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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마주보기의 충동

조음기관 <2023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텍스트>
김연재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

심세연

제249호

2024.01.25

이번 호 [리뷰]에 게재된 글은 ‘2024년 웹진 연극in [리뷰] 코너 필자 공모’의 선정작입니다. 공모에 선정된 필자는 2024년 한 해 동안 [리뷰] 코너의 고정 필진으로 활동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너무 좋은데 뭐가 좋은지 왜 좋은지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런 극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걸까? 아니, 굳이 극이 아니더라도 그런 작품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어야지만 지금 이 글이 쓰일 수 있다. 뭐가 좋은지, 왜 좋은지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좋음의 감각에 대해서만이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텍스트>는 이지형이 만든 인형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인형을 활용하는 작업을 작가 한 명씩 맡아 30분 내외의 입체낭독을 올리는 형태였다. 그 중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는 김연재가 극작을 하고, 배선희가 입체 낭독 연기를 한 공연이다. 연극이 시작될 때 인형과 나란히 누워 있던 배선희는 움직여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 마지막 극의 경우 관객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관객들은 주로 배우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군중을 이루었다. 심지어 안내 사항에는 배우가 움직이는 동선은 가리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배선희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보면대 주위로 모여들었다. 조금 뒤, 배선희는 보면대에서 사선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군중을 이루던 사람들은 역시나 이번에도 우르르, 배선희를 향해 갔다. 배선희가 어디로 움직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왜곡된 기억, 혹은 심지어는 말소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배선희가 군중들의 한가운데로 움직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람들은 배우를 위한 길을 지어주듯이, 그리고 극에 얌전히 참여해야만 한다는 듯이 옆으로 쫙 비켜섰다. 물론 나도 그 비켜선 사람 중 하나이므로,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기는 힘들다.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의 공연 사진. 짧은 커트머리에 밝은 점이 무작위로 섞인 검은 니트 상하의를 입은 배우 배선희가 맨발로 연기하고 있다. 발을 앞뒤로 벌려 무릎을 살짝 굽히고 몸을 조금 숙인 채 양팔을 엉거주춤 벌리고 있다. 관객들은 그를 마주보고 나무 바닥에 쪼그리거나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집안에서만 지내던 마르타가 라자로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좇는다. 사실 배선희가 만나러 가는 것이 라자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는 도중 마르타는 죽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죽은 사람들이 라자로의 행방을 알려주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들이 하는 말은 절대로 정확한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라자로를 따라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는 배선희는 관객들 앞을 지나 어둠 속으로 향했다. 배선희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만을 비추어 낭독극의 대본을 읽었다. 완전한 암전이 된다는 사전 공지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짜 암전을 생각했고, 그래서 부러 배선희의 얼굴을 보지 않고 캄캄한 곳을 보기를 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배선희의 얼굴을 보는 것은 충동이다. 부러 보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얀 낭독극 페이지를 반사하는 그 빛은 배선희의 얼굴을 하얗게 비춘다.
이로 인해 나는 낭독극만이 가질 수 있는 연출상의 특징을 생각하게 된다. 낭독극은 기본적으로 모든 지문을 읽는다. 해당 극의 경우에, 지문은 녹음된 극작가 김연재 본인의 목소리로 재생된다. 나는 여기서 연극 자체에 극작가가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였다. 극작가는 언제나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다. 실제로 항해를 하는 것은 연출과 배우들이다. 지도를 그린 사람은 배에 타지 못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이 낭독은 극작가로 하여금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극작가는 목소리로 배우의 연기에 참여한다.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의 공연 사진. 빼곡한 계단으로 이루어진 빈 객석을 바라보며 무대에 서 있는 배선희의 뒷모습이다.

연극화될 수 없는 극본에 대해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낭독극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가 아닌 ‘연극’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는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김연재 작가의 다른 희곡 중 하나인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을 읽으며 유사한 생각을 했다. ‘교수’, ‘조교수’, ‘하수구공’, ‘산불감시원’ 등 어떤 직업의 이름으로만 배우의 이름들이 설정되어 있으며, 그들은 각각 그 역할을 행하면서 다른 역할로 분하기도 한다. 이처럼 역할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무대 지시문들은 절대로 낭독이 아닌 형태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연극화될 수 없는 대본, 이는 멸칭인가? 그렇지 않다. 어떤 연극에서는 지문을 모조리 다 읽는다. 그것이 배리어컨셔스의 차원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할지라도, 지문을 읽으면서도, 지문의 행위대로 하지 않는 배우. 그리고 지문은 전혀 읽고 있지 않지만, 시각적 형태로만 인지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배우는 실재한다. 물론 재미있는 지점이라면, 각도에 따라 배우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경우, 우리는 제약에 갇힌 독자 마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만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다. 배우의 얼굴이 보이고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치 희비가 갈리는 사람처럼 굴기도 한다. 감정에 완전히 집중했다가, 그 집중이 풀어지는 것이다. 배선희가 인형에 몸을 끼우는 순간에 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 순간은 매우 길었고, 어쩌면 실제로 길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배선희의 얼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길게 느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 눈을 오래 마주치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배우가 내 옆에 앉을 정도로 가까운 객석이라고 하더라도, 무대 중앙에 배우가 올라가 연기를 하며 나를 보면 나는 얼마든지 눈을 형형하게 맞출 수 있다.
또한, 배우에게 많은 것을 의탁하는 대본을 생각한다. 배우가 최대한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니 매우 정확한 표현, 그것도 배우가 해석한 대로 해야만 한다면 그 배우의 능력은 매우 출중해야 할 것이다. 마르타 혹은 정확히 말하자면 배선희는 자꾸만 역할을 바꾸어 가며 대사를 했다. 배선희는 마르타가 되기도 하고, 까마귀가 되기도 하고, 죽은 사람들이 되기도 했다. 배선희는 라자로가 되기도 했다. 인형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체가 된 배선희는 인형에 몸을 끼우고 한 발짝씩 나아간다. 그 과정은 굉장히 지난한 것으로 보였으며, 겨우겨우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배선희의 얼굴이 간간이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에 서 있었다. 배선희의 표정은 마치 무언가에 매우 열중한 사람처럼 보였다. 인형을 움직이는 데 열중하는 이 사람의 모습을, 내가 봐야만 한다니. 볼 수 있게 되다니. 마치 뭔가를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의 공연 사진. 검은 무대 위에 여러 개의 나무토막으로 조립된 인형이 눕혀져 있다. 성인의 실제 크기와 유사한 인형의 표면은 고르게 다듬어지지 않아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다. 검은 바닥엔 인형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들이 흩뿌려져 있다. 배선희가 누운 인형 뒤쪽으로 쪼그리고 앉아 인형의 오른 팔꿈치를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을 인형의 손과 포개어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댄 채 눈을 감고 있다.

[사진 제공: 조음기관 / 촬영: Sihoon Kim]

조음기관 <2023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텍스트>
  • 일자 2023.10.26 ~ 10.27
  • 장소 SAC아트홀
  • 연출/구성/미술 이지형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추수연 작가 안정민, 신효진, 김연재 배우 박서현, 정윤진, 김별, 배선희 조연출/무대감독 곽예진 조명디자인 김효민 음악감독 백하형기 영상감독 최강희 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제작 조음기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_공연예술창작산실, SAC아트홀
  • 관련정보 https://www.instagram.com/articulator_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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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연

심세연
문학과 연극을 포함하는 예술 텍스트에 관심이 있다. celbb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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