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남성적이라면, 냄새는 퀴어하다
몸소리말조아라 센터 ‘반려 프로젝트’
곽혜은 <맡는 경계>
진송
제237호
2023.07.13
냄새라는 것은 공간과 비슷해서 한눈에 파악할 수 없다. 냄새를 제대로 맡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냄새를 발하는 구석구석을 찾아 몸을 움직이고, 가까이 다가가 코를 들이대고, 때로는 비인간동물처럼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순간에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 등 다른 감각으로부터의 자극을 차단해 후각을 더욱 예민하게끔 하는 선택이 냄새를 맡는 데에 쓸모 있지만,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만지고,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총동원하는 것도 좋은 냄새 맡기의 한 방법이다. 시각적 자극이 다른 모든 감각을 식민화하다시피 하고 있는 시각중심주의적 세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후각을 통해 대상을 알고자 하는 시도는, 냄새 맡는 이에게 후각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감각을 정성스럽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심지어 대상에 대한 언어와 지도(地圖)를 모두 빼앗았다가 새로이 감각되는 곳에서부터 다시 써 내려가게 한다.
로라 멀비는 그의 유명한 논문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Visual Pleasure & Narrative Cinema)」(1975)에서 ‘남성적 응시(male gaze)’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바 있다.
멀비는 성적 불균형 상태의 세계에서 시각적 쾌락이 자신의 환상을 여성에게 투사하는 능동적 남성의 것으로 의미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글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의 시선 없이 그 자신만으로는 중요성을 가질 수 없는 ‘보이는 대상’으로, 남성은 시선을 만들어내며 영화 속의 사건을 지배하는 ‘시선의 주인’으로 기능한다.
영화 속의 사건을 지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의 주인 관객 또한 여성 인물이 아닌 남성 주인공에게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멀비는 말한다.
즉, 영화를 둘러싼 시선 전반이 남성적이라는 것이다.
응시의 권력과 남성 권력의 결탁은 영화 내의 시선을 다루는 1975년 멀비의 논문 바깥에서도 숱하게 논의되어 왔다.
후기구조주의 철학을 자신의 기반으로 삼는 시각예술 비평가 마틴 제이는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 나타나는 원근법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근대적 시각’이 다양한 감각과 다양한 사회적 시각성들(social visualities)을 배제하며 단 하나의 본질적 시각으로서 집권해 왔다고
비판한다1).
근대적 주체의 합리성을 내세우며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했던 르네 데카르트의 ‘코기토적 자아’와 원근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며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소실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던 근대적 시각 주체의 시대적, 사상적 배경을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틴 제이는
근대적 시각중심주의를 ‘데카르트적 원근법주의2)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단 한 초점의 흔들리지 않는 시각에 의해 포착된 세계는 이성적 주체의 권위를 뒤에 업고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표상되었다.
이러한 시각중심주의는 젠더를 통해 시각을 굴절시키며 남성들의 활동을 시각적인 것으로, 여성들의 활동을 비시각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발생 중인 사건으로부터, 그리고 육체로부터 거리를 두고 대상을 추상화시키는 이성성은 ‘올림픽 경기 관전, 수학 연구와 활동, 생명 보존이나 육체적 활동으로부터의 거리 두기’ 등
상류층 남성들의 경험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으며 여성의 ‘생명 보존에 관한 가사, 육아 노동’ 등은 이성적 시각과 다른 촉각적 활동으로
여겨졌다3).
시각 자체가 남성적이라는 혐의 속에서 남성적이지 않은 시각, 혹은 여성적인 시각을 상상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시각의 남성중심성으로 인해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Visual Pleasure & Narrative Cinema)」에서 간과된 여성 및 레즈비언 관객의 동일시 문제와 같이
여성을 시선의 주인으로 삼는 응시조차도 매우 곡예적인 논리로 남성중심적인 것으로 환원되곤 했다.
여성 또한 남성의 시선으로 자신을 볼 수밖에 없다는 등의 그러한 논리는 타당성이 있는 것만큼이나 남성적 시선의 덫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6월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몸소리말조아라 센터에서 개최된 곽혜은의 전시 <맡는 경계>는 옥상을 포함하는 몸소리말조아라 센터의 건물 공간 전체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며
관객들의 후각을 다른 모든 감각과 연루시켰다.
센터 공간 곳곳을 누비며 내게 다가온 냄새의 정체를 탐색하고 새로운 냄새와 마주치는 순간들은 등에서 땀이 절로 흐를 정도로 온몸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고양이의 냄새를 맡기 위해 바닥 가까이에 코를 가져다 대거나 옥상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알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는 움직임들은
시각의 미적 무관심성(aesthetic disinterestedness)을 간섭하는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생물에 대한 전에 없던 관심을 요구했다.
특히나 전시장 안에서 후각은 촉각과 청각,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저곳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시각과 진득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남성적 시선의 덫에 관객의 관심을 가두지 않았다.
전시 연계 행사로 무대에 오른 ‘내-내음 퍼포먼스 쇼잉’은 감각의 젠더를 교란하는 후각의 성격을 강렬하게 드러내며
‘남성적 응시/여성적 대상’이라는 시각중심주의적 감각 체계의 이성애적 구도를 벗어난 후각의 퀴어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체구가 비슷한 두 명의 퍼포머가 동시에 서로의 몸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맡으며 두 사람은 냄새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다.
“포근한 이불”, “새벽녘 풀 냄새” 등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냄새가 두 사람의 몸에 상대방의 언어로 새겨지고 또 발견된다.
냄새를 맡기 위해 자세를 뒤틀며 서로에게 맹렬히 다가가는 퍼포머들의 모습은 박력 있고 관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살갗을 맞대고 땀을 흘리며 가쁘게 숨을 내쉬는 그들의 모습은 외부 세계·외부 세계로서의 타인을 지각하는 일을 낯설리만치 숭고해 보이게 만들었다.
감각의 대상과 주체를 - 즉 감각의 젠더를 이분하지 않는 감각의 체계를 실험하면서도 권력에 대한 혐의로부터 결백해지기보다는 상대를 나의 언어로 규정하며 시시각각 오염시키고,
그 오염의 행위에 열정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는 분명히 인식의 젠더를 교란하는 퀴어하고 육체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후각과 관련된 예술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후각예술가’ 곽혜은은 2023년 올해 7월 8일 <섹빨간 커뮤니케이션― 성性스럽고 성聖스러운 성城>4)에 참여하기도 했다. 후각으로 감각의 초점을 다소 낯설게 이동시켜 감각의 젠더, 감각하는 육체, 섹슈얼리티의 감각을 새롭게 발견해나가고 있는 그의 행보에 주목을 요청하며, 후각뿐만 아니라 촉각과 청각 등의 다양한 감각에 대한 예술적 시도가 감각의 젠더를 교란하는 퀴어한 에너지가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제공: 몸소리말조아라 센터]
곽혜은 <맡는 경계>
- 일자 2023.6.24 ~ 6.25
- 장소 몸소리말조아라 센터 (신수동 288-18)
- 작가·퍼포머 곽혜은 퍼포머·제작도움 박세은
- 관련정보 https://www.instagram.com/p/CtA7zjkpWan/?igshid=OGIzYTJhMTRmYQ==
- 이지은, 「플럭서스의 탈시각중심주의―촉각, 후각, 미각을 위한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이론과 현장』, 2008, 148쪽.
- 이지은, 위의 글, 148쪽.
- 연희원, 「시각중심주의의 남성편향성 연구: 무관심성 미학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제 23권, 2015, 141쪽.
- <섹빨간 커뮤니케이션―성性스럽고 성聖스러운 성城>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웹페이지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bit.ly/43ac71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