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위해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체공녀 강주룡>

장지영

제251호

2024.03.28

2024년 3월 19일, 파주 용주골의 성매매 집결지. 두 명의 여성이 아파트 3층 높이의 전봇대에 올라갔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의 폐쇄를 놓고 파주시와 성 노동자들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파주시는 집결지 초입 주차장 인근 전봇대에 CCTV를 설치하려 했고, 이에 반대하는 성 노동자 두 명이 전봇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렇게 적는 오늘이 2024년 3월 21일이니, 바로 그제의 일이다.1)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인 평원 고무공장의 고무 직공 강주룡. 그가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앉은 것은 1931년. 그로부터 10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누군가는 오늘도 높은 곳에 오른다. 그를 바라본다. 거슬러 올라가, 강주룡을 바라본다.

비 온 후의 대나무 순처럼

무대에 강주룡이 오른다. 아니 강주룡‘들’이 오른다. <체공녀 강주룡>은 강주룡이라는 한 인물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스무 살에 혼인하여 남편과 함께 독립군이 되고,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고, 홀로 평양에 와 고무공장의 직공이 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파업을 하고, 을밀대에 올라 노동해방을 외치고, 감옥에 갇히고, 죽어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사람 강주룡을, 이 공연은 여럿이 나눠 맡는다. 주룡은 주룡‘들’이 된다. 공연은 주룡이 혼자 있는 순간을 만들지 않는다. 많은 주룡들과 동지들이 항상 무대에 있고, 그들은 주룡을 바라봐 준다. 혼자인 시간이 많았던 고단한 삶에 손을 보태어주듯, 주룡은 항상 함께다. 객석의 관객들도 주룡의 소리에 추임새를 넣는다. 나는 주룡을 함께인 존재로 만들어낸 것이 이 공연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라 느꼈다. 그것은 마치 주룡이 우리와 함께한 것처럼 우리도 그 곁에 서겠다는 결심 같았다.

<체공녀 강주룡>의 공연 사진. 양손으로 회색 보따리를 품에 안은 한 여성이 정면을 바라본다. 그의 뒤로 흐릿하게 드러난 사람들이 그를 향해 박수한다. 그들은 모두 무채색 계열의, 채도가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다.

‘기억이라는 것이 비 온 후의 대나무 순처럼’ 솟아나기도 한다고, 무대 위의 주룡이 말한다. 대나무 순은 좀 뾰족하게 생겼다. 커다란 대나무 곁에서 뚫고 나오듯 한 모양새로 자라난다. 그렇게 대나무 순처럼 단단한 지면을 뚫고 나오는 것은 주룡의 기억만은 아니다. 그의 삶인 동시에 짐작할 수 없는 모양새로 꿋꿋하게 자라나는 사람의 의지이기도 하다. 주룡은 매일 이만하면 떳떳하기 위해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았다. 식민지인, 여성, 노동자라는 여러 겹의 억압 속에서도 주룡은 비 온 후 대나무 순 같았다. 비만 온다면 언제든 고개를 들고 뾰족하게 솟아나는 대나무 순 같았다. 아무리 잘라내도 잘리지 않았다. 나를 지키려 칼을 맞았던 동지를 위해, 아끼는 그림을 나눠주었던 동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주룡은 언제든 솟아났다. 경찰이 끌어 내리고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아도 솟아났다. 그것이 그를 떳떳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옆에 다른 대나무 순들이 함께 솟아나도록 만들었다.
이 공연의 원작인 박서련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은 강주룡의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서술한다. 소설 속에서 주룡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생각한다’, ‘말한다’, ‘걷는다’. 이것은 아마 그의 이야기가 정제된 채로 반추될 과거형의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야 하는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닥소리의 공연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 낸다. 공연예술의 본질이 관객의 눈앞에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공연은 거기서 더 나아가 강주룡이라는 인물을 관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 데려다 놓는다. 마치 인물과 관객 사이에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강주룡을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낸다. 관객의 귀에 내리꽂히듯 시원한 소리가, 무대의 연주가 그렇게 만든다. 객석의 추임새가 그렇게 만든다. 공연은 그렇게 강주룡을 여기에 살게 한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임을 들려준다.

<체공녀 강주룡>의 공연 사진. 푸른 조명이 가부좌를 틀고 일렬로 앉은 여성들을 비춘다. 이들은 앉은 상태로 서로 팔짱을 끼고, 상반신을 앞으로 숙이거나 얼굴을 찌푸린 채 괴로워한다.

듣는 자 없다 해도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할 건데?”
아니,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할 건데?”라는 말은 언제까지 할 건데?
익숙한 말이다.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만 바뀔 뿐이다. ‘그 이야기’는 용산 참사이고, 세월호이고, 이태원 참사이고, 일하다 죽은 많은 사람이고, 차별 금지법이고, 장애인 이동권이다.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찌 이 이야기를 멈춘단 말인가. 이렇게 소리 높여 이야기했는데도 들어주지 않는데, 어떻게 입을 다문단 말인가.
수나우라 테일러는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를 인용하여 말한다. ‘목소리 없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듣지 않으려 하기에 들리지 않게 된 자들이 있을 뿐이라고.2) 우리는 늘 말하고 있었다. 부당하다고, 옳지 않다고. 목소리 없었던 적은 없다. 그런 말은 없다, 그런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듣지 않으려는 자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없는 것인 양 쳐버린다 해서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목소리는 없다,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신 우리는 누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는지, 그런 목소리가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저 높은 곳에 올라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작은 뜻을 모아서 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3)는 주룡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아주 작은 것에서 아주 큰 것이 난다. 어쩌면 작은 것은 큰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작은 것도 큰 것도 없다. 물리적 크기가 없는 목소리처럼. 백여 년 전 을밀대에 올라 외친 주룡의 말들, 파업단 동지들의, 모든 노동하는 여성들의 호소를 지금까지도 우리는 반복하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아직 그 말을 듣지 않고 있으므로.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절대로 지겨운 것이 되지 않는다. 절대로 끝난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강주룡을 당시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중첩되게 하는 것이,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4)을 보여주는 것이 값진 이유다.
다시 말해본다. 들으려 해야 들린다. 보려 해야 보인다. 공연은 “저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으로 끝난다. 극장을 가득 메우는 소리꾼의 목소리는 지금도 높은 곳에 올라야 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바로 그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가리키는 손을 따라 바라본다. 거기에 있는 사람을. 그 사람 안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그 사람 곁에 서 있는 또 많은 사람을, 그 사람을 거기에 올라가게 만든 무언가를. 그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앉는다. 을밀대 아래에, 어느 크레인 아래에, 전봇대 아래에. 그리고 목청을 높여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면 그의 목소리는 절대로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

<체공녀 강주룡>의 공연 사진. 무대에 2.5미터 가량 되는 사다리꼴 모양의 난간이 놓였다. 한 명이 난간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노래하고, 그 아래에 여섯 명의 인물들이 한 손은 가슴에, 다른 손은 주먹 쥐어 허공을 향해 뻗고 있다.

[사진: ⓒFOTOBEE 양동민]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체공녀 강주룡>
  • 일자 2024.3.8 ~ 3.17
  •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연출 이기쁨 원작 박서련 각색 홍단비 작창 바닥소리 작곡·음악감독 김승진 출연 강나현, 김은경, 임지수, 정지혜, 이승민, 이해원, 박소영, 이용전 연주 김승진, 윤영철, 설동호, 이신애, 양성태 안무 김봉순 무대·소품 김미경 조명 신동선 음향 강미정 의상 오수현 분장 정서진 무대감독 박정우, 오승연 조연출 김선빈 기획 전지혜, 임유민 그래픽디자인 이제야1호점 프로필사진 나승열 공연사진 FOTOBEE 양동민 포스터사진 김부영 주최·제작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8040
  1. 유혜연, 「‘생존권 전쟁’ 상처 깊어지는 용주골… 또 한번 찬바람에 맞서다」, 『경인일보』, 2024.3.19.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0319024380214
    용주골 강제 폐쇄와 관련된 기사 모음은 성노동자 해방운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티스토리 블로그 (https://sexworkproject.tistory.com/)에서 볼 수 있다.
  2.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오월의 봄, 2020, 127쪽.

  3. 박서련, 『체공녀 강주룡』, 한겨레출판, 2018, 188쪽.

  4. <체공녀 강주룡> 프로그램북, 원작자 인터뷰 중.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장지영

장지영
드라마터그.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은 더 많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