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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고, 살아가고, 살아가는 일

2017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 NEWStage

김태희_연극평론가

제132호

2018.01.25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정체성은 변치 않는 존재의 본질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과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유일한 ‘나’이면서 동시에 같은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 유사한 ‘나’인 셈이다. 특히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은 필연적으로 이런 정체성에 기대어 집단에 대한 충성도를 공고히 하곤 한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남한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때 정체성은 그 사람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일종의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것이 비록 착시에 의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만약에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감각은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뿌리를 찾아 헤매게 만든다. 위로 거슬러 올라가길 반복하면 결국 그것은 삶, 근원적인 문제에 닿을 수밖에 없다. <레일을 따라 붉은 칸나의 바다로>(이하 <칸나의 바다로>)는 멀리 떨어져 나간, 그래서 삶 자체와 마주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안의 문제와 만나는 순간

김태희
전작인 <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에 이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어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해외 입양아들에서부터 고려인, 재일 동포 등 범위가 더 넓어졌어요. 우리가 흔히 ‘경계에 서 있다’고 표현하는 인물들인데요, 어떻게 이런 주제를 다루게 되셨나요? 특히 고려인에 대해서 다루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김지나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하면 아버지 직업 덕분에 어릴 때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그게 너무 싫었거든요. 지금도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초중고 다 같이 다닌 친구들이 있고, 어른이 되어 다른 곳에 살더라도 자라온 부모님 집에 가면 동네 친구들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주를 거듭하는 사람들’에 눈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고려인은 우연히 미술관에서 만났어요. 미술관에서 고려인에 대해 다루는 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상을 봤는데,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전쟁이 나서 이산가족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들 이주는 자발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었거든요. 또 고려인은 재외동포로 인정을 해주지 않아요. 참 이상하죠? 먼저 팀원들과 스터디를 시작했고 덕분에 러시아에도 다녀왔어요.
김태희
재외동포로 인정이 안 되는 건 몰랐어요.
김지나
그렇더라고요. 러시아로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고려인을 만난 거예요. 이번 작품에도 그 경험이 좀 담겨있는데요. 그 고려인이 70대 할머니셨어요. 근데 자꾸 저한테 어디 김씨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당신은 김해 김씨 무슨 파 몇 대고, 엄마가 잊어버리지 말라고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국말은 잘 못하시는데, 그것만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시고.
김태희
그 할머님은 그걸 잊지 않으려고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되뇌면서 사셨겠네요. 어떻게 보면 극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그 할머니와 닮아있기도 하네요. 프로그램 북을 보니까 안산 지하철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사건을 이주민들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와중에 접하신 건가요?
김지나
시로의 이야기가 먼저 제 안에 있었어요. 사실 시로 이야기는 실존 인물인 권희로씨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1968년에 권희로씨가 조센징인 자신을 괴롭히는 야쿠자 두 명을 살해하고, 여관에 있던 손님들을 인질로 삼아 경찰과 대치를 벌인 일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인질극을 벌인 이유가 저한테는 충격적이었어요. 돈을 달라, 생활을 보장해달라가 아니라 내가 죽어도 좋으니 자신이 하는 말 한 마디만 들어달라는 거. 이 이야기를 언젠가 꼭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제 주변 친구가 안산에서 사고가 나서 지하철이 멈춰 있다고 전화가 온 거에요. 나중에 외국인 노동자가 열차에 몸을 던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인터넷 기사로 알게 되고 나서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저 역시 이십대에 머물렀던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차별 받았던 날들이 있었고, 시로가 일본에서 차별 받았고,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태희
과거와 지금이 다르지 않고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감각은 중요한 것 같아요. 덕분에 이야기의 폭이 1930년대 조선인, 고려인뿐만 아니라 현재의 스티브와 소피아, 그리고 우리들까지로 넓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지나
공연에서 과거의 이야기-시로의 이야기에 비해 현재의 인물들의 사건이나 드라마가 보여지는 것이 적어요. 칸나의 드라마는 과거 시로가 끌고 가고 있어요. 과거의 시로와 나이들고 한국에 와 있는 현재의 시로가 보는 장면들을 통해 이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에도, 다른 땅들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붉은 칸나, 온전한 자유를 향해

김태희
시로의 이야기와 거기에 얽혀있는 고려인, 해외입양아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면 다른 한 축에는 연주 배우님이 맡은 역할들과 아냐가 있는 것 같아요. 연주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할머니, 여인, 게이코와 해진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아냐는 어머니, 여자, 모성 등을 의미하는 것 같았어요.
김지나
우선 사람이 살고 있는 모습의 하나로서 반복되고 있는 것들의 실체가 저한테는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는 것으로 다가왔어요. 사람은 계속 태어났다가 죽기를 반복하는 거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부모가 되서 아이를 낳고. 이렇게 반복되는 것들을 통해서, 지금의 삶이 지지고 볶고 힘들어 하고 있지만 괜찮다, 살아야한다. 그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어요. 또 작품에 땅이 나오거든요. ‘네 땅, 내 땅, 우리 땅’이요. 저희가 연습실에서는 연주를 농담삼아 ‘가이아’라고 부르곤 했어요. 땅의 여신 가이아 있잖아요. 연주 배우가 맡았던 역할들에는 그런 개념도 있었어요. 땅으로서 사람들한테 해주는 말, 품고 다시 태어났을 때 생명의 정화라든가, 그런 지점들을 이 칸나 스타일의, 드라마 중심이 아닌 이주와 정체성의 개념으로 접근한 작품 안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김태희
중간에 원숭이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 이야기는 원래 있는 건가요, 아니면 창작하신 이야기인가요?
김지나
창작이긴 한데 어디선가 언젠가 들은 이야기였어요. 제가 예술인 파견사업에 참여해서 안산에서 6개월 정도 활동했어요. 거기서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아이가 있는 이주 여성들하고 모국에서 구전되는 동화들을 가지고 동화책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그건 정말 엄마만이 만들어줄 수 있는 특별한 동화책이잖아요. 태어난 곳에서 듣고 자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작품에도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김태희
푸른빛 원숭이와 붉은빛 원숭이 사이에서 보랏빛 원숭이가 태어나고, 원숭이들 간의 싸움이 심해지자 엄마, 아빠가 아기를 “붉은 칸나가 흐르는 푸른 바다”로 보내잖아요. 그곳은 고향이자 자유를 꿈 꿀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건데, 그 이야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물들과 너무 닮아 있어서 슬펐고 동시에 이주민, 해외 입양아 같은 키워드와는 별개로 제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만 다르게 느껴지는 생경한 순간들이 일상 속에서도 종종 있잖아요.
김지나
바램이 있었다면,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그냥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실 특별한 사람들 이야기 같지만 어떻게 보면 특별하지 않거든요. 남의 이야기, 이상한 게 아니라, 문득문득 나랑 닮아있는 이야기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그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김태희
이런 주제를 다룰 때 빠지기 쉬운 오류 중에 하나가 불쌍하다고 소비해버리는 것 같아요. 그건 진짜 경계해야하는 것 같아요. 상대방에 대해서 불쌍하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 그럼 사실 이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지나
제 인물들을 불쌍하게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관객 분 중에 공연을 4번 보러 오신 분이 계신데, 첫날 공연을 보고 울고 계시더라고요. 두 번째 관극하러 오셨을 때도 또 울고 계시더라고요. 사연이 궁금했는데 여쭤보지는 못하고 우연히 그분 SNS 글을 읽었어요. 극이 슬퍼서 우시는 것은 아니길 바랬었는데, 본인의 삶의 상황과 무대의 인물들의 여러 가지 정황이 맞아떨어지면서 그게 그 분에게 와 닿은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반드시 이주민과 연결이 되는 그런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들, 온전한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어요.

차이를 만드는 말들

김태희
관극평을 찾아보니 한국어 대사가 너무 없다는 불만도 있더라고요.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까지 엄청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되어서 외국어를 익히는 것도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김지나
작품을 쓰면서 당연히 외국어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 하는 연극이니까 당연히 한국어로 해야한다는 걸 깨보고 싶었어요. 사건 중심의 연극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무대에 서 있는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의 역사가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작인 <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에서도 조가 입양아인데 한국말을 제대로 하는 게 저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조의 대사는 영어로 엄마의 대사는 한국말로 했죠. 가족인데 다른 언어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은 뿌리는 한국 사람들인데 각자가 살아온 다른 말을 쓰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설정만 두고 한국말로 하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이질적인 음성이 들릴 때 오히려 사람들이 그 낯섦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부터 조건으로 내걸었어요. 근데 의외로 다들 재밌겠다고 좋아해주셔서요. 한 달 가까이 조별로 나뉘어져서 외국어 연습만 했죠. 배우분들이 전적으로 작품을, 연출이 하고자 하는 것을 믿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김태희
일본어 지도는 강유미 배우님이 해주셨더라고요.
김지나
네, 그 일본어가 표준어가 아니라 간사이 사투리에요. 그래서 선생님도 가르쳐주시느라 더 애쓰셨죠. 저희 외국어 선생님들이 유미배우님도 그렇고 하석배우님도 그렇고 외국에서 오래 계시다 오신 분들이어서요. 본인들이 경험한 것들을 많이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런 지점도 좋더라고요.
김태희
외국어도 외국어지만, 자막도 새로웠어요. 외국공연 보러 가면 자막이 조잡할 때가 많잖아요. 잘 읽히지도 않고 싱크도 안 맞고 내용이 날아가기도 하고요. 근데 이렇게 자막을 쓰는 건 처음 본 것 같아요. 레일과 열차를 연상시키는 무대도 좋았는데 자막이 마치 무대 디자인의 일부인 것처럼 녹아들더라고요. 다른 작품에서도 자막을 자주 사용하셨나요?
김지나
무대와 조명을 통한 시공간 구성이 중요한 작품이었는데, 오태훈 무대 디자이너와 노명준 조명 디자이너의 작품에 대한 해석의 작업이 너무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자막은 작품의 언어이자 정체성을 전달하는 중요한 무대의 일부였지요. 자막을 사용한 건 <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 부터예요. 그때는 정말 정보를 주기 위해 썼었는데 공연을 하면서 아차 싶었어요. 제가 너무 고민 없이 자막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자막 연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자막 연구로 참여해준 영균 선생님과 같이 고민을 시작했죠. 배치나 기법의 문제도 중요했지만, 주제적으로 봤을 때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당연히 한국말로 공연되는 것을 나부터 먼저 깨보자고 생각했어요.
김태희
변수도 엄청 많았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다 실험해 보는 입장인 거잖아요.
김지나
네, 극장에 와서 현실적인 요건들에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자막연구와 더불어 자막디자인/제작을 해주신 목소 감독님과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빔 프로젝트도 사실 두개를 놓고 싶었거든요. 근데 우리가 계산하지 못한 조명빛에 전혀 상이 맺히지 않거나, 객석에 앉아서 볼 때 사석에 자막이 잘려보이거나 혹은 전혀 보이지 않거나하는 현장의 변수가 많았죠. 어쨌든 개념적으로 자막이라는 것이 그냥 인포메이션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언어를 전달하는 무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험 해보고 있는 중이에요.

신뢰를 쌓아가는 일

김태희
때로는 자막이 시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김지나
그런 코멘트를 많이 들었어요. 이번에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건, 감사하게도 이해가 안되는 장면들을 다시 보기 위해 공연을 여러 번 보러 와주시는 관객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런데 스스럼없이 로비에서 저를 마주치면 질문을 해주시고 말을 걸어주시더라고요.
김태희
되게 드문 경험일 것 같기는 해요. 극장 로비에서 연출에게 말을 거는 건, 굉장히 많은 진입장벽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웃음)
김지나
그렇죠. 사실 연극을 하면서 그런 게 좀 힘들었어요. 공연을 보시고 혹평을 하시는 건 제가 관객에게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 놓친 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요. 그런데, 연습과정에서 배우 스태프들과 서로 고민을 많이 해서 내놓은 작품인데, 그거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않으려는 관객을 마주 했을 때 그게 좀 힘들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많은 관객분들이 물어봐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김태희
그건 평론을 쓰는 저도 고민을 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어떻게 전달을 해야 내가 그렇게 고민을 많이 했음을 이해하고 있고 나 역시도 고민을 했고, 그래서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해요. 어쩌면 신뢰의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김지나
어느 정도 신뢰를 쌓은 연출가가 되기까지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하나씩 하나씩 작품을 만들어 갈 때마다 점점 무거워지는 신뢰의 무게인데. 한 창작자가 연출가로서 어떤 콘셉트를 선택했을 때, 그것이 보이는 것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저변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관객에게 설득시키지 못했을 때, 정말 공부가 많이 필요하구나 싶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도 그렇고요. 수면 위에 떠 있는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인물들-배우들 안에 녹아있는 이주민들의 삶과 인생에 대해 쌓아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요즘에 연출가란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해요. 어쩌면 뉴스테이지에 선정이 되지 않았으면 아주 오래 활동을 쉬거나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연극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지원 사업들을 통해서 성장한 것도 아니거든요. 어떻게 동료 창작자나 관객들과 만나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온 에너지를 다해서 무작정 했고, 그게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나니까 더 나아갈 힘이 바닥 난 시점이었어요. 다행히 좋은 기회를 만나서 공연을 할 수 있었고 이 작품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과감하게 풀 수 있었던 건 뉴스테이지여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태희
저도 요즘 평론이 뭔지 고민 많이 해요. (웃음) 신뢰를 쌓는 일이 결국엔 시간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오랫동안 결과물로 보여주고 설득하고 그걸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공허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연출님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지원사업이 선정되어서 다행이네요.
김지나
네, 저는 저에게 아주 좋은 시기에 기회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올해 뉴스테이지는 다년간 지원으로 바뀌면서 멘토링 대신 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언어 쪽으로 자문 해주실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죠.
김태희
그런 변화는 긍정적인 반면에 지원하는 도중에 담당 직원이 바뀌기도 했어요. 사업 참여자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지나
작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해온, 재단 직원이라기보다 저한테는 동반자의 의미가 컸거든요. 2차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하기도 했었고요. 많이 아쉽죠.
김태희
공연 진행 중에 그런 일이 생겨서 담당자도 속상했을 것 같아요. 그럼 올해 2차 공연은 어떤 작품을 하시나요?
김지나
2차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칸나의 바다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이번에는 그들의 삶에 대한 드라마로 풀 예정인데, <칸나의 바다로>를 두고 전 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명과 연화, 그리고 스티브(순주)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칸나 보신 분들이 와주시면 연결고리가 있어 보시기에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레일을 따라 붉은 칸나의 바다로> 작품 안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궁금하셨던 게이코나 소피아의 삶의 스토리가 설명되어지는 지점도 있을 거구요.

멈춘 열차를 배경으로 인물들의 상처가 한바탕 휘몰아치고 난 뒤, 열차 안에는 명과 아냐, 스티브 세 사람만이 남는다. 살아남은 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끝내 열차에서 살아남지 못한 시로나 소피아의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수많은 시간들의 겹침 속에서 분명한 것은 늙은 여자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메시지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 사이에 생기는 원망도, 슬픈 것도 다 묻어버리고 또 떠나는 거야.”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했던 작품은 그렇게 거대한 삶과 마주한다. 그것은 곧 살아가고, 살아가고,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 그것은 담담하고 소박한 위로이자 단단한 희망이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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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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