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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을 찾아서

프로젝트 세시 X 그린피그 <홈스윗홈2 - 버려진 아이들>

최권화

제222호

2022.09.29

결혼을 하고 물리적으로 독립을 한 지 8년이 지났다. 일평생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살다가 독립을 하고 나니 무작정 자유로웠다. 어떤 보호와 감시가 전혀 없는 하루. 나의 집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찾은 과자 집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가득한 집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있는 우리 집이 그리워졌다. 자유라는 것이 중력을 잃고 마구잡이로 부유하는 기분이랄까. 나에게 있어 ‘우리 집’의 의미는 엄마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정서적으로 안착한 두 번째 포궁과도 같았다. 그 안정감은 내가 우리 집에 살았을 땐 느낄 수 없던 당연함이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자유롭고 어색한 집에서 내 아이를 보면서도, 가끔은 이 아이에게 집과 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나는 어떤 자세로 이 집에 기거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작은 사람을 마주해야 하나 골몰했다. 매년 5월이면 베이비박스를 찾은 유명인들의 기사가 뜬다. 어떤 어린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내 집 안의 모든 것이 내 것인 반면에, 어떤 어린이들은 아무것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닌 삶으로 세상을 시작한다. 그런 기사와 영상을 볼 때면, 어린이날을 즐겁게 보내는 것에 부채 의식이 들곤 했다.
<홈스윗홈2-버려진 아이들>의 공연 정보를 읽으며 ‘버려진 아이들이 학습된 혐오를 통해 다른 대상으로 혐오를 확산하는 모습을 보인다’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을 수식하기에 ‘버려진’이란 단어는 다소 폭력적인 기분이 들었고, 엄마가 된 작가는 어떤 문장으로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었을지 궁금했다. 작은 극장, 관객석은 마치 런웨이 무대처럼 마주 보고 앉는 구조였다. 별다른 대도구가 없는 빈 무대. 공연의 장면을 보조하는 건 양쪽 관객석 뒤로 비치는 빔프로젝터가 전부였다. 맞은편 관객들과 쉽게 눈이 마주칠 것 같았고, 그것은 불편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꼭 맞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홈 스윗 홈2 - 버려진 아이들>의 공연 사진. 털 달린 조끼와 모자를 쓴 미운 오리 새끼 역할을 맡은 배우, 원피스에 앞치마, 머릿수건을 쓴 그레텔 역할의 배우, 멜빵 바지를 입고 목에 큰 리본을 단 피노키오 역할의 배우가 나란히 서서 무언가에 귀 기울이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세 명의 배우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그레텔, 미운 오리 새끼 그리고 피노키오. 모두 동화 속 주인공이지만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들이다. 세 주인공들은 각각 숲속에서 길을 잃었고, 서로를 우연히 마주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레텔은 오빠를 기다리는 중이고, 미운 오리 새끼는 못생겼단 이유로 버림받아 화가 난 상태고, 피노키오는 그저 해맑은 모습으로 전교 1등을 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잠시 뒤, 무대 구석에 설치된 도르래를 타고 할머니 역할의 배우가 등장한다. 이 할머니는 동화 속 인물이 아닌 고려장 설화 속 인물이다. 할머니는 버려진 세 아이를 가여워하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것에 분노한다. 하지만 이내 할머니와 세 주인공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화가 이어진다. 이 대화들은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진 성차별과 세대 갈등의 문제점들을 잘 보여준다. 할머니 본인은 아들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부모 자식 간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며 아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자식 버리는 부모 심정도 오죽했겠냐고 말하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그 말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이라며 정색한다. 그레텔은 자신을 버린 건 새엄마지만, 진짜 자신을 버린 건 친아빠라고 말하고, 그 말에 할머니는 친엄마가 아니라서 그렇다며 혀를 찬다. 할머니는 “남자가 일을 하다 보면~”이라는 말들로 남성을 가사, 육아 노동의 책임에서 배제한다. 똑똑한 전교 1등 피노키오는 “동화 속에서 새엄마들은 악역이지만 현실에서 새엄마들은 약자이며, 동화 속 작가들은 약자에게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대신 악역으로 만든다”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세 주인공이 말하는 사회 부조리에 동의하지 않는 듯 일갈하지만, “아이들은 본 대로 배운다”라며 무기력하게 속마음을 내비친다. 그레텔의 말처럼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늙고 싶어서 늙는 것도 아닌데 결국 이 공연에서도 차별에 관한 언쟁을 벌이는 건 약자들의 몫이었다.

<홈 스윗 홈2 - 버려진 아이들>의 공연 사진. 전경에는 미운 오리 새끼와 그레텔, 피노키오 분장을 한 배우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후경에는 발끝까지 오는, 화려한 천 조각이 군데군데 덧대어져 있는 검은색 망토를 걸친 할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가 그들을 향해 웃고 있는 게 보인다.

할머니와 세 주인공은 서로의 안녕을 염원하며 헤어진다. 다시 세 주인공만 남아서 각자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피노키오는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고 싶고, 미운 오리 새끼는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이 혼자가 된 이유는 못생겨서라고, 예뻐지면 혼자서 떠돌아다닐 이유가 없다고 덧붙인다. 그 말에 그레텔과 피노키오는 “넌 예뻐져야 하는 게 아니라 친구가 필요한 것, 우리를 너를 좋아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 건 나쁜 것”이라고 말을 한다.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은 피노키오, 미운 오리 새끼와는 다르게 그레텔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은 이미 버려졌으니 그 집은 내 집이 아니라며 새로운 집을 짓겠다는 꿈을 말한다. 그리고 그 집을 과자로 만들어 온통 과자들로 채울 상상을 하며 행복하게 웃는다. 또한 그 과자 집은 키즈 온리 존(kids-only zone)으로, 어린이들도 존중받는 게 무엇인지 안다며, 어린이에게 위험한 곳이 어른들에게 안전할 리가 있냐는 설명도 덧붙인다.
세 주인공은 이제 자신들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존중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존재를 부정하지 않기로 한다. 처음엔 아귀가 맞지 않던 세 주인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모서리가 깎이고 다듬어져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결국엔 진짜 친구가 된다. 모두 자기만의 길을 가기로 약속하며 공연은 <즐거운 나의 집> 음악과 함께 막을 내린다.
피노키오는 전교 1등과 해박한 지식을 자랑할 때 즐거운 모습이지만, 일주일에 7일,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장난감 나라를 설명할 때 가장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레텔은 가장 이성적인 주인공으로 출연했지만, 과자 집을 과자로 채울 상상을 할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약한 존재에게 악한 게 인간이라 말했지만, 친구가 되어 준 건 결국 인간 어린이였다. 공연에서 어린이는 어린이를 평가하여 차별하지 않는다. 이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은 다른 어린이와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기준을 두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평가가 필요 없는 곳에서 가장 즐겁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의 실수를 용서한다.

공간의 양옆으로 마주 보는 객석이 일렬로 놓여 있다. 그 가운데 공간에서 피노키오와 미운 오리 새끼 분장을 한 배우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레텔 분장을 한 배우는 뒤쪽 사다리 위에 걸터앉아 있다. 세 배우의 구도가 삼각형을 이룬다.

<즐거운 나의 집>으로 번안된 <Home Sweet Home>의 작사가 존 하워드 페인(1791~1852)은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였다. 페인은 10대 초반에 부모를 잃고 영국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지만, 타국을 떠돌며 생활하다 튀니지에서 객사했다. 그리고 페인의 유해는 사망 후 31년 만에 본국으로 이송이 되어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Home Sweet Home>은 페인이 파리에서 생활하던 당시, 가족과 집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라고 했다. 가족과 집이 없는 페인은 아마도 유년 시절의 따뜻했던 기억들을 회상하며 글을 썼을 것이다. “There’s no place like home”이란 가사는 페인의 가장 큰 염원이었을 것이다.
공연의 마지막에 이 노래를 들으며, 각자의 길을 떠난 세 주인공이 자신만의 진짜 집을 찾기를 바랐다. 그리고 모든 어린이들이 5월에 즐겁기를 소망했다. 할머니의 대사처럼 아이들은 본 대로 배운다. 어린이들이 차별을 답습하지 않도록, 어른들은 조금 불편해도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배려와 이해와 기다림을 장착했으면 좋겠다.

[사진 제공: 프로젝트 세시, 그린피그, 한문희]

프로젝트 세시 X 그린피그 <홈스윗홈2 - 버려진 아이들>
  • 일자 2022.9.16 ~ 9.18 / 9.22 ~9.25
  • 장소 삼일로창고극장
  • 작가 임정희 연출 박현지 출연 나유진, 이여진, 임정희, 황재희 조명 김소현 의상 신은혜 영상 임리원 음악 박고은 오퍼레이터 정유진 진행 이민정, 전성현, 최지현 홍보마케팅 이호연 레터링디자인 김영선 그래픽디자인 임림 제작 프로젝트 세시, 그린피그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1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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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우리집 거실과 주방으로 출근합니다. @gweonhwa_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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