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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만들면서 경험하는 손상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까

정리_연극in 편집부

제226호

2022.11.24

웹진 연극in에서는 연극의 창작 과정에서 연극인이 입은 신체적, 정신적 손상에 대한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을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개인은 각자가 놓인 상황과 위치에 따라 매우 고유한 경험을 하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그 구체적인 경험을 함께 말하고 듣는 것으로부터,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개인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가는지 알게 됩니다.
연극in은 이러한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손상에 대처하는 것이, 단지 개인의 책임이나 관리, 혹은 개인이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확인하고, 1) 연극계 구성원들 사이 공동의 약속 만들기 2)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기, 두 가지 방향의 제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통해 모두와 더불어 우리는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기획에서는 연극인들이 어떤 손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듣기 위해 익명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은 배우가 아닌 포지션에 있는 연극인들이지만,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공적인 장에서 나눠야 하는 인터뷰의 특성상, 더 다양한 연극인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음을 밝힙니다. 다시 한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연극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서면 인터뷰 공통 질문

  1. 1. 연극 작업을 하면서 가장 최근에 겪은 신체적 손상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세요.
    • 1.1. 그 손상에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개인적인 관리, 혹은 전문가를 통한 치료, 상담 등을 포함)
    • 1.2.
      손상의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셨나요? 나눴다면 구체적으로 누구와 어떻게 나누셨나요? 나누지 않으셨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 1.3.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하기 위해 창작자들 사이에 만들 수 있는 공동의 약속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1.4.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 2. 연극 작업을 하면서 가장 최근에 겪은 정신적 손상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세요.
    • 2.1. 그 손상에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개인적인 관리, 혹은 전문가를 통한 치료, 상담 등을 포함)
    • 2.2.
      손상의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셨나요? 나눴다면 구체적으로 누구와 어떻게 나누셨나요? 나누지 않으셨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 2.3.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하기 위해 창작자들 사이에 만들 수 있는 공동의 약속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2.4.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인터뷰 #A

1.
두 번의 교통사고가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신체적 손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야외 공연 리허설 중에 발생했던 인생 첫 번째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공연 진행상의 특수성이 있음에도 준비를 미비하게 한 공연팀의 잘못이 30%, 차 문 체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운전자의 잘못이 70%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사고는 특공이라 일컫는, 밤 늦은 시간 공연을 마치고 막차가 끊긴 시간에 택시로 귀가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였어요. 택시 기사님의 잘못도 아니었고, 내 의지로 피할 수 있거나 했던 사고도 아니었고요. 사고 당시에는 다쳤다고 느끼지 못했었고 사고들로 인한 후유증이 신체적 손상이 되었습니다.
1.1.
두 번의 사고 모두 사고가 난 직후 바로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어요. 첫 번째 사고 때는 이후 다음 스케줄이 연달아 있었기에 별다른 통증, 타박상이 없는 몸 상태를 철석같이 믿은 채 스케줄을 소화한 후 잠시 짬을 내어 병원을 갔어요. 두 번째 사고는 이미 늦은 밤 시간에 일어났는데 사고 처리를 하느라 귀가가 몇 시간 지연되기도 했고, 응급실을 갈 정도의 부상은 없는데 피곤으로 찌든 몸에 더 급한 건 휴식이라고 판단해 귀가했고요. 그리고 이틀 후 조금의 시간이 생겨 병원을 갔습니다. 두 사고는 같은 해에 일어났고, 안일한 판단으로 꾸준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주기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지금도 두 사고의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어요.
1.2.
그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은 사고를 목격했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알고 있었고, 그 후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는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손상 후유증이 남아 순간적으로 힘을 쓰는 작업이 몸에 무리를 주거든요. 작업을 할 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조심하고 있다고 미리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화의 끝에는 나처럼 지금 당장 안 아프다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꼭 이야기합니다.
1.3.
연습 과정 안에서의 안전, 극장에서의 안전 등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전보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완전하지는 않지만요. 그렇다면 이제 사고 이후의 대처에 대한 약속과 관련해 논의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제 경우 당시의 공연 환경에서는 급박한 스케줄과 대체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치료를 제때 받기 어려웠고, 그것이 휴식을 취할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어요. 사고 직후 제대로 된 검진과 치료, 충분한 휴식이 있었다면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의 후유증만 남았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신체적 손상에는 여러 가지의 유형이 있고, 그 유형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공동의 약속이 필요해요.

1.4.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해봤지만 생각나는 것이 많지 않아요. 산재보험의 구조가 공연 창작 환경의 메커니즘과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맞닿을 수는 없을까 정도의 고민이 들고요. 예술인 산재보험의 경우 다친 당사자의 치료비, 휴업급여 등등을 보장하지만, 일을 그만둬야 하는 정도의 부상이거나 입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 정도의 부상은 현실적으로 보험 적용이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일반 기업처럼 여러 인원이 하나의 업무를 담당하는 구조가 아니고, 대체 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쉽사리 판단이 되지 않아요. 제일 단순하게 효과적인 방법은 프로덕션을 구성할 때 이런 상황을 고려해 인원을 꾸리는 것인데, 결국 돈이 문제가 되죠.
2.
이전에 다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료의 실제 신체적 손상을 옆에서 목격하고 대처하면서, 일종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정신적 손상이 생긴 것 같아요.
정신적 손상이 생긴 것을 알아차린 건, 한 동료가 어떤 공연의 무대 위에서 개인 연습을 할 때였어요. 동료가 신체적 손상을 입는 걸 연기하는 것을 보고 괜찮냐고 묻는 제 목소리가 많이 상기되어 있었고, 그것이 그날의 장면과 겹쳐 보였거든요. 동료는 장면 연습을 하는 것이었지만, 저는 공연 준비를 체크하느라 동료가 그 장면을 연습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동료의 행동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되었던 거예요. 의아하게 바라보는 동료를 보고, 연습이라는 걸 알아차리곤 미리 얘기하고 연습하면 좋겠다고 머쓱하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를 피했습니다.
2.1.
현재까지도 아무런 대처를 해본 적이 없어요. 질문에 제시된 개인적인 관리가 사실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까지 손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실제와 비슷하게 구현되는 장면을 보고 있을 때면 연기라는 것임을 알기에 조금은 경미하게, 위에 설명한 사례처럼 실제 상황이라고 인지되는 때는 더 강하게, 그리고 조금씩 다른 상태로 손상이 나를 찾아와요. 하지만 다른 대처 선택지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현재까지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요.
2.2.
동료의 신체적 손상을 함께 목격, 대처했던 동료들 중에서도 극소수와만 내 정신적 손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외에 타 공연 동료들과는 이 경험을 나누어 본 적이 없어요. 이것은 동료의 손상을 목격하며 생긴 정신적 손상이기에 이 경험을 나누자면 어떤 특정 작품, 인물, 상황이 공유될 수밖에 없는 예민한 사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2.3.
함께 하는 동료들의 건강 정보, 비상 연락망, 안전 대응 매뉴얼 등이 연습 전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매일 서로의 컨디션을 공유하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2.4.
공동의 약속을 더 견고하게 마련하기 위해 제도적으로는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권장하고 안전 대응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어떤 교육은 인원 제한이 있고, 어떤 교육은 비용이 들고, 어떤 교육은 시간 제약이 있잖아요. 이러한 제한적인 장벽을 최소한으로 줄여 다양한 작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 생기길 바랍니다.

인터뷰 #B

1.
이명과 편두통은 공연 준비하면서 심해지는 것 같고요. 요즘은 과민성대장증후군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복통과 설사 때문에 바로 화장실을 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화장실이 없거나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공연장에 가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이 증상이 생긴 때를 기억해요. 공연 막바지라 하루에 6시간 넘게 연습하는데, 연출이다 보니 쉬는 시간, 식사 시간에도 배우, 스태프들과 계속 회의하느라 쉴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에 다녀오는 순간 빼고는 한시도 쉴 틈이 없었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공연 끝나면 보통 3일 정도 푹 쉬면 나아졌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나아지질 않네요.
1.1.
건강검진만으로는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마음도,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나중 일로 미뤄두고 있습니다.
1.2.
나누지 않았습니다. 팀 내 갈등이 해결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연출로서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 컸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저까지 힘들다고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내가 이야기를 해도 이해받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아예 말하기를 포기했던 것 같아요.
1.3.
쉬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다.
함께 정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 누가 그것을 견뎌내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1.4.
프로덕션 내외부의 젠더, 장애 등 인권 감수성의 차이를 확인하고, 이 차이로 인한 소통의 벽을 연출 혼자서 감당하지 않도록 관련 워크숍을 필수로 가지면 좋겠습니다.
2.
저는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로 정신과 약을 복용 중입니다. 상대방이 역할이나 소통의 책임을 저한테 감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가한다고 느낀 적이 종종 있어요. 어떤 분은 제 말을 계속 반복해서 끊고, 소리를 지르면서 저보고 폭력적인 연출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분의 화가 가라앉고 나서 눈물을 참고 물어봤어요. 혹시 저 말고 다른 연출에게 이런 식으로 하신 적 있냐고.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오히려 더 상처를 받았어요.
사람들은 정말 권력관계에 민감하고, 젊은 여성 연출은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구나.
2.1.
연극계 미투 이후 특히 연출이라는 포지션 자체가 위계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하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누가 보호해주고 어떻게 안전해질 수 있을까요.
또 한 번은 팀원 사이의 갈등에 제가 중재를 했는데, 한쪽 편만 든다며 비난받았던 적이 있어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참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우울증이 세게 왔던 것 같아요.
2.2.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연극계 동료들에게 제가 처한 상황을 나누었어요. 나 자신을 지키면서 작업도 지키고 싶은데, 벌어지는 갈등을 연출이 혼자 책임지기에는 버거울 때가 많아요. 프로덕션 내 안전조력자와 고민을 나누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신뢰하는 동료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외상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습니다.
2.3.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해소하지 말자.
불만이 있다면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합시다. 새벽에 장문의 카톡 금지.
다른 사람의 말을 끊지 않고 기다린 후 이야기하기.
소리 지르지 않기.
사실관계 확인 없이 비난, 평가하지 않기.
2.4.
여성 연출가 자조 모임. 상시 심리상담 가능한 제도. 인건비 책정하여 안전조력자 고용 가능한 환경 구축.

인터뷰 #C

1.
연습 과정은 아니지만, 연습 기간에 손상이 있었습니다.
1.1.
병원에 다녔지만, 연습 기간이어서 꾸준히 다니기는 어려웠습니다.
1.2.
동료들에게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통증과 무기력으로 집중이 어려울 때가 있었지만, 연출이라는 역할이 오히려 개인의 손상을 드러내기에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1.3.
연습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과 연습 기간에 발생한 손상은 다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면 공동의 약속을 만들 수 있겠지만, 기간에 발생한 손상에 대해서는 연습 시간의 한계나 공동의 합의, 조정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해결 방식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등 집단의 이해가 이루어지는 질병, 손상이 아니라면 공동의 약속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관리 문제에 가깝다고 보통 판단되는 것 같습니다.
1.4.
팀마다 상해보험을 가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연습 또는 공연 기간의 손상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거나 연습실이 아닌 오가는 경우에 발생한 손상에 대해서는 적용이 안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제작비 상황에 따라 셋업 때만 보험 가입이 되거나 아예 보험 가입이 어려운 경우도 많아서, 제작 주체의 선택이 아니라 정책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광주시에서는 자격조건에 따라 문화예술인 대상 특화 상해보험에 자동으로 가입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보험금 청구도 별도의 콜센터를 통해서 신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제작팀에 별도의 경위를 거치지 않고도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경우 각자의 상해를 밝히는 일도 부담이 적을 것입니다.
2.
작업 과정에서 호흡이 어려운 순간이 자주 있었습니다.
2.1.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지는 않았고, 약을 일시적으로 복용했습니다.
2.2.
이전부터 서로의 증상을 알고 있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고, 각자 잘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대화를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증상으로 작업을 미루거나 휴식을 늘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2.3.
공동의 약속을 만든다는 것은 어떠한 합의나 공개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신체적 손상은 눈에 띄거나 수치심을 동반하는 경우가 적지만, 정신적 손상은 연습 과정에서 발생하더라도 오히려 공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대부분 발생하는 이유나 상황에서 수치심이 동반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키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2.4.
개별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상황을 공유하거나 함께 이야기 나누는 구조가 오히려 불편하기도 합니다. 외부의 대리인 또는 상담 통로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심리상담이 있다고 하지만, 긴급 상황에 연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D

1.
균형 잡힌 식사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영양불균형이 생겼습니다. 과도한 업무와 시간의 부족 때문에 식사를 건너뛰거나 대충 때우기가 일쑤였습니다. 이외에도 거북목이 심해지거나, 근육이 결리는 순간들이 많았고, 치아가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질병을 얻은 것은 아니었으나, 전반적으로 신체의 기능들이 약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할 때마다 주기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어서 크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1.1.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운동을 했다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런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1.2.
작업하면서 만나는 배우/스태프들과 자주 나누었습니다. 신체적 손상은 즉각적으로 느껴지거나 드러나기 때문에 더 쉽게 나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하는 작업자들도 비슷한 손상을 겪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함께하는 한풀이 시간이라고나 할까요.
1.3.
서로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배우들은 몸을 사용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신체의 손상이 생기면 연습실에서 당연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신체의 손상이 느껴지는 경우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작업 과정 내에서는 서로의 상태를 잘 살피고,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4.
팀건강검진을 저렴한 가격에 쉽게 받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2.
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이다 보니, 무례한 언행이나 행동들을 마주했을 때, 이를 감정적으로 처리해내는 데에 조금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음 안에서는 억울함과 화가 차오르는데 작업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아 넘겼던 것들이 모이고 쌓여 속병이 난다고 느꼈어요. 자려고 누웠는데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거나, 화를 풀 길이 없어 혼자 침대를 내려치거나, 집에 가는 길에 혼잣말로 화를 내거나 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연습 중반 즈음에는 스스로 가벼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작업 자체에 큰 문제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 작업을 하는 것과 연출의 업무에 대한 회의를 크게 느꼈습니다.
2.1.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대부분이 그랬습니다), 그 행동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분석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래도 많이 무뎌졌는지, 며칠 지나면 또 사그러들거나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작년까지는 작업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아서 상담을 받았었는데, 상담을 통해서 나의 감정적인 손상을 다스릴 수 있는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느꼈습니다. 연습 중에는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이번에는 상담을 신청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연습이 끝나고 혼자 마시던 맥주 한두 잔이었습니다. 그날의 감정은 그날 안에 털어버리려고 노력했는데, 건강한 방법은 아니지만 감정을 털고 잠자리에 드는 데에 술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2.
작업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나누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말이 잘못되면 동료를 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혼자 털어버리려고 노력하다가, 쌓이고 쌓여 감정을 혼자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을 때는 신뢰하는 동료 한두 명과 나누었습니다만, 그런 과정에서도 이게 맞나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혼자 처리했어야 하는데, 동료들에게 나눈 것 같아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아마 제가 연출이 아니었다면 동료들과 손상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많이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저에게 손상의 징조들이 느껴질 때 대화를 나누자고 손을 먼저 내밀어준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나눈 사람들도, 나누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 깊이 고마웠습니다.
2.3.
서로를 작업자로서 존중하는 마음이 우선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들은 작업 과정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에, 아직은 해결할 수 있는 공동의 약속이 가능할지는 의문이 듭니다.
2.4.
작업자들을 위한 심리상담이 작년의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바라는 바가 있다면 상담사가 연극의 작업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분이라면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연출의 위계를 없애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히려 저의 감정을 희생하면서 작업을 했던 순간들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상담사 분을 이해시키는 데에 오랜 시간을 사용했던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