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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것과 들리는 것

생존자프로젝트 <맆소녀>

심세연

제250호

2024.02.29

공연 예술을 볼 때 우리의 시야각은 어때야만 하는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모두 관람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선을 어디에 집중시켜야 하는가?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우리는 보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고 듣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다. 그 안에서도 세분화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로 인해 우리의 시야각에서 탈락되도록 요청된 부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어떤 흔적은 우리가 아무리 고개를 돌리며 찾아보려고 하더라도 찾아지지 않을 수 있다. 탈락은 어쩌면 창작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요소일 수 있다.
<맆소녀>는 표현적 면과 서사적 면 모두에서 의도적으로 어떤 부분들을 탈락시킨다. 우선, 아이들에 대한 묘사이다. 이 극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관객에게 들리지 않는다.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고 있을 아이의 목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맆소녀>는 어떤 면에서 언어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인도어와 한국어, 그리고 서로의 언어를 할 줄 모르는 경우에는 영어가 그 소통 수단으로 쓰인다. 극 중에서 두 개 이상의 언어가 한 장면에 같이 등장할 경우, 때에 따라 그 표현 양상은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두 언어를 모두 할 수 있는 인물이 통역을 해주되, 관객에게는 그 통역의 과정이 모두 한국어로 들린다. 어떤 경우에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모국어를 배워 띄엄띄엄 말하는데, 문법적으로 분절된 상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맆소녀> 공연 사진. 연영과 까이가 나란히 무릎을 세워 앉은 자세로 서로의 눈을 보고 있다.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검은 민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연영은 양손의 검지를 펴서 바닥을 가리키고, 머리를 길게 땋아 묶고 가장자리를 따라 붉은색 나뭇잎이 수놓아진 하얀 옷을 입은 까이는 양손의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있다. 그 옆에 검은색 나무 벤치와 키가 작은 식물들이 있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물론 이 자체로도 할 수 있는 말이 많지만, 아이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농인 까이의 표현과 어떤 면에서 겹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함이다. 극의 초반까지는 아이의 목소리가 모두 무음 처리되었기 때문에, 까이가 농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사실 언어에 대한 이야기보다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극의 후반에서 마을의 어른들이 분노에 차 움직이는 장면을 볼 때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극 중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까이가 아이들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목소리가 모두 전혀 들리지 않음을 함의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시 언어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수어를 배우기 이전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까이의 언어는 몸의 표현일 수 있다. 극 중 까이의 행동을 연영이 자신이 이해한 대로 다시 말로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통역 혹은 번역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까이의 몸의 표현은 어떻게 보면 모두의 모국어이자 모두의 외국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언어를 한국어로 다시 듣는 것은 내 이해와 내게 들리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이것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동학대, 성폭력, 그리고 방임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이 극은 결말부에 도달하게 되면 무엇이 진짜로 있었던 일이었는지를 흩뜨린다. 연영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처음에 변호사로 나타났던 인물은 사실 상담사였던 것으로 드러난다. 물론 사실을 밝히기 위해 까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었을지, 아니면 까이가 존재했으나 그 특성들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닌지, 혹은 연영이 정말로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하나씩 따져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관객에게 체험된 연영과 까이의 이야기는 우리가 믿기로 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연영의 병명이 밝혀지는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 전의 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맆소녀> 공연 사진. 무대 뒷벽에는 색이 바랜 커다란 원과 사각형, 수직과 수평의 직선들이 겹친 조형물이 걸려 있다. 한 아이가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웃고 있고, 다른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한쪽 방향을 향한 채 양팔을 위로 뻗어 주먹 쥔 두 손을 붙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렸고 천연염색을 한 원피스에 바지를 받쳐입었다. 벤치 옆쪽으로는 한 남자아이가 앉아 웃고 있다.

<맆소녀>에서 진실이라고 생각될 만한 것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완전한 해소라고 느낄 수는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관객에게 ‘트리거 워닝’의 트리거란, 그것이 언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이 얼마만큼의 강도로 다가오는지도 알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그렇다면 이 ‘트리거 워닝’의 민감한 소재들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이 극의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민감한 소재들은 꽤나 적나라한 형태로 극 속에 표현되며, 그 표현으로 인해 관객들은 체험하지 않은 고통에 대한 체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기억에 없는 것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이다.
만약 이 극의 서사에 논리라는 것이 있다면, 관객들은 그 논리를 따라가지 않거나 혹은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하자면, 까이의 이야기와 연영의 이야기를 겹쳐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사적 면에서, 이 극은 관객에게 고통을 체험하게 하므로, 개별 사건들을 그대로 놔두게 하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물론 모든 예술 작품에서 수용자의 태도나 인지는 각각의 고유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맆소녀>는 닫힌 결말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실은 그 과정 중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말하는 것이 언제나 들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탈락을 낳기 마련이다. 그 탈락을 결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빈 부분에서 각자의 언어가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맆소녀>에서는 ‘달’이 모든 것을 아는 존재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렇지만 연영이 그렇듯, 모든 상황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리고 결국에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다양한 정체감 가운데서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관객은 연영과 까이의 만남에 대해 얼마든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설령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확정된 상태에 놓이기 위한 하나의 시도일 수도 있다.

<맆소녀> 공연 사진. 티셔츠나 남방, 면바지 등 평범한 일상복이지만, 하얀색이나 미색 등 밝은색 천에 여러 색의 화려한 물감을 흩뿌린 듯한 의상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 손에 종이컵을 들고 팔을 높이 뻗어 건배하고 있다. 모두 크게 환호하는 모습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스마트폰을 장착한 셀카봉을 들고 있다. 그 뒤로 종이컵을 들고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연영이 서 있다.

[사진 제공: 생존자프로젝트]

생존자프로젝트 <맆소녀>
  • 일자 2024.2.16 ~ 2.25
  • 장소 대학로극장 쿼드
  • 작·연출 본주 조연출 김정호 출연 권미나, 김태현, 김한별이, 김현섭, 문현정, 서성영, 성유빈, 엄채윤, 윤진희, 이다연, 이민주, 이승헌, 정의준, 최다애, 현채아 기획 오쇼오소 무대미술 남경식 무대감독 박인환 조명 김소현 음악·타블라 정명철 음향감독 박진호 사운드 디자인 최다애 영상 만다픽처스 조명오퍼레이터 박주혜 음향오퍼레이터 우혜주 홍보디자인 Bng커뮤니케이션 티켓매니저 문민화 제작 생존자프로젝트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0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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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연

심세연
문학과 연극을 포함하는 예술 텍스트에 관심이 있다. celbb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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