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물들며 넘나드는 마음으로

GREY ZONE <우울한 대로: 기억의 조각>

박수현

제222호

2022.09.29

‘잠어는 눈에 품은 빛의 무게를 가늠하려고 바닥을 쳤던 것이다.
그 한 번의 침몰이 평생을 헤엄치게 만든다.
빛의 열쇠를 가졌으니 꼬리는 점력을 끊고 한없이 떠오를 수 있다.’

- 양안다,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을 쥐고」, 『숲의 소실점을 향해』

좀처럼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물처럼 섞이며 하나의 공연이 만들어진다. 공연예술가 요세프 스보보다(Josef Svoboda)는 ‘물을 공유하듯, 나뉘지만 함께하는 선을 수천 가지 방법으로 그리며 무대와 객석, 제안된 것과 상상, 그 사이에 틀을 만들어 두 세계를 이어주는 동시에 구별하는 미묘한 법칙을 찾는 것을 시노그라피의 주요 쟁점’1)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창작 과정과 더불어 공연의 담론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순간 역시, 끌어당기는 동시에 밀어내는 선들 가운데서 저마다가 연결지점을 발견해내는 과정일 것이다.

본래 회색 지대를 뜻하는 ‘GREY ZONE’을 ‘먹에 물을 넣어 잿빛이 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소개한 기획자의 말처럼 연극 <우울한 대로: 기억의 조각>에서는 회색의 의미를 ‘흰색과 검정색’, ‘빛과 그림자’라는, 두 반대항이 중화되어 양쪽의 본질을 잃은 색이 아닌, 물로 희석된 잿빛으로 정의하였다. 먹처럼 짙은 어둠을 연상시키는 작가이자 연출가의 우울증 투병 경험이 연극의 언어라는 물과 함께 섞이며 잿빛으로 변하는 순간, 나뉘지만 함께하는 선이 그어지고 무대 위에서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편 전시와 공연이 융합되어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회색은 각각 화이트 큐브와 블랙 박스로 대변되는 전시 공간과 극장 공간 사이의 대안적 예술 공간과 창작 활동을 지향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예술 공간 오온에서 어두운 기억의 조각들은 다섯 명의 배우가 선보이는 다섯 단계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어, 우울을 바라보는 시점을 표현한 박상덕 작가의 설치 미술 작품과 함께 선보여진다.

<우울한 대로>의 공연 사진.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서 있다. 그 여성과 마주 보는 위치에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서 있다. 객석에서 보기에 남성의 모습은 반투명한 유리에 가려져 있다.

초대받지 않은 공포, 우울의 발단
#1 “2차선 한복판에 정류장 좀 만들어”

작품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울의 증상이 처음 발현되었던 날의 기억을 복기하는 한 인물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는 유리창 안으로 날카롭게 내리꽂히고 인물은 버스 안에서 당장 내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무대 뒤쪽에 위치한 반투명 소재의 두 벽체 뒤에는 인물을 향해 한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서 있고,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아 있는 낯선 이들의 시선과 목소리는 기억의 조각을 다시 꺼내어 보는 순간 날카로운 빗줄기처럼 마음속으로 날아와 꽂힌다. “난 나쁜 놈이다. 왜냐면 어머니의 웃음이 달갑지 못했다”. 어느새 물처럼 넘쳐흐르기 시작한 감정은 자신을 사랑하는 주변 이들에게로 번져간다. 이어서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하지 못한 것’이라는 자조와 회한 섞인 대사를 마지막으로 혼란스러운 우울의 발단 단계는 막을 내린다.

잿빛 얼굴의 초능력자, 우울의 전개
#2 “명동에 가면 초능력자가 될 수 있었다”

깊은 물 속에 잠겨있던 우울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단계다. 발단 단계에서 한차례 언급된 공황 증세는 한층 더 악화되고 인물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구토 증세를 겪기에 이른다. 이 단계에서는 인물이 공황 증세를 겪는 자신을 초능력자로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초능력의 사전적 의미는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키는 힘’으로, 보통 히어로 영화에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 그것을 없어져야 하는 결함으로 여기고 한동안은 방황과 혼란의 시기를 겪는다. 나아가 자신의 ‘다름’을 숨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펼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히어로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 인물은 우울이라는 초능력으로 인해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왜곡되게 감각하고 의도치 않게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며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시기를 겪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슬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향한다. 인물은 자신의 병을 선명하게 인식함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죄의식과 자기연민이 섞인 양가감정을 느낀다. 우울의 전개 단계에서는 이전의 발단 단계에서 인물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신의 약한 모습을 받아들이며, 본격적으로 투병의 과정에 접어들게 되는 시기의 불안을 표현한다.

쌓여가는 답들, 우울의 위기
#3 “내 방 책상 밑에는 나루토 전집이 다 있다”

많은 이들에게 책상 밑은 어린 시절의 안전 기지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자신의 방 안, 책상 밑에서 인물은 절정에 치닫기 직전의 우울감과 위기를 경험한다. “그때의 난 우울의 확진자였다. 점점 무언가 쌓여가는 것이 정확히 느껴지고 있었다”라는 대사를 통해 인물은 자신의 병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재차 확인한다. 그 과정에서 취하는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태도와 위태로운 심리상태는, 무대 하수에 위치한 설치 미술 작품을 활용한 장면들에서도 드러난다. 전시장 한쪽 벽에 위태롭게 기대어 선 책상 위에 쌓여있는 ‘답’ 형태의 문자 조형물들과 그 아래에 박혀있는 커다란 못들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공간은, 안정감을 주는 도피처인 동시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인물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조형물의 물성을 통해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양면적 무대가 된다. 이처럼 우울의 위기 단계에서는, 책상 밑에 쌓아둔 만화책 전집과 같이 친근하고 일상적인 환경이 초래할 수 있는 현실 도피의 위험성을 설치 미술 작품을 활용한 퍼포먼스로 표현한다.

<우울한 대로>의 공연 사진. 나무 책상 아래에 텔레비전 모니터가 있다. 책상 위에는 한 음절의 문자 ‘답’ 모양의 나무 조각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책상 상판의 아랫면에는 못이 일렬로 박혀 있다.
<우울한 대로>의 공연 사진.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원숭이 인형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다. 남자의 뒤쪽 벽면에는 생활정보지 신문이 의자 높이의 보관함에서부터 뽑혀 나와 벽을 타고 천정까지 붙여져 있다.

고요한 몸부림, 우울의 절정
#4 “벽돌을 주먹으로 부술 수 있지만 참았다”

절정의 단계에 이른 우울은 물리적인 힘으로 응집되고 외부 세계를 향한 폭력의 에너지로 분출될 위기에 놓인다. 무대 뒤쪽 벽면에 위치한 또 다른 설치 미술 작품은 실재하지 않지만 선명하게 감각되는 힘의 존재를 바닥에서 하늘로 솟구쳐 흩날리는 형상의 신문지들로 표현한다. “진짜 나는 벽돌을 주먹으로 부술 수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그때의 내 심장이 내뿜고 있는 답답함과 발버둥의 열기가 있다면 나는 그렇게 저질러버릴 수 있었다”. 격정적인 듯 차분하게 이어지는 대사는 외부로 표출되지 못하고 고여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서서히 인물을 압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우울의 절정 단계는 회피와 자기 부정의 단계를 거쳐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 마음속 깊은 병의 증세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는 오롯이 전달될 수 없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절정에 다다른 고요한 몸부림은 곧 다가올 치유의 시간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어 붙여진 조각들, 우울의 결말
#5 “하나님도 저주할 수 있다”

우울의 결말 단계에서는 작가가 스스로 정의 내린 우울의 결말이 제시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견딜 때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하실지라도 저주스러울 것이다”라는 대사를 통해 인물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고통에게 어떠한 결말도 안겨줄 수 없음을 담담히 읊조린다. 작품은 인물이 앓았던 보이지 않는 열병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한차례 희석되고 그가 치유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적 연결점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인물이 투병의 과정에서 얻어낸 용기와 초연한 감정을 온전히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의 파편적인 질감과 분절된 단어들의 상징성에 기대어 감각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나아가 각각 다른 눈빛과 목소리를 가진 다섯 배우들이 한 인물의 이야기를 조각내어 나눠 가진 후, 이를 이어 붙여 나가며 이야기를 완성 시켜나가는 구조는 가장 어두웠지만 빛을 향해 나아가는 밝은 여정이었던 과거의 기억을,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닌 ‘나들’의 기억, 다시 말해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했던 나의 모든 모습들에 대한 기억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우울한 대로>의 공연 사진. 반투명한 유리와 가판대 신문이 붙여진 벽, ‘답’ 모양의 나무 조각이 쌓인 책상까지, 전체 무대를 배경으로 다섯 명의 배우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이야기에 완전한 결말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완전한 결말이란 애초에 존재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열병의 그림자는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어 잿빛 얼굴을 한 초능력자를 불러낼 것이다. 완결될 수 없는 아픔. 그러한 이유에서 예술의 언어로 누군가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창작자가, 표현 방법에 대한 고민과 죄책감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고통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그와 같은 고통의 문턱에서 빛의 열쇠를 쥐여주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운을 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타자화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 주는 자기 확신의 힘을 견지하는 입장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넘은 문턱 너머에서 비로소 우리는 보다 힘 있고 정제된 언어들을 획득할 것이고 아픔에 대해 말하며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진제공: 오온]

GREY ZONE <우울한 대로: 기억의 조각>
  • 일자 2022.9.1 ~ 9.8
  • 장소 공간 오온
  • 작·연출 채병연 설치 작가 박상덕 출연 엄윤상, 조동원, 김나현, 권지희 기획 우청파, 정민주 섭외·도움 조중현, 강민서 오퍼 곽승환 참여 OAO콜렉티브 제작 데카콘미디어
  • 관련정보 https://www.instagram.com/p/ChZA-0epeSh/?igshid=NDRkN2NkYzU=
  1. 뤼크 부크리스 외, 권현정 옮김, 『프랑스 시노그라퍼: 1975-2015 공연·영화·전시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미술문화, 2017, 15p.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박수현

박수현
사라짐과 머무름의 경계에서 시노그라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instagram @suhyunbahk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