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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이미지들을 통과한 후에 나는

반재하 〈PLAY HOME, SWEET HOME(플레이홈, 스위트홈)〉

권나은

제236호

2023.06.29

가끔 구글에 ‘Nicolae Ceaușescu, North Korea’를 쳐본다. 검색 결과에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1970년대에 북한에 방문했을 당시의 영상과 사진들이 뜬다. 영상에서 차우셰스쿠가 탑승한 차가 평양 시내를 질주한다. 대로 양옆에 선 시민들이 꽃과 소도구를 흔들며 차우셰스쿠를 반긴다.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여성들도 보인다. 카메라는 원경에서 평양의 고층 건물들과 가로수들을 담아낸다. 잠시 후, 카메라는 모란봉경기장(現 김일성경기장)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비춘다. 경기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이 카드섹션과 집단체조를 선보인다. 카드섹션은 루마니아의 근현대사를 짧은 시간 안에 표상한다. 관중석에서 김일성과 차우셰스쿠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손뼉을 친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는다.
대학 신입생 시절, 조별 과제를 하려고 차우셰스쿠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다 이 영상을 접했다. 영상을 재생했을 때, 나와 친구들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보아서는 안 될, 기괴한 풍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우리는 컬트 의식, 사이비 종교 유튜브, 테러 영상, 인질극, 포르노, 시체나 귀신 이미지 등을 목격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정동을 공유했다. 익숙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국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광기’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상적인 풍경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 영상이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차우셰스쿠의 방북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었다. 과거에서 출발해 한없이 미끄러지며 도달한 이미지들은, ‘금지구역’ 북한을 상상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단서였다.
금지구역은 필연적으로 도착적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여행이 제한된 국가, 전쟁 중인 나라,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한 도시,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군부대, 폐가. 어떤 사람들은 선을 넘는다. 목숨을 걸고 특정한 장소로 돌진하기도 하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친구들과 나는 그럴 만한 담력이 없는지라, 인터넷에서 무료로 가짜 체험을 하는 것에 만족하곤 했다. 구글에서 ‘mysterious places’, ‘세계 13대 마경(魔境)’ 따위의 문서를 공유하여 읽었고, 스트리트 뷰로 외교부 지정 ‘여행 금지’ 국가들을 산책했다. 이 정도의 하찮은 비행(?) 덕분에, 우리는 호승심과 일탈 욕구를 제어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금지구역은, 단연코 북한이라 할 수 있다. 북한만큼 한국인들이 집단적 신경증을 투사하는 장소가 또 있을까. 북한과 관련된 이슈는 언제나 예민하게 취급된다. 북한의 존재가 우리의 정치나 사회, 안보 체제에 큰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을 제대로 인지할 만한 경로가 엄격히 차단돼 있다는 것이다. ‘빨갱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호통을 치는 어르신들조차, 북한의 ‘내부’를 내심 궁금해하지만, 이북 땅은 스트리트 뷰로도 구경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무언가를 무리하여 도모해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잡혀가니까. 한국 사회에서 이건 일종의 암묵지다. 평범한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한다. 미디어는 국가가 허락한 XX이니까. 우리는 유튜브에서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감동한 이유’, ‘평양 금수저의 삶’, ‘외국인이 촬영한 평양 시내’ 같은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영상을 경유하여 북한의 이미지를 재구현해도 된다. 우리는 그런 방법을 통해서만, 북한을 합법적으로 서사화할 수 있다. 비록 그렇게 구현된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조금씩 뒤틀리게 될 확률이 높을지라도.

<플레이 홈, 스위트 홈>의 현장 사진. 갤러리의 한 벽면에 커다란 컴퓨터 화면이 띄워져 있고, 스무 명 남짓의 관객들이 스크린을 바라보며 스툴에 앉아 있다. 
            스크린 화면에는 여러 채의 한옥과 숲을 그린 그림이 보이고, pdf 파일이 그림의 중앙을 가리고 있다. pdf 파일은 메일함을 캡쳐한 이미지로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반재하입니다.”라는 제목의 받은 메일이 보인다. 
            스크린의 좌우에는 천장과 바닥, 그리고 삼면의 벽으로 구성되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각각 위치해 있다.
            짙은 초록색 벽으로 이루어진 좌측 공간에는 따뜻한 주황색 조명과 벽에 거꾸로 매달린 드라이플라워 등이 보이고, 흰 벽으로 만들어진 우측 공간에는 흰색 조명과 파란 스탠드, 마샬 스피커, 회색 서류박스 등이 보인다.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린 <PLAY HOME, SWEET HOME(플레이홈, 스위트홈)>은 물리적, 법적으로 가로막힌 곳(북한)을 배경으로 살고 싶은 곳(가상의 집)을 구현하는 다원 예술 작업이다. 극장에 진입하면, 중앙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이 보인다. 스크린에는 3D 모델로 구현한 가상의 주택이 나타나 있다. 출입구 옆 작은 방에는, 내러티브 퍼포머(박근영)가 앉아 있다. 퍼포머는 마우스를 움직이며 주택 이곳저곳을 탐험하고, 동시에 관객들에게 주택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부 인테리어를 설명한다. 이 외에도 극장에는 세 곳의 부스가 있다. 객석을 기준으로 스크린 왼쪽에는, 미니어처 제작 퍼포머(한주예슬)가 있다. 스크린 반대편에는 드로잉 퍼포머(고미랑)가 있다. 객석을 기준으로 스크린 오른쪽에는 도면 제작 퍼포머(표창연)가 있다. 이들은 내러티브 퍼포머의 ‘말’을 재료로 공연 내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작업은 개성 한옥마을 이미지 위에서 출발한다.1) 내러티브 퍼포머는 개성 한옥마을 모처에 마우스를 갖다 댄다. 그 위로 가상의 가옥을 구현한 3D 모델이 나타난다. 그는 모델을 이리저리 돌리며 이야기를 시도한다. 그는 방의 위치, 벽지, 문의 색, 복도의 빛, 그림자, 폭과 너비까지 다채롭게 언급한다. 작업에서 대부분의 러닝타임이, 가옥 내부를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 오른쪽 별채 문은 흰색입니다. 그림자가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흰색 문으로 판단됩니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곳은 화장실입니다. 맞은편은, 일곱 발짝 정도는 걸어갈 수 있는 깊은 공간이고요…”


“…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이젤과 캔버스 프레임입니다. 아마도 이 공간은 이 집 주인의 작업실 공간인 것 같은데요. 작업실치고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이 공간은 한옥 형식이고, 밖은 회색입니다. (중략) 천장은 기와 형태를 따라 위로 불쑥 솟아 있습니다. 문을 열면 보이는 캔버스와 이젤 왼편에는, 네 칸 정도 되는 철제 캐비넷이 있습니다…” 2)

<플레이 홈, 스위트 홈>의 현장 사진. 갤러리의 불이 꺼져 대형 스크린 화면과 그 오른쪽의 모니터 화면만이 빛나고 있다. 
            반쯤 잘린 스크린에는 한옥 마을 사진이 떠 있고, 모니터에는 CAD 프로그램에 그려진 도면이 보인다. 한 관객이 휴대폰을 이마께로 들어 사진을 찍고 있다. 
            관객은 흰색 상의와 바지를 입고, 카메라를 목에 맸으며, 휴대폰으로는 좌측 초록 벽의 공간을 촬영하고 있으나, 본문 사진에서는 해당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퍼포머는 인공지능 챗봇을 닮았다. 그의 어조와 억양은 차분하고 균일하다. 청자는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내러티브는 사실적으로 들린다. 동시에 그의 내러티브는 완벽한 허구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곳은 가상 가옥이기 때문이다. 개성 한옥마을에 이런 집은 없다! 허구의 내러티브는 점점 힘이 세진다. 그는 지하실과 창고, 주차 공간까지 편집적으로 묘사해낸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그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내용은 금방 휘발된다. 마침, 극장 안에는 관객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 장치들은 관객의 ‘오해’를 은밀하게 견인한다.
부동산 앱에서 집을 구해본 사람이라면, 포토샵으로 조악하게 보정한 이미지에 홀려 매물을 계약할 뻔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집을 고를 때, 해당 매물의 전용 면적, 건물 준공 연도, 엘리베이터 유무 등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꾸며진 방 사진에 마음을 먼저 빼앗긴다. 인간이 공간을 인식할 때, 시각 정보는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이 그 안에서 ‘무엇’을 할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 홈, 스위트 홈>의 가상 가옥은, 처음에는 고급스러운 현대식 건축물로 보인다. 내부 시설도 넓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이 가옥은 북한 출신 주민들의 인터뷰(말)를 바탕으로 설계된 모델에 불과하므로, 건축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요소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현대식 건축에 아궁이가 있다거나, 건물 한 면에만 창이 있고, 한 면은 다 막혔다거나) 관객은 퍼포머의 인솔로 재재소소를 탐험하는 와중에도, 이따금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구조가 뭔가 이상한데?”

<플레이 홈, 스위트 홈>의 현장 사진. 흰색 벽으로 구성된 공간에 갓등이 하나 매달려 공간을 밝힌다. 
            공간의 모서리에 앉은 체크무늬 남방 차림의 작가가 이젤을 앞에 두고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른쪽에는 붓과 물감 등이 담긴 3단 트롤리가 있다. 
            모서리를 기준으로 좌측 벽에는 스케치와 채색화, 만화와 포스터 등이 빼곡하게 붙어 있고 우측 벽에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대부분 풀과 채소의 이미지다.

<플레이 홈, 스위트 홈>은 관객들에게, 러닝타임 도중 일어나 이곳저곳을 걷거나,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말한다. 관객들은 초반에만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내 하나둘씩 일어나 자유롭게 걷는다. 그들은 낯선 도시에 불시착한 관광객들 같다. 곳곳에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장치들이 존재한다. 미니어처로 집을 만드는 퍼포머, 물감과 붓을 들고 집을 그리는 퍼포머, CAD를 쓰는 퍼포머… 퍼포머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음악은 이들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엮는 역할을 한다. 가상 가옥의 이미지와 내러티브들이 뙤약볕 아래의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리는 와중에, 작업자들의 ‘물리적 결과물(미니어처, 드로잉, 도면)’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결과물들은 환영일까, 실제일까?
공연 도중 천장에서 ‘종이들’이 쏟아진다. ‘삐라(전단)’의 은유로 보이는 이 종이들에는, 알 수 없는 문구들이 암호처럼 적혀 있다. 작가가 북한 출신 주민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관객은 무작위로 쏟아지는 종이들을 줍는다. ‘지하를 파서 항상 핵전쟁이라든가 이럴 때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비상식량 진짜 이건 소원이에요, 평상시에도’, ‘침대는 안 해야 할 걸, 평양 쪽은 난방 구조가 있는데 여기는 난방 구조가 없어서 침대를 했다가는 추워 죽어요’ 등의 문장이 극장 내부를 부유한다. 북한 풍경(가상의 풍경)을 촬영한 사진이 쏟아지기도 한다. 3D 모델에서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이미지들’이다. 공연 후반부에, 북한 출신 주민들의 인터뷰 녹음본이 흘러나온다. 관객들은 암호를 해독하는 공작원처럼, 말 안에 숨은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려 하지만, 이 인터뷰는 결코 완전히 해독될 수 없다. 이 인터뷰는 ‘가상 가옥’을 소재로 진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1시간 동안 스크린 위로 드러나던 가상 가옥은, 공연이 종료되면서 사라진다. 잠깐 금지구역을 체험했던 관객들은, 서울 마포구의 주택가 골목으로 돌아온다. 관객은 자신들이 바로 전까지 머무른 장소가, 구글 스트리트 뷰로도 접근이 안 되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극장 바깥에서는, 유튜브와 나무위키, 음모론으로 얼룩진 세계가 우리를 반기고 있다.

<플레이 홈, 스위트 홈>의 현장 사진. 목재 책상 위에 나무 조각과 글루건, 물감 등이 놓여 있고, 하늘색 벽과 타일 바닥으로 구성된 어떤 공간의 미니어처가 보인다. 
            책상 앞에 앉아 가위질을 하고 있는 작가는 가슴까지 오는 탈색모에, 알이 큰 네모난 안경을 쓰고 있다. 그가 자르는 종이에는 마름모 꼴의 얇은 나무판자를 이어 붙여두었다. 
            작가의 어깨 너머로 의자와 소파, 테이블 등의 미니어처가 가득한 선반이 보인다.

잠들기 전, 검색창에 Nicolae Ceaușescu, execution을 입력한다.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 엘레나의 최후를 담은 영상이 나온다. 차우셰스쿠와 엘레나가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중간에 화면이 끊기고, 총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다. 이 장면과 연관된 문서들을 클릭한다. 차우셰스쿠가 총살로 죽은 게 아니라, 이미 심장마비로 사망한 상태였다는 문장을 읽는다. 사실일까? 동일한 내용을 한국어와 영어로 검색한다. 쓸모 있는 문서와 무가치한 문서가 ‘삐라’처럼 쏟아진다. 나는 국가가 허락한 XX을 하염없이 줍는다. 닿을 수 있는 환영과 닿지 못한 실제 사이에서.

[사진 제공: 반재하, 사진: 배재원]

반재하 <PLAY HOME, SWEET HOME(플레이홈, 스위트홈)>
  • 일자 2023.6.3 ~ 6.4
  • 장소 탈영역우정국
  • 기획·연출 반재하 퍼포머 고미랑, 박근영, 표창연, 한주예슬 협력기획 박근영 프로듀서 강재영(더블데크웍스) 인터뷰이 김성희, 리위력, 박연희, 정남경, 하승희, 익명 드라마터그 김솔지(더블데크웍스) 음악감독 오로민경 그래픽디자인 파이카 사운드협력 조지훈 협력 탈영역우정국 후원 서울문화재단
  • 관련정보 https://www.waveon.io/apps/23654
  1. 6월 3일 공연에 해당하는 설명이다. 6월 4일 작업에서는 다른 장소와 다른 내러티브가 사용됐다.
  2. 6월 3일 공연 내러티브 일부. 기억에 의존하여 작성하였으므로, 실제 발화된 언어와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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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은

권나은
의심을 동력으로 글을 쓴다. 가끔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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