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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어 선

극단 놀땅 <선을 넘는 자들>

송이원_연출가

제134호

2018.02.22

대한민국 - 서울시 - 무슨 구 - 어느 동의 순서로, 또 역으로,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을 늘였다 줄이기를 반복하니 이에 종과 횡으로 교차하는 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땅 그림, 지도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우리가 몸 붙이고 사는 이 땅이란 공간은 선과 경계들로 가득 들어찬 곳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조금 더 생각해보니 가득하다 못해 애초에 선과 경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게 바로 땅인듯도 싶다. 그렇다면 각자의 ‘어떤’ 땅으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는 우리네들의 삶은 결코 선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며, 선과 선의 사이에서, 또 때로는 정확히 그 선에서, 선과 더불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테다. 극단 놀땅(대표/연출 최진아)의 <선을 넘는 자들>은 대한민국 사회의 안팎을 이루는 다양한 선들을, 그리고 그 선을 마주한 인물들을 무대에 그려낸 작품이다. 선을 넘은 자, 넘고 있는 자, 넘고자 하는 자. 땅을 가르는 선, 사람을 가르는 선, 또 사람을 잇는 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든 최진아 연출과 박다미(송 역), 정승길(김군 역), 신덕호(정씨 역) 세 배우를 만났다.

송이원
남북의 분계선인 휴전선으로부터 출발하여 일상의 촘촘하고도 다양한 선들을 다루셨어요. 원래 이주민 문제, 특히 새터민(북한이탈주민)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최진아
약 4년 전에 독일과 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그 전엔 저 역시도 남한 사회에 묻혀 살기만 하다가 그 프로그램을 계기로 DMZ라는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탈북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러다 단순히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남한사회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작품을 쓰게 됐어요.
송이원
작품을 보고 자료 조사를 방대하게 하셨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과정은 어떠셨나요?
최진아
새터민 분들과는 논문과 기사를 통해, 또 아는 분들의 소개를 통해 만나 왔고, 프로그램북에 글을 써주시고 자문을 해주셨던 김필주, 김지이 두 분은 연습을 하면서 만나 뵙게 된 분들이에요. 참 어려운 부분인데요, 직접 만나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오히려 더 한정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경우엔 주로 사람에 대한 인상을 많이 느끼게 된 편이었고, 속 얘기 같은 경우는 오히려 논문이나 기사를 통해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어요.
송이원
‘송’ 역의 박다미 배우님과 ‘김군’ 역의 정승길 배우님께서는 작품 속에서 북한 억양을 구사하셨는데, 따로 트레이닝을 받으셨던 건가요?
정승길
최진아 연출이 집필 과정에서 알게 된 새터민 분으로부터 자문을 받았어요. 한다고 했는데 어설펐던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워요. 예를 들어서 ‘송’ 같은 경우는 남한으로 넘어와 적응해 가면서 서울말이 조금씩 섞이는 등의 변화 과정이 있는데, 제가 맡은 ‘김군’의 경우는 이제 막 남한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병사이다 보니 북한 억양을 정말 잘 썼어야 했는데,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네요.
최진아
그런데 사투리의 억양을 너무 잘 구사해버리면 또 관객분들이 못 알아들으시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마주친 어려움이 물론 여럿 있었는데, 일단 대극장에서 대사 전달을 해야 한다는 것, 거기다 사투리로 전달을 해야 한다는 것이 크게 극복해야 할 지점들이었어요.
정승길
사투리 연기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사투리의 느낌 내기와 의미 전달을 동시에 해야 하니까요.
송이원
‘김군’ 같은 경우는 배우분께서 부담스러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김군’의 캐릭터는 극 초반부터 극 후반에 이르기까지, 저 멀리 무대의 끝에서 점점 객석 쪽으로 다가오는 동선이다 보니, 대극장에서 주로 대사에만 의존해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셨어야 하니까요.
정승길
물리적인 거리도 부담스러웠고, 상대역이 없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다른 배우들은 모두 대사를 주고받을 상대역이 있고 장면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하는데, 저는 대사도 홀로, 고민도 홀로, 정말 ‘김군’이 처한 상황처럼 연기를 했어야 했죠. 처음 대본을 받을 때부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여지 없이 힘들더라고요. (웃음) 또 탈북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감, 이야기 자체의 무게감이 있었어요. ‘김군’ 같은 경우, 춥고 외롭고 무섭고, 또 희망을 가지고 남한으로 내려가긴 하지만 품고 있는 희망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공포도 있었고요. 그래서 무겁게만 다가가면 보는 입장에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가볍게 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 만큼은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송이원
‘송’ 역할을 맡으신 박다미 배우님께선, 사투리도 아닌 또 서울말도 아닌, ‘타지 출신 서울 사람’의 억양을 섬세하게 구사하셨어요.
박다미
사실 저 역시도 부산 출신이라 서울말이 저의 모어가 아니에요. 또 연출님께서 아예 사투리를 쓰지 않는 건 어떨까 하고 제안도 하셨었어요, 남한으로 넘어온 뒤 적응을 잘하셔서 서울말을 유창하게 쓰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편견을 깨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송’이 극중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탈북민이고 서울 사람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고향 사람들을 만날 때는 서울말을 쓰지 않을 테니 북한말을 기본적으로 쓰면서 중간중간 서울 사람들을 만날 때 짧게 서울말을 쓰는 식이었어요. ‘송’이란 캐릭터를 만나면서 저는 제가 가진 편견을 최대한 버리려고 노력했던 편이에요. 사실 저도 다른 곳에 가게 되면 이방인이잖아요. 탈북민이라는 특수한 정체성에 갇히기보다는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 있다가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오게 된 이방인이라는 점에 집중을 했어요.

송이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 이방인이라는 지점도 상당히 묘하네요. 이방인을 통해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한국 사회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달까요. 바로 그 지점에 남한 사람 ‘정씨(신덕호)’ 인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씨’는 어쩌면 다른 탈북민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애물이나 벽, 또는 선이 적어 보일 수도 있고, 인물들 간의 대립이 있을 때 상대적으로 강자의 위치를 점하기도 하였는데, 캐릭터 자체의 삶을 생각해보니 되게 갑갑하더라고요.
신덕호
저는 ‘정씨’라는 인물이 이 작품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희망이 없어 보였어요. ‘김군’이나 ‘송’의 경우 처한 상황과 현실은 비록 힘들지라도 희망이란 게 있는데 ‘정씨’는 오히려 가장 희망이 안 보이는 인물로 느껴졌어요. 사업이 망했고 이혼을 했다는 현실적인 배경과 더불어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이미 소외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환경을 불신하며 극단적으로 월북이라는 카드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북한의 배급 체제에 대해 배우로서는 소유욕과 자유의 박탈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정씨’ 는 ‘나는 지금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 있으니 주어지는 것들을 받으며 그 속에서 뭔가 이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최진아
어제 한 선배로부터 ‘정씨’와 ‘윤(정새별)’ 두 남녀의 사랑이 너무 슬프다는 문자를 받기도 했어요. 저는 이들이 절망 속에서 슬프게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많은 관객분들은 이들이 미워서 이런 정서를 못 느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송이원
작품을 보고 기분이 되게 묘했던 게, 선이라는 게 이분법적으로 쉽게 생각해버리면 그냥 없애야 하는 것으로 느끼고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또 동시에 선이라는 건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 선을 넘어야 할지, 그 선 위에 있어야 되는 건지,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최진아
작품을 하다 느꼈는데, 어떤 것들을 욕망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현실과 부딪힐 때, 선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선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데 그냥 지내면 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지내지만, 무엇인가를 더 하려고 하거나, 욕망을 품거나,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할 때 드러나는 게 선인 것 같고, 그 이후에 선을 넘을지 아니면 이대로 이 생활을 지속할지 결정해야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선을 넘는 자들>은 국경이라는 굉장히 큰 선을 다루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삶의 선이기도 하죠.
송이원
작품을 보며 묘하단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배우 한 분 한 분은 사실적인 연기를 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반면, 무대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는 형식이나, 또 특히 산양이나 고래 이야기가 등장하는 파트 등에서, 사실적인 것들이 몽환적으로 버무려진 느낌이었달까요? 이미지적으로 염두에 두셨던 것이 있으신가요?
최진아
등장인물들이 주로 탈북민이다 보니 작품으로부터 정치적인 감상이 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어떤 개인이 선을 맞닥뜨려 그 선을 넘을 때 어떤 소용돌이가 일어나는가였어요. 그래서 구체적인 현실성보다는 꿈과 상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서 ‘고래’ 장면이 나오기도 했고, 선을 만나게 되며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이 ‘산양’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승길
산양은 거의 유일한 저의 상대역이죠.

서식하던 바다의 선을 넘은 고래의 뱃속은 새로운 바다의 압력과 싸우느라 바쁘다. 그리고 종종,낯선 바다의 압력에 적응하지 못해 갈비뼈와 내장, 또 근육이 흩어져 죽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남한 사회에 정착하고자 하는 ‘강’은 죽은 고래떼들을 보며 자신의 배는 터지게 두지 않을 거라며, 뱃심 주고 버틸거라며 연신 두 주먹으로 힘껏 자신의 배를 친다.

송이원
고래 장면 같은 경우는 직접 쓰신 우화인가요?
최진아
작품을 쓰다 보면 그 과정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아이디어 받게 돼요. 한 번은 누군가가 고래가 죽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 연극이 크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순히 남북문제와 탈북민 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선을 넘게 되었을 때 부딪히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이원
그 장면에서 이어져 ‘강(이준영)’이 교통사고 장면에서 ‘정씨’의 차별적인 언사를 듣고 계속 배를 치더라고요. 그 장면이 정말 슬펐어요.
최진아
몰랐어요. 고래 독백을 할 땐 “나는 뱃심 주고 살거다” 하고 배를 쳤고, 연습 중에 ‘정씨’를 치고 싶은 걸 참는 동작을 찾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이 동작을 하더라고요. 배우들이 찾는 장면들로부터 놀라움을 많이 느끼는데 그 장면도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어요.
신덕호
연습 과정 중에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가 중반 정도를 지나 탈북민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저는 약자가 꼭 선하지는 않다는 말을 좋아해요. 사람들을 대할 때 더 공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잖아요. 작품에서 탈북민들이 월세 문제로 다툴 때나 경찰과 다툴 때, 이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상황을 빗겨가려고도 하고, 돌아가려고도 하고, 이용하려고도 해요. 그런 욕망들이 드러나는 부분이 좋았어요. 가해지는 차별을 이유로 이들을 무조건 선하게만, 약자로만 그리는 건 제대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최진아
이 지점들 역시 연습 과정에서 찾게 되었어요. 제가 원래 쓰기로는, 알게 모르게 편협했달까요?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지, 탈북민들이 피해자로서 주로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배우들이 지적해주어서 문제가 있다 싶었죠. 르포를 하는 게 아니라 연극을 만드는 거니까요. 이러한 중간점검을 거친 후에, 그들은 절대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간이기에 그들의 이기심과 욕망도 넣어가며, 수정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캐릭터들이에요. 이런 식으로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치다 보니 대본의 완성본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배우분들이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대극장일 경우 완성된 대본으로 평균 두 달의 연습 시간이 필요한데 그렇게 못 했죠. 시간에 쫓기느라 배우분들이 하고 싶은 만큼 연습을 충분히 하지는 못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장면의 순번이 오면 배우분들이 특별한 것들을 보여주곤 했어요. 제가 다른 장면을 보고 있을 때 그걸 고심해 왔다가 딱 보여주는데, 어느 날 보니 ‘정씨’가 ‘윤’을 목마 태우고 있거나, 안아 올리거나 하는 식이었죠.
박다미
연출님께서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계속 질문하시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늦게 가지고 오시나 하는 믿음으로 저를 다졌어요. 절대 게을러서라거나, 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더 좋은 것, 더 지금에 가까운 것, 항상 지금의 우리들이 느끼는 것에 집중을 하시는 것 같아요. 바로 어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
최진아
이렇게 미화를 해서 이야기해주다니…. 창작극에 초연이다 보니 대본 수정을 하다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어야 했고, 배우들에게 신세를 많이 지게 되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정승길
창작 초연은 왜 항상 이렇게 힘들까요? 창작 초연을 할 때 안 힘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배우 입장에서 처음 작업을 선택하고 해나갈 때 가장 기대는 부분이 희곡이니까요. 연출과 따로 얘기를 좀 해야겠어요. (웃음)

송이원
그럼 슬슬 마무리 할 겸, 가장 좋아하는 장면, 혹은 가장 마음 가는 장면이 있다면요?
박다미
장면 안과 밖에 걸쳐서인데요, 등장하기 위해 소대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일향(박성연)’과 ‘황(선종남)’이 “안녕하세요”하며 소대 근처까지 와요. 그때 성연 언니의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극 중에서 엄마이기도 하니까 그 얼굴에서, 엄마에게서 희망을 봐요. 그래서 이어서 “엄마”하고 부르며 등장할 때 감정을 잡게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 장면이 한 편으로는 되게 슬프기도 해요. 엄마가 남한에 적응도 하고 싶고, 남한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낸 밝음이니까요.
정승길
저도 다미랑 비슷한데, 제 장면이 끝나고 들어갈 때 혹은 장면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저는 주로 혼자 있으니까 소대가 다 느껴지는 거죠. 소대에서 앉아있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등장 때문에 정신 없이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다미처럼 흐뭇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저는 그게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옆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이요.
송이원
극장이라는 공간을 매끄럽게 메우기 위해 무대에서, 또 무대의 밖과 연습실에서 겪으셨던 일들을 듣게 되어 흥미로웠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그 힘든(!) 창작 초연이 만들어졌고 첫 발을 딛으셨네요. 앞으로 이 이야기가 어떤 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또 어떤 선들을 맞닥뜨리고 넘게 될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극이 끝날 즈음, ‘김군’은 본인에게 선이란 “지우고 싶지만 넘어야 하는 것”이란 말을 한다. 인용하기 민망할 정도로 클리셰가 되어버린 말과 상징이지만, 어쩐지 삶은 B와 D 사이의 C, 즉 삶(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란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심장박동을 기록하는 심전도 라인 이미지와 함께. 삶이 지속되는 한 그 선은 결코 평평하지 않은, ‘선 넘어 선’의 형태일 것이다. 지울 수도 끊어버릴 수도 없는, 삶의 과정으로서의 선을 넘고(Climb) 가로질러 건너는(Cross) 것, 그리고 각자의 과정이 너무 외롭지 않도록 함께 고민하는 것. 이런 것들이 이 선 위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 아닐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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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eewon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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