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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속의 아카이브

극단 김포한강로 <문수산 박애주>

김민조

제241호

2023.09.07

문화인류학자 알라이다 아스만은 『기억의 공간』(2009)이라는 저서에서 시인 두르스 그륀바인이 로스엔젤레스에 대해 쓴 글을 인용한 적이 있다. “로스앤젤레스. 이 도시는 기억에 대한 정면공격이다. 도시공학자들을 경악케 하고 역사학자들을 말더듬이로 만들어 버리는 도시의 거대한 이 영역은 수백 년을 거쳐 전 지구를 뒤흔들어 놓은 기억 상흔의 도표이다. 투자와 소멸이라는 마술적인 흐름 이외에는 최근 5년간 살아남은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캘리포니아 속담에 ‘역사는 다섯 살이다’라는 말이 있다”.1)
역사는 고작 다섯 살이다. 그륀바인이 1998년에 로스앤젤레스를 관찰하고 적었던 문장들은 2023년 현재 한국의 대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도 무리 없이 들어맞는다. 지역 상권을 탐욕스럽게 약탈하는 투기 자본들, 정권이 바뀌기 무섭게 지역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갈아엎는 관료들, 핫플레이스 정보를 팔아 돈을 버는 지도 앱 제작자들… 새로운 것에 대한 열광으로 특징지어질 이 모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흐름 속에서 기억을 위한 공간은 상시적으로 소멸의 위험에 처해 있다. 현대 예술에서 ‘지역(성)’과 ‘아카이브’에 대한 숙고가 떠오르게 된 연유도 이러한 사회적 맥락과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철거된 공간, 내쫓긴 사람들, 잔해나 유물의 형태로 뿔뿔이 흩어져버린 기억의 매개체들. 발터 벤야민의 표현대로 어떤 예술가들은 쓰레기가 된 기억들을 줍기 위해 도시의 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넝마주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문수산 박애주>의 공연 사진. 예지와 박애주, 두 사람이 나란히 스툴에 앉아 있다. 흰 티와 검은 자켓, 청바지를 입은 예지가 허리를 숙여 그의 무릎에 엎드린 박애주를 바라본다. 
            박애주는 흰 티와 베이지색 점프수트를 입고 머리와 양팔을 예지의 허벅지에 올린 채 앞을 응시한다. 
            예지는 성인이며, 박애주는 어린이다. 두 사람은 머리에 두 개의 반투명한 뿔을 달았다.

극단 김포한강로가 제작한 <문수산 박애주>는 김포라는 지역에 얽혀 있는 오래된 기억을 찾아가는 연극이다. 김포를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로밖에 알지 못했던 필자는 김포가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접경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극단 김포한강로가 공연 제작을 위해 참고했다고 밝힌 마을 기록집 『김포는 오늘도 안녕합니다』에는 6.25 전쟁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접경 지역’으로서 김포가 품어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남 방송을 들으며 군인들이 파놓은 방공호를 따라 등교했던 주민의 기억, 간첩이 넘어온다는 이유로 수문을 닫아버리곤 했던 군인들에 대한 기억, 국군 소령이 김포에서 후퇴하며 선물로 남기고 간 평양 다디미돌에 대한 기억, 총알을 주워 엿장수에게 팔아먹고 불발탄을 장난감 삼아 놀았던 기억 등등.2) 전쟁과 이념 갈등의 상흔을 둘러싼 삶의 기억이 용강리, 문수산, 구슬프니 등 김포에 속한 장소 곳곳에 대한 증언 속에 녹아 흐르는 것이다.
<문수산 박애주>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안은 채 김포를 떠나야 했던 예지가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김포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예지로 하여금 김포를 외면한 채 살아오게 만든 것도, 다시 김포로 돌아오도록 손짓하는 것도 그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박애주라는 친구이다. 어린 예지가 애주, 석만, 진만, 영준 등과 함께 문수산 자락을 누비며 놀던 유년기의 시간과 성인이 된 예지가 김포로 귀환하는 극 중 현재의 시간이 드라마 내에서 교차한다. 성인이 되어 돌아온 예지의 눈에 비친 김포는 과거의 마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곳이었다. 지역 개발과 부동산 투기라는 이슈를 놓고 현지민과 외부인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도시, 집값이나 투자 유치를 위해 부정적인 기억을 함구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매년 장마철이 되면 한강 변에 떠내려오는 북한 주민의 시신처럼, 김포라는 지역이 지니는 물리적인 접경성은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내곤 한다.
<문수산 박애주>에서 현재로 끊임없이 귀환하는 기억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물’이다. 극장에 들어선 관객은 좌우에 펼쳐진 그물이 무대를 상단부와 하단부로 구분하는 동시에 위아래를 비끄러매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다. 어린 예지를 비롯한 아이들은 때때로 그물에 신원미상의 시신이 걸려 올라왔다는 소문을 들으며 자란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둘러쳐진 철조망 ‘너머’를 불현듯 상상하게 만드는 불온한 이미지이다. 김포를 떠나 미술 작가로 성장한 예지의 내면세계에도 그러한 그물이 오랫동안 드리워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을 저 멀리 떠내려 보내고 싶지만, 마치 그물에 걸려 올라온 시신처럼 꼼짝 않고 버티고 있는 기억 하나. 그 기억이란 김포에서 보낸 어린 시절 전체일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친구 애주에 대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수산 박애주>의 공연 사진. 점프수트와 니삭스, 민트색 체크무늬가 들어간 베이지 에코백을 멘 박애주가 서 있다. 
            그는 목에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렸다. 그의 뒤편으로 계단과 난간에 걸린 큰 그물이 보인다.

박애주라는 평범한 소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에는 접경 지대에서 일어날 법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촘촘히 가로놓여 있다. 아이들은 문수산 자락에 자기만의 기지를 만든 석만과 함께 전쟁 놀이를 한다. 아이들은 돈을 모으면 예지가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믿으며 남파 간첩을 잡아 현상금을 타내기로 한다. 영준은 간첩이 버리고 간 가방을 발견하지만,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낙인 때문에 오해를 살까 봐 자진신고를 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가방에 들어 있던 수류탄에 미국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미군이 나눠주던 초콜릿이라 착각한다. 그리고 애주는, 그 ‘초콜릿’이 폭발하는 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된다. 이처럼 연극은 박애주의 죽음이 김포 아이들의 일상적인 삶과 분리할 수 없이 연속되어 있었던 것으로 표현한다. 주인공 예지가 ‘문수산 박애주’라는 소녀를 결코 망각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김포에 대한 기억 전체와 거미줄처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포를 떠나 김포를 잊은 채 살아보려 했던 예지는 접촉경계장애라는 특수한 질환에 시달린다. 예지가 다시금 김포로 돌아와 과거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연극적 과정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결국 김포라는 기원적 장소와의 단절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과거에 두고 온 자신의 더블과도 같은 소녀 ‘문수산 박애주’를 다시 대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지는 김포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여 아카이브 전시를 열기로 한다. 그물에 걸린 넝마와도 같은 기억을, 도시 개발업자의 눈에는 모조리 치워내야 할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김포의 역사를 더듬어가기로 한 것이다. 연극은 그러한 움직임을 ‘더듬이’로 공간을 탐색하는 곤충들의 감각에 비견한다. 예지가 시달려온 접촉경계장애가 자아와 환경 사이의 단절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면, 아카이브 전시는 다시금 경계를 넘어 접촉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이다. 김포라는 공간의 기억, 혹은 기억의 공간을 향한 더듬이질로써.

<문수산 박애주>의 공연 사진. 석만, 영준, 어린 진만, 박애주, 어린 예지가 나란히 서 있다. 석만은 이마에 노란 끈을 둘렀고 나머지 네 사람은 목덜미에 노란 스카프를 둘렀다. 
            이들은 모두 멀리 오른쪽을 바라보며 각자 주먹을 쥐거나 팔을 뻗어 전투태세를 취한다.

<문수산 박애주>는 ‘드라마 연극’의 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는 작품이라 여겨진다. 마을 기록집의 내용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왔음에도 불구하고 김포의 풍경 이미지나 육성 녹음 등 ‘실재감’을 주는 장치들을 공연 내에 삽입하는 대신 허구적으로 재구성된 드라마 내에서 김포에 대한 이야기가 연극적으로 재생(play)되는 효과에 오롯이 주목하고 있다. 이 점은 연극이 객관적 사료들로 이루어진 문서고를 넘어 새로운 기억을 생산하는 퍼포먼스적 아카이브로서 기능할 가능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다만 그러한 의의와는 별개로 연극의 결말부에서 예지가 시도했다고 언급되는 전시 작업의 실체가 드라마 연극의 구조 내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어려웠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이는 예지가 예술가로서 트라우마를 응시하고 표현하는 현재적 과정을 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를 소망했던 관객으로서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아카이브의 기능을 수행하는 예술 작품에 있어 과거와 현재가 어떤 각도와 배치로 만나게 되는가의 문제는 과거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의 문제를 종종 능가하곤 한다. 드라마 연극은 아카이브의 효력을 어떻게 실행하며, 또 어떻게 불화하는가. 지역사와 연극이 교차하는 지점에 남겨지는 또 하나의 질문이라 할 것이다.

<문수산 박애주>의 공연 사진. 석만과 진만이 바닥에 주저앉은 예지를 바라본다. 
            빨간 바지와 하늘색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칼라 티셔츠를 입은 진만은 예지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고, 군복을 입은 석만은 거리를 둔 채 서 있다. 
            예지는 한 팔을 의자에 올리고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이다. 
            그의 뒤편에 놓인 책상에 검은 백팩이 놓여있고, 책상 뒤편으로 ‘주택분양문의’가 적힌 빨간 플래카드와 세 장의 분양 포스터가 붙은 캐노피가 보인다. 
            캐노피의 뒤편으로는 그물이 걸린 난간과 계단이 있다.

[사진 제공: 극단 김포한강로]

극단 김포한강로 <문수산 박애주>
  • 일자 2023.8.17 ~ 8.19
  • 장소 김포아트홀
  • 작·연출 이창수 출연 장지수, 이시연, 전예지, 최요한, 김창민, 남현우, 지미림, 배현명, 유영준, 공영환 조연출 박다훈 조명디자인 김상호 무대디자인 서지환 음향디자인 이승민 조명오퍼 배승한 포스터디자인 김태헌 주최 극단 김포한강로 후원 김포문화재단
  • 관련정보 https://playticket.co.kr/nav/detail.html?idx=2459
  1.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채연숙 옮김,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그린비, 2011, 551쪽.
  2. 김두안·주석희·천선필·최다예·최영찬·이종숙·전현서, 『김포는 오늘도 안녕합니다』, 도서출판 얘기꾼, 20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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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김민조
협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비평가를 지향합니다.
동시대 퀴어, 페미니즘, 장애, 포스트휴먼 연극의 흐름에 대한 반응과 아카이빙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기와 공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기를 잘 못해서 큰일입니다.
wingmn1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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