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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빛에 대하여

연극과 사물, 물질의 극장

김지우

제225호

2022.11.10

웹진 연극in은 극장의 사물들을 주제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인간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비인간 행위자, 사물들의 시간을 쫓아갑니다. 그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며, 사용가치를 잃어버린 뒤 보관되고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필자분들께는 ‘동시대의 기후위기’, ‘창작자의 노동’, ‘사라지는 것으로서의 연극’이라는 세 개의 공통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연재의 마지막은 연극의 빛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조명 디자이너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극장은 어떤 모습인지, 빛의 폐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극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수십 개의 조명기가 매달린 배튼이 공중에 떠 있다. 조명기와 배튼은 검정이고, 배경은 밝은 빛으로 색감이 두드려져 대비된다.

공연을 관람하러 가면 극장의 천장에선 늘 빛이 쏟아져 내린다. 공연이 끝나고 모든 조명기의 빛이 꺼진 후 극장의 작업등을 켜면, 단순하게 생긴 극장 벽에 비해 천장은 복잡한 철골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격자로 된 그리드, 일렬로 늘어선 파이프, 흰색으로 표시된 숫자들이 엉겨있고 툭툭 돌출된 건물 보가 검은 덩어리로 보인다. 조명 디자이너인 나는 늘 작업등이 켜진 극장에 들어가, 먼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핀다. ‘문제없이 셋업을 마치게 해주세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조명 크루 분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한다. 사다리를 펴고, 그리드에 조명기를 매달고, 빛을 밝히면 어지럽던 극장의 천장은 가려지고 무대는 환하게 드러난다.

블랙박스 극장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검은 철골 구조물이 두 단으로 설치되어 있다. 아래쪽 구조물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로로 구획이 나뉘어 있어 울타리 같은 모습이다. 그 위쪽으로 매달린 여덟 개의 조명기에서 동그란 빛이 쏟아져 나온다. 빛이 만들어낸 철골 구조물의 그림자가 극장 바닥에 어려 있다.

조명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첫 순간이 있다. 대학 입시 시절, 조소과를 가고 싶었던 나는 ‘조소가 크면 무대이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무대미술과에 들어갔다. 무대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은 채 2학기를 보냈고 그 해 첫 겨울방학 때 학교 공연의 조명 오퍼를 하게 되었다. 선배 디자이너가 알려주는 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GO 버튼을 눌러 큐를 진행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GO를 누르는 순간 ‘아, 앞으로 난 이 일을 하겠구나’ 싶었다. 개강 후 조명 교수님을 찾아가서 “저 조명 디자인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일을 하고 있다. GO 버튼을 누르면서 아마 내가 경험한 건 잡히지 않는 무형의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무형의 빛은 늘 사라진다는 묘함이었다.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극장에 앉아 있는 지금이, 내가 무형의 빛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나의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빛이 순간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100번 이상 목격할 수 있다는 건, 무언가의 생생함을 즉각적이고 압축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하는 신기한 시간이었다. 연극은 이런 신기한 시간들의 연속이며, 특정 시공간을 관객과 배우와 무대가 함께 공유한다는 그 유한한 속성으로 인해 현존하는 지금에 더 충실하게 된다. 관객, 배우, 무대는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이 시공간은 내일의 시공간과 같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가정은 그만큼 ‘있는 상태’의 가치를 말한다. ‘사라짐’과 ‘있음’은 함께다. 조명 디자이너인 나에게 있어 연극과 빛은 같은 속성으로 무대에 존재하고 있다.

극장 천장을 찍은 사진이다. 격자의 그리드가 보이고, 빛을 밝힌 아홉 개의 작업등이 있다. 사진 하단에는 형체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공연을 관람하는 중간중간 천장을 올려다본다. 무대 위 배우를 비추고 있는 광원을 살핀다. 극장에서의 빛은 의도를 가진다. 배우를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 하겠다는 의도, 무대를 어떤 분위기로 느끼게 하겠다는 의도, 관객에게 이 장면을 어떻게 보도록 만들겠다는 의도. 또한 조명기 위치의 의미, 그 색감의 컬러 필터를 씌운 의미, 특정 방향으로 각도를 튼 의미, 100여 개의 조명기가 제 역할을 다 하도록 설계한 조명 디자이너의 의미가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이 모든 것을 구현하기 위한 누군가의 노동이 늘 함께 있다. 고개를 들어 조명기를 보고 그 너머의 노동을 생각하는 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연극하고 있을 누군가와의 유대를 느끼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연극은 한 사람, 한 사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집단의 창작이기에 늘 여러 역할의 사람, 사물과 협업한다. 비인간 행위자인 조명기는 무대 위에 있는 무언가를 비추거나 비추지 않는 역할을 한다. 공연을 바라보는 시점을 만들어준다. 어딘가를 밝게 비추면 관객은 그곳을 바라보고 빛이 이동하면 그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빛의 색감의 변화는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특정한 색감, 예를 들어 붉은 색감의 빛은 공간의 심리적 온도를 높이기도 한다. 깊은 각도로 들어오는 빛은 무대를 노을 지는 야외로 바꿔내기도 한다. 조명기라는 사물은 빛이라는 비물질을 내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모든 조명기의 빛이 꺼지고 암전이 오면 우리는 다시 빛이 켜질 순간을 고요히 기다린다. 그 순간은 공연의 다음 장면이기도 하며, 공연이 끝난 후의 커튼콜이기도 하다. 빛은 다음을 안내한다.

폐기

공연이 끝난 후 쓰임을 다한 조명기는 천장에서 내려온다. 다시 극장의 작업등을 켜고 사다리를 펼친다. 그리드에 매달려 열심히 빛을 내었던 조명기는 아직 따듯하다. 하나, 둘 조명기들이 바닥으로 내려오고 조명기 앞에 부착된 컬러필터를 떼어낸 후, 처음의 상태처럼 종류별로 정리한다. 빛이 바랜 컬러필터와 퓨즈가 나간 램프들, 망가진 전선은 폐기된다. 그렇게 분류된 조명기는 극장의 창고로 들어간다. 차가운 기계가 되어 극장의 사물이 된다. 철수 작업은 늘 순식간이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철수 팀은 극장 안에서 철수를 하기 위한 세팅을 하고 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극장에 있던 공연팀의 흔적들은 지워지기 시작한다. 들어오기 이전의 상태로, 다시 빈 극장으로, 말끔히 비워진 후 작업등을 끄고 극장을 나온다. 잘 빌려 쓰고 나온다.
‘못 쓰게 된 것을 버림’이란 폐기의 정의로 보자면 조명기는 대체로 폐기되지 않는다. 폐기되는 것은 그 쓰임을 다하고 사라진 빛이다. 바로 그 ‘못 쓰게 된 것을 버림’이란 정의에 빛을 빗대면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으나 연극의 특성, 빛의 속성과 폐기를 나란히 두고 보면 ‘사라짐’이란 당연하다.

연극의 사물인 조명기는 극장 창고에서 다음 공연을 기다리고 있고, 때가 되면 다시 빛을 내어 무대를 밝힌다. 연극이 끝난 후의 암전과 같은 것.

극장 바닥에 조명기 수십 대가 종류별로 줄을 맞춰 놓여 있다. 바닥과 벽면, 조명기 모두 검은색이다.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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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김지우
공연예술종사자이며 조명디자인, 시노그라피를 비롯한 다양한 포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woojeeg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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