 낼 수 없었다. 희곡집이라도 발간을 해야 한다고 작가들이 주장을 해서 매년 희곡집이 나오고 있다. 그때 거기에서 낭독했던 내 작품은 아마 앞으로도 공연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매해 작품 개발 사업이나 작가지원 프로그램을 했었다. 같이 하는 극단이나 연출가가 없으면, 작가가 아무리 글을 써도 무대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이런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 국립극단의 ‘청소년 창작벨트’를 했을 땐 최종 공연에 대한 확답이 모호한 상태로 ‘공식적으로는’ 입체낭독까지 라고 했다.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만 공연이 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경쟁 아닌 경쟁처럼 느껴졌고, 사업이 종료됐을 때도 성취감이나 기쁨 보다는 최종 공연에 탈락한, 미완에 그친 느낌이었다.
그 뒤에 했던 것은 아르코 창작아카데미 프로그램이다. 동료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처음으로 내 또래의 비슷한 작가들과 같이 쓰고, 과정을 함께 공유하며 가는 게 힘이 됐다. 다만, 1년 동안 작품 개발을 하고 마지막에 하루 공연을 하는데,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불꽃놀이’를 열심히 준비하고, 짧게 터뜨리고 나서 ‘아 예쁘다’ 하고 주변을 봤는데, 아무도 안 보고 있는 느낌. 지원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지속적으로 느꼈다. 너무 단발성이지 않나. 또한 신진 작가로 이런 사업을 통해 꾸준히 함께 작업을 도모 할 연출과 팀을 만나, 지속가능한 작업 환경을 구축해서 이 씬에 안착하고 싶은데 정말 쉽지 않다. 결국 단발성으로 사업 안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경우도 태반이고, 사실 그런 경우엔 그 작품이 다른 연출가를 만나서 무대에 오르는 건 더더욱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극단은 1년 간 작품을 개발했고, 다음 해 공연으로 올려 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두 번의 낭독에 그쳤다. 정식 공연을 준비하던 차에 중단 됐고 내부 사정으로 결국 완전히 취소됐다. 문제는 취소 결정 이후 나왔던 말들이나 약속이 번복되며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 때 이런 제도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진 작가를 관객과 연결하고, 창작극을 개발하려는 시도들, 그 필요성을 느끼고 의지를 가진 누군가가 없으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약속. 그래서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작가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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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 가지 전제를 깔고 가야 할 것 같다. 독자들께서 이 좌담회의 유효기한이 2-3년 정도 될 것이라 생각하고 봐주시면 좋겠다. (왜냐면 기존의 극작가-희곡 지원프로그램은 2-3년을 넘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3년 뒤에 시작하는 극작가들이 이 글을 보면,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어?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약간 모종의 불편함이 남는다. 우리가 지원제도에 대해 공과 과를 가리고 이야기할 텐데, 제도권이라는 곳에 이미 호명된, 기회를 얻은 누군가의 발언이라고만 느껴지지는 않을지. 극작가 전체의 처우나 보상에 영향을 주는 거라면 좋겠다.
내가 겪은 희곡 극작가 프로그램 중 최초는 서울연극센터의 플레이업 아카데미다. 대단히 이상적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한 극작가가 4-50대 중견이 되어서 개인의 시간, 자신의 입지, 기관과의 관계 등 모든 걸 무릅써야 하는 방식이었다. 극작가를 성장시키는 문제를 구조적인 방식이 아닌 (그 과정을 지나온) 특정한 개인이 희생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셈이다. 물론, 수강생 입장에서 남는 게 많은 사업이었다.
다음은 한국 콘텐츠 진흥원(이하 콘진원) 프로그램이다. 여기서는 생활비가 나왔다. 국가적으로 진행하는데, OT에 1200명이 나왔다. 이 정도 여건이다 보니 과정은 좋았는데 최종결과물을 내는데 있어 공연화 여부를 놓고 알지 못하는 채로 사업이 끝나는 시점 3주 전까지 전전긍긍 하게 됐다. 결론만 놓고 보면, 내부 발표회로 끝났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작가입장에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최종결과물에 대한 보장 없이 무작정 쓴다는 것에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돈을 받고 하는 거지만 다시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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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점에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고. 거기서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연결됐다. 단막을 여러 개를 편성해서 올리는 ‘단막극전’이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이 또한 코로나로 무산이 된 것처럼 외부적으로는 알려졌다. 그런데 작년에 당선되었으나 공연을 올리지 못한 8명의 작가 중 3명의 작가가 올해 상반기에 낭독 공연으로 올렸고, 다섯 명은 자기 작품을 올리지 말자고 했다. 나도 그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작년에 단순히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였다면, 그 당선 작가들 대다수가 올해 왜 공연을 포기했을까? 당시에 함께 했던 드라마터그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그분들의 대처도 기다렸다. 사실을 알고 있는 연극계 사람들이 있었을 터인데... 계산해보니 공연이 엎어진지 420일이 됐다. 신춘문예 단막극전은 작가료를 전혀 책정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해외(일본)에서도 하고, 각 대학에서도 공연을 올리거나 지역 연극제 참여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단막극전에 나가는 케이스도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추가적인 작가료나 저작권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심지어, 지역공연에서 상을 탔는데 그걸 작가에게 끝까지 비밀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작가가 건너 들어서 상을 탔다고 들었다고 얘기했을 때 제작비로 다 써버렸다고 얘기한 경우도 있다. 그밖에도 연습실 방문을 거부당한다든지, 제작비를 대고 몇 년째 돌려받지 못한다든지, 신인 작가들은 제작 과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요구에 따르게 된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는 위계폭력으로 느껴진다. 연출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신춘문예 등단 직후의 작가들은 열악한 제작 환경을 경험할 때, 그것이 연출가 개인과 단체를 폭로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반복될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고 나면 문제 제기를 하기보다 자신이 연극계를 떠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전까지 문제 제기 자체가 안 된 것이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다 어디 갔나 찾을 땐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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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아르코극장에서 진행하는 ‘봄 작가, 겨울 무대’이다. 앞서 말한 비슷한 모순점들을 안고 있지만 신인 작가들에게 최대한 안전하고 충분히 안정적인 여건을 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제도권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기 때문에 과정상의 문제가 벌어지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아쉬운 점을 짚고 간다면 경쟁의 문제다. 극작가들이 경합을 해서 결과 발표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한 해에 신춘문예로 배출된 극작가들 중 세 명의 극작가의 작품만을 무대화 시킨다.
경합시스템의 문제점은, 제작에 대한 어떤 기약도 없이 모든 팀이 스케줄을 비워놔야 한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몇 달 뒤에 스케줄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것이 건강한 작업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서로 경쟁시켜서 추리는 방식을 극작가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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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 사업이 떠올랐다. 서치라이트는 쇼케이스 공연 중에서 선택을 해서 할 수가 있다고 공지하고, 남산예술센터에서 하루 올리는 기획이다. 선정이 돼서 계약서를 쓰러 갔는데, 1인당 20만원 밖에 책정되지 않았다. 낭독공연이라도 20만원은 너무 적다. 다행히 교내 공연이랑 연계를 해서 교내 연극 지원금을 받아서 공연을 올렸고, 구성원들의 출연료를 줄 수 있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게 극작가에게 유의미하고, 또 관객들에게 피드백도 받는 건 좋다. 그러나 연습 과정에 대한 보상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사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코 대본공모의 경우에는 선정이 되고 보니까 작가별, 작품별로 금액의 차이가 있었다. 거의 두 배 차이가 날 정도로 차이가 났다. 공연을 하지 않고 상금의 형태라서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긴 했는데, 작품 별로 차이 나는 지원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 기준이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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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예술가 청소년 창작벨트, 아르코 창작 아카데미, 서울연극센터 플레이업 아카데미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플레이업 아카데미는 연극을 전공하지 않은 나 같은 작가한테는 정말 극작가가 되기 위한 첫 수업이었다. 국립극단의 경우, 내가 여러모로 신춘문예로 결코 등단할 수 없는 희곡을 쓰기 때문에 (웃음), 뽑아준 것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국립극단에서 퀴어 소재의 희곡을 뽑아줬다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건 어린이청소년극 연구소였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나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들을 지켜보면, 결국 지원제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라 여겨지는 것은 낭독 형식과 경쟁구도이다. 우리가 낭독을 그렇게 좋아하나? (일동 웃음) 앉아서 말하지 않으면, 관객이 희곡에 주목하지 않나? 극작가들의 희곡이 본 공연으로 바로 이어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도 일어서고 싶다. (웃음) 낭독이 아니라 연극을 하러 왔으니까. 같은 예산을 더 잘게 나누어 많이 뽑아 구색을 맞추고, 많이 떨어뜨림으로써 공정한 결과를 낸다. 그런데 탈락의 이유는 항상 불명확하다. 적어도 경쟁을 시키는 경우에는 정확하게 떨어진 이유를 밝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원제도의 참여자들이 뭔가를 문제 삼으면 그 문제를 없애기 위해 지원 프로그램이 없어지거나 축소된다는 점도 안타깝다. 문제 제기와 함께 결과적으로 극작 파트의 전체 파이가 줄어들게 되면, 문제 제기한 사람을 원망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쉽게 나서지도 못한다.
실무자분들의 인권 감수성에도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르코 극장이 열렸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일련의 퀴어 연극들이 아르코 극장에서 올라갔다는 점에 정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시대는 변했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은 퀴어 예술가, 장애인 예술가 등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들이 극장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작품을 올리는 극장의 실무자들의 인권 감수성이 더 중요해진다. 홍보방식도 달라져야 하고, 장애와 관련해 물리적 환경의 개선과 보완을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귀찮아하는 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필요할 경우 아티스트의 신변 보호를 세심하게 진행할 필요도 있다. 누군가의 인권과 관련된 문제는 귀찮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가장 앞서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데, 지원사업의 구조와 관례가 어떤 벽처럼 공고할 때가 있다. 젊은 극작가들과 작업을 함에 있어서도 기성의 관습을 고수하려고 한다. 멘토링 제도에 대해서는, 시작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작업이 발표되는 순간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책임감이 동반되는 멘토들의 멘토링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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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로_생존하기 #도장깨기 #자존감_아니_자괴감
극작가라면 존재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 극작가로서의 존재감을 계속 확인하는 수단이나 목적이 그것밖에 없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계속 이걸 해야만 하는 걸까? 이 공모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데... 막연하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도전하는 경우도 있고, 초반의 기대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는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부터는 지원제도가 나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나 혹은 좋지만 아쉬운 점을 더 이야기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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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지원제도는 내가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가, 노동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공공의 심사 제도가 더 책임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심사평의 경우, 선정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첨예하고 설득력 있는 언어가 포함되어야 한다. 내가 본 대부분의 심사평은 무책임하고 두루뭉술한 문장들의 집합이었다. 공모에 떨어지면 일을 할 수 없는 생태계에서, 당락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으면 안 되지 않나.
또, 극작가들에게 멘토를 붙이고 중간 과정을 점검하려고 하는 것은, 희곡이나 극작가에 대한 신뢰감이 굉장히 낮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작품성이 보장되어 있다는 걸 너무나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는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희곡을 공연하거나 지원하는 일이 지원기관에게는 위험한 과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실험적인 작품에 대한 필요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연출에 의해 충족된다. 극작가에게는 “웰메이드” 창작극만을 기대하는 분위기를 느낀다. 이런 점에서 내가 적합하지 않구나, 일자리를 구할 수 없구나, 생각했다.
출판사라는, 작품을 연속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장이 있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극작가는 연속적인 작품 발표의 장이 없다. 계속 지원서 쓰기를 반복하면서 단발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연극계 내에서 수명이 가장 짧은 직업 같다. 연극계 내 다른 포지션들은 나이대별로 할 수 있는 작업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40대 극작가로 사는 나의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된다. 2,30대 때 신작 열심히 쓰고 나면 결국 무엇이 되어 있을지, 누가 극작가의 작업과 사유를 궁금해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의 극작가들이 하는 생각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연극을 궁금해 하고 지원하는 일보다, 사업 규모에 적합한 외국 희곡이나 기획 의도에 맞는 소설 원작을 찾는 쪽이 더 빠르고 안전하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전반적이다. 혹은 고전의 재해석. 그러나 어떤 불안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점점 나빠질 것이다.
결국 신뢰의 문제 같다. 희곡 장르에 대한 신뢰가 원래 없었는지, 잃어버린 것인지, 불신이 학습된 것인지, 어딘가로부터 이미 인정을 받은 좋은 텍스트를 언제든 편리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연극 텍스트를 써내는 우리가 속도를 못 따라 가는 건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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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벌어준단 느낌이다. 아직 조금 더 작품 쓰고, 연극할 수 있는. 졸업 이후 연 극 작업만을 계속 해왔는데 이게 나의 직업이라면 최소한의 단위더라도 이 일이 나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공공지원제도를 찾아가는 건, 그마나 그런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연의 기회를 얻어 관객을 만나고 동료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2016년부터 국립극단 청소년극, 아르코 창작 아카데미, 서울시극단 희곡플랫폼, 지금의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이런 식으로 해왔는데, 어느 순간 공허해졌다. 이것을 반복해갈수록 얼마 되지도 않는 한줌의 지원제도 안에서 이것을 도장 깨기 하듯 다 깨고 나면 난 어디로 가야하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스스로의 자생력과 나의 작업에 관한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작업 초반에는 지원 사업 내에서 과도한 경쟁 구조 혹은 불합리한 시스템이라 느껴져도 ‘잘 쓰면 되지’, ‘그러니까 더 잘 써야지’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땐 ‘내가 못 써서 그렇구나’ 로 이어졌다. 안정적인 시스템이나 보호 장치가 없으니 문제제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공공제도의 수혜를 받으며 책임감도 느끼고, 나 역시 이런 제도 없이는 작업을 이어오지 못 했을 거라 생각하기에 감사함도 느끼지만 막상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이 든다.
지원서에 보면 향후 5년의 계획을 물어본다. 이런 걸 어떻게 쓰나. 당장 내년도 모르겠는데. 여전히 혼자 쓰는 기분이다. 씬에서 동료를, 팀을 만나지 못한 채 혼자 겉도는 느낌?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기회를 잡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계속 제도를 쫓을 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올해 있던 제도가 당장 내년엔 없을 수도 있으니까.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나의 속도대로 내 작업을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연차대로 하다 보니 나는 지원사업의 싸이클 안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1-2일의 쇼케이스로는 작품을 알리기가 어렵고, 일회성 발표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매칭된 연출의 의지 없이는 재공연도 쉽지 않다. 숙성의 기회도 없이 작품은 사라지고 현장은 다시 신작을 원한다. 그렇게 제도를 쫓다 보면, 나의 작품은 자생력이 없나, 뱉어만 놓고 책임지지 못하는 반쪽짜리 작가처럼 느껴진다. 작품이 태어나 연습실에서의 시간을 거쳐 관객을 만나고 계속 무대를 만나면서 충분한 숙성의 시간을 거칠 수 있을까.

나는 연극학교 출신이 아니고, 비전공이고, 극단에도 들어가 본 적도 없다. 연극계는 비전공자가 진입하기에 장벽이 엄청나게 높다. 비전공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또 너무 많다. 근데 지원 프로그램, 대본 공모, 인큐베이팅 사업 등은 비전공자가 연극계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축소되면 안 된다. 희곡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나는 직장인이었다. 28살 때까지 오후 7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30분 일찍 퇴근해서 택시 타고 대학로에서 수업을 들었다. 24시간 카페에서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썼다. 그것밖에 데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장영 작가님이 말했듯 문제가 있으면 지원 프로그램을 없앤다. 비전공자의 진입을 원천 봉쇄한다.
그래서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들 연극학교로 간다. 이 씬에 진출하기 전 꿈나무였을 때, 모든 꿈나무가 다 연극학교 가야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연극학교 출신들은 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되는 정보력과 인맥이 있다고 느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과 가진 게 다르다. 불편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같이 이야기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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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올라가면, 관객을 만나고 전문가들, 씬 안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게 다시 재공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작품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불꽃놀이 비유가 와 닿은 게, 잔해들을 나 혼자 주워 담는데 잘 주워 담아지지도 않는다. 다른 지원제도에 낼 수도 없다. 그 작품은 그냥 폴더에 남아 있게 된다.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인데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그게 기대한 것과 가장 어긋나는 지점이었다.
작가 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지원제도나 희곡 프로그램이 어떤 장단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마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 일만 해서는 생활이 될 수 없어서 다른 일을 병행하는데, 병행하면서 내가 세워놓은 마감을 지키기는 어렵다. 근데 구체적 마감이 정해지니 그게 같이 갈 수 있었다. 단점은 앞서 ‘도장 깨기’ 라는 말처럼, 매해 내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점점 줄어든다. 내 동료들이 경험한 걸 듣다보면, 해당 프로그램이 내게 유의미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러면 기회를 빼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시기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또 하나는 동료들을 점점 잃어가게 된다. 작가가 극단이 있거나 계속 작업하는 연출이 있으면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작업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다. 내가 원하는 작품 세계, 퀴어 이슈 등등은 공공에서 기피하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제도 바깥으로 비껴나간 작가들이 작업을 포기하게 된다.
한편으로 솔직히 선정된 사람들이 또 다시 선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지금 굉장히 겹치지 않나. 그렇지 않은 다른 작업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좋겠는데, 공모제도에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 지점이 많이 아쉽다.

경쟁 구도. 이건 작가가 만든 판이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내가 더 잘 쓰면 되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권 안에 이름 못 올린 사람들은 못 쓰는 사람들인가. 경쟁 구도 때문에 작가들의 네트워크는 깨져버린다. 이 좁은 풀 안에서 살아남아서 몇 개 없는 지원사업의 도장들을 다 깬 다음의 우리를 상상하게 된다. 매일 두렵다. 그 다음에는 뭘 해야 하지? 입체 낭독극 전문 연출가가 되어야 할까? 극작가들은 깰 도장이 워낙 없기도 하다. 30대 중반까지의 미래도 상상하기가 어렵다. 극작가들은 늘 ‘0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원사업이 요구하는 기한에 맞춰 언제나 ‘새로운’ ‘신작’을 기계처럼 써야 한다. 지금은 젊은 극작가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주목받고 언제쯤 버려질까. 도장 깨기가 끝난 다음의 미래 없음, 이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고. 그 두려움 속에서 점점 내가 쓰고 싶은 게 중요하지 않아지는 것 같다. 지원사업에 되기 위해 뭘 써야 하지. 일단 주제 검열을 하고 있다 보면, 내 인생에 작품이 선행하지 않는데 내가 작가인가, 싶을 때가 많다.
나 역시 이러한 제도들 덕분에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만큼, 이러한 지원 제도들이 개선된 방향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그런 면에서 사업의 의의 혹은 타이틀과 내용이 일치했을 때가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럽고 창작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가령 창작 아카데미의 경우 동료 작가들과의 네트워크 형성과 더불어, 연극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 작가의 멘토링을 통해 집필 과정에서의 고민뿐만 아니라 실제 작가가 공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문제나 권리에 대해서도 함께 의논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로 느껴졌다.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작가를 존중하고 보호해주는 환경에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프로덕션 내에서 소외 되거나 쉽사리 작가의 권리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멘토 시스템은 지원금이나 공연의 기회와는 별개로 지금 막 연극계에 진입하여 작업을 시작하려는 작업자, 혹은 예술 학교를 나오지 않고 네트워크가 없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부분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창작 아카데미라는 타이틀에 알맞은 형식과 지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새로 시작하는 국립극단 창작 공감의 경우에는 작업과정 안에서 실제로 작가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반영하며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재 작가가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이야기는 온전히 작가의 몫으로 두되, 그러한 창작을 위해 지금 현재 창작자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중심으로 접근한다고 느껴졌다.
이처럼 지원 사업의 목표와 지원의 내용이 일치 할 때, 그래서 작가 스스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원 사업을 판단하고 선택 할 수 있을 때, 정확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선 일시적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본인의 작품 활동을 계획 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인 지원 제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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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_위한_공공_지원 #상주_극작가_제도 #극작가 네트워크
신진 이후의 극작가들의 지속할 수 있게끔, 직업을 이어갈 수 있는 장치가 뭐가 있을지 이야기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정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제도는 뭘까? 상주 극작가를 생각했다. 레지던시들이 합쳐져 있어서, 거기서 삼시 세끼가 나오고, 잘 수 있고, 작업실이 있고, 작업하는 동안에 다른 제제가 없고. 월별 활동비가 있으며 이 과정이 끝나면 공연을 올릴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한 번 해봤다. 도서관 상주작가도 있고, 극장의 상주단체도 있는데 극작가에 한해서는 그런 아이디어가 없다.
극작가가 극장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모든 극장들, 혹은 공공극장에 상주작가가 있으면 좋겠다. 혹은 극작가들이 한 극장을 운영하면서 창작 초연 극장이라는 정체성을 만들고, 그곳에 가면 극작가들의 서로 다른 작품들을 연속적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또 나는 희곡이 독자적인 장르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곡 독자와 희곡 감상 플랫폼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제도들에 대해서는, 서바이벌을 그만 해야 한다. 작품을 쓰게 하고, 낭독하고 쇼케이스를 한 뒤, 본 공연은 그 중 하나만 뽑는 식의 서바이벌이 극작가들을 모든 면에서 취약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무례하다.
공모 제도에 있어서 심사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많은 희곡 공모의 심사위원이 연출가다. 심사평을 읽어보면 희곡이 주로 공연으로 만들어질 잠재력의 측면에서만 읽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심사자의 세대교체도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신촌문화발전소에서 진행한 ‘오드아이 프로젝트’를 예로 들고 싶다. 극장이 나서서 극작가들을 발견한 프로그램이라 모든 과정에서 존중받았고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행정적인 지원도 다 해주었다. 이런 기획이 다른 극장들에서도 적용이 된다면 좋겠다. 지원사업은 없어져도 극장은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극작가와 극장의 관계 맺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극장이 희곡을 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리지 않더라도 구입을 해놓는 것이다. 갤러리가 그림을 사듯 희곡을 사주는 것이다. 미술관을 다녀왔는데 퍼포먼스를 구입을 했더라. 재미있다. 퍼포먼스가 미술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모른다는 면이 있지만 마음에 드니까 산 것인데, 희곡도 좋으면 살 수 있지 않나.
괄호 동인 활동을 하면서 극작가들이 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극작가는 집필 과정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 그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좋은 연출가 만나는 것도 있지만, 그건 유니콘 같고... (웃음) 동시대 극작가들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여러 방면의 협업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극작가들이 지인을 물어 물어 만드는 것보다, 공공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못_다한_이야기 #사라지지말아요_제발
우리의 이야기가 지원제도에 선정된 엘리트에 가까운 사람들의 푸념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고민이 든다. 주변에서 작업한 극작가들의 경우, 주류 연극계나 웹진 연극in의 수용자 층이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 작업 중이다. 연극인 안에서의 비판들은, 어쩌면 이것은 너무 깨끗한 비판, 우리가 안 다치는 비판이 아닌가. 그에 비해 진짜 극작가의 입지는 너무 좁고 언제든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제도권 하에서 공론화 될 수 있는 얘기 정도만 오늘 한 것이고, 언급하지 않은 상황에 처한 극작가들한테 미안하다.
우리가 오늘 얘기를 한 건 지금 여기의 극작가-희곡의 제도를 겪은 극작가들의 이야기다. 다른 국면에 처한 다른 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좌담이 모두의 이야기, 모든 극작가를 대변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개인의 극작가들이 겪은 일들을 통해 문제점과 개선점을 나누는 자리가 이 좌담회가 가진 의미가 아닐까. 한편으로는 극작가들이 말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좁은 연극계 안에서도 여러 활동 영역이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연극 생태계가 얼마큼의 범위를 포함하는 것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공공제도도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각 지원 제도의 목표가 명확해지면 좋겠다. 멘토링, 비평, 생활비, 장기지원, 공연지원, 작가지원 등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가야 제도의 고유성이 생기고 작가들에게 주체적인 선택권이 생긴다. .
우리가 웹진 연극in에 호명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단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간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제도 안팎을 오가면서, 어쨌든 여기부터 바뀌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혜 받았기 때문에 죄책감만 갖고 있기에는 그게 더 미안하고. 다음에 들어오게 될 작가들을 위해서 이야기를 기록해놓고 이걸 공공에서 읽고, 포지션이 다른 작업자들이 읽어주고 그러면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년 동안 이런 좌담회에 정말 많이 불러 다녔다. 청년 예술가부터 시작해서 극작가 좌담회 등등. 지금은 극작가들이 작업의 슬픔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국립극단에서도 작가들의 이야기가 반영되었다고 느꼈다. 경쟁 구도를 없애고, 생활비를 주는 측면 같은 것. 우리가 하는 말들이, 적어도 뜻이 있는 어떤 작은 몇 개의 극장들이라도, 이걸 읽고 반응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라도 읽어주길 바라고 말 한 것이다.
사라진 제도들이 생각난다. 콘진원 사업은 내가 참여한 다음 해에 없어졌다.
‘초고를 부탁해’ 없어졌고, ‘서치라이트’ 없어졌고, ‘서울시립극단 창작플랫폼’ 없어졌고... ‘희곡 우체통’은 살아 있어요?
이름이 달라졌다. ‘창작공감_희곡’으로 남아있다.
국립극단 ‘작가의 방’도 있었는데 2-3회를 못 넘긴 것으로 안다.
예술감독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가.
안 없어지게, 그 프로그램들 너무 좋았다고 말해야 하나.
도장들을 남겨주세요.
이게 그 해에 그 기관의 예산이나 기관장에 따라 달라진다.
신촌문화발전소의 <오드아이프로젝트>같은 기획, 그리고 국립극단 ‘창작공감’의 시도는 극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없어지지 않게.
  1. 김연재_극작가.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위치와 운동>을 공연했다. 인간 종(種)이 수동적 객체로 격하시킨 비인간 존재들의 감각, 움직임, 생명력, 소통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극단 동과 함께 인류세 3부작을 준비 중이다.
    도은_대표작으로 <괄호는 괄호와 괄호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아빠 안영호 죽이기>가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지금 어디에 있고, 각자 어떠한 고민을 안고있는지가 가장 큰 화두다.
    신해연_극작가. <악어 시>, <체액>, <열다섯>. 해변의 아이스크림 장수처럼 쓰지 않기. 숙성과 갱신.
    이홍도_극작가. 텍스트 실험에 관심을 두고 다방면에서 작업해왔다. 무대화되었거나 준비 중인 텍스트로 '미국연극' 3부작, '이홍도 자서전' 2부작 등이 있다.
    장영_극작가. 대표작으로 <G의 영역>과 <FAN (낭독 쇼케이스)> 가 있다. 인간의 고통 경감에 관심을 두고 있다.
    허선혜_극작가. 대표작으로 <햄스터살인사건>과 <영지>가 있고 최근에는 미신, 탈핵, 흙, 콩나물, 청소년우울증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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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

장영
극단 프로젝트 414 연출부, 독립연극잡지 이화연극의 필진으로 활동했다. 2018년 국립극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 희곡공모에서 『G의 영역』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playplaygho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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