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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생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소리극 <콜비츠와의 대화>

김지수

제238호

2023.07.27

한 친구는 ‘1인분의 몫’을 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 했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아득하고 요원한 일임에 슬퍼했다. 살아가기live가 아니라 살아남기survive가 목표가 되어버린 세계의 생존자들은 필연적으로 외롭고 슬프다. 생존자로서의 ‘나’는 가장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독한 사막이 아닌 난파선 속(데카르트(2016), 47; 한스 블루멘베르크(2021), 35)에서 우리는 무겁고 축축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산다.
어떤 예술가는 불가해한 세계를 고발함으로써 구실을 다한다. 독일의 예술가 케테 콜비츠(1867-1945)가 그랬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여기 있다고, 그들의 죽음에 눈 하나 꿈쩍 않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리극 <콜비츠와의 대화>는 소리꾼 방수미와 코러스 4인(이효인, 양혜원, 김주원, 박유빈)의 몸으로 콜비츠의 생애를 조명한다. 가족과 예술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구성된 서사는 살아남기를 넘어 살아가려는 콜비츠 개인의 삶을 짜임새 있게 압축하여 보여준다. 그것‘만’을 목표해서도, 성취해서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

<콜비츠와의 대화> 공연 사진. 이젤을 앞에 두고 검은 원피스를 입은 방수미 소리꾼이 나무 의자에 앉아 측면을 바라본다. 
            빰에 부착한 마이크가 보이고, 어깨까지 오는 어두운 갈색의 머리칼에는 굵은 웨이브가 들어가 있으며, 세로 주름이 들어간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그의 뒤편으로 네 개의 큐빅이 쌓여있는 모습과 희미한 사람 형태가 보인다.

콜비츠는 누구인가

무대 밖 극장 공간은 콜비츠의 작품 수 점과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몇 작품이 전시 및 설치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무대 위는 이젤과 큐브 박스 몇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다시피 하다. 공연이 시작되면 왜 무대가 그토록 고요한지 알게 된다. 이곳은 콜비츠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에게 무심하기 때문이다. 오직 케테 콜비츠 한 사람에 대해서만 말해질 수 있다.
다만 무대에 콜비츠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네 명의 코러스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무대를 메운다. 첫 곡 역시 이들의 몫인데, 네 코러스들은 콜비츠에게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재차 묻는다. 『햄릿』의 첫 대사가 “Who’s There?”인 것처럼, 이 이야기에는 누가 있는지 스스로의 입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도록 질문을 던진다. 코러스의 모든 관심은 오직 콜비츠에게 쏠려있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이제는 이승의 저편으로 가야 할 시간부터 시작한 공연에서 콜비츠는 관객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 공연은 죽음 직전 펼쳐지는 주마등을 그대로 시각화하듯이 유년기부터 시간순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찬찬히 보여주며 진행된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가장 냉철하게 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콜비츠와의 대화> 공연 사진. 별도의 무대 세트가 없는 무대에 붉은 조명이 바닥을 물들이고 있다. 
            소리꾼 방수미가 무대 중앙에 위치해 있고, 네 명의 코러스가 그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다. 다섯 사람이 힘을 내어 소리를 하는 모습이다. 
            오른편 어둠 속에 악사들의 모습이 얼핏 보이고, 그보다 더 오른쪽 전면에는 쌓여있는 큐빅이 보인다.

대화의 부재와 길 잃은 성찰

대화란 둘 이상이 마주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공연 <콜비츠와의 대화>는 흔히 ‘관객과의 대화’, ‘창작진과의 대화’처럼 콜비츠와의 대화를 내세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응당 관객이 마이크를 쥐고 질문을 건네고, 지정된 누군가는 답변을 한다. 1인칭으로서의 콜비츠 역을 수행하기도 하는 방수미 소리꾼은 코러스가 던진 ‘그대는 누구인가’에 응답한다. 하지만 공연이 끝날 때까지 다른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관객의 속에서 질문이 피어날 틈 없이 콜비츠는(사실은 ‘공연은’) 끝끝내 자신이 하고픈 말만을 쏟아낸 채로 무대를 장악한다.
유년기부터 말년까지 <콜비츠와의 대화>에서 구현한 콜비츠의 삶에는 오직 가족과 관련된 일화뿐이다. 이 공연에 따르면 콜비츠는 사회구성원보다는 가족이라는 집합 속에 위치한 원소다. 콜비츠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세상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콜비츠의 가족적인 삶에 대해서만 끝없이 되풀이한다. 콜비츠는 한 예술가가 아닌 딸로, 언니로, 아내로, 엄마로 존재한다. 개인의 삶을 공연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유기적으로 직조하기 위해 모든 인과를 ‘가족’이라는 단일한 조건으로 수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콜비츠의 인생을 뒤바꾸었다고 알려진 연극 <직조공들> 관람 경험이나 콜비츠의 판화 전시회 개최보다 동생과 놀던 유년시절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공연은 작중 시공간을 지금 여기로 데려오지 못하고 평전과 회고에 머무른다. 과연 극장은 구술생애사의 복제 공간인가?

<콜비츠와의 대화> 공연 사진. 파란색 조명이 무대를 덮고, 방수미 소리꾼이 바닥에 주저 앉아 소리를 한다.

콜비츠만의 은유 없는 일방통행로

방금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그럴 수도 있다’고 답하겠다. 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누군가의 삶으로 메시지를 던지기란 참으로 간편하면서도 한편으로 무척 까다롭다. ‘그럴 수도 있’으려면, 극장 안에서 구술자와 관객이 감응할 수 있어야 한다. 공연 <콜비츠와의 대화>가 콜비츠와 관객을 만나게끔 해주기보다 콜비츠의 가족사를 소환하는 데 그친 이유를 고민하다 보니 어쩌면 구술 방식에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판소리는 상황을 알레고리로 보여주기보다는 창자가 1인칭 화자나 해설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무대예술이다. 판소리는 은유에 비교적 취약할 수밖에 없도록 형성되어 있다. (스토리텔링 방식의 우열을 가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판소리의 발화 어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동시대를 반추해보고 싶다면 보다 섬세한 연출이 따라야 한다. 공연 <콜비츠와의 대화>에서는 소리꾼 방수미가 콜비츠인 채로 대부분의 극 구성을 점유한다. 세계 속 1인분의 누군가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으로만 비추어져 극장 밖 현실로의 번역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넷이나 되는 코러스는 첫 곡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미약했다. 한시도 떠나지 않고 어딘가에 위치하는데 콜비츠의 일방통행 속에서 자꾸만 가려진다. 코러스는 ‘대화’의 주체도 되지 못하고 묵묵히 지켜본다. 무대 위에는 콜비츠가 진정 작품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전쟁, 노동착취, 부조리한 세계가 없다.

<콜비츠와의 대화> 공연 사진. 네 개의 큐빅이 모서리가 어긋난 채 쌓여있고, 그 오른편으로 하나의 큐빅이 더 놓여 있다. 
            쌓인 큐빅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두 명의 코러스들이 있는데, 한 명은 선 자세로, 다른 한 명은 한쪽 무릎을 꿇은 낮은 자세로 정면을 바라본다. 
            그들은 모두 양손으로 흰 그릇 하나를 들어 가슴 정도 높이로 들어 올렸다.

<콜비츠와의 대화>의 아쉬움을 떠나 예술가 콜비츠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유의미한 좌표에 위치한다. 공연 내내 들리던 그의 이름이, 공연장 밖에 걸린 그의 사진이 불러오는 경외가 있다. 서두에서 비친 슬픔을 콜비츠가 보았다면, 살아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는 이미 일인분의 몫을 하고 있다는 눈으로 응답해주었을 테다.

[사진 제공: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소리극 <콜비츠와의 대화>
  • 일자 2023.7.5 ~ 7.6
  • 장소 양천문화회관 대극장
  • 예술감독 방수미 대본·작곡·연출 황호준 출연 방수미, 이효인, 양혜원, 김주원, 박유빈 연주자 송지훈, 전계열, 배경철, 서수진 음악감독 송지훈 제작감독 김지훈 무대감독 김기영 조명감독 맹우영 영상감독 최락민 음향감독 정회인 분장 박효정 사진 나승열 그래픽디자인 강지우 홍보 최바울 운영 김혜민(차세대 기획인력)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0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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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김지수
음악과 연극이 마주치는 순간을 보고 듣는 사람. 국립국악원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국립극장에서 (잠시) 노동하는 중이다. 요즘은 마을공동체 농부리더학교에 다니며 상추와 토마토를 심고 페퍼민트와 봉선화를 가꾼다. 국립극장 제2회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rlawltn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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