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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살로 지은 이곳

극단 적 <스켈레톤 크루>

팔도

제242호

2023.09.21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일컫는 용어, ‘스켈레톤 크루’는 ‘살이 다 떨어져 나가고 죽어가는 공장에서 뼈대처럼 남아있는 마지막 노동자들’을 연상시킨다1). 연극 <스켈레톤 크루>의 배경 디트로이트에 대해서도, 그곳의 제조업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고 도미니크 모리스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어서 나는 구글링을 시도한다. 어디에서도 모리스의 희곡 번역본을 찾을 수 없다.
나는 길을 걷다가 ‘링컨 고시원’ 같은 간판을 볼 때면 ‘링컨은 상상이나 했을까… 동방의 코딱지만 한 나라에 무려 링컨 고시원이라는 장소가 있는 걸…’ 생각하곤 한다. <스켈레톤 크루>가 상연되는 ‘터 씨어터’를 찾아가는 길에 마주친 건물들은 낮고 가로로 길쭉했으며 가로수들은 한낮 햇살에 흠뻑 적셔져 있었다. 링컨 고시원같이 해괴한 건 보지 못했다. 기이하리만치 쾌적한 거리를 걸으며 빽빽하고 더러운 대학로 골목의 극장들을 떠올렸다. 왠지 다행스럽게도 터 씨어터는 거대한 규모의 절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좌석들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딱 봐도 허리가 아플 것 같은 좌석에 다리를 구겨 넣으면서, 이제 속으로 중얼거릴 수 있었다. 도미니크 모리스는 상상이나 했겠냐고. 2008년 ‘자동차의 도시’ 미시간 디트로이트의 제조업 노동자들 간의 갈등을 그린 희곡이 2023년에 여기서, 한 무리의 동양인들에 의해 상연되는 걸.

<스켈레톤 크루>의 공연 사진. 무대 전체가 보인다. 무대 뒷벽에는 왼쪽부터 게시판, 출입문, 라디오, 전자레인지와 커피머신 등이 마련된 공간이 있다. 
            무대의 바닥은 체스판을 닮은 회백색의 격자무늬이다. 게시판 앞에 회색의 페브릭재질 소파가 놓여있고, 탕비 공간 앞에는 꽃무늬 식탁보가 덮인 원탁과, 두 개의 라임색 의자가 놓여있다. 
            ‘매주 금요일 냉장고 비울 것’, ‘금연 페이’, ‘불시 수색은 항시 이루어집니다’, ‘절도 경고’ 등의 문구가 붙은 게시판 위에는 초침과 분침이 없는 원형 벽시계가 걸려있다. 
            게시판 앞에 선 레지는 인상을 조금 찌푸린 얼굴로 오른편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그 앞에 안전모를 쓴 페이가 그를 염려스럽게 바라본다. 
            오른편 테이블의 좌우에 선 샤니타와 데즈가 레지를 바라본다. 
            답답한 표정으로 허리춤에 손을 얹은 샤니타는 어깨까지 오는 굵은 파마를 하고 붉은 손수건을 머리띠처럼 맸으며, 파란색 긴소매 셔츠 위에 노란 조끼를 입었다. 
            데즈는 회색 후드와 남색 재킷, 청바지를 입은 채 오른쪽 어깨에 백팩을 걸치고 있다.

휴게실

<스켈레톤 크루>를 보면서 몇 달 전 상연되었던 <엑스트라 연대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후자의 무대가 길고 긴 시간 축을 따라가며 수도 없이 많고 또 다른, 그러나 모두 마지막까지 남아 있으려 했던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으로 변모했다면, <스켈레톤 크루>의 무대는 노동자들의 비좁은 휴게실 단 한 공간만을 배경으로 한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노조 대표 페이가 회상하는 치열한 파업의 순간도, 샤니타가 세계에 무언가를 내보낸다는 충족감을 만끽하며 일하는 모습도, 데즈가 공장이 폐업하는 것을 대비해 미리 자신의 사업을 준비하며 발품 파는 모습도, 레지가 상사 눈치를 보며 노동자들을 변호하는 모습도 엿볼 수 없다.
제약은 양가적이다. 휴게실 바깥의 삶에 대해 관객은 철저하게 무지하다. 관객은 다만 무대 한쪽에 걸려있던 시계를 페이, 샤니타, 데즈가 읽으며 근무 시간에 1분이라도 늦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출근표를 작성하고, 짧은 휴식 시간 동안 끼니를 해결하거나 커피를 홀짝이고, 각자의 비밀을 만들었다가(키스 혹은 섹스, 흡연, 은닉, 수면…) 그것을 도로 토해내며 서로를 붙잡고, 때리고, 멈칫거리고 우는 모습들을 본다. 시침 없는 시계를 슬쩍 보곤 시간이 없다고, 시간이 흐른다고 초조해지거나 느긋해지는 저들을 그저 바라보면서 관객은 어렴풋하게나마 이곳 또한 창발되고 붕괴되는 하나의 우주라는 걸2)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스켈레톤 크루>의 공연 사진. 게시판에 걸려있던 대부분의 게시물이 뜯겨 구겨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다. 레지는 게시판 앞에 주저앉아 벽에 머리를 기댄 채 통탄스러운 표정이다. 
            그는 푸른색 셔츠에 가슴 부분에 작은 아가일 무늬가 들어간 검은 조끼와 양복바지를 입고 오른 손목에 은색 철제 스트랩이 끼워진 손목시계를 착용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언젠가 영영 이곳을 떠난다. 이곳에 가장 오래 거주해 왔던 페이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29년 근속했기에 딱 1년만 더 버티면 정년퇴직할 수 있던 페이는 가족 중 최초로 화이트칼라를 입게 된3) 관리자 레지와 다른 노동자들 사이에서 갈등을 조율하려 극 내내 애쓴다. 하지만 태도 불량과 도난 혐의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데즈를 대신해서, 정확히는 그런 데즈를 해고할 자신이 없어서 본인이 해고될까 봐 괴로워하는 레지를 대신해서, 페이는 공장을 관두기로 한다. 이미 은행 담보로 묶여 있던 주택을 잃어 몰래 휴게실에서 잠을 청하던 페이가, 동료들의 버팀목이자 집(물리적 건물이 아닌 장소로서의 집(home))이었던 그가, 자신의 얼룩과 체취가 잔뜩 배어있는 이곳, 자신의 뼈와 살로 지은 이곳을 영영 떠나게 된다.
페이의 사정과 속내에 대해 알 길이 없는 다른 인물들이 어김없이 돌아온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때 연극은 끝난다. 샤니타, 데즈, 레지는 페이가 공장의 비싼 부품을 솜씨 좋게 뜯어 달아나기 좋은 곳, 그러니까 따뜻하고 여유로운 캘리포니아 같은 곳으로 훌훌 떠났으리라 상상하며 웃고 막이 내린다. 현실 속 디트로이트시도 2008년에 끝내 파산하기에 나는 극장을 나서며 이 무슨 부조리한 결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페이가 뼈와 살로 지은 이곳, 시계 속이 텅 비어 있는 이곳 휴게실에는 샤니타, 데즈, 레지가 남았고 레즈비언 노동자 할머니의 영웅담을 들으며 자랄 샤니타의 아이도 남아 있음을 떠올려 본다.

<스켈레톤 크루>의 공연 사진. 탕비 공간 앞 원탁에 레지가 앉아 있고, 그 옆에 선 페이가 그를 향해 열성적으로 말하고 있다. 
            페이는 머리에 흰 두건을 쓰고, 흰 나시와 군복바지를 입었다. 왼팔에 깁스를 하고 목에 팔걸이를 하고 있으며, 깁스하지 않은 오른손으로 의자를 가볍게 짚었다. 
            오른 손목에 짙은 카키색 스트랩의 손목시계가 보인다.

신체

연극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안내 방송이 짤막하게 흘러나왔다. 페이 역을 맡은 강애심 배우가 한쪽 팔에 부상을 입었다며 관객의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양해’라는 단어가 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연극 첫 장면.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페이는 담배를 한 대 피우려 한다. 페이의 등 뒤에는 휴게실 내 금연이라고 써 붙여진 메모 보드가 있었다. 페이가 깁스를 한 팔꿈치로 담뱃갑을 지탱했던가. 몇 차례 불을 붙이려 시도하지만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러나 집요하고 느리게, 페이는 기어코 담뱃불을 붙인다. 그러곤 메모 보드 앞으로 설렁설렁 이동해 금연 표지를 놀리듯 연기를 내뿜었던가.
웹진 연극in의 기획 ‘우리는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까’4)에는 무대 위에서, 혹은 연습하면서 겪은 신체 손상 때문에 출연할 수 있는 공연이 현저히 적어졌거나 아예 하차 통보를 받은 경우부터, 불안정한 예술 노동 환경 때문에 정신적 손상이 누적되지만 선뜻 프로덕션에 공유하기 힘든 경우들에 이르기까지, 연극인들의 다양한 손상 경험이 공유된다. 페이 역을 맡은 강애심 배우는 어떤 경우였을지 알 수 없지만, 그의 깁스는 무심코 노동 현장으로서의 자동차 공장과 연극 프로덕션을 가리키게 된다. 나아가 뼈와 살로 지어진 또 다른 ‘이곳’, 신체를 가리키게 된다.
페이의 깁스처럼 노동자 신체의 물질성을 선명히 지시하는 또 다른 표지는 샤니타의 부른 배일 것이다. 노동하는 데 있어 ‘장애물’로 여겨지곤 하는 이 표지들이 - 강애심 배우의 깁스는 의미심장한 우연이지만 - 모두 여성 배우/인물들에게 배치된 점은 중요하다. 모든 인물은 공장이 파산하거나 해고될 걱정을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 때 끊겨버릴 의료 보험 지원에 대해 말하는 건 유방암 투병 경험이 있는 페이와 임신한 샤니타뿐이다. 죽어가는 공장에서 뼈대처럼 남아있는 마지막 사람들 중에서도.
그러니 이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무시되어서는 안 될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도미니크 모리스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작은 우주를 그려낸 희곡이 2023년 한 무리의 동양인들에 의해 이곳에서 상연되고 또 반추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고. 그 의미는 무엇이어야만 하냐고. 한 편의 글은 이런 질문 앞에서 늘 턱없이 부족하므로 이 질문은 몇십몇백 개의 신체, 여느 노동자의 것과 마찬가지로 손상되고 마모되는 뼈와 살로 지어진 신체들에게 떠넘기고 싶다.

<스켈레톤 크루>의 공연 사진. 레지와 샤니타가 레지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뒷면에는 손글씨로 적은 작은 메모가 어렴풋이 보이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웃는 모습이 비친다. 
            레지는 감동받은 듯 곧 울 것 같은 표정이며, 양손으로 각각 임신한 배와 허리를 짚은 샤니타는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본다. 
            샤티나의 손목에도 카키색 스트랩의 시계가 보인다.

[사진 제공: 극단 적 / 촬영: 김솔]

극단 적 <스켈레톤 크루>
  • 일자 2023.8.31 ~ 9.3
  • 장소 터 씨어터
  • 도미니크 모리소 연출 이곤 번역/드라마터그 마정화 출연 강애심, 오현우, 안병찬, 정지은 무대디자인 임건수 조명디자인 성미림 음악감독 이승호 의상디자인 고혜영 분장 박정미, 하유미 조명어시스트 김선미 그래픽/사진 김솔 조연출 고한비 무대감독 이라임 제작피디 권연순 제작 극단 적 기획 K아트플래닛 후원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터컴퍼니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10930?app_tapbar_state=hide&
  1. 연극 소개글에서 인용.
  2. 비좁은 공간의 드라마에 대한 이 표현은 필자의 다른 글 “나는 오래된 옷장처럼 너를 사랑하고”에서 따왔다. https://archive--liedowncoop.repl.co/short/8do.html 참조.
  3.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화이트칼라(white-collar)는 땀과 기름에 젖지 않은 간접 생산 부문 노동자가 과시하는 상징이며 청결한 흰 칼라의 셔츠를 뜻한다. 원문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확실치 않으나 원작 희곡에서 모든 인물들은 흑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극작가 모리스 또한 흑인 여성으로, 「스켈레톤 크루」는 그의 ‘디트로이트 프로젝트’ 3부작 중 흑인 사회 내의 계급 문제와 세대 문제에 특히 초점을 맞춘 연극으로 알려져 있다.
  4.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2944. 같은 기획의 다른 글들은 연극in 웹사이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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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팔도
누워있기협동조합의 조합원. 비평과 번역, 아카이빙 행위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연극과 공연에도 관심이 생겼다.
트위터 및 블로그 @todkdlel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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