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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 대한민국 청년 배우 잔혹사

프로젝트 520 <현대사회 청년 고독사에 관한 원인 분석: 고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의자

제251호

2024.03.28

칵테일 바 ‘을지로 V(이하 V)’가 영업을 하지 않는 월요일 저녁, 문이 열릴 때마다 김경은 연출은 “공연을 보러 오셨나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저 불이 켜진 V 간판을 보고 4층 옥상까지 걸어 올라온 누군가는 공연을 보러온 건 아니지만 우연히 프로젝트 520의 창작극 <현대사회 청년 고독사에 관한 원인 분석: 고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이하 청년 고독사)>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는 레트로 감성의 주점이 청년 고독사 현장인 옥탑 자취방으로, 가게를 가득 채운 힙한 중고 인테리어 소품들이 고독사 현장을 치우고 남은 잔재로 뒤바뀌는 언캐니1)한 생경함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이브 공연을 할 법한 카펫이 깔린 작은 무대 옆으로 관객과 구분이 되지 않는 차림새의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관객이 들어올 때부터 배우들은 조도가 낮은 어두운 술집 조명 아래서도 교수가 떠안긴 연구에 치여 밤을 새우고 있다. 형광등 조명이 켜지고, - 배우 동선을 위해 관객 의자 옆으로 치운 딱딱하게 굳은 빈 화분처럼 - 생기 없는 연구원들의 얼굴들이 드러나면, 이들이 둘러앉은 탁자와 공간은 도시계발학과 연구실이 된다.

<청년 고독사>의 공연 사진. 술잔과 술병이 들어찬 장과 여러 소품들이 늘어진 칵테일 바의 전경. 사진의 가운데 4인용 탁자가 놓여있고, 두 인물이 각자 노트북과 태블릿PC를 보며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의 뒤쪽으로 다른 인물이 초록색 천이 덮인 낮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인물들의 왼편에는 바닥보다 약간 높은 단이 마련되어있는데, 그 위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벽에는 새빨간 커튼이 걸려있다.

공연 시작을 알리듯 은지의 휴대폰이 울린다. ‘현대 사회 청년 고독사에 관한 원인 분석’을 주제로 과제를 준비하라는 교수의 지시다. 밀린 과제가 많아 거절 의사를 밝히지만 소용없다. 청년 고독사 연구에 도시계획 접근이 왜 필요한지 납득하지 못했지만, 연구비를 따야 연구실 운영이 가능하지 않냐는 교수의 반문에 입을 다문다.

고독사의 이유를 찾아 연구 대상의 잔혹사를 복원할수록 선후배 사이인 연구원들끼리도 굳이 공유하지 않는 사적인 흔적이 자꾸 겹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그 흔적이란 자신이 남들에 비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징표 같은 것이어서 혼란스럽다. 연구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걸 확인한 이후 ‘영혼을 갈아 넣는’ 연구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낙오 이후 닥칠 상황에 대한 공포가 현실처럼 엄습하면, 운영비 마련을 빌미로 개연성이 적은 연구를 떠안기는 교수의 강요를, 세미나에서 연구를 따내는 능력자의 호의나 권리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블라인드가 없는 V의 홑창으로 찬 기운이 조금씩 들어온다. 연구원들은 ‘노동 강도나 시간을 따지면 최저 임금도 못 받는 처지에 객사할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연구원들의 지난한 과정은 포스터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긴 시간과 노동을 감내하는 배우들과 닮았다. 연기하는 내내 등퇴장을 하느라 잠글 수 없는 문으로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다. 역으로 배우들이 퇴장했을 때 누구를 마주칠지 모를 일이다. 유일한 스태프인 김경은 연출은 바 안쪽 바텐더 석에서 오퍼를 보고 있다. 관습적 공연장이라면 겪지 않을 불편하고 낯선 상황이 겹친다. 그녀는 올해 하반기 지원을 받으면 제작 여건상 줄인 고독사 연구 과정을 보강해, <청년 고독사>를 공연장에서 올리고 싶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불편한 낯선 상황을 견뎌야 한다.

<청년 고독사>의 공연 사진. 카펫이 깔려 있는 공간의 모습. 벽을 따라 빨간 커튼 앞에 여러 개의 쿠션이 놓여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다른 쪽 벽에는 스크린이 내려와 있고, 『현대사회 청년 고독사에 관한 원인 분석: 고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자가 영사되고 있다. 스크린 앞에는 둥그렇고 작은 원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뒤로 화분, 스토브 등의 소품을 두었다. 스크린 옆에는 스탠드형 게임기와 의자가 놓여있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간략하게 정보를 담은 포스터는 보고서 앞 장과 다르지 않다. 배역과 동일한 배우들과 연출 이름에 기명날인을 했는데, 연구자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청년 고독사 문제를 진지하게 준비했다2)는 반증이다. 배우(이자 연구원)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기 위한 오체투지는 경력이 적은 젊은 극단이 연극을 올리기 위해 겪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교수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 온다. 지원비가 적어 연구를 취소한다는 짤막한 통보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청년 고독사라는 난해한 주제를 다루는 연구(혹은 연극)의 결말로 현대사회의 계급 논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처럼 정확하게 포착한 마무리가 있을까. 임대를 놓기 위해 청년 고독사 현장을 재빠르게 치우듯 V에서 연극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 연구가, 연극이 끝났다. 지수는 문을 향해 서 있다. 두껍고 단단한 저 방화문을 박차고 나가면 연구실, 무대, 극장, 여길 무엇이라 부르든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연구원(혹은 배우)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 남아 있는가. 침묵 속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진다.

막이 내리고 문이 열리자 한 층 아래 노래주점 보림7080에서 악쓰듯 부르는 노래가 옥상 스피커를 타고 들어왔다. 절규하는 방언처럼 들리는 노래가 ‘현실을 직시하고 신의 계시를 따르라’는 테베3) 시민들의 충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먹해진 귀를 막고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청년 고독사>가 상연된 을지로V의 복도 사진이다. 노란색 벽면에 ‘보림 7080’이라는 금색 간판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글자의 좌우로 높은음자리표와 음표들이 그려져 있다. 간판의 아래에는 공연 주관 단체, 연출자와 출연자, 공연 정보가 적힌 <청년 고독사>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포스터의 오른쪽에 걸린 우편함에는 우편물과 홍보 전단지가 가득 차 있다.
사진 제공: 필자

[사진 제공: 프로젝트520]

프로젝트520 <현대사회 청년 고독사에 관한 원인 분석: 고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일자 2024.3.1 ~ 3.4
  • 장소 을지로브이
  • 공동창작 김경은, 김성민, 김지수, 오은지 연출 김경은 출연 김성민, 김지수, 오은지 자문 서봉군(KISTI) 주최 을지로브이 주관 프로젝트 520
  • 관련정보 https://playticket.co.kr/nav/detail.html?idx=2878
  1. 환상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 혹은 상상 속에 있던 것들이 눈앞에 실재화 되는 순간 환기되는 감정, 섬뜩한 낯섦.
  2. 김지수 배우는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후일담을 남겼다. “리서치를 할수록 정의 내리기 어려웠고, 1인 가구 연속 토론회(고독사, 그 현장에 가다)에 참여했지만 그 많은 참여자 중 청년은 5%도 되지 않았다. 토론회에 참여하며 기자, 감독, 특수청소업체 대표, 연구원 등 전문가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우리 마음대로 고인분의 방을 보고 삶을 들여다보는 게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진, 영상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주최 측의 결정에 지난 시간이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다”.
    https://www.instagram.com/p/C4Qa0jhPQ2a/?utm_source=qr&img_index=1
  3. 오이디푸스 신화의 배경 도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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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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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산재일기>(23.04)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이 의자는 산재 앞에 누구도 제3자일 수 없다는 경고인 동시에 관객의 시선이 관습에 머물지 말라는 의도라고 봤다. 연극이 동사라면 ‘이 의자’는 무대에서 말하는 순간 ‘잇자’가 될 수도 있다. gubos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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