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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부재하는 것들, 인간을 대신한 기술 이미지들의 ‘뉴 일루전’

2022 OB/SCENE FESTIVAL
오카다 토시키 <뉴 일루전>

김옥란

제226호

2022.11.24

매년 가을 해외 내한공연을 볼 수 있는 두 개의 축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옵/신페스티벌이 모두 끝났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2001년부터 계속 이어온 축제이고, 옵/신 페스티벌은 2020년 시작된 ‘힙한’ 축제다. 전자가 세계연극의 ‘주류’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후자는 ‘주류를 벗어난’, ‘특정 장르를 벗어난’ 다원예술 축제다. 올해 두 축제에서 각각 눈에 띄었던 공연은 리미니 프로토콜의 <부재자들의 회의>와 오카다 토시키의 <뉴 일루전>이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였을까? 두 작품 모두 무대에 배우가 없다. <부재자들의 회의>는 지리적, 신체적, 사상적 이유로 극장에 올 수 없는 부재자들을 대신하여 관객들이 무대에 섰다. 공연팀이 작성한 원고, 혹은 인이어 이어폰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관객 대리자’가 다른 관객들에게 읽거나 말해주었다. <뉴 일루전>은 ‘영상연극’이다. 코로나 이후 연극계에서도 온라인 스트리밍과 비대면 접속이 일상화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 혹은 격리로 이동할 수 없는 경우에도, 온라인 비대면 형식이라도 연극인들은 관객들과 만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극장에선 배우가 부재하는 공연이 줄줄이 올라가고 있다. <부재자들의 회의>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국제공연인 경우 비행기를 타지 않고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명분까지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부재자들의 회의>에서 관객이 본 것은 그들만이 말하고 관객은 일방적으로 듣기만 해야 했다는 것이다. 배우가 없는 무대, 관객은 극장에 왜 가는가?

<뉴 일루전>의 공연 사진. 어두운 무대의 좌우에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스크린 두 대가 서 있다. 왼편의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상에서는 흰색 불규칙한 무늬가 있는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 맨발에 샌들을 신은 남성이 두 팔을 벌리고 왼쪽을 응시하며 움직이고 있고, 그 뒤로 초록 계열의 상하의를 입은 기타리스트의 팔다리가 조금 보인다. 오른편 스크린에는 팔 부분이 시스루로 되어 있고, 허벅지 중간까지 절개가 들어간 검은 원피스를 입고 검은 샌들을 신은 여성이 남성을 응시하는 모습이 영사되고 있다. 인물들은 실제 무대에 배우가 등장한 것과 같은 정도의 크기로 보인다. 두 스크린 사이는 스크린의 너비만큼 떨어져 있으며, 스크린의 뒷공간은 하나의 스피커를 제외하고 텅 비어있지만 은은한 조명이 비친다. 중앙 상단에는 영어와 한국어로 대사를 띄워주는 가로로 긴 스크린이 하나 더 걸려있다.

‘연기하는 의자’와 배우 두 명의 연극

<뉴 일루전(New Illusion)>은 극단 첼피쉬의 연출가 오카다 토시키(岡田利規)와 영상작가 야마다 심페이(山田晋平)의 공동작업인 ‘에이조 연극(EIZO-Theater, 映像演劇)’, 곧 ‘영상연극’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이전의 두 작품 <해변, 눈꺼풀 그리고 커튼(Beach, Eyelids, And Curtains)>(구마모토 현대미술관, 2018), <풍경, 세계 그리고 돌발사고: 이 방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The Landscape, the World, and Accidents: Everything That Happens Out of This Room)>(삿포로 문화예술커뮤니티센터, 2020)은 미술관에서 전시 형태로 올라갔다. 이번 작품 <뉴 일루전>은 극장에서 공연 형태로 올라갔다. 대여섯 편의 짧은 영상클립이 아니라 60분 분량의 긴 호흡의 드라마 형태이다. 공연은 올해 8월 도쿄에서 초연된 후 11월 5일~6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1월 10일~13일 서울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되었다.
객석에 입장하면, 무대에는 사람 키 높이의 대형 스크린 2대가 놓여 있다. 한 화면에는 기타 연주자석이 비춰지고 있고, 다른 화면은 빈 화면이다. 기타 연주자가 들어와 연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스크린의 빈 공간 속에서 두 배우는 어제까지 그 공간에서 함께 공연했던 연극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한다. 공연은 자신들이 과거에 함께 살았던 방을 무대로 했던 연극이다. 지금 그들이 함께 있는 공간은 모든 소품이 치워진 빈 무대이다. 남자는 무대에서 썼던 의자가 실제로 자신들의 집에 있었던 의자와 똑같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의자는 실제 자신들의 집에 있었던 의자를 연기했던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의자는 그 의자를 연기하고 있다. 연극은 어제 끝나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남자는 현실과 허구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손바닥을 가볍게 뒤집는 행동을 반복한다. 손바닥을 뒤집는 행동은 몸을 비트는 동작으로 연결되면서 대사 내내 남자의 동작이 된다. 오카다 토시키의 공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반복행동들이다. 남자는 마치 눈앞에 의자가 있는 듯이 말한다. 그런데 스크린 속에 의자는 없다. 남자는 눈앞에 의자가 있는 듯이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허구,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손바닥을 뒤집는 간단한 동작의 반복 속에서 드러난다. 남자와 여자는 2대의 스크린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혹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스크린 사이 빈틈의 공간으로 사라진 채 대사를 한다. 스크린 속이지만 마치 연극무대처럼 공간을 쓴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배우들은 앞뒤로, 좌우로, 빈틈의 공간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를 반복한다.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연기를 한다. 카메라를 사용해서 영상에 담고 있지만, 카메라의 클로즈업이나 편집 작업은 없다. 고정된 하나의 공간, 실물 크기의 배우와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진 순간, 관객 눈앞 스크린 속에 배우가 보이지 않아도, 빈틈의 공간에 있는 배우의 존재가 느껴졌다. 기계가 만들어낸 ‘새로운 일루전’이다.

<뉴 일루전>의 공연 사진. 왼편 스크린에서는 기타리스트가 고개를 숙인 채 연주 중이다. 오른편 스크린에서는 나무 의자 등받이의 뚫린 공간 사이에 왼 다리를 넣고 앉은 남성과 의자 등받이를 잡고 서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어쩌면 그때 그 방에서 세상이 바뀐 것일지도 몰라”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그때 그 방 그 의자에서 항상 무슨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냐고. 남자는 대답한다. “그때는 뭔가 이론적이고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책을 읽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책을 읽을 동기가 없다.” 남자는 여자가 자주 앉아 있었던 소파가 너무 안락해 보여서 괜히 자신이 질 것 같은 확신 때문에 그 소파에는 앉을 수 없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여자가 잠깐 퇴장했다가 의자를 가지고 등장한다. 두 사람의 대사 중에 나오는 의자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였는데, 들고 들어온 의자는 팔걸이가 없다. 그 의자는 여자와 남자의 방의 의자를 연기하는 소품, ‘연기하는 의자’인 것이다.
여자가 말을 이어간다. “우리끼리 세상을 바꿀 순 없을 거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조차 없다면.” 두 사람은 의자를 사이에 두고 서서 마주 본다. 그리고 마치 의자에게 질문을 던지듯 말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어. 아무도 바꾸지 않았어.” ‘연기하는 의자’와 연기하는 두 배우이다. 여자가 묻는다. “얼마나 큰 규모로 바뀌어야만 세상이 바뀐 걸까?” 남자가 의자에 앉아 발을 뻗어 올려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며 말한다. “어쩌면 그때 그 방에서 세상이 바뀐 것일지도 몰라.” 다시 둘 모두 의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지금이 세상이 바뀐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사의 서사가 탄탄하다. 집중해서 듣게 된다.
코로나 이후에 급변하는 현실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극 중에서 묻고 있는 말, 그때 그 방에서 이미 세상이 변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 큰 여운으로 남는다. 물론 이 공연은 코로나와 무관하게 이른 시기부터 진행해오던 시리즈의 하나이다. 그러나 원래 짧은 영상클립의 전시공연이 드라마 형식을 갖추고 극장에 들어오게 된 것은 과연 우연의 산물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극장이 아닐까? 우리가 그 방 안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질문하면서, 그 방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무력해지는 시간이 바로 코로나와 그 이후 시간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각자의 방에 고립되어 있는 동안, 방 밖에서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뉴 일루전’, 혁명은 아닌 이 새로운 일루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배우의 존재는 영상 속의 흔적만으로도 관객을 생각하게 한다. 오카다 토시키와 야마다 심페이의 ‘영상연극’은 영상이라는 기술 이미지 속에서도 배우가 어떻게 불가능한 것을 연기하고 존재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있다. 가상현실과 가상인간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관객인 나는 배우가 존재하는 극장에 가고 싶다.

<뉴 일루전>의 공연 사진. 왼편 스크린에서는 기타리스트가 고개를 숙이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고, 오른편 스크린에서는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고 정면을 응시하는 여자와 의자에 앉아 여자의 팔을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영사되는 영상 속에는 포그가 자욱하게 퍼지고 있다.

[사진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가상정거장 사진 ⓒ 유명상]

2022 OB/SCENE FESTIVAL
오카다 토시키 <뉴 일루전>
  • 일자 2022.11.10 ~ 11.13
  •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 Playwright·Director Toshiki Okada Video Director Shimpei Yamada Cast Tomomitsu Adachi, Ayana Shiibashi, 정중엽 Music 장영규 Recording·Sound Raku Nakahara(Luftzug) Lighting Masayoshi Takada(RYU), Kousue Ashidano(RYU) Costume Kyoko Fujitani(FAIFAI) Stage Manager Daijiro Kawakami, Marie Moriyama Recording Yuki Sato, OHSHIRO SOUND OFFICE Inc. Video Assistant Shiori Saito(AOZORA), Yuki Higuchi Interpretation Nawon Lee English Translation Aya Ogawa Korean Translation Hongyie Lee Planning and Production Management precog co., LTD. Producer Megumi Mizuno(precog) Production Manager Nanami Endo(precog) Assistant Production Manager Ema Murakami(precog) Production Desk Yuri Saito, Kumi Hiraoka(precog) Lighting Operator Arisa Nagasaka (RYU) 협력 프로듀서 강민형 제작 첼피쉬, 가상정거장 공동기획 옵/신 페스티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 관련정보 http://www.ob-scene.com/festival/programs/new-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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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란

김옥란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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