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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 사람들을 기억하며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열전 2017!’ <무순 6년>

김태희

제135호

2018.03.08

몇 년 전 거제도에 위치한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즈음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폭동을 소재로 한 이재현 작가의 희곡을 읽었기도 했고 또 때마침 거제도에 방문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운 여름날이었는데도 그곳의 선득한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6.25 전쟁 중 만들어진 거제포로수용소에는, 당시 정원의 5배가 넘는 포로가 수용되어 있었고 당연히 그 안에서의 생활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군과의 인종적 갈등, 전향을 유도하기 위해서 포로들에게 자행되었던 심문과 폭행까지. 우리는 포로들을 철저히 적으로 인식했고 수용소는 그야말로 거대한 지옥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포로수용소의 모습이 이러했기 때문에 <무순 6년>이 더 충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제가 패망한 뒤 중국군과 대치중이던 일본군이 포로로 잡혔다. 중국 정부는 놀랍게도 무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된 전범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줄 것을 명령한다. 단순한 포로도 아니고 전범인데도 불구하고 간수들은 당의 명령 때문에 포로들에게 하루 세끼 제대로 된 식사와 적정한 삶의 질을 보장해주었고 교화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체육, 음악, 연극 활동 등을 누리게 해주었다. 어제까지 총부리를 겨누던 적군에게 그런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일이 과연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충격과 함께 호기심이 생겼다.

‘무순 전범 관리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김태희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소재가 신선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포로수용소의 모습은 사실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전부였거든요. 폭력과 폭동이 난무하는 그런 이미지였는데,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무엇보다 예술을 통해 교화시킨다는 이야기가 새롭더라고요. 이 소재를 어떻게 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이준우
이 이야기를 처음에 알게 된 게 작년 초였어요. 일본의 정신병리학자인 노다 마사아키 선생님이 쓴 [전쟁과 인간-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이라는, 전쟁범죄자들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 있어요. 그 책에서 전범들의 심리를 분석하는데 그 중에 무순 전범 관리소에 수용되었었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책을 통해서 무순 전범 관리소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후 관련 내용을 더 찾아보게 되었죠.
김태희
자료가 좀 남아 있는 편인가요?
이준우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은데, 다행히 실제로 무순 전범 관리소에 계셨던 조선인 김원 선생님의 회고록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시마무라 자부로라고 전범이었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관련 일화를 책으로 낸 사람이 있어요. 그런 자료들을 읽으면서 정리를 좀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일화들 중에서도 다양한 교화 작업들이 흥미로워서 그걸 연극으로 풀어보기로 결심했어요.
김태희
팸플릿을 보니까 합창도 하고 체육도 하고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했더라고요.
이준우
포로 우대 정책이 기본이어서 때리지도 않고 욕도 안하고 최대한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라고 당에서 명령이 내려온 거죠. 그랬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했더라고요. 그래도 제일 흥미로웠던 건 연극이었어요. 무슨 전범 관리소에서는 전범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범죄 사실을 자백서로 받았는데, 그 자백서를 바탕으로 공연을 만들기도 했어요. 연극이 일종의 자백서였던 셈이죠. 그 외에도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터졌던 당시를 재현하는 것도 있었고 평화로웠던 마을을 재현하는 것도 있었고요.
김태희
그럼 작품에 나오는 극중극도 실제로 있었던 공연인가요?
이준우
회고록에 한, 두 페이지 정도 남아있긴한데 구체적인 과정들이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아요. 전범들이 가해자 역할도 하고 피해자 역할도 하고 나눠서 했다 정도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을 그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맡겼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작품이랑 실제 역사적 사실이 시차가 조금 있어요. 실제로 전범들이 연극을 했을 때는 자백서가 어느 정도 통과된 상태였죠. 그러니까 자신들의 과거를 재현하는 데 있어서 갈등이 크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근데 저희는 인물들 간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간대를 조금 당겨서 자백서가 통과되기 전으로 설정을 했어요.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간들

김태희
배우님들도 처음에 이 작품의 대본을 접하셨을 때, 저처럼 좀 생소하게 느끼셨을 것 같아요.
한상훈
그렇죠. 처음에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이것이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훨씬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어요. 900명이 넘는 전범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가 거의 다 생존해서 돌아갔거든요. 이게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해요. 관리소 안에는 분명 간수들이 존재했었고 그들은 피해자잖아요. 가해자를 눈앞에 두고 삼시세끼 밥을 먹여요. 심지어 자기들은 굶어도 이 사람들은 먹어야 한다는 당의 지침이 있어서 끼니를 거르지도 않아요. 아프면 들쳐 업고 병원까지 가서 반드시 낫게 만들어요. 이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어요.
신용진
사실 전쟁이란 건 야수 같은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이 시스템은 지금의 시각으로도 진보적이고 이성적이잖아요. 그 당시에 이런 시스템을 운영했다는 게 흥미로웠고요. 이 작품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가 궁금하기보다는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가 더 궁금했어요. 간수는 간수대로 전범들은 전범대로 어떤 마음이었을까가 궁금했어요.
김태희
실제로 연기하실 때 어떤 감정이 들던가요?
신용진
어렵다? (웃음) 배우들이 계속 고민하고 마음을 이해하고 연기하려고 노력하지만, 참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100프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되게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미운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미운 마음도 무뎌질 수 있고 또 6년이란 시간 안에서 그 관계나 마음이 많이 변해가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요. 그렇게 추측만 해보는 거죠.
김태희
간수 역할 하시면서 전범으로 나온 인물들이 미워지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신용진
있었죠. 전범은 전범대로 자기 욕망과 입장이 있을 거고 간수도 간수 나름대로의 욕망과 입장이 있었겠죠. 그걸 이해하고 연기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간수의 입장과 전범의 입장이 부딪힐 때가 있어요. 그러면 종종 화가 났죠. 물론 그 배우가 미운 건 아니었어요. (웃음)
전중용
작업하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했어요. 우리가 중국이든 일본이든 식민지화하거나 그들을 포로로 잡고 있었다면, 과연 우린 어땠을까. 이 작품에는 중국인 일본인만 나오잖아요. 물론 조선인 김원이 나오긴 하지만요. 그래서 우리랑 좀 동 떨어진 이야기 같았어요. 그러다보니 저는 개인적으로 나라면 어땠을까, 연극을 했을까 때려죽였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 그게 가장 궁금한 지점이었어요.
김태희
우리 같았으면 이렇게 못하지 않았을까요.
전중용
못했을 것 같긴 한데 그럼 어떻게 했을까, 풀어 줬을까, 어쨌든 잡았는데. 우리 늘 피해자에 가까운 입장이었으니까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게 어떤 건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한윤춘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 교육과 개조라는 미명하에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는 게 맡은 배역의 입장에서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힘도 많이 들고요. 물론 내가 가해자이긴 하지만 가해자에게 이렇게 교화를 시켜도 되는 건지 힘들고 괴롭더라고요. 그 역할로 들어가서 생각을 해보면요. 이들의 상황이 일상과 겹쳐지는 순간도 많았어요. 가령 알게 모르게 피해를 줬는데 그 때는 모르는 거죠. 나중에 지나고 나서 모두가 괴롭지만 그걸 끄집어내서 알아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복잡다단한 것들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김태희
다른 인물들은 중국인과 일본인 혹은 간수와 전범 이렇게 나뉘는데 김원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그는 유일한 조선인이잖아요.
한상훈
제가 회고록에서 본 김원 부장은 너무 어렸을 때 이미 중국으로 넘어간 분이라 물론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거의 중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중국인들과 온갖 고초를 겪은 사람이에요. 중국인들과 같이 팔로군에 참여하고 중국에서 일본인들의 억압을 중국인들과 같이 겪은 사람이죠. 고향땅에 가지 못한다는 건 명확하게 존재했겠지만 그가 중국인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은 없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작가님의 의도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김원은 전범과 같이 있는 이 곳에서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좀 더 객관적인 관찰자 같은 시선으로 간수와 전범들 간의 상황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제 침략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나왔고 쫓겨 난 곳에서도 계속 억압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분노 같은 건 비슷하다고 봐요.
김태희
김원도 그렇지만 다른 인물들도 각각 전사가 많더라고요.
신용진
제가 맡은 인물은 엄마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중국인 중에 전범 교화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도 하기 싫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데 엄마는 일반 인민으로서 반대 농성을 하고 있는 거죠. 엄마와 아들의 관계와 동시에 반대하는 인민과 간수의 관계가 있으니까 그 안에서의 혼란, 괴로움이 있는 거죠. 그게 제가 맡은 인물이 이 작품 안에서 가지고 있는 갈등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중용
제가 맡은 역할은 사람을 엄청나게 죽인 극악무도한 전범이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전사와 자백서를 A4로 3,4장씩 작가가 써줬어요. 자백서의 내용은 듣기만 해도 오싹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가 죽인 사람의 숫자가 현실감이 없잖아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 큰일을 많이 당한 사람, 그래서 여러 사건을 겪어도 그러려니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로 그리려고 했어요.
한윤춘
저는 군국주의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가게 된 피해자였어요. 자기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거기까지 가게 된 거고 그래도 팩트는 가해자죠. 거기까지 결론을 내고 무순 전범관리소에 왔을 때 이 군상을 만나고 프로그램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게 되고 적응하게 되는지, 전사를 통해서 끄집어냈던 것 같아요.
김태희
아까 교화 프로그램이 잔인하게 느껴졌다는 말씀과 묘하게 연결되네요. 배우님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끌려가다시피 한 인물을 연기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싶어요.

<무순 6년>은 꼼꼼하게 무순 전범 관리소 안의 사람들을 복원한다. 이들은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쉽게 속단 하기는 어렵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여동생이 일본인과 결혼해서 조카를 낳았고, 전범인 소장문은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전쟁터를 선택했다. 또 관리소에서 일하는 중국인 왕흥은 일본인을 살해한다. 단순히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이들에게는 많은 사연이 있다. 우리가 이들의 ‘삶’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프레임 너머

김태희
‘맞지 않는 옷’이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경극 장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웃음) 경극은 극중극 장면을 위해 실제로 연습을 하신 거죠?
한윤춘
네 실제로 경극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계신 선생님과 같이 연습을 했어요. 하지만 전문적으로 짜여진 움직임처럼 안보이기 위해 노력한 장면이죠.
김태희
그게 의도였다고 하니까 편하게 말씀드리면, 이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구나, 경극에 가까운 모습을 만들려고 간수장이 많이 연습을 시켰을 것이고 이 사람들도 꾸역꾸역 따라가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한윤춘
그런 의도가 있었어요. 우리가 잘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시치미 뚝 떼고 극 안으로 확 들어가서 해야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 거죠.
김태희
마지막에 그래서 결국엔 가장 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연극을 끝내고 공연이 끝나잖아요. 그 결말을 선택하신 이유는 뭘까요? 저는 사실 극중극이 끝나고 난 뒤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거든요.
이준우
마지막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3막이 정말 리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앞에서 당의 지침에 따라 경극을 억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결국 이것을 수행해냈다는 걸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사실적인 극으로 재현하는 게 맞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그리고 간수와 전범이 모두 참여하는 장면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3막은 단순한 극중극을 떠나서 전쟁에 휘말렸던 모든 이들에 대한 위로나 애도의 한 표현이었으면 했어요. 애도를 표현하기 위해 그 전에도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설명적이고 교훈적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중국어 가사까지 들어가 있는 국가를 들려주고 옷을 벗는 모습을 통해 극중극의 인물에서 빠져나와 간수와 전범 모습을 보여주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결국엔 ‘이것이 무순 전범 관리소다’라는 걸 보여주고 그것을 수행하는 인물들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태희
그렇다면 혹시 연극을 완성하고 났을 때 그 사람들 안에서 어떤 피해와 가해 사실 같은 것들이 어떻게 정리 되었을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셨나요? 가령 아주 범박하게 정리하자면,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가해자는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식으로 정리가 된 상태에서 극중극이 만들어졌달까, 이런 설정이 있었나요?
이준우
열어두고 갔어요. 가해자와 피해자이기 전에 이 시대에 휘말렸던 사람들이잖아요. 사실 전범들도 개개인의 이유가 있거든요. 물론 군국주의와 천황이데올로기는 잘못되었지만요. 전범들도 간수들도 역사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전사들이 있어요. 저는 이 모든 걸 통틀어서 ‘인간’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걸 열어둔 것 같아요.
김태희
전 사실 오기 전에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과거 청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고 연출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이 공연에는 제가 준비한 질문이 안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준우/dt>
작품을 만들면서 과거 청산하고 연관되는 질문이 하나 생기기는 했어요. 간수들이 사실 피해자이잖아요. 그런데도 당의 지침에 따랐고 교화프로그램을 수행했죠. 당은 6년이 지나고 나서 판결을 내리고 석방을 시작했어요. 대부분 사형이나 무기징역 없이 돌려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그 장면을 피해자인 간수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과연 용서의 주체가 누구일까. 그런 질문은 생기더라고요.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국가가 개입했을 때 그런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런 질문은 생겼어요.
전중용
<무순 6년>도 그렇고 다른 역사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도 그렇고 맘에 걸리는 게 있어요. 적절한 단어일지는 모르겠지만 편향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해야죠.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똑바로 바라보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고 또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말자는 건 아닌데, 잘 모르겠어요. 가끔 그렇게 또 사람들이 쓸려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들이 있거든요. 지금 인터뷰를 하시는 분처럼 처음에는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을 예상하고 왔다가 작품을 보고 이게 또 이런 작품 아니구나, 마음을 돌리시는 것처럼 사실은 그런 이야기들이 거쳐 거쳐서 이루어지는 과정들이 잘 전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물론 각자의 몫이긴 한데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태희
말씀하신 편향성을 조금 더 부연을 하자면, 인물들을 단순히 가해와 피해로만 나누고 그런 이분법적인 시선으로만 어떤 상황을 판단하는, 그런 것들인 거죠?
전중용
아주 단순하게는 그렇죠. 가령 가해자, 피해자 외에 방조자도 있을 것이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엄청 많잖아요. 잘못된 것들을 고치기 위해서 하는 일도 분명히 해야 하는 일이죠. 그건 동의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관심도 갖고 올바르게 접근하고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를 줄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으면, 그것을 하는 이유가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걸 테니까요.
김태희
말씀하신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그런 다양한 시도가 있을 때 분명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거니까요.

그 시절 무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기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전쟁이란 큰 소용돌이에 휩쓸렸고 다시 한 번 정부의 강압에 내몰렸을 뿐이다. 개인이 어떤 고통에 내몰렸는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말이다. 고통은 늘 우리의 것이었으나 우리는 한 번도 그 고통의 주체로 대접받아 본 적이 없다. 연출의 말처럼, 그래서 이 작품은 그 시절 그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제의이자 애도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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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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