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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하는 사물들을 만드는 사람들
의상 디자이너 김미나, 소품 디자이너 남혜연과의 인터뷰

연극과 사물, 물질의 극장

심지후

제222호

2022.09.29

웹진 연극in은 극장의 사물들을 주제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인간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비인간 행위자, 사물들의 시간을 쫓아갑니다. 그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며, 사용가치를 잃어버린 뒤 보관되고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필자분들께는 ‘동시대의 기후위기’, ‘창작자의 노동’, ’사라지는 것으로서의 연극’이라는 세 개의 공통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첫 번째 연재는 사물의 제작을 둘러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공연 날, 극장에 출근해서 점검을 마치고 프리셋도 끝내고 이것저것 하고 나면 대기시간이 생깁니다. 하우스 오픈까지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보통 배우들은 무대에서 몸을 풀지만 조연출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저는 그냥 그걸 구경합니다. 걸리적거리지 않을 위치에 자리를 잡고서 배우들이 몸 풀고, 대사 중얼거리는 걸 봅니다. 장면을 건너뛰며 동선을 밟는 사람들, 겹쳐지는 움직임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갑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 그사이에 가만히 놓여 있는 것들에 눈이 갈 때가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들 사이에 가만히 있는 것들. 무대에 같이 올라갈 물건들입니다. 자기 영역을 든든히 가지고 있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저게 있었던가’ 싶어지는 극장의 물건들. 저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져서 저 자리까지 오게 된 걸까요.

저는 무대 위에 올라가는 사물들을 창작해내는 디자이너를 만나 물건을 만들어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마음으로 창작물을 만들어가는지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배우가 직접 운용하거나 착용하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의상과 소품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에게 가려지는 물건들, 없으면 안 되지만 있어도 부러 ‘나 여기 있다’ 하지 않는 물건들에는 어떤 마음이, 어떤 시간이 담기는 걸까요.

“공연 의상은 캐릭터의 고유성을 만들어주는 것”
의상 디자이너 김미나 인터뷰

인터뷰를 계기로 김미나 디자이너의 작업실에 갔습니다. 원단 다발을 색깔별로 나눠 채워 넣은 장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옷들이 눌러 담긴 투명한 박스가 군데군데 쌓여있었습니다. 긴 책상에는 미싱 두 대가 놓여 있었고, 미싱 위엔 알록달록한 실패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지저분해 보이죠? 이게 최선을 다해서 정리한 거예요’, 라며 김미나 디자이너는 웃었습니다. 혼자 사는 집인데 이사할 때 무려 2톤 트럭을 불렀다나. 그는 연극, 개중에서도 소극장 작업을 주로 하는 의상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무대에서 캐릭터로 스위치되는 순간이 좋아서 의상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진 속 가득 다양한 색의 실과 원단이 쌓여 있다.

사진 속 가득 2층으로 된 행거에 빈틈없이 옷이 걸려 있다.

의상 디자이너 김미나의 작업실

지후
의상 제작과정이 보통 어떻게 되나요?
미나
대본 읽고 나서 리서치를 해요. 옛날 작업을 뒤져보기도 하고 핀터레스트를 둘러보거나 영화를 찾아요. 아이돌 영상도 자주 보고, 요즘 예능이나 패션쇼, 현대미술을 보기도 해요. 디자이너는 평소에 얕고 넓게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작업하면서 리서치를 시작할 때 얕게 알고 있는 아이디어를 꺼내 깊이 파고들어요. 이 과정을 마치면 어떤 아이템을 쓸지 그림이 나와요. 그 디자인 그림을 그린 다음에 소재를 결정하고 사입할지 제작할지 결정해요.
지후
배우와 연출부는 연습실에서 연습하면서 작품 이해를 위해 테이블 작업도 하고 장면 만들면서 서로 장면이나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의상도 비슷한 과정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미나
작품에서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연출 생각을 정확하게 알아야, 비주얼적으로 어떻게 구현하고 도와줄지 판단이 되죠. 근데 보통 연습을 보면 보여요. 만약에 안 보인다? 그럼 연출을 붙잡고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묻죠. 그럴 땐 딱 직관적으로 얘기해주면 좋겠어요. 우리는 물질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예전엔 뜬구름 잡는 표현을 듣기도 했어요. 습기가 많은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든지. 그럼 이 연출이 어떤 의도로 그런 얘기를 했나를 해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죠. ‘왜?’를 많이 생각해요.
지후
우리는 물질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직관적으로 얘기해달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연출이 큰 방향을 잡는다면 디자이너들은 거기에 내용을 채워 넣는 것 같아요.
미나
가끔은 의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옷은 매일 입는 거고, 옷 입고 다니는 사람 맨날 보잖아요. 근데 공연에서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공연에서 옷은 이 캐릭터 저 캐릭터 각각의 고유성을 만들어주는 거란 말이에요. 예를 들어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체형인 배우들이 쭉 있어요. 연습실에서 연습복 입고 있으면 사실 구분이 명확히 안 되기도 해요. 근데 이제 그 사람들을 조금씩 분리를 하는 거예요. 얘는 이쪽으로 밀어주고, 쟤는 저쪽으로 밀어주고 하면서요. 그렇게 다른 캐릭터로 보이게, 세밀하게 만들어 놓는 거랄까요. 일상복임에도 불구하고요. 그럼 확실히 달라지죠.
지후
일상복에서 그런 세부적인 차이를 넣는 게 쉽지 않겠네요.
미나
네. 그래서 사람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진짜 관찰을 무진장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차이는 한 끗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아, 요새는 디자인 요소 여러 가지를 덕지덕지 붙이기보다는 심플한데 포인트가 되는 무언가를 찾고, 그 무언가로 캐릭터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주는 방식을 좀 좋아해요. 힙한 것, 트렌디한 것, 그런 게 거기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예를 들어서 평범하게 입었는데 머리가 노래, 갖춰 입었는데 양말이 예쁘고 신발이 센스 있어, 이런 것이요. 전환에서도 어떤 포인트로 임팩트를 줄지 생각해요. 장면마다 옷을 갈아입히기보다는 옷을 뒤집거나, 벗으면 뭔가 달라진다거나, 그런 포인트들이요.
지후
공연에서 의상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혹시 스스로 ‘저건 잘했다’, 라고 생각할 때가 있으세요?
미나
작품 서사나 구조, 배우의 캐릭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요. 관객들이 볼 때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게 좋아요. 그 세계 안에서요. ‘잘했다’는 건 그런 거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 의상만 혼자 손 들고 서 있으면 그건 내가 잘못한 거죠.
지후
미나 디자이너님은 꽤 오래 연극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과거에 작업하던 방향과 요즘 작업하는 방향에서 달라진 게 있을까요?
미나
과거에는 ‘나 의상!’ 하면서 소위 ‘간지’ 내는 의상이 좋은 줄로만 알았죠. 고전작이 많았고 컨셉을 강하게 보여주는 연출도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은 현대물이 많기도 하고 연출 방향이나 연기 톤도 달라져서 좀 더 자연스러운, 세련된, 건조한 걸 요구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모니터하다가 옆에 관객을 봤는데 비슷한 옷을 입고 있고 그렇기도 해요. 근데 그렇다고 진짜 사람들이 입는 옷 그대로 입혀서 무대에 올려놓으면 보잘것없어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죠.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생긴 변화도 있어요. 예전엔 하얀 옷 입은 성녀, 어머니, 아님 빨간 옷 입는 악녀가 있었다면 요즘은 더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죠. 연출들이 캐릭터를 보여주는 관점, 관객이 캐릭터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어요. 의상은 관객들이 이 캐릭터를 어떻게 봐야 할지 코드를 걸어주는 거니까, 저도 요즘엔 ‘이게 맞나’ 하면서 이미지를 한 번 점검해요.
지후
기후 위기 시대에요. 연극에서도 불필요한 제작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요. 물건들을 만드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런 것을 고려한 적이 있거나, 아님 작품팀에서 이런 내용을 제안받은 적이 있을까요? 갖고 있는 의상을 재활용한다거나 아니면 디자이너들끼리 옷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으세요?
미나
지금 하는 거리공연에선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사지 않고 공연하기로 했어요. 가능한 배우들 옷과 제가 가진 옷들로 조합하기로 했죠. 재활용에 대해 말하자면, 사입한 옷들은 재활용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제작한 옷들은 사실 어려워요. 디자인 성향이 워낙 다르니까요. 사입한 옷이라 해도 제가 산 건 다시 쓸 때가 있는데 다른 디자이너가 산 옷은 거의 안 쓰게 되더라고요. 다른 선생님이 일 그만두면서 의상을 넘겨받은 적이 있는데, 기본 티셔츠 빼곤 공연에서 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저도 깜짝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그 옷들은 제가 야시장에서 집어 올 일이 없는 옷인 거예요. 눈에 안 걸리는 옷들인 거죠. 다른 디자이너님들과 얘기하고 싶기도 한데, 의상 디자이너들은 거의 프리랜서라 협회나 노조나 그런 게 없어서 서로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적기도 해요. 외국 어디에는 리사이클링이 되는 극장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걸 하려면 의상 관리할 공간과 비용, 인력이 필요하죠. 그래도 그거만 된다면 너무 하고 싶어요.
지후
마지막 질문이에요. 공연 의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뭘까요?
미나
음식 할 때 마지막에 소금 간을 치는 것처럼, 없으면 심심한데 너무 가면 짠 그런 것.
지후
극장의 사물이란?
미나
극장 안에서만 살아남는 것들. 공연에 나간 의상들은 공연에서만 생명이 생겨요. 전시를 해도 사실 의미가 없죠. 이걸 다시 사용하려면 공연에서 새 생명을 넣어줘야 하는 거예요.

“극장은 극장 사물들의 합”
소품 디자이너 남혜연 인터뷰

며칠 후, 남혜연 소품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기다리면서 혜연 디자이너와의 채팅창을 올려보니 ‘잔에 실제로 물을 넣고 마시는 걸까요?’, ‘같은 소품이 하나 더 필요하게 되어 요청 드려요’, ‘통에 얼굴이 들어갈 만큼 커야 할까요?’, ‘택배 무사히 도착했습니다’와 같은 말들을 주고받은 기록이 있었습니다. 연습을 진행하고 있으면 소품팀이 조용히 문을 열고 소리 죽여 박스를 들여오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기억 속에서 남혜연 디자이너는 책상에 물건들을 정리해놓고는, 연습실 한켠에 주저앉아 글루건으로 뭘 붙이곤 했습니다. 연습실도 분장실도 아닌 곳에서 다시 만난 그에게 소품의 매력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만들고 싶은 모양을 떠올리고 그걸 변형하는 게 소품의 매력이라며 씩 웃었습니다.

철사와 헝겊, 인조털로 만들어진 동물 머리 모양의 소품
소품 디자이너 남혜연이 만든 소품
지후
소품 제작 과정이 보통 어떻게 될까요?
혜연
대본을 받고 머릿속에서 상상을 해요. 그리고 대본을 바탕으로 소품 리스트를 만들고 연출과 미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소품이 있는지 서로 방향을 확인하죠. 견적을 내면서 재료 설정을 대략 하고, 리스트를 바탕으로 들여올 소품을 조율해요. 연습을 보면서 상상한 그림과 매칭을 시키고, 가소품을 들여요. 예를 들어 저글링을 연습해야 한다거나, 오랜 시간 몸에 익어야 해서 좀 일찍 들여와야 하는 소품이 있잖아요. 보통은 공연 2주 전에 제작에 들어가요. 그러면서 연습실에서 배우가 이 소품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보고, 상의하는 거예요.
지후
제작 전에 생각하고 소통할 게 많네요. 대본을 읽고 머릿속에서 그림을 상상한다고 하셨는데, 떠오른 그림을 어떻게 발전시키나요?
혜연
만약에 벽돌이 나온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모양을 먼저 떠올려요. 그다음엔 리딩을 듣거나 대본을 다시 읽으면서 장면 분위기를 캐치하고 모양을 수정해요. 크기를 크게 가져갈지, 소재를 뭘로 할지, 이런 것들요. 그리고 연출과 공유하면서 수정해요. 나는 3센티짜리를 생각했는데 연출은 30센티짜리를 생각했다고 할 수도 있거든요. 만약에 연출이랑 제가 생각한 모양이 다르면 의도를 물어보고, 그 모양을 처음 보는 관객 입장에선 뭐가 더 효과적인지 제안을 해요. 보고 결정하자고도 많이 해요.
지후
연습실에서 배우와 연출부가 캐릭터를 분석하고 장면을 만들듯이, 소품 제작에도 그런 과정이 있겠죠?
혜연
그렇죠. 캐릭터 분석과 같이 가는 것 같아요. 만약에 가방이 필요한데 가방을 메는 캐릭터가 활발하다, 그러면 친구들이랑 같이 가서 가방을 샀겠다, 어떤 색감을 골랐겠다, 이런 상상을 해서 들여오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배우가 운용하는 게 아니라 무대 어딘가에 놓여 있는 소품이라면, 무대 디자이너와 소통하면서 세트 그림에 분위기를 맞춰요.
지후
무대와 소품, 배우와 소품은 각각의 영역이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소품은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요?
혜연
최근에 어떤 배우랑 얘기한 건데 그 배우가 하는 말이, 어떤 역할을 연기하면서 의상을 입어, 그리고 머리를 해, 모자를 써, 이러면 점점 자기가 생각했던 캐릭터에 구체적인 이미지가 붙어서 힘을 얻는대요. 소품은 그런 역할인 것 같아요. 아무 소품이 없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그 모습, 그 모양, 그 세팅이 짱입니다’ 할 수 있게, 이미지적으로 확신을 주는 거요.
지후
혹시 공연 보면서 소품 디자이너로서 ‘이거 잘 만들었다’ 하는 때도 있나요?
혜연
눈에 걸리는 거 없을 때요. 그리고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을 때요. 섬세한 의도가 있어서 찍어줘야 하는 게 아닌 한 슬며시 묻어나는 게 좋아요. 관객이 장면을 보다가 ‘어, 가방 색깔 특이하다’ 하는 찰나에 집중이 새버리잖아요. 별로예요. 공연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하는 거, 한눈에 저게 뭔지 알겠어서, 뭘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안 들 정도로 그냥 넘어가는 게 좋아요.
지후
관객들이 너무 모르고 넘어가면 아쉽다거나 그렇진 않으세요? 관객이 소품에 대해 후기 남길 때도 있으셨어요?
혜연
지인들한테 얘기해서 괜찮아요. 후기는 안 올라오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관객은 모르는 게 좋은데, 그래도 소품상이나 분장상 같은 게 무대미술 안에서 세분화되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상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고생했어요, 그거 진짜 좋았어요’ 해주는 것 같잖아요.
지후
소품은 공연에서만 한시적으로 쓰이는 작품이잖아요. 이런 작품을 만들 때 창작자로서 어떤 마음이 드나요?
혜연
태도가 되게 다른 두 디자이너를 만난 적이 있어요. 어떤 분은 애착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한 분은 애착이 없진 않지만 공연에서 잘 쓰이면 그걸로 되는 분 같았어요. 두 분의 의견 모두 존중하고 이해가 돼서 저도 소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죠. 저는 만드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애착이 생기지만 일단 내 손을 떠난 후부터는 공연에서 어떻게 쓰이든지, 배우가 어떻게 다루든지 잘 살아남아라, 하게 돼요. 좀 매몰찬가. 잘 만들어진 애들은 오히려 맘이 편한데, 괜히 잘 부러지는 애들이 있으면 신경 쓰이기도 해요.
대체 텍스트: 하얀 꽃, 녹색 잎과 줄기, 갈색 뿌리로 이루어진 꽃 모양의 소품
소품 디자이너 남혜연이 만든 소품
지후
혹시 소품 제작할 때 기존의 소품을 재활용하거나 다른 디자이너들의 소품을 공유하거나 대여하기도 하나요? 그런 문화에 대해서 혹시 고려하거나 시도해본 적도 있을까요?
혜연
제가 갖고 있는 소품이면 재활용할 수 있겠는데, 다른 디자이너가 만든 창작물을 건드리는 건 좀 조심스러워요. 동의하더라도 최대한 분해해서 쓸 것 같아요. 공공 제작극장에서 작업할 때 재료가 비슷한 걸 발견해서 써도 되는지 물었는데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변형한다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디자이너의 창작물에 대한 존중이랄까.
지후
기후위기 시대예요. 불필요한 제작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제작을 고민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혹시 작품 하면서 이런 것을 고려하거나 제안받은 적이 있을까요?
혜연
기후위기 주제의 공연에서 분장으로 참여했을 때 각 파트에서 탄소절감을 위해 어떻게 할지 적은 기후노트가 있었어요. 그중 무대 파트에서 기존 재료를 활용한다,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한때 쓰이고 기약 없이 남아 있는 친구들을 끄집어내서 재료로 다시 사용한다고 했어요. 쪼개고 쪼개서, 더 쪼갤 수 없을 만큼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속 가능한 제작에 대해서라면, 재료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사실 소품 제작에 쓰이는 대부분의 재료가 합성수지예요. 스프레이, 락카, 스티로폼 이런 것들인데 이게 다루기 쉽기도 하지만 원가를 절약하기 위해 선택하는 재료이기도 해요. 그래야 인건비가 충당되니까. 결국 예술을 하고 있지만 환경을 해치는 안 좋은 재료를 쓰는 거죠. 재사용이 가능한 재료도 생각해봤어요. 철 같은 금속류를 쓴다거나, 비건가죽처럼 친환경 재료들을 찾을 수도 있죠. 근데 새로운 재료를 찾는 것도 다 발품인데, 그걸 한다 해도 인건비를 더 충당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만약 찾더라도 다루기 어렵거나 불에 잘 타거나 잘 부서지거나 해서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죠.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지후
마지막 질문이에요. 공연 소품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혜연
소품은 공연의 일부. 진짜로 일부분.
지후
극장의 사물이란?
혜연
극장은 극장 사물들의 합. 게슈탈트 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열 개의 개별요소가 모여서 전체를 이룰 때, 인간은 그 전체를 열 개 요소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어떤 총체적인 장면으로 인지한다는 거예요. 극장의 사물들도 그런 것 같아요. 人n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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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후

심지후
공연예술노동자. 연출이거나 조연출입니다.
pieintheskyer@gmail.com / 인스타그램: @uh_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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