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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볼트 민박집에서 연극적 진실을 묻다

<무릉도원>

이지현

제245호

2023.11.09

청경채 씨앗을 들고 다른 행성으로 튀다

연극 <무릉도원>의 무대 위에 존재하는 지구는 기후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지구 땅의 일부를 도려내어 공중에 올린 ‘프레시 에덴(Fresh Eden)’이라는 행성으로 이주했다. 오갈 데 없이 지구에 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은 프레시 에덴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디스토피아로 묘사된 지구에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미영과 친구 연희, 그리고 거의 유일한 손님이자 이곳에서 장기 투숙 중인 또 다른 친구 대가리꽃밭이 살고 있다. 이 민박집은 마치, 지구의 재난에 대비해 식물의 씨앗을 저장하는 ‘시드볼트(Seed Vault)’처럼 보인다. 미영은 브로콜리, 청경채 등의 씨앗을 보관하여 남아 있는 식물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시판되는 술을 구할 수 없자, 직접 키우는 채소로 술을 만들어 매일 밤 친구들과 함께 마신다. 그 옆에서 가수를 꿈꾸는 대가리꽃밭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술을 마시지”.
그러나 연희는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지구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미영과 친구들이 못마땅하다. 결국 연희는 새로이 살 곳을 찾기로 결심하고 홀로 지구를 떠난다. 언젠가 친구들과 다시 함께 정착할 행성을 찾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채소인 청경채 씨앗을 훔쳐서.

<무릉도원> 공연 리허설 사진. 빨간색과 흰색, 초록색, 파란색, 주황색 등 다양한 색깔의 패턴이 들어간 테이블보가 깔린 원탁에 미영이 앉아 있다. 
            미영은 귀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으며, 동그란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노란색 반소매 티셔츠에 화려한 색감의 세로줄무늬 점프수트를 입고 있다. 
            표지에 여러 식물이 그려진 책의 책장을 넘기는 중이다. 테이블 위에는 털실 뜨기를 한 가방과 안쪽에 빨간색 작은 알갱이가 들어 있는 유리병이 놓여 있다.

연희였던 글래스였던 연희

우주선을 타고 연희가 도착한 행성의 이름은 ‘플래닛 B’.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머리에 바라클라바를 둘러쓰고, 펑퍼짐한 카키색 옷을 전신에 두른 채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연희를 반긴다. 이곳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이름으로 정하는데, 이를테면 토마토, 라자냐, 흰개미 같은 이름들이다. 토마토와 라자냐와 함께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던 연희는 그들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글래스’로 정하고, 그렇게 그는 3천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플래닛 B의 주민이 된다.
이들은 한데 둥그렇게 모여 싱잉볼을 문지르면서 노래를 부른다. “We are circling, circling together. We are singing…….” 연희, 아니 글래스는 아직 이 공동체의 분위기가 적응이 잘 안 되지만, 암흑 같던 지구보다 훨씬 살기 좋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 희망을 가져보기로 한다.
그러나 행복해 보이기만 하던 이곳에도 숨겨진 비밀이 있었으니, 프레시 에덴과 달리 행성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던 이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플래닛 B에서도 배출물을 가장한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몰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글래스는 홀로 울고 있는 흰개미(라는 이름의 사람)를 발견하는데, 흰개미는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 이 행성의 골칫거리가 되어가는 뉴트리아가 안락사라는 명목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플래닛 B의 실체를 알게 된 글래스, 아니 연희는 살 만한 다른 행성을 찾았다며 이곳을 떠난다. 그리고 연희가 향한 행성은 바로, 자신이 떠나온 지구였다. 다시 돌아온 민박집에는 예전 모습 그대로 미영과 대가리꽃밭이 있었고, 대가리꽃밭은 곧 세 명의 관객이 기다리는 공연을 앞둔 참이다. 연희는 미영에게서 훔쳐 갔던 청경채 씨앗을 돌려주고, 친구들은 연희를 따뜻하게 환영하고 예전처럼 신나게 술을 들이켜면서 극은 마무리된다.

<무릉도원> 공연 리허설 사진. 검은 벽과 바닥의 무대. 커다란 망토처럼 보이는 카키색 옷을 입고, 
            머리에는 청회색의 바라클라바를 쓴 세 사람이 손바닥을 아래로 가게 쫙 펴고 양팔을 벌린 채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의 앞에는 금속 재질의 싱잉볼이 놓여 있다. 노래에 심취해 있는 두 사람과는 달리 연희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본다.

흰개미의 눈물과 연극적 진실

연극의 내용은 지금까지 묘사한 바와 같다. 그런데 50분가량의 공연 시간 동안 이 작품은 전개와 구현이라는 면에서, 창작자들이 의도했을 관객과의 의미 있는 소통을 이루어낸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작품의 전개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연희의 마지막 선택과 그 이유이다. 연희는 환경이 나빠진 지구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았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홀로 우주선을 타고 떠나왔다. 그런데 플래닛 B에서의 양면성을 마주한 뒤, 다른 행성들에 대한 가능성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플래닛 B를 떠나는 데 대한 설명은, 플래닛 B에서도 똑같이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이미 뉴트리아로 뒤덮였기 때문에 살기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 장면에서 글래스였던 연희는 뉴트리아를 사랑했던 흰개미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그 인간적 면모에 공감하는 것처럼 그려졌는데, 정작 떠나는 이유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회의가 아닌 뉴트리아의 잠식을 드는 점은 매우 의아한 부분이다.
한편, 작품의 구현에서 의문시되는 것은 도식적이고 피상적인 표현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무대 위 배우들은 거의 모든 대사를 말할 때 의도적으로 무대의 정면으로 몸을 돌려 객석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는 어떤 새로운 의미를 의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잘 들리고 잘 보이게 하기 위한 전통적인 무대 사용 방법을 도식적으로 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가 잘 들리고 잘 보이는 효과를 느끼기보다는 다소 인위적인 풍경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배우들의 대사와 행위가 대체로 피상적으로 구현된다. 한 가지 예로 친구들이 민박집에 모여서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장면에서, 배우는 술병의 뚜껑이 잠긴 채로 술을 따르고 마시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해서 피상적인 표현들이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려는 설정 혹은 다른 내밀한 의도를 가졌다고까지는 보기 어려우며, 그저 이 행위들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부각시킬 뿐이다.
관객들이 무대 위 시공간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몰입하거나, 상상을 통해 개입하거나,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은 무엇일까? 만일 그 감각적 순간들이 교차하는 접점을 연극적 진실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이날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연극적 진실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릉도원> 공연 리허설 사진. 미영과 연희가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정면을 보며 서 있다. 
            연희는 노란색 반소매 티셔츠에 화려한 색감의 점프수트를 입었으나, 미영은 검은색 긴소매 후드티에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

[사진 출처: 연극 <무릉도원> 리허설]

<무릉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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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이지현
연극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 illa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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