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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역사를 뒤졌지만 내 자리는 없었다.”

플레이팩토리 우주공장 <팜 파탈; 가려져 버린>

김상옥

제241호

2023.09.07

엘렌 식수는 여성적 가치가 추방되어 온 인류 역사를 훑으며 ‘내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2) 그곳은 식수 개인의 자리만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 말할 수 없었던 타자들의 자리다. 인류의 의식 속에 똬리를 튼 신화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보여준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보다 이야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무엇을 믿고 어떤 신화를 만들어가냐에 따라 우리의 역사도 달라질 것이다. <팜 파탈; 가려져 버린>(이하 <팜 파탈>)은 널리 알려진 신화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는지를 폭로함으로써, ‘가려져 버린’ 타자들의 자리를 마련한다.
포스터 이미지에서는 검은 뱀이 흰 바탕을 유영하며, 여성의 얼굴로 보이는 좌측면 윤곽을 그리고 있다. 지혜와 고대 대여신의 표상이기도 했던 뱀은 기독교 전통 안에서 타락한 괴물의 상징이 되었다. 극에 등장하는 메두사와 릴리트를 포함해 뱀의 이미지를 입은 이들은 대체로 여성이었고, 여성적인 것은 원죄·고통·질병의 원인으로 그려졌다. 얼굴 형상을 중심으로 흰 바탕 군데군데 가 있는 금들은, 이 극이 여성에게 덧씌워진 파멸적인 이미지에 균열을 내고자 함을 예고한다. 남성을 죽음으로 이끄는 여성, ‘팜 파탈(femme fatale)’이라는 용어는 19세기에 전개된 여성 참정권 운동과 맞물려 만들어졌다. 당대 남성 작가들은 여성이 자신들을 파괴한다고 믿는 피학적 심상을 양산해 냈다.

<팜 파탈>의 공연 사진. 쇼의 사회자가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입 근처에 가져다 대고, 다른 손으로는 ‘펜테실레이아’가 적힌 공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앞에는 벨벳이 덮인 책상이 놓여있고, 그 위에 색색의 공이 든 투명한 상자가 있다. 
            상자 윗면에는 손을 넣어 공을 꺼낼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다. 그 옆에는 각각 ‘인안나’, ‘릴리트’, ‘메두사’의 이름이 써 있는 공이 놓여있다.

산울림 소극장에 들어서자, 무대 중앙에 자리한 의자 네 개와 이를 비추는 핀 조명, 오른쪽 사회자석이 관객을 맞는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금빛 주렴은 곧이어 나올 여신을 위한 신전의 장식 같기도 하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비치면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쇼가 시작된다. 극 중 설정인 쇼 프로그램 ‘히든 죄수’는 “부정적 선입견이라는 감옥에 갇힌 신화 속 죄수를 찾아” 두 가지 기준으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신개념 심판대”다. 판결의 기준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동시대 관점으로 ‘죄수’들에게 붙은 죄목을 재고할 가치가 있는가. 둘째, 시대와 상관없이 그들을 둘러싼 오해나 왜곡의 소지가 있는가. 심판대에 선 여성들은 수메르 신화, 그리스 신화, 유대 신화 속 캐릭터들이다. ‘치명적인’ 이들은 각기 다른 의상 색깔만큼이나 뚜렷한 성격, 에너지, 감정의 차이를 표출한다.
가장 당당한 태도를 자랑하는 수메르 신 인안나는 금색 의상과 장신구를 갖추고, 통속극과도 같은 지난날의 죄를 도도하게 풀어놓는다. 자신이 저승에 가 있는 동안 희희낙락했던 남편 두무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 인안나는 망설임 없이 두무지와 그를 보호하려는 시누이까지 저승으로 보내버렸다. 하늘과 땅의 여신인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욕망에 충실한 인안나는 ‘전쟁과 사랑’의 신이라는 모순적 별명을 가진 존재로, 수많은 여신의 원형이다. 어둠 속에서도 눈을 반짝이는 올빼미의 이미지가 인안나에게는 지혜의 속성을 부여했다면, 다음 ‘죄수’인 릴리트에게는 ‘밤의 괴물’이라는 멸칭을 가져다주었다.
유대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이자 최초의 여성인 릴리트는 차분하고 신념이 굳은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아담과 같이 흙으로 빚어진 최초의 인간임에도, 자신을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늘 남성 상위 체위만 요구하던 아담을 떠나버렸다. 다른 잣대로 자신과 아담을 대하는 신에게 실망했고, 그에게 돌아가라는 천사들의 회유 또한 거절했다. 루시퍼와 동침하게 된 릴리트는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난 이브에게 내어준다. 사람들은 이브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바람에 생긴 인간의 원죄를 릴리트의 탓으로 돌렸다. 우리에게 낯선 존재인 릴리트는 이후 서큐버스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서큐버스는 15세기에 발행되어 마녀사냥을 부추긴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Malleus Maleficarum)』에도 나오는데, 이 역시 남성을 유혹해 부정한 짓을 하게 만드는 팜 파탈적 악마 캐릭터다.

<팜 파탈>의 공연 사진. 빈 무대에 의자 네 개가 놓여있고, 각각의 인물들이 앉아 있다. 
            한쪽 어깨만 덮는 금색 점프수트를 입은 인안나는 다리를 꼬고 양손을 깍지 껴 무릎 위에 올린 채 도도한 표정을 짓고, 흰색 조끼와 바지를 입은 릴리트는 다리를 꼬고 허벅지 위에 양손을 올린 채 정면을 응시한다. 
            초록색 수트 상하의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메두사는 다소곳하게 두 팔과 다리를 모은 채 앉아 있으며, 핑크색 나시와 바지를 입은 펜테실레이아는 팔짱을 끼고 정면을 바라본다.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는 짙은 녹색에 희미한 뱀살 무늬가 박힌 옷을 입고, 분통 터지는 사연을 들려준다. 아테나의 사제였던 그는 신전에서 포세이돈에게 겁탈당하고, 여신의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버전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메두사와 포세이돈이 연인 관계였든 강간이 이뤄진 것이든, 메두사만이 처벌받고 괴물이 되어 목까지 잘리는 결말은 같다. 그는 아테나의 방패에 걸린, 자신의 머리를 보고 죽어가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비통해한다. 가려져 있던 이야기가 드러날 때마다 무대 위는 공감과 위로, 여한과 분노로 가득 찬다.
아마조네스 전사이자 여왕인 펜테실레이아 또한 그의 최후에 관한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모권 공동체인 아마조네스는 전쟁과 학살, 강간을 일삼았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이는 분명한 죄악이지만, 고대 인류 역사는 이러한 폭력의 연속이었다. 펜테실레이아 또한 가부장 사회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공동체를 지켜나갔다. 나라를 지켜낸 옛 남성 영웅에게 전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듯이, 펜테실레이아는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의심할 필요도 없이 영웅”이었다. 그런데 용맹함을 담담하게 과시하던 그가,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뒤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전과는 다른 온도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펜테실레이아를 보고 사랑에 빠진 아킬레우스’. 신화에 서술된 이 ‘사랑’은 시간(屍姦)을 의미했다. 놀라운 비화를 들은 출연자들은 같은 전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무례했다며 입 모아 아킬레우스를 비판한다.

<팜 파탈>의 공연 사진. 네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가장 왼편의 펜테실레이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한 팔을 굽혀 앞으로 뻗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릴리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있으며, 선글라스를 벗은 메두사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가장 오른 편에 있는 인안나는 두 팔을 앞쪽으로 높이 뻗어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사연을 가졌지만, 함께 감정을 터트리며 극장이 떠나가라 목소리를 높인다. “난 잘못한 게 없어!” <팜 파탈>은 ‘여성 괴물’에 관한 새로운 재현이나 변용을 꾀하지는 않는다. ‘히든싱어’라는 익숙한 버라이어티 쇼 포맷을 빌려, 신화를 은유적이고 낭만적으로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의 사고체계로 달리 바라보게 한다. 그들은 완전히 결백하거나 순전히 악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위대한 동시에 우리처럼 모순을 가진 영웅들이다. ‘히든 죄수’는 이들 ‘죄수’가 아니라 고정된 ‘신화’를 심문하면서 새로운 믿음, 새로운 신화, 새로운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엿본다. 72퍼센트 의견으로 무죄를 받은 네 명 모두는 ‘선입견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된다. 관객은 현장평가단으로 소환되지만, 실제 판결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았듯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도 그들과 다른 차원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옛 신화 속 인물들과 대화할 수는 있지만, 현대인의 잣대로 그들을 심판하기란 힘든 일이다.

<팜 파탈>의 공연 사진. 벽을 바라보고 놓인 네 개의 빈 의자 뒤로 남무가 서 있다. 
            은색 별과 길이가 다른 금색 핀이 둥글게 꽂힌 머리띠를 쓴 그의 얼굴에는, 파란색으로 구불구불한 선과 태양이 그려져 있다. 
            커다란 눈이 그려진 티셔츠 위에 연한 분홍색 퍼 블레로를 입었고, 팔꿈치를 덮는 은색 장갑을 끼고 있으며, 허리에는 분홍색 플라멩코 튜브를 둘렀다. 
            뒷벽에는 동그란 조명 속에 들어 있는 그의 그림자가 보인다. 흡사 화려한 머리 깃털과 구부러진 꼬리를 가진 듯한 모습이다.

심판관으로 나온 남무는 대지와 하늘이 구분되기 이전의 혼돈을 표현하듯,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키치한 조합으로 차림을 했다. 그는 인류 문명이 시작된 수메르 신 중에서도 최초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대모신이다. 혼자 힘으로 땅과 하늘을 잉태한 단성 수태설의 시초지만, 놀라울 정도로 우리에게 낯설다. 그리스 신화와 같은 가부장 체제를 거칠수록, 여신의 위대함은 약화되거나 남신에게로 위임되었다.3) 어머니 여신 남무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관객을 위로한다. “커다란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운동에너지”가 가려진 이야기들을 드러내고, 앞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막바지엔 사회자의 정체도 밝혀지는데, 그는 기원전 2000년경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던 작자 미상의 이야기를 엮어 『길가메시 서사시』의 틀을 만들고 최종 판본을 편집한 신―레케―운닌니였다. 호메로스보다 1,500년이나 앞서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완성했지만, 역시나 대중적으로 그를 아는 이가 드물다. 문명의 발상지인 수메르가 고고학적으로 복원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잊혔던 찬란한 문명이 위용을 드러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팜 파탈>은 가려진 이야기를 소개하고 심판하는 역할로 남무와 신―레케―운닌니를 불러들였다. 이들의 등장에는 언젠간 타자들의 찬란한 이야기가 복원되고 뻗어나가길 바라는 희망이 서려 있다.

[사진 제공: ⓒ윤주]

2023 산울림 고전극장
플레이팩토리 우주공장 <팜 파탈; 가려져 버린>
  • 일자 2023.8.23 ~ 9.3
  • 장소 소극장 산울림
  • 작·연출 이슬기 배우 강민지, 고지혜, 김서영, 김채련, 유유림, 정새롬 조명디자인 홍성학 포스터디자인 장귀리 무대감독 김소희 조명오퍼 윤승희 사진 조윤주 영상 채형식 주최·주관 소극장 산울림 제작 플레이팩토리 우주공장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10696
  1. Hélène Cixous: Françoise van Rossem, “Sur quelques aspects de l’écriture féminine en France aujourd’hui”, in Écriture de la religion, écriture du roman. p. 225. 윤학로, 「「메두사의 웃음」과 여성의 글쓰기」, 『프랑스학연구』, 2003에서 재인용.
  2. 윤학로, 위의 글.
  3. 장영란, 『위대한 어머니 여신: 사라진 여신들의 역사』, 살림,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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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김상옥
연극학을 전공하고,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활동했다. 경계를 넘는 동시대 예술, 연극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만남에 관심을 두고 있다. gracegat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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