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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욕할 일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쌍욕 대신 하고 싶은 얘기

프로젝트 입금 X 극단 드림플레이 <쌍욕>

권재웅

제220호

2022.06.16

사실 처음에는 공연을 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는 그렇게도 밝혀내려고 하지만, 누구는 그렇게도 덮고 넘어가려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진행된 것들을 통해 공연의 결말이 어떨지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고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아이들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떠나게 되는 불행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그만 기억 저편에 묻으려는 모습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원인을 모르다 보니 사고에 대한 책임자도 명확하지 않다.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사과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기에 사고 규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기에 공연은 과연 이러한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낼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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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예상을 조금 넘어선 방법으로 우리에게 아픔을 전달해주려고 했다. 첫 번째는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방향이다. 이 작품은 사고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사회 주도 세력의 문제점을 다루고자 했다. 이야기의 시작과 종결은 한 희생자의 아빠를 통해서 이뤄진다.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싶은, 딸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빠는 이 참사를 기록하고 알리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연출가와 함께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빠의 이야기는 아이들을 이렇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만든 어른들에게로 초점이 맞춰졌다. 사고란 예기치 못한 것이기에 막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의 진실을 알리고, 사고가 더는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역할을 맡기 위한 것이 바로 정부라는 정치권력과 사회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이다. 그런데 이 두 조직은 사회가 바라는, 사회를 위해 해야 하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건 비단 이번 참사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작품 내에서 1990년대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연극은 사고 때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두 조직의 문제는 아직도 변함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개인이 겪게 되는 아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사회라는 차원에서의 접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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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에서 나타나는 두 번째 의미는 등장인물의 입체화이다. 일반적인 연극에서는 스토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들이 정해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쌍욕>은 그런 정형화된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게 된 아빠와 연극을 만든 연출가가 그들 자신으로 등장하고, 이와 동시에 극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이야기의 전개와 진행에 필요한 이미지 및 음악을 제공해주는 오퍼레이터와 연주자들도 무대 안에 존재한다. 현실의 인물과 극 속 인물, 그리고 극 진행을 돕는 인물들이 한 무대에서 공존하는 것은 단순한 역할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는 무대 뒤에 있고 누구는 무대 전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하나하나 중요한 인물들이라는 것을 가시화시켜준 것이다.
인물들의 구성과 함께 드러나는 또 다른 입체화는 바로 동선의 입체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정치권력과 언론의 모습은 배우들의 재현으로 표현되었다. 무대 옆과 뒤는 물론 관객석 상단과 뒤에서 배우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가 하면 때로는 그들의 목소리만 들려오기도 한다. 어디에서 누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 물론 희생자 아빠와 연출가 또한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이처럼 다채로운 동선은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어디에서 어떤 인물과 소리가 나올지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 연출은, 사고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대사로는 다 전할 수 없었던 것을 전달해주려는 것만 같아 공연의 느낌을 몸 전체로 와 닿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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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가지고 있던 세 번째 특색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법의 다원화이다. 이는 등장인물의 입체화와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는 공연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참사가 현실임을 알려주면서도, 관객들이 남아 있는 사람의 절박함을 체감할 수 있도록, 연극은 자료화면과 영상, 그리고 음악을 활용한다.
과거에 벌어졌던 참사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이제는 사회의 중심이 되었으며, 당시의 참사를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점차 희미한 기억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정치권력은 아직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 구성원의 변화는 있다 하더라도,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권력으로서 국민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고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조직은 아직 그대로다. 자료화면과 영상은 사건의 참상과 함께 이런 현실을 되새겨주기 위한 역할을 한다.
자료화면과 영상이 그런 아픈 현실을 되새겨준다면, 음악은 희생자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준다. 즉, 단순한 배경의 역할이 아닌 등장인물의 대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히, 희생자의 아빠가 직접 작사한 곡을 부르는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답답한 심경을 폭발시키는 느낌을 던져준다. 연기와 대사, 영상, 그리고 음악이 메인과 보조의 역할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같은 역할을 하는 진행 요소로서 다원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욕설을 통해 감정의 응어리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 공연은 그런 직설적인 쌍욕보다는 더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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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제목처럼 쌍욕을 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쌍욕을 마구 쏟아 내지는 않는다. 쌍욕을 들어야 하는 가해자는 점점 희미해지고 피해자만 욕을 먹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기에 쌍욕을 하는 것조차 의미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쌍욕을 퍼붓고 싶은 대상들이 쌍욕을 들어야 할 가치도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일까. 실은 쌍욕 대신 다양한 표현 방법을 통해서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기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야 어쨌건 이 공연은 두 시간 넘게 진행되었음에도 끝났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해피엔딩 혹은 권선징악을 제시해주는 닫힌 결말의 공연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픔과 슬픔은 아직 진행형이어서 두 시간이라는 틀 안에 그것을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지 이 공연은 쌍욕을 던지고 싶은 존재들이 아직 있다는 점을 잊지 않게 해주고,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그리고 잠시라도 서로 나누고자 한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제공: 다큐인]

프로젝트 입금 X 극단 드림플레이 <쌍욕>
일자
2022.5.24 ~ 5.28

장소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배우
권민영, 김누리, 김수민, 마두영, 문성규, 문종택, 오희진, 유종연, 이상혁, 이수민, 이태하, 정희원, 지우, 한은지
공동극작
문종택, 유종연
연출·구성
유종연
조명디자인
최인수
음악감독
조충만
음향
유니콘 사운드, 박성석
포스터/리플렛 디자인
박예슬
조연출
김수민, 이수민, 정희원
오퍼레이터
김지원, 정나금, 정지현
제작
416재단(416재단 <기억과 약속> 공모사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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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웅

권재웅
2006년부터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KOSCAS) 편집위원장, 학술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주로 콘텐츠 기획과 스토리텔링, 세계관 등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최근 연구로는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로서의 한국 애니메이션 사례 연구: <고스트 메신저>를 중심으로”, “원작 콘텐츠의 활용과 세계관 유형 분석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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