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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언제 들어오나, 사공은 준비됐다

젊은극작가 좌담회 세 번째 “2020년대 극작가를 위한 플랫폼을 상상하기”

진행 및 정리_장영(본지 편집위원, 극작가)

제203호

2021.06.24

극작가들은 양분된 시간을 넘나들며 살고 있다. 홀로 하나의 세계를 설계하는 외롭고 기나긴 시간, 그리고 타인들과 함께 세계를 지어나가는 연습실에서의 시간. 문학과 연극, 희곡과 연극, 그 경계에 위치한 극작이라는 작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극작가들의 노동은 연극이라는 협업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동시대 극작가들의 희곡은, 어떤 곳을 비추고 어디로 나아가고자 할까? 젊은 극작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이번 연속 좌담을 기획했다. 세 번째 좌담에서는 2020년대의 극작가 혹은 희곡을 위한 플랫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기획위원 주
일시_6월 2일 수요일 오후 1시
장소_대학로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패널_김연재(극작가), 김은한(극작가), 윤미희(극작가), 김주희(극작가), 허선혜(극작가)1)
진행_장영(극작가)
#극작가를 위한 플랫폼 #극작가 커뮤니티 #극작가의 당사자성
장영
이번 좌담회는 2020년대 극작가를 위한 플랫폼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앞으로 개관하게 될 연극관련 공간에서 희곡을 위한 자리는 어디인지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다. 마지막 좌담회이니 실천적 방향, 대안의 방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김주희
주제를 건네받고 2020년대와 극작가의 관계를 고민해보았다. 작년은 극작가가 더욱 고립된 해였다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생계 위기에 봉착한 작가들은 지원사업 및 희곡 공모전에 뛰어들었고, 경쟁률은 자연히 심화되었다. 기회로부터 밀려난 작가들이 대거 발생했고, 작품의 공연화·동료들과의 네트워킹·안정적 생계로부터 전보다 더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지면 게재 또는 공연화를 목적으로 희곡을 청탁·제안 받는 극작가가 많지 않기에, 대부분 지원사업 선정, 공모전 당선으로 작가로서의 생계와 정체성을 이어나간다. 즉, 생존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희곡과 기획서를 창작해야 한다. 선정과 탈락을 룰로 하는 제도권 중심의 창작 환경이 만성화되는 위치가 바로 ‘극작가’이다. 반복되는 탈락, 해결되지 않는 생계로부터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얻는 동료 작가들도 많아졌다.
가장 큰 고립감은 지속적으로 제도의 기회로부터 밀려나면서 동료들과 멀어지고 있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동료는 잠재적 협업자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고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동료가 줄어드는 일은 현장과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반증과 같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동료’가 지원사업에 지속적으로 선정되는 작가인 경우, 미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작가들끼리 서로 미워하게 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작가들끼리 공동의 정체성으로 모여 결속을 다지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해하며 네트워킹을 해나갈 수 있는 연대적 성격의 커뮤니티가 부재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극작가들이 주축이 된, 극작가들만의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허선혜
극작가 커뮤니티가 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아마도 생업 때문이기도 하고, 지속할 수 있는 힘도 쉽게 생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극작가 연대나 커뮤니티 같은 게 생긴다면 어떤 구조로, 어떤 합의점을 만들고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강제성이나 강박성이 생기면, 커뮤니티 자체의 피로감도 생기니까. 딱딱하고 무겁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기적인 모임을 갖되 그 안에서 어떤 의제나 이야기들이 공유되어야 하고. 작가를 위한 워크숍이나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그것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주최하는 주체들의 연대가 생겨날 것 같다.
김주희
동작문화재단이 하는 ‘넛징테이블’2) 의 예를 들고 싶다. ‘넛지’가 옆구리를 찌르듯 가볍게 뭔가를 소통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예술인들이 다양하게 모여서 토론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한다. 그게 토론이나 사업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소정의 활동비도 지급이 된다. 한 달에 한 두 번의 작은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소속감을 주는 동시에 자신의 담론을 나누고 동료와의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한다.
김연재
현장에서 극작가의 페이나 저작권에 대한 문제나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부분들에 대한 공통의 합의나 감수성이 없으니, 극작가들이 개별적으로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다. 따라서 극작가들이 계속 모여서 공통의 감수성을 만들고, 제작자, 연출가, 극장 관계자들을 초대해서 설명하는 자리를 운영하는 걸 상상해봤다.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같이 의논을 하는 식의 안전장치도 필요할 것이다.
김주희
작년 말 참여하고 싶었던 자리 중에 이보람 작가가 진행하는 ‘플레이업 칾다운 아카데미 - <코로나19, 연극인생존강의키트 극작가편>3)’이 있었다. 연대체가 만들어진다면 초반에는 이런 자리와 같이 ‘느슨한 커뮤니티’로 편안하게 모일 수 있는 자리면 좋겠다. 앞서 말한 ‘넛징 테이블’의 형식이면 어떨까. 매달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탐구하고 싶은 주제를 발제, 함께 토론하며, 관련 리서치, 동료들과 프로젝트 협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까지 작가들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기획자와 행정전문 인력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모임이 발전·지속되면서, 현장과 생계에 있어 어려움과 직면한 작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조직체계도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미희
연극in 웹진의 ‘희곡운영단’이 나에게는 유의미한 활동이었다. 희곡 코너를 운영하는 의사결정 단위로 세 명(김연재, 김은한, 윤미희)이 1년 가까이 활동을 했는데, 얻은 것이 많다. 이게 ‘느슨한 커뮤니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너 하나를 두고,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뭐가 더 좋을지 생각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자신의 작품을 위해서 뭔가 하기보다는,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다른 작가들을 찾아보려고 하고. 극작가에 대한 현장의 합의와 감수성을 논하기도 하고. 연극센터에서 지원을 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의견을 제안하고 그것이 실행될 수 있도록 그 다음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 이런 지원이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를 만들기 이전에 극작가들이 주체적으로 모여서 발언하는 장. 내 작품만을 위한 게 아니라, 다른 극작가들을 위해 모여서 회의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현장에 있는 것 중에서 고려해볼 만한 것은 삼일로창고극장의 운영위원회이다. 거기에 극작가의 자리가 있다면 정말 열심히 할 것 같다. 작가의 고충은 작가가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르니까. 기획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작가들, 기획형 극작가, 극작가형 기획자가 좀 생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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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로창고극장의 프로그램 <창고개방>(2018) 중에서 “리딩파티” 현장
#희곡 플랫폼 #희곡DB #극작가 온라인 커뮤니티 #희곡집 출간
김주희
2020년대 극작가를 위한 플랫폼으로 생각한 것은, 작가들의 희곡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작가들이 자기 PR을 하지 않는 이상, 극작가의 작품이 알려지기란 쉽지 않다. 희곡집을 서점에서 구입하거나 E-BOOK으로 읽는 등 관심이 분산되어 있다. 경력, 공모전 수상이력과 무관하게 작가 스스로 소개하고 작가의 작품을 파일로 구매해서 읽을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연극in 웹진에서 ‘10분 희곡’ 코너 개편에 부정적 댓글이 달렸던 것을 돌이켜보면, 결국은 경력과 무관하게 희곡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아니었을까.
김은한
웹사이트 ‘블라인드’ 같은 극작가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집중적으로 정보 공유를 하는 것이다. 보통 나는 혼자 작업을 하다가 몇 년 전부터 극작가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작가들과 가까워진 것만으로 내가 전혀 관심 없던 주제를 접하게 되기도 하고...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김연재
극작가가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노출되고 매력적인 존재로 보일 수 있는 자극도 필요하다. 희곡을 읽는 독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극작가 기획전 혹은 희곡 아카이빙의 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극작가와 기획자가 만나면 가장 좋지만, 극작가가 기획자나 실무자가 되는 경험도 불가피하게 해야 할 것 같다.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김주희
‘아는 사람’이라는 웹진4) 이 작년 여름 시작됐다. 작가들을 위해 활성화된 공간이다. ‘아는 사람’은 매달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고, 공모를 통해 시(詩)를 선정, 소정의 고료를 지급한다. 그 밖에도 신청만 하면 메일링 서비스 등을 그 공간에서 자기를 홍보할 수 있다. 작가들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창작된 시를 낭독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공간도 있다. 한편으로, 미투와 관련해 시집에 싣지 않겠다고 선언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특집으로 싣기도 한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웹진이 극작가들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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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아는 사람’의 기획 프로그램 안내문
장영
희곡집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공연이 끝나면 희곡집을 구매할 수 있는지 요청하는 분이 있다. 책의 형태로 소장하고 싶다는 거다. 관객들도 궁금해 할 거라 생각한다. 문학 씬에서는 <올해의 문제소설>이라는 책이 있어서 국문과에서 그걸 가지고 수업도 하는데...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올해의 문제희곡>이 있으면 좋겠다. 대학에서 동시대 희곡을 다룰 때 참고 할 만한 게 없다. 공공지원으로 <올해의 문제희곡> 같은 책이 나오면 어떨까 싶다.
김은한
극작가의 ‘재발간 앤솔로지’ 같은 걸 생각해봤다. 문학에서는 신간의 형태로 앤솔로지가 재출간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시 읽히지 않는 예술을 하기 때문에, 극작가들의 예전 작품을 앤솔로지화해서 출판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을 보고 이 작가의 전작들을 보고 싶다고 해도, 지금은 찾아서 읽는 것이 쉽지 않다.
허선혜
희곡읽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입장에서, 희곡을 동시대 작가들에게 파일형태로 받아서, 이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읽으라고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결국 도서를 구비해야 한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동시대 희곡읽기도 가능하다. 그리고 공급이 있으면 수요가 생기기도 한다. 희곡집에 먼저 수록 되어서 추후 연락을 받고 공연화 하는 사례들도 있다. 결국 희곡집 출간사업이 극작가를 위한 장치로, 선순환 할 수 있는 고리가 되는 것이다.
김주희
출간되지 않고서는 공연화될 기회가 희박한데, 희곡집이 출간 자체가 워낙 어렵다보니 출간이 꼭 출판사를 거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한곳에 극작가들의 이름과 소개 등을 간단한 절차를 통해 모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희곡을 아카이빙 해두어 누구나 결제해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어떨까. (전자책 제작에 필요한 비용, 작가가 받을 인세 등을 최소화하더라도, 또는 작가 자신이 직접 편집한 PDF 파일을 유통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이 공연화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는 것 자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김은한
연극센터가 재개관하면 중철제본으로 모아찍기가 가능한 인쇄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작품을 즉석에서 바로 만드는 것이다. 작가가 신작을 계속 양산하지 않더라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 어떤 희곡들은 가볍게 읽힐 수도 있다. 이렇듯 연극센터에서 희곡이나 극작가들을 위한 실험적인 시도가 있다면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재개관될 연극센터에 희곡을 위한 자리는 있는가? #극작가 레지던시
장영
재개관할 연극센터에 매주 같은 요일 ‘희곡읽기 모임’이 있으면 어떨까. 신청만 하면 그 시간에 그 장소에 가면 희곡 하나를 정해진 시간까지 읽을 수 있도록. 희곡을 회수하는 것도 되게끔 하고, 온라인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연극센터를 지나가다 그 시간이 되면 앉아서 한두 시간 희곡을 읽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읽는) 희곡에 대한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담당자가 ‘업무’로써 한다면 결국 문화로 정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창작극을 살리고자 하려면 동시대 극작가가 누가 있는지는 알아야 할 텐데, 희곡읽기 정기모임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허선혜
문학계에서는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마련되어 있고, 연극계에서는 극장의 상주단체 제도가 있다. 그런데 왜 공간에 상주하는 극작가의 프로그램은 없을까. 한편으로 극작가 전용공간이 너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들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연습실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도 연습실이 필요할 수 있다. 극작가의 공간에서 집필도 할 수 있고, 초고 발표도 할 수도 있고, 다양한 인큐베이팅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윤미희
재개관할 센터를 이야기 해보자면, 글만 쓰고 가는, 연습실 개념의 집필실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가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극작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현실적으로 연극센터, 웹진, 희곡운영단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고 있는데, 극작가들에게 주어진 파이를 쪼개서라도, 한두 명에게 수혜가 집중되는 것보다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가 낫지 않을까. 그래서 집필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아가 극작가가 주체적으로 꾸려보는 희곡 리딩 공간, 초고 발표 공간 같은 것도 생각해보았다.
김은한
일본의 시모키타자와5) 의 연극센터를 가보면, 저번 주에 끝난 연극 대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철제본 아니면 두루마리처럼 널려 있는데, 극단에서 가져다 놓고 판매하는 것이다. 극단의 굿즈인데, 극작가들의 마켓도 가능하다. 입구에는 희곡 자동판매기(가챠)처럼 돌리면 나오는 것도 있고, ‘희곡 500엔 할인’ 같은 것도 있다. 그 가치를 뽑으려면 그날 본 공연 티켓이 있어야 한다. 그런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으면 좋겠다. 극단이 허락한 공연 영상들이계속 나오고, 방명록으로 그날 본 공연의 감상이 적혀있고, 정말 동아리방처럼 느슨하고 재미있고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그런 걸 경험하는 것도 관객으로써도 중요하다. 희곡이나 극작가를 경유하여 연극문화를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김주희
최근엔 큐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하는 서점들이 인기가 있으니, 연극센터에서도 그 많은 장서들을 어떻게 ‘재배치’ 하고 ‘재생산’ 되게 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희곡을 찾는 독자들이나 창작자들이 희곡을 읽을 수 있는 ‘큐레이션’이 보강 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사당동에 위치한 큐레이션 서점 ‘지금의 세상’에서는 방문한 일반 독자들이 어떤 고민들을 적어서 내면 책을 추천하는 식이다. 이렇게 큐레이션 서점으로 정체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6) 책과 작가와 서점과 관계 맺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극 센터 또한 그러한 큐레이션이 가능할 것 같다.
김연재
희곡 웹진 등의 온라인 플랫폼이 생겨난다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시각예술과 희곡의 협업, 극작가와 다른 장르의 콜라보 등등. 이렇게 극작가들이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는 문화가 연극센터에서 탄생하기를 바라고 있다.
허선혜
미국 보스턴에 연극인들을 위한 ‘하울 라운드(HowlRound)’는 진취적인 예술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극작가들이 본인이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지원이다.7) 극장 안에서도 하고 싶은 것들 본인이 목표로 삼은 것들을 할 수 있게 한다. 인종문제, 성적 지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결국 작가가 원하는 대로 했고, 그 위험한 연극들이 관객들에게는 제일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도 기성의 공고한 백인 중심의 전통적 연극형태와 많이 부딪쳤는데, 어쩌면 그래서 이 플랫폼 지원사업을 더 유지하는 것 같다. ‘위험한 연극’을 지속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한 극작가들의 인터뷰, ‘작가들이 생계적 위협을 받지 않을 때 잘 쓴다’ 는 것이 공통적 결론이었다. 지원을 받는 게 극작 기계로서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지원받는 기분이었다는 인터뷰도 인상 깊었다. 이 안에서 극작가들이 글을 쓴 것도 있지만, 상주 극작가가 지원으로서 존재하므로 극장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극장과 예술가들의 소통에 있어서 이 사람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게 중간다리의 역할을 하고, 지역민들에게 워크샵이나 교육을 진행하며 지역과 예술계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는 이런 방법도 있구나, 저에게는 상주극작가가 이상적인 이야기여서 가능할까를 고민했는데. 여기는 재단의 후원을 받은 것이지만, 시도해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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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작가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 (하울라운드), 극작가 레지던시의 목표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출처_https://howlround.com/residencies)
#희곡에 대한 비평언어의 부재
장영
아르코극장의 기념전시 <없는 극장>을 하면서 느낀 건데, 사전에 아무런 협의 없이 극작가들이 알아서 썼는데도 그 안에서의 공동의 관심사와 흐름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모아서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흐름을 읽을 수도 없고, 작가들의 관심사들이 모여지지도 않는다. 이런 역할을 해줄 평론에서의 호명이나, 극작가를 설명할 언어도 없다. 장애, 환경, 젠더 등에 대한 다양한 비평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평론가와 연구자들이 동시대 희곡과 매칭되어 재해석하는 작업을 공공에서 지원 해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극작가 동인 <괄호>에 드라마터그가 있다는 점이 고무적인데, 동시대 젊은 극작가들의 희곡을 동시대의 젊은 평론가가 다시 해석해주는 작업이 그러하다. 이게 연극센터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비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심사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다양한 나이대와 정체성을 가진 극작가들이 심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호명되는 극작가들이 달라질 것이다.
김주희
비평가들이 어떤 공연을 보러 가는가? 어떤 것에 평론을 쓰는가? 그 계기를 잘 모르겠다. 조선족 여성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해도 어차피 와서 보고 평론을 써줄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동료 작가와 나누기도 했다. 기존의 제작극장 등을 경유한 제도권의 선택이거나 혹은 어느 정도의 수혜를 받은 창작자들의 작품에만 비평이 시도된다는 것이 문제다. 극작가들이 지향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 다양한 집단, 다양한 작업자들에 대해서, 비평이 좀 더 반응해주었으면 좋겠다.
김연재
지난 시간에 과도한 멘토링보다 좋은 비평의 언어가 훨씬 더 좋은 작가 육성에 기여한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어떻게 쓰라는 것보다, 이 사람의 작업의 역사와 맥락을 짚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시각 작업에서, 전시를 보는 것만큼이나 비평을 보는 게 생산적이고 지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런 게 가능하면 좋겠다.
김은한
많은 젊은 비평가들이 창작자를 겸해서 또 신중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비평가들에게 할 수 있는 불평인 것이고. 비평은 협업 이후에 오는 것이기에, 젊은 비평가들이 어떤 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희곡과 함께 간다면 어떤 동력으로 가야할까.
장영
아르코 차세대 지원사업에서 좋았던 것은 주최 측의 섭외를 통해 내 작품에 대한 비평을 읽었을 때였다. 낱낱이 분석해준 글을 읽고 그게 도움이 되더라. 당신의 작품은 관객석에서 이렇게 보인다, 당신의 글은 독자로서 이렇게 읽힌다, 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과정 중에 멘토를 붙여 육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창작자에게 비평받을 기회를 준다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젊은 작가는 비평가를 알기도 어렵지 않나.
김은한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의 A트랙에 선정이 됐다. 무사히 지원을 받게 된다면, A트랙 심사위원들을 모두 초대하려고 한다. 이것도 제도적으로 지원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뽑았으니까 결과까지도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누가 뭘 만들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비평 얘기랑 연결해서도 생각을 하게 된 건데, 심사위원들이 충분히 보고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 담당하는 예술행정가도 작품을 보러 와야 하고.
장영
심사위원 풀이 겹치는 것을 느낀다. 뽑아 놓은 작품들을 팔로우해서 보지 않으면, 동시대 작업들의 과정과 결과를 모르는 상황에서 또 다른 심사에 들어가게 되는 거다. 심사위원들도 결과물까지 끝까지 관심 갖고 책임져주는 게 필요할 것 같다. 하나의 웰메이드 작품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뢰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윤미희
좋은 작품 왜 없나만 찾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극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지에 방향이 맞춰지길 바란다. 완성된 대본을 내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쓰게 할지를 같이 고민해보는 거다. 그 고민에 앞선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 있겠다. 우리는 누구보다 희곡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한 편의 좋은 희곡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주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극작가들이 죽지 않고 계속 잘 쓸 수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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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철소에서 출간한 희곡집
#극작가가 바라는 것 #희곡 혹은 극작가에 대한 감수성 #2020년대의 극작가들
장영
1회차에서 말한 딜리버리 피는 정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돈보다는 존중과 감수성을 마련하는 단계로, 이런 매뉴얼을 선제시하고, 이런 걸 해줄 프로덕션을 찾는 방향도 좋다. 제안을 수용할 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조금 더 솔직하게 마련되도 좋겠다. 이홍도 극작가님의 신춘문예 시상식 소감 중에, ‘극작가 한 명이 잘 되면 배우 60명이 연극하며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을 늘 떠올린다. 제 작품을 선택한 팀원들을 어떻게 계속 후속적으로 책임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 책임감을 계속 느끼면서 쓰고. 그래서 저한테 극작가는 저 개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주희
제도에 진입하지 못한 신인 작가와 제도 안에서 호명되는 작가에 대한 지원이 양립되어야 할 것이다. 제도 진입 이전에는 작품 활동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테이블이 필요하다. 제도 안에서는 비평, 자문 등 보다 완성도 있고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지만, 서로 미워하지 않고 교류할 수 있는 중간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선혜
결국에는 가장 근본적으로는 극작가에 대한 존중이 연극계 안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비평 같은 경우에도 누군가가 나의 작품을 보고 꼼꼼하게 이야기해준다는 것에 감동이 있는 것이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그게 되어 있지 않다. 그건 지원제도에 점점 극작가 인원을 줄이는 문제와 함께, 프로덕션 내에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극작가 커뮤니티나 연대가 생기면 그런 문제에 한 번쯤 짚고 넘어가서, 그런 것들의 중요성을 알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극작가의 중요성을 인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극작가 없이도 연극판은 굴러간다, 는 인식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발언들을 모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들을, 이번 좌담들을 통해 많이 느꼈고 그런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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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개관을 예정하고 있는 연극관련 공간들 조감도 (좌-성북연극창작공간, 우-서울연극센터)
(출처_서울시 정보광장 웹페이지)
  1. 김연재_극작가.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위치와 운동>을 공연했다. 인간 종(種)이 수동적 객체로 격하시킨 비인간 존재들의 감각, 움직임, 생명력, 언어에 관심을 두고 극단 동과 함께 인류세 3부작을 준비 중이다.
    김은한_극작가, 배우, 연출가. ‘매머드머메이드’ 명의로 2015년부터 매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작고 작가와의 공동창작이라 우기며 1인극을 만들고 있다. 쉽고 즐거워서 나도 당장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고 좋은 연극을 추구한다.
    윤미희_극작가. 자꾸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다. 나와 다르게 세상을 감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지만 결국 쓸 때는 관계에 주목해서 쓰게 된다. 한 편의 희곡을 완성할 때마다 흰머리가 부쩍 느는 기분이 들지만 머리가 새하얘질 때까지 계속 쓰고 싶다.
    김주희_극작가. 대표작으로 <두 개의 언어, 하나의 몸>, <낙원(Your Taste)>, <마르지 않는, 분명한, 묘연한>, <바닥 아래>가 있다.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을 쓰고자 한다. 작곡가 민혜리, 연출가 임범규와 ‘프로젝트 1인실’을 운영 중이다.
    허선혜_극작가. 대표작으로 <햄스터살인사건>과 <영지>가 있고 최근에는 미신, 탈핵, 흙, 콩나물, 청소년우울증에 관심이 있다.
    장영_극작가. 대표작으로 <G의 영역>과 <FAN (낭독 쇼케이스)> 가 있다. 인간의 고통 경감에 관심을 두고 있다.
  2. 넛징테이블(2019) https://blog.naver.com/idfac/221547549336
    넛징테이블(2020) https://blog.naver.com/idfac/221982775515
    공고 개요는 년도별로 상이하며, 본문에는 2020년 공고의 특성을 중심으로 기입하였다.
  3. 2020. 12. 21에 서울문화재단에 업로드 된 공고.
    https://www.sfac.or.kr/artspace/artspace/play_notice.do?cbIdx=986&bcIdx=117514&type=
  4. 웹진 “아는사람” https://knower2020.com/INTRO
  5. 마니아 문화가 만드는 극장의 존재 방식 - 일본의 소극장 분포와 운영 현황 (예술경영웹진)
    https://www.gokams.or.kr:442/webzine/wNew/column/column_view.asp?idx=1508&page=7&c_idx=88&searchString=&c_idx_2=
  6. 큐레이션 서점 '지금의 세상': https://www.instagram.com/the_present_world/
  7. “한 극작가에게 3년간 지원을 해주고, 시간과 공간과 자원과 월급을 준다고 한다.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리서치를 해줄 수 있는 자원을 마련해주고, 활동비 개념의 월급을 제공한다. 레지던시 형태로 운영이 된다. 선정할 때는 해당 지역 사회에 거주하는 극작가를 뽑는다. 3년 안에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풀 프로덕션을 제공한다. 극작가들을 섭외할 때 중요한 것이 나이 인종 성별 경력을 벗어나서 뽑고, 극장들도 규모나 성적과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허선혜. (내용관련 : https://howlround.com/residen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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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

장영
극단 프로젝트 414 연출부, 독립연극잡지 이화연극의 필진으로 활동했다. 2018년 국립극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 희곡공모에서 『G의 영역』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playplaygho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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