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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 일

창작공동체 아르케 <전쟁터의 소풍>

김태희_평론가

제137호

2018.04.05

어느 분야에서건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기는 쉽지 않다. 특히 그 분야를 연극으로 한정했을 때는 더더욱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제작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연극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고 기회는 적은 판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럭저럭 버틸 수야 있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늘 한결같다는 믿음을 주면서 버티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창작공동체 아르케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2008년 3월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으로 창단공연을 올리고 매년 적게는 두 편, 많게는 네 편의 정기공연을 올리며 10년을 묵묵히 걸어왔다. 지난 10년을 기념하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계획하는 의미에서 올해 10주년 기념 공연 세 편을 준비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은 페르난도 아라발의 <전쟁터의 소풍>으로 전쟁터로 자식을 면회 온 떼빵씨 부부와 그들에게 잡힌 포로를 중심으로 전쟁의 비인간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왜 하필 10주년 기념 공연의 첫 작품이 <전쟁터의 소풍>이었을지 궁금증을 안고 극장을 찾았다.

반복되는 역사, 지속되는 갈등

김태희
연출님께서 원작을 직접 재구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작에 어떤 부분을 더하고 싶으셨던 건지요?
김승철
원작에서 아라발이 전쟁의 참혹성, 비극성을 표현했다면 저는 여기에 전쟁은 영원히 계속 된다, 그러니까 욕망을 달리하는 인간집단 사이의 전쟁은 형태를 달리할 뿐 인류 역사를 이어오면서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거라는 이야기를 더하고 싶었어요. 형태를 바꿔서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을 우리가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되는 건지에 대해서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랬습니다.
김태희
이 작품에서는 전쟁으로 표현되었지만 사실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양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네요. 새롭게 추가된 인물도 있었어요. 극 초반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인물인 칼이 새롭게 추가된 인물인데, 극 안에서 굉장히 많은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김승철
창단공연을 할 때, 뷔히너의 <보이첵>을 재구성했거든요. 그 때 칼이라는 인물이 중요하게 들어와요. 그 작품의 칼이 이 작품의 칼과 동일한 인물입니다. 단지 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작품에 따라서 다르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거지요. 뭐랄까 이 작품에 나오는 칼은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자아랄까, 혹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의 정령, 고독의 화신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해요. 이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징적 인물로 작품에 들어와 있죠.
김태희
설명을 듣고 장면을 떠올려 보니까 그 모든 모습들이 칼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칼뿐만 아니라 위생병들도 충격적이었어요. 양식화된 움직임들이 이 작품에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김승철
기본적으로 유형화되고 양식화된 인물을 많이 만들려고 했어요. 인물 한명 한명이 특정 군상을 상징하게 되는 작품이어서, 상징성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 양식화된 연기를 많이 요구했죠. 그래서 움직임 선생님도 따로 모셨고요. 다만 그런 양식화, 유형화를 위해서는 작품의 해석이 전제가 되었어요. 위생병 같은 경우에도 그 인물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했어요.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지 연극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 거기에 기반 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유형화 시켰죠.
김태희
위생병의 외계어 같은 대사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나요?
조은경
처음부터 문자 기호로 쓰여 있어서 배우들이 다 들리는 외계어처럼 만든 거예요.
배선애
그래서 복사집에서 오타라고 오해해서 연락도 왔었어요. (웃음)
김태희
예상치 못했던 지점이네요. (웃음)

극 중 칼은 실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극을 열고 닫는 일을 담당하고 지루한 전장에서 자뽀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녀가 담당하는 가장 큰 역할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시선을 객석에 전달하는 것이다. 자뽀 가족의 희로애락과 달리 칼은 시종일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한다. 갸우뚱 기울어진 머리, 텅 빈 눈동자, 나른한 발걸음. 칼은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전쟁은 언제고 계속되고 있다는 걸.

전쟁, 그것은 언제 어디에나 있는

김태희
제가 또 한 가지 인상 깊게 본 것은 자뽀를 딸로 설정하신 대목이었어요. 기존의 작품들에서 전쟁이 등장하면 그 피해 양상이 마치 성별에 따라 나눠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어요. 물론 제 선입견일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것에서 벗어나 있어서 좋더라고요.
김승철
전쟁의 비극성이라는 게 남녀를 구별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자뽀와 제뽀가 굳이 성별을 구별해야 하는 역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녀가 섞여 있는 게 더 전쟁의 비극성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이형주
저는 이 작품의 특징이 특정한 시공간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연출님 말씀대로 보편성이 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여자가 군인으로 설정된 것이 낯설 수 있는데, 사실 전쟁이 벌어지면 성별의 구별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그러니 오히려 자뽀가 여자여서 우리 작품하고 더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태희
“수십만의 위대한 횃불이여, 태풍에도 절대 꺼지지 않으리. 작전” 장면도 추가가 된 거잖아요. 의도하신 대목일 것 같은데요, 촛불 혁명, 광화문 광장 등이 떠오르더라고요.
김승철
실제로 한창 뜨거울 때 광화문 현장에서 핸드폰 메모장을 가지고 쓴 장면이에요. 현장에서 그 때 제가 받은 느낌들을 쓴 거죠. 제목도 그렇게 떠올린 거고요. 제가 그 장면을 넣은 이유는요, 촛불혁명이 부패를 몰아내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평화적인 항거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그것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또다른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쟁이라는 게 자기 편은 옳고 적은 그르다는 생각이 있어서 싸우게 되는 거잖아요. 촛불을 든 분들이 다 정의롭다고 생각할 거고 제 생각에도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적을 향해서 끌어내리려는 집단적인 몸짓인 거죠. 그 쪽이 부패했다고 판단했겠고 저도 그렇다고 믿지만 그건 어떤 의미에서 갈등이고 또 다른 전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의 느낌, 생각들을 그렇게 장면으로 묘사를 한 거죠.
김태희
그게 아버지와 자식 세대의 갈등으로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세대에서 그건 정의를 되찾는 방법일 수 없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자뽀의 말에 계속 이름이 너무 길다고 엉뚱한 대답만 하죠.
김승철
멀게는 4.19혁명, 또 가깝게는 87년의 6월 항쟁까지, 우리는 최루탄 날아가고 보도블록 던지고 피 터지고 머리 깨지면서 혁명했잖아요. 이번에 촛불혁명 때는 전혀 양상이 달라졌잖아요.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투쟁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전쟁인 거죠.
이형주
작년에 촛불혁명 때도 그렇게 평화적으로 해서는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평화의 방식이 분명 유효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의 변화를 이룩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 다양한 모습들을 아버지와 딸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원작을 아르케만의 색깔로

김태희
아르케의 10주년 기념 공연의 첫 번째 공연이 <전쟁터의 소풍>이었어요. 왜 하필 이 작품이었을까요?
김승철
저희는 기본적으로 레퍼토리를 정할 때 극단 창단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를 해서 결정해요. 이 작품은 이번에 갑자기 기획한 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극단 레퍼토리로 만들려고 염두에 두고 있던 작품이에요. 작년에 워크숍을 해서 간단하게 다른 제목으로 공연을 했었고요. 그 때는 거의 원작 그대로 공연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10주년 기념공연을 위해 대대적으로 재구성을 해서 신작 형태로 올리게 된 거죠.
배선애
10주년 기념 레퍼토리에 대해 제 나름 해석을 해보자면, 이번 10주년 기념 공연이 <그류?그류!>, <툇마루가 있는 집>, <전쟁터의 소풍> 이렇게 총 세 편이에요. <그류?그류!>는 창작공동체 아르케에서 10년 동안 계속 공연했던, 대표성을 띄는 레퍼토리고요. <툇마루가 있는 집>은 작년에 초연되었던 작품으로 레퍼토리 개발의 가능성도 있고 관객들 반응도 좋았던 작품이에요. <전쟁터의 소풍>은 신작개념이에요. 워크숍 공연을 하고 다른 이름으로 공연했어도 전체 색을 완전히 바꿔서 신작의 개념이기 때문에 10주년 기념을 자체적으로 새로운 거, 익숙한 것, 많이 익숙한 것으로 꾸미는,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김태희
정기공연 연보를 보니까 재구성 작품이 많네요.
배선애
원작을 원작대로 올린 공연은 거의 없고 연출님이 재구성하고 번안해서 작업을 많이 했어요. 관객들에게 원작을 선택한 이유를 조금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작품을 다듬는 건데, 그 대목에서 아르케의 색이 잘 나타나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인간, 현실, 역사에 대한 성찰이 묻어날 수 있게끔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재구성을 해요.
김승철
그래서 배선애 선생님 역할이 중요해요.
김태희
한 극단 안에 드라마터그가 상주하는, 몇 안 되는 극단인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하신 지 7년 정도 되셨다고 들었어요. 드라마터그가 있는 극단에서 곧잘 드리는 질문인데 작업하실 때 실질적으로 드라마터그가 어떤 도움이 되나요?
이형주
저희가 드라마터그가 없었던 적도 있었어요. 드라마터그가 있었을 때와 비교를 해보면, 조금 우리 작업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주시는 것 같아요. 때로는 연출가와 드라마터그 간에 의견이 좀 다를 수 있어요. 그럴 때 그런 다른 의견들 덕분에 우리가 풍성해지고 작품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작품을 좀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주는 것 같아요.
조은경
목표를 잊지 않게 도와주는 지점도 커요. 연출이나 배우들만 작업을 하다보면 사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걸 다시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시는 거죠.
이형주
특히 이번처럼 원작을 재구성하고 재창작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거나 놓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럴 때 그런 지점을 이야기해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죠.
김태희
드라마터그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면 객관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같은 팀이긴 하지만 이 작업과는 거리를 둬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늘 그 안에 있으면서 이방인을 자처해야지만 가능한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김태희
아르케의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은 뭐가 있었을까요?
배선애
일단 창단 공연인 <아름다운 살인가! 보이첵>이 있겠고, 대표 레퍼토리인 <그류?그류!>도 중요한 작품인 것 같아요. 피란델로 원작을 재구성한 작품이에요. 저 개인적으로는 레퍼토리는 아니어도 다시 한 번 했으면 하는 작품이 <벚나무 그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한 가문의 몰락사>에요. 저는 아르케의 가장 큰 매력이자 특징이 연극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르케의 연습실에 계속 갈수밖에 없는 게 이 사람들은 정말 연극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아요. 그 진정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드러낼 것인가 모여서 고민하고 연습하는 모습이 참 예뻐요. 어떤 면에서 이들은 자본주의에 참 어울리지 않죠. 그 작품을 올릴 때도 그 작품 하나만 보고 맹렬히 달려갔었던 것 같아요. 연습도 재밌었고 공연도 재밌었고요.

조은경
저도 그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피아니스트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장면들도 인상 깊었고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 때도 참 열악한 제작비 가지고 고생했었는데, 이렇게 버리긴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김승철
늘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게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은 제작여건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물론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야 있지만 늘 고민이죠.
김태희
저는 개인적으로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 생각나네요.
배선애
그 작품이야 말로 진정성이 없으면 못했을 작품이었어요. (웃음) 체력훈련을 석 달 전, 넉 달 전부터 하고 다들 엄청 공들였던 작품이에요. 다 합을 맞춰서 해야 하니까 연습도 엄청 했죠.
김태희
정말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오셨네요. 그렇다면 10주년을 기점으로 아르케의 행보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김승철
생각해보면 그렇게 꼭 의도한 건 아닌데 작년 <툇마루가 있는 집>까지는 비교적 과거에 기댄 작업이랄까, 그런 걸 좀 많이 했어요. 어떤 걸 하더라도 과거의 아픔이라거나 추억, 체험으로부터 해석이 되어서 작품을 재구성하고 형상화했었죠. 어떻게 보면 과거에 빚을 많이 진 작품들이었죠. <툇마루가 있는 집>을 기점으로 해서 앞으로는 조금 더 미래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어찌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들로 무게중심을 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첫 작업이 <전쟁터의 소풍>이에요. 작품의 내용대로라면 형태를 바꿔가며 전쟁이 지속될 텐데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한 거죠.
김태희
확실히 <툇마루가 있는 집>과 <전쟁터의 소풍>을 나란히 놓으니까 차이점이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끝으로 제가 미처 질문 드리지 못했던, 혹은 인터뷰에 담고 싶으신 내용이 있으실까요?
이형주
조금 조심스러운 말씀인데요, 확실히 최근에 일반 관객이 많이 준 것 같아요. 물론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이 전제 되어야 할 것 같고요. 연극을 정말 열심히 만드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관객 분들이 다시금 많이 찾아와주셔서 연극하는 사람들한테 응원과 힘을 좀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김승철
지난 겨울부터 연극계가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와중에 그 한복판에서 이 작품을 연습하고 공연을 올린 거거든요. 저희도 연습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고 고민들도 있었고 상처를 받기도 했고, 그런 어려운 과정들이 있었죠. 그런 시간을 지나오면서 든 생각은 역시 방법은 연극으로 질문하고 또 연극으로 답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게 결국에는 너무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도달하게 된 지점이에요. 그만두지 않는 이상에는 더 기를 쓰고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연극계의 많은 팀들이 그렇게 순수하고 정직하게 만드는 팀들이 많다는 걸 저도 잘 알아요. 그 분들이 이번 일로 너무 상처받지 않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하는 바람을 이런 자리를 빌어서 표현해도 된다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태희
종종 언론사 기자들에게 전화가 와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서 사태를 전망하는 기사를 써야하니까 인터뷰를 하려는 거죠. 그럴 때 빠지지 않는 질문 중의 하나가 이번 일로 연극계가 위축 될 것이라고 보느냐 에요. 저는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관객 집회 이야기를 했었어요. 일요일 가장 좋은 시간대에 붐비는 대학로에 나와 자발적으로 집회를 여는 일은 얼마나 많은 장애를 넘어야 가능한 일이겠어요. 그건 반대로 말하면 그 자발적인 관객들은 우리가 지금의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하고 그걸 작업으로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다시 극장에 찾아올 의지가 있다는 의미 아닐까요. 지금은 모두가 힘들고 아프겠지만, 연출님 말씀대로 우리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질문하고 작업으로 보여준다면 다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툇마루가 있는 집>과 <전쟁터의 소풍> 사이의 간극은 의미심장하다. 창작공동체 아르케는 과거로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고 보다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함께 고민해보자고 질문을 던지고 손을 내밀고 있다. 그렇다면 척박한 연극계에서 10년을 버틴 그들만의 저력으로 또 다시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아닌가. 그러니 또 기대할 수밖에. 그들의 또 다른 10년을 응원한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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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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