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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의 시간

낭만유랑단 <2014년 생>

김민조

제245호

2023.11.09

목요일.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일곱 개의 요일 중에서 유난히 침울한 색깔로 감각되는 요일.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1995년 6월 29일이 목요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저녁 태권도복을 입고 귀가하던 나는 아파트 단지 전체가 울리는 진동을 느꼈다. 멀리서 온 굉음이 아파트 외벽을 뒤흔드는,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멀어지는 반향 같은 울림이었다. 9시가 되자 텔레비전에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홉 살이었던 나는 그 뉴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보도 화면에 나오는 처참한 잔해와 얼마 전에 친구들과 함께 지나갔던 그 백화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일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일간지에 실린 사망자 명단을 보면서도 나는 건물이 무너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삼풍백화점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의미의 공백지로 남아 있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약속한 것처럼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1997년에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서 추락해 어린이 주말 농구단을 함께 했던 아는 형이 죽었을 때에도, 영화 <벌새>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친형이 별안간 식탁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때에도 그저 세상에는 결코 말해져서는 안 될 슬픈 일들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1995년 어느 목요일에 있었던 사건의 의미를 나는 사후적으로 천천히 깨달아갔다. 8년 뒤 대구의 지하철에서, 19년 뒤 진도 앞바다에서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일어난 일을 언어화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후에도 내가 경험했던 의미의 진공 상태가 집단적인 트라우마 현상의 일부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자체를 문제시해본 적은 없었다.

<2014년 생>의 공연 사진. 무대 위에 검은색 철제 접이식 의자 세 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왼쪽 의자부터 백송시원, 이나리가 앉아 있다. 
            백송시원은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 내리고 청점프수트를 입었다. 이나리는 흰색 반소매 티셔츠 위에 청조끼를 입고 청바지를 입었다. 
            가장 오른쪽의 의자에는 회색 백팩이 놓여있다. 백팩에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문구가 적힌 천, 무지개색 인형, 로스트밸리 배지, 노란색 리본 등이 달려 있다. 
            무대 뒷벽에는 색색의 손글씨가 적힌 크기가 다양한 종이들이 여럿 붙어있다. 
            이 종이들에는 연결하기, 투쟁의 방식, 공연을 만들자, 세월호, 스쿨존 등의 글자와 그림들이 빼곡하다.

연극 <2014년 생>을 보면서 나는 기억 속에서 지워져 있던 장면을 불현듯 기억해냈다.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속보 화면을 보면서 나는 부모님에게 여러 차례 질문했었다. 저 백화점이 갑자기 왜 무너졌어요? 그럼 앞으로 저긴 가면 안 돼요? 부모님은 텔레비전을 묵묵히 응시할 뿐 내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분들에게도 ‘왜’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아홉 살짜리가 들어서는 안 될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왜 무너졌는지를 알려줘 봐야 소용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 시점 이후로 내가 삼풍백화점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내가 오랫동안 지니고 살았던 의미의 공백은 신문 헤드라인에 나오는 ‘부실공사’ 같은 단어를 머리에 입력한다고 해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벌어졌을 때 거기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일찌감치 단념하면서 생겨난 투명한 장벽이 어린이였던 나와 세상 사이에 가로놓였기 때문이다.
김소영 에세이집 『어린이라는 세계』(2020)에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어린이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미세먼지가 정말 중국에서 오는 게 맞는지, 노동절에 왜 학교는 안 쉬는지, 학교에서는 왜 통일의 좋은 점만 가르치는지. 저자 김소영은 어린이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고민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단호하게 쓴다.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다”1). 김소영의 문장은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 경험했던 박탈을 위로해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 어린이를 장벽 너머에 두고 어른의 세계로 건너온 내게 강력히 촉구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세상이 어린이에게 보여줄 만큼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떳떳하든 그렇지 않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를 세상에 대해 정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권리자로 대하라고.

<2014년 생>의 공연 사진. 철제 의자 위에 백송시원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그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오른쪽 가슴에 윙크하는 표정의 캐릭터 얼굴을 붙였다. 다리 위에 모은 손에는 노란 리본을 묶은 줄을 쥐고 있다.

그런데 <2014년 생>은 이 문장을 딛고 한 발 더 나아간다. 어린이 배우로서 무대에 선 백송시원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인 사건들을 관찰하고 질문하는 비평가인 동시에 그 일을 바로잡기 위해 나서는 활동가이다. 백송시원은 질문할 권리가 있는 어린이와 대답할 의무가 있는 어른이라는 이항적인 도식 안에 머무르는 대신 자기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보완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공기관을 방문해 민원을 제기하고, 어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정정해준다. 인상 깊은 점은 백송시원의 활동이 정치적 의제가 논의되고 구성되는 과정에서 어린이의 위치성이 어떻게 배치되고 있는지를 감지하는 비판적인 시선 속에서 전개된다는 것이다. 가령 이 연극은 보행자 안전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러 온 어린이를 ‘기특하게’ 대할 뿐 응당한 절차를 거쳐 민원을 접수하지 않는 경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린이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시민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성인 중심 사회의 문제에 대해 백송시원은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는 좌석이 없는 관객 같아요”. 연극의 메타포를 경유한 이 발언은 객석에 앉아 있는 어른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금 연극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나요?
에이지즘의 자장이 기울어뜨리는 비수평적 관계성은 백송시원과 동행하는 비아동 배우 이나리와의 대화 장면에서도 미묘하게 묻어나곤 한다. 친절한 대답, 정서적 배려, 경청과 존중의 태도에서 총명한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의 수행이 불현듯 엿보일 때, 과연 어디까지가 필요한 수행이고 어디서부터가 불필요한 수행인지를 관객은 되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2014년 생>은, 관객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법한 비대칭성에 대한 감각을 미리 읽어낸 것처럼 ‘도움받는 어린이’와 ‘도와주는 어른’이라는 구도를 점차 역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 변화는 관람되는 무대와 관람하는 객석이 양분되어 있던 프로시니엄 구조에서 모두가 라운드테이블처럼 둘러앉게 되는 원형 구조로 이행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바닥에 글씨를 써가며 스쿨존, 어린이 보행자, 민식이법, 안전교육 등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안전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장을 거쳐 연극은 “뿍끅 대원”이 된 관객들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기후위기가 절정에 달한 미래로 날아가는 장에 도달한다. 기후위기는 어린이와 동물을 비롯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취약한 권리자들을 소외시키며 쌓아올린 성인-인간 중심의 문명이 맞닥뜨리게 된 결과이자, 미래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착취한 끝에 돌아온 대가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층 어두워진 미래의 극장에서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은 어른의 포지션에 있는 이나리이며, 그를 구조하기 위해 구명줄을 던지는 것은 어린이의 포지션에 있는 백송시원이다. 이 장면에 이르러 어른과 어린이의 위치성은 완전히 역전된다. 미래의 안전과 생존이라는 문제에 있어 가장 첨예하게 상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어린이라는 존재의 형상을 남기며.
미래의 극장에 던져지는 구명줄은 관객들이 함께 노란 리본을 매달았던 밧줄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외쳤던 시기를 지나 2014년에 출생한 어린이 활동가에게 밧줄을 넘겨주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른의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책임 능력을 다시 회수해가는 대신, 어린이의 곁에서 어린이처럼 상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 1995년 6월 29일에 한 번 멈췄던 시계를 다시 작동시키는 것. 내 손으로 묶은 노란 리본들이 공중에 늘어서는 광경은 지금이라도 그런 용기를 내보라는 다정한 명령처럼 들려왔다.

<2014년 생>의 공연 사진. 백송시원과 이나리가 하늘색 물백묵을 쥐고 바닥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은 각자 책을 펴놓고 바닥에 마인드맵을 그리는 중이다. 
            바닥에 글자를 쓰는 백송시원과 달리 이나리는 글자 쓰기를 멈추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의 뒤로 나란히 놓인 검은 철제 의자들이 있고, 각각의 의자 위에는 노란 리본이 묶인 긴 흰색 밧줄이 이어져 있다.

[사진: ⓒ이영대]

낭만유랑단 <2014년 생>
  • 일자 2023.10.6 ~ 10.14
  • 장소 전태일기념관 2층 울림터
  • 구성/연출 송김경화 협력 김도연, 김주희(단원고 생존자) 출연 백송시원, 이나리 조명 문동민 음악 루브 영상 이영대 그래픽디자인 제람 프로듀서 유병진 지원 4.16재단 제작 낭만유랑단
  • 관련정보 https://www.taeil.org/community/detail?id=899&division_cd=3
  1.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사계절, 2020,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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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김민조
협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비평가를 지향합니다.
동시대 퀴어, 페미니즘, 장애, 포스트휴먼 연극의 흐름에 대한 반응과 아카이빙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기와 공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기를 잘 못해서 큰일입니다.
wingmn1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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