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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하는 인형 또는 인형의 실재

연극과 사물, 물질의 극장

이지형

제223호

2022.10.13

웹진 연극in은 극장의 사물들을 주제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인간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비인간 행위자, 사물들의 시간을 쫓아갑니다. 그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며, 사용가치를 잃어버린 뒤 보관되고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필자분들께는 ‘동시대의 기후위기’, ‘창작자의 노동’, ‘사라지는 것으로서의 연극’이라는 세 개의 공통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두 번째 연재는 인형의 사용을 중심으로, 그 탄생과 소멸까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무대디자이너이자 인형작업자로 지난 10년간 연극, 뮤지컬, 무용, 다원, 전통, 전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인형, 오브제와 무대작업을 해왔습니다. 현장에서 작업을 시작했던 초반과 달리 최근에 이르러 인형 및 오브제의 사용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인형작업자에게 반가운 사실임에는 분명하지만, 작업이 반복될수록 특히 국내 공연 안에서 인형의 쓰임과 그 역할에 대한 아쉬운 지점들이 발견되어 조심스러운 마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형극을 벗어난 인간 중심의 기존 공연 형태에서, 인형이 공연의 맥락상 의미 있고 상징적인 존재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공연에서 인형과 오브제는 인간과 달리 보인다는 점에서, 한순간을 위해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존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인형의 존재(인물)가 왜 굳이 인간(배우)이 아닌 인형으로 등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설득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의 인형의 탄생과 쓰임에 관해

앞서 언급한 다수의 프로덕션에서 인형과 오브제는 해당 공연의 한 인물 또는 상징적인 존재로 탄생하기 때문에 공연이 끝난 후에는 그 쓰임이 다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공연이 있기 전까지 또는 재공연이 없는 경우, 다시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여타 무대 세트 혹은 소품들처럼 방치되거나 폐기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하나의 공연을 위해서는 무대뿐만 아니라 조명, 소품, 의상, 음악과 같이 다양한 창작물들이 발생하고 소멸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형작업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특히 인형은 말 그대로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폐기하거나 버리지 못합니다. 조금 더 과장하여 말하자면, 인형을 버리는 행위는 마치 그 인형을 유기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디자이너로 참여하는 작업의 경우, 공연이 끝나고 나면 작업자가 만든 인형은 해당 공연의 소유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그 인형들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공연의 연출 또는 대표에게 폐기보다는 보관을, 그리고 가급적이면 창고보다는 사무실 또는 작업실 한켠에 인형을 보관해달라는 부탁을 하곤 합니다.

경첩으로 연결돼 뚜껑이 열고 닫히는 커다란 나무 상자가 활짝 열려 있다. 상자 안에는 너트와 볼트로 조립할 수 있는 나무 인형 조각들이 들어 있으며, 섬세하게 조각된 인형 얼굴이 보인다.

<기존의 인형들>(2018)에서 에르베 르라흐두 연출이 사용한 조립식 인형

저는 인형작업자이면서 또한 무대디자이너로 작업을 하는데, 특히 인형에게 이런 마음과 감정이 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형이 우리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무대작업과 달리 인형작업에서는 인형의 초기 단계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 인형에 오롯이 작업자의 노동과 시간을 쏟아붓기 때문입니다. 무대작업과 인형작업의 가장 큰 차이는 디자이너와 제작소가 분리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인형작업의 경우 제작소에 제작을 맡길 수 없기 때문에, 노동을 하는 동안 인형을 붙들고 완성하기까지, 그 인형에 애증의 감정과 작업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완성된 인형을 쉽사리 보내는 것도 그 쓰임이 다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매번 쉽지는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형작업자는 지속가능한 인형의 형태와 공연의 형식에 대해 고민합니다.

지속가능한 인형: 인간(배우)과 같은 인형(배우)

공연에서 인간(배우)은 ‘자연인으로서의 배우’이자 동시에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는 배우’로 존재합니다. 인형도 단순히 하나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배우)처럼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 있을 거라 믿고, 어떻게 그것에 접근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동안 인형을 필요로 하는 공연들에서는 해당 공연의 특정한 역할을 위해 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공연이 종료되는 순간 인형은 그 쓰임을 다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형도 인간(배우)처럼 존재 자체이자 역할로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공연의 형식을 고민하던 중에 <기존의 인형들>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쿠션 두 개가 놓인 2인용 소파 위에 인형이 다리 하나를 한쪽 팔걸이에 올리고 상체를 뒤로 기댄 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인형의 피부는 살구색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으며 철골 구조물로 된 관절 연결 부위가 노출되어 있다. 얼굴 및 손과 발은 흡사 사람과 거의 같은 모습이며, 이 밖에 몸통에도 섬세한 근육들이 드러나 보인다. 소파 뒤쪽에 쪼그려 앉은 배우

<기존의 인형들: Post Puppetry>(2021) 중 여신동 연출의 <인터뷰> 공연 사진

개선된 인형: <기존의 인형들>

<기존의 인형들>은 인형작업자가 제안하는 인형 중심의 공연입니다. 이 공연은 인형작업자가 마주하고 있는 한계에서 출발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형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또 다른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뻔한 인형 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동안 ‘무대’의 출발이 연출가와 극작가의 질문이나 생각, 그리고 희곡이었다면, <기존의 인형들>은 ‘무대’의 출발 지점에 ‘인형’을 던져놓음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때 인형작업자의 노동과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인형의 첫인상, 즉 인형의 이미지는 창작자(연출)에게 최초의 텍스트로 작용합니다. 창작자(연출)는 인형을 통해 상상을 시작하고, 그 인형은 각 창작자(연출)만의 방식으로 발화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기존의 인형들>은 인형의 ‘존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매번 만나는 창작자(연출)의 상상에 따라 모두 다른 역할(인물)로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기존의 인형들>에서의 인형은 한 번의 공연에서 하나의 역할로 쓰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역할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공연은 인간(배우)과 같은 존재로서 인형, 그 ‘쓰임’의 확장을 시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파란색 옷을 입은 퍼포머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어깨를 맞댄 열세 개의 인형들 사이에 서 있다. 인형들은 모두 퍼포머와 키가 비슷하고, 완전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아이보리 색이며 목과 어깨 손목, 허리와 골반, 무릎과 발목 등 관절이 구분되어 있다.

<기존의 인형들: Post Puppetry>(2021) 중 김보라 연출의 <원래의 몸> 공연 사진

<기존의 인형들>에서는 인형작업자가 제안하는 개선된 인형을 선보입니다. 그동안의 공연에서는 인형이 하나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완성형의(고정된) 인형이었다면, 이 작업에서의 인형은 기본적으로 변화가 가능한, 분해와 조립이 가능한 인형입니다. 이렇게 개선된 인형은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역할로의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존의 인형들>을 시작으로 <2021 기존의 인형들: Post Puppetry>까지 두 차례 공연을 올린 바 있고, 올해는 <2022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 1)이라는 공연을 준비 중입니다.

인형작업자가 생각하는 인형을 보내는 방법: 폐기

제 작업실에는 그동안 만들어진 인형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인형들 중에서 몇몇은 오래전 활동을 멈춘 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몇몇은 아직도 왕성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반면 몇몇은 이미 인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여 수명이 다했지만, 차마 버려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인형 작업을 지속할수록 늘어나는 인형만큼 기능이 상실된 낡은 인형들이 늘어나게 되겠지요. 아무리 인형작업자이지만 언제까지나 이 인형들을 모두 품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일종의 장례식과 같은 공연으로 이 인형들을 보내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을 위해 탄생된 인형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보내는 방식 또한 공연의 형식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형을 보내줄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공연이야말로 인형을 온전히 폐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형 작업을 위한 목재 및 각종 스프레이 등이 정리된 상자가 보이고, 서로 다른 나무 인형들이 상자 속에 턱을 괸 자세로 앉아 있다. 큰 창문 앞에는 옷을 입은 입은 인형이 앉아 있다.

이지형 인형작업자의 작업실

  1. 이지형의 인형으로부터 다음의 작업들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질 예정이다.
    2018 신촌극장 <기존의 인형들> 참여 연출: 적극, 여신동, 에르베 르라흐두
    2021 M극장 <기존의 인형들: Post Puppetry> 참여 연출 : 김보라, 여신동, 이경성
    2022 플렛폼엘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 참여 연출: 양종욱, 남긍호, 입과손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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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형

이지형
이지형은 무대디자이너이자 인형작업자이다.
공간연출을 전공하면서 미술 기반의 시각적인 작업을 먼저 시작하였고, 인형을 활용한 공연을 하기 위해 연극성을 찾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미술과 연극 사이에서 인형을 ‘제 1배우’ 즉,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다양한 형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18년도부터는 ‘조음기관’이라는 단체로 본격적인 인형 중심의 공연을 직접 실행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인형작업자인 이지형이 기존의 공연들에서 보고 느꼈던 인형의 아쉬운 지점들을 개선하고자 시작되었으며, 특히 ‘인형의 본질적인 소리(목소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갖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조음기관(이지형)은 아래의 작업 선언문과 같은 방향성을 지니며, 인형/오브제 중심의 시각적인 연극, 미술적인 연극으로서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이지형 인형 작업에 관한 선언문
1. 인간 중심의 공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2. 인형의 본질은 온전한 죽음을 의미한다.
3. 오브제와 인형은 배우와 동일한 등장인물, 즉 배우이다.
4. 연극의 전환수, 인형의 조종자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5. 하나의 배우, 자체가 독립적인 공연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독립적인 여러 개의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6. 관객은 동일한 집단이 아니라 모두가 다른 개체이다.
7. 인간이 내린 인형의 정의가 아닌, 인형 자체로 독립적인 정의에 대해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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