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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물이 선사하는 힘겨운 기쁨에 관하여

연극과 사물, 물질의 극장

배선희

제224호

2022.10.27

웹진 연극in은 극장의 사물들을 주제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인간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비인간 행위자, 사물들의 시간을 쫓아갑니다. 그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며, 사용가치를 잃어버린 뒤 보관되고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필자분들께는 ‘동시대의 기후위기’, ‘창작자의 노동’, ‘사라지는 것으로서의 연극’이라는 세 개의 공통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세 번째 연재에서는 배우가 극장에서 만나는 사물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혹은 사물과 사물들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끼치며 존재하는지 들어봅니다.

알 수 없는 사물1)이 선사하는 힘겨운 기쁨2)에 관하여

손 하나가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카메라 어플이 켜져 있으며, 검은 바탕에 원 모양의 이미지가 보인다. 원 속에는 확대경으로 비춰본 직물의 표면이 드러나 있다. 검은색과 흰색의 윤기 나는 실이 얽혀 있다.

극장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꺼내다 가방에서 바퀴벌레가 튀어나온 적 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이에 놀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여보세요, 당신. 지금 무슨 일이신가요? 벌레가… 벌레가! (차마 바퀴벌레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가방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바퀴벌레를 바닥에 떨어트린 후, 때마침 열리는 지하철 문밖으로 급히 도망쳤는데, 질겁해 주저앉은 날 유리 창문 너머로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죄송합니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어제 이런 일이 있었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모두 맞장구치며 각자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름에 극장 갈 때 에코백 안 메잖아. 맞아, 그거 중요해. 한번은 공연 중에 날파리가 코에 들어간 적도 있다니까? 그래서 어떡했어? 어떡하긴 그냥 들이켰지. 으~~~.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우리는 왜 어떤 사물은 혐오하고 어떤 사물은 사랑할까?
오랫동안 길 위의 사물들을 볼 때마다 몹시 슬펐다. 그들이 쓸모없어지자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이애나밴드와 동석한 술자리에서 두호 씨의 얘기가 귀에 쏙 들어왔다. “사용이 끝나고 버려진 사물들이야말로 비로소 온전하게 된 것 아닐까요?”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동안 내게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 소거하는 세상을 미워하기 위해, 내내 저 사물들을 이용해왔다는 것을. 가난한 사물을 사랑했고, 사치스러운 사물을 미워했다. 모두가 혐오하는 사물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고, 모두가 좋아하는 사물을 의심한 후 넝마처럼 바깥에 세워두었다.
“나는 늘 내가 경험하는 대상에게 항상 이름을 주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달아날 수 없었으리라. 중립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아주 오래전에 존재를 페르소나로, 인간의 마스크로 대체해버렸다. 나 자신을 인간화함으로써, 나는 사막에서 벗어났다.”3)

배우 배선희가 5층 높이의 선반 사이 통로를 지나가며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그가 보고 있는 쪽의 선반에는 LP판, 손전등, 카펫 등 종류가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있고, 그의 뒤쪽에 있는 선반에는 양옆으로 끈을 당겨 입구를 오므리는 투명한 가방이 빼곡히 놓여 있다. 가방의 하얀 끈 수백 개가 밑으로 축 늘어져 있다.

장소 협조: 무대 곳-간

그렇다면 이제부터 사물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다시 중립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건 무미(無味)4) 의 맛이었고, ‘알 수 없음’ 그 자체였다. 그저 존재할 뿐인데 도무지 알 수 없어 공포가 되는 사물들을 맞닥뜨렸다. 영영 알지 못할 것이라는 실패의 확신과 더불어 나는 언제나 ‘나’일 것이라는 사실에 한없이 무력해졌다.
돌이켜보면 극장의 사물들이 항상 무서웠다. 불 꺼진 극장과 분장실은 물론이고 광폭한 소음의 청소기, 뾰족하고 기다란 못, 아찔한 사다리와 같은 사물들은 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연습 내내 사용했던 소품들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공연 중 갑자기 손에서 컵을 놓친다거나, 의자가 주저앉는다거나, 커튼의 출입구를 찾지 못해 장면이 끝났는데도 무대에 남아 있는 망상에 시달리곤 했다.
결국 이를 달래기 위한 의식을 만들었다. 그날 만날 사물들에게 오늘도 잘 부탁한다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의식은 간소하다. 가까이 다가간 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오늘도 잘 부탁해…” 한번은 음료의 얼음에게 기도했다. “대사하면서 널 콱콱 씹어야 하는데, 부탁이야. 알맞은 크기로 녹아줄래? 너무 녹아서 완전히 사라지면 안 돼…” 예기치 못한 모든 상황을 막고 싶었다. 리허설을 통해 공연 준비를 마친 후 비밀(?) 의식까지 치르고 나야,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
그리고 극장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고 지금에 머무르려는 순간, 극장의 사물들이 생기 띤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거듭 새로워졌다. 인간의 능력으로 그들 모두를 포착하기란 불가능했다. 생기를 지닌 사물들은 철저하게 오직 지금 여기 있는 방식으로서만 나타났고, 한시적으로 일으켜진 세계와 허구의 이야기를 계속하여 ‘지금’ 이 순간으로 끌어당겼다. 현존하는 물질들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속에서만큼은 모든 것들이 사물로서 동등했고 진짜였다.

하얀색 자켓 상의 10벌이 옷걸이에 나란히 걸려있는데, 긴 소매의 어깨 아랫부분만 보인다. 소매에는 하얀색 단추가 네 개씩 달려 있다.

공연 중 한쪽 눈에서 콘택트렌즈가 떨어진 적 있다. 순간 초점을 잃었고 상대 배우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렌즈가 아직 뺨에 붙어있단 걸 알아차렸고, 십여 분간 암전을 기다린 후, 아무도 몰래 혀로 적신 렌즈를 각막에 씌웠던 일이 있다. 당시에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한 자신을 기뻐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 일은 생동하는 사물 간의 상호작용으로 해결된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날 만약 피부의 땀과 유분이 평소보다 과했다면 렌즈는 얼마 안 가 뺨에서 다시 미끄러졌을 것이다. 공기가 더 건조했다면 이미 말라버린 렌즈를 혀로 적셔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며, 정전기에 일어난 머리카락이 눈꺼풀에 달라붙어 렌즈 넣는 일을 방해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쩌면 뺨 위의 먼지와 하강하던 렌즈가 우연히 스치며 발생한 마찰력에, 잠깐 두 사물이 정지해 있던 마법 같은 찰나일지도 모른다. 혹시, 각막에서 떨어지던 렌즈가 순간적으로 클리나멘5) 같은 이탈의 힘을 발휘하며 인간에게 뛰어들었던 것은 아닐까? (렌즈가 뺨에 닿는다) 찰싹!
이토록 많은 우연과 믿고 싶은 필연이라니. 앞으로도 사물의 세계를 온전히 알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날의 모든 사물 덕분에, 초점을 잃은 한 배우가 무사히 연극을 끝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립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정말로 잘 알고 있다. 나는 생기를 지닌 사물로 둘러싸인 세계 속에 그들과 함께 놓여 있다. 앞으로도 함께일 것이다. 그저 ‘있음’으로써. 시작이자 전부일지도 모를 ‘있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힘겨운 기쁨을 조금씩 선사해주었는데 어쨌든 그래도 그것은 기쁨이었다.”6)
최근에 ‘무대 곳-간’7) 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났는데 바로 실제를 본떠 만든 모형 사물들이었다. 가짜 엘피판과 가짜 과일, 가짜 칼과 가짜 총들. 누가 봐도 공연 소품일 게 뻔한, 가짜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났다. 하지만 연극 속 배우는 이 칼을 마치 진짜처럼 겨눴을 것이다. 총구 앞에서 두려움과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몸을 떨었을 것이고, 어디론가 떠나기 전 누군가 챙겨 준 이 모형 음식을 아끼며 소중히 먹었을 게 틀림없다. 가짜인 세계의 뻔뻔함과 절절함에 기분이 이상했다.

선반의 벽면에 다양한 종류의 총 소품이 걸려있다. 전체가 검은색 플라스틱인 총이 맨 위에 걸려있고, 그 아래 손잡이 부분이 나무로 되어 있고, 총구 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된 총이 있다. 맨 아래에는 나무를 노끈으로 감은 것이 있는데. 배우 배선희가 이 나무의 표면에 확대경을 데고 들여다보는 중이다.

손을 뻗어 눈앞의 손전등을 움켜쥐었다. 고무 손잡이가 손바닥에 진득이 달라붙었고 땀이 흥건했을 배우의 손바닥이 느껴졌다. 손전등을 집어 들자 묵직한 무게감만큼의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공연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쌕-쌕- 어둠 속에서 마른 숨을 내쉬는 배우들. 손전등의 빛이 무대를 밝히며 어지러이 돌아다닌다. 객석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빛. 마찬가지의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지켜보고 있던 ‘나’를 밝힌다. ‘나’는 포착됐다. 빛이 ‘나’의 얼굴을 지우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더는 피할 곳 없이 훤히 드러나고 말았다는 사실에 모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네, 더는 도망치지 않을게요. 나는 여기 있어요.
‘곳-간’에서 잠시 잠든 사물들에게는 겹겹의 시간과 역사가 있었다. 그것들은 가짜였다가 진짜이기도 했고 바닥에 묻힌 상자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밤하늘의 별이 되기도 했다.
MADE IN THEATER. 극장의 사물들은 이토록 경계가 없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1. 이 글에서 다루는 ‘사물’은 *생기를 지닌 존재로,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비인간 존재들, 부피와 질량을 가진 가시적 사물 및 전기, 방사능 같은 비가시적 물질 모두를 포함한다. *“여기서 나는 ‘생기’라는 말을, 인간의 의지와 설계를 흩뜨리거나 차단할 뿐 아니라 자신만의 궤적, 성향 또는 경향을 지닌 유사 행위자나 힘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먹을 수 있는 것, 상품, 폭풍, 금속 같은 사물들의 역량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현실문화, 2020, 9쪽.
  2.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G.H.에 따른 수난』, 봄날의책, 2020, 서문(작가의 글).
  3. 같은 책, 125쪽.
  4. 같은 책, 117쪽.
  5. 고대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도입한 용어로, ‘기울어져 빗겨감 혹은 벗어남’을 뜻한다. (출처: 두산백과)
  6.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G.H.에 따른 수난』, 봄날의책, 2020, 서문(작가의 글).
  7. ‘무대 곳-간’은 서울특별시 주최,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 주관으로 운영되는 공연 물품 공유 플랫폼으로 창작 공연에 필요한 물품 지원, 공연계 내 공유 커뮤니티 형성, 친환경적 창작가치의 확산을 목표로 한다. 2022년 11월 초, 홈페이지와 창고 운영이 개시될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stage.got_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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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배선희
극단 지금아카이브 배우. 외부 세계와 연결된 몸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낯섦과 기이함, 두려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효율성과 목표 지향적인 연기술에서 벗어난, 다소 쓸데없거나 느닷없는 행동들에 흥미를 느낀다. 언젠가 숲 해설가와 가락지부착조사자 활동을 병행하는 독립 출판 서점 주인이 되는 게 꿈이다.
@ssunheeee / sunheebae8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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