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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기침하면 예술가는 폐렴을 앓는다?

입장은 달라도 의지가 있다면

고재열_시사IN문화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4호

2012.07.19

지난 7월13일 저녁 ‘제14회 서울변방연극제’ 기획자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7월15일 반포지구 한강둔치 무대에서 공연될 예정이던 <모래>가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갑작스런 허가 취소로 무산될 위기라는 것이었다.

지난 7월13일 저녁 ‘제14회 서울변방연극제’ 기획자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7월15일 반포지구 한강둔치 무대에서 공연될 예정이던 <모-래>가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갑작스런 허가 취소로 무산될 위기라는 것이었다. 세빛둥둥섬 앞에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는데, 서울시가 세빛둥둥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세빛둥둥섬 사업자와 서울시가 갈등이 커져서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 한강사업본부 쪽의 입장이었다고 했다.

한강사업본부가 형식적으로 내건 이유는 ‘장마에 따른 잦은 비와 반포공원 침수로 지반이 약화되어 기반시설 파손 및 이용시민 불편이 예상되어서’였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라면 공연 직전이 아니라 신청을 받았을 때 판단해서 불허했어야 한다. 변방연극제 기획팀은 공연장 주변 사진을 보내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려왔다. 서울시가 내건 이유는 구실이고 분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공연을 취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 기침하면 예술가는 폐렴을 앓는다?

기사로 취재해서 문제를 지적하면 좋겠지만 시사IN은 시사주간지이기 때문에 이를 취재해서 보도하면 공연은 못 올리고 그 사연만 전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박원순 시장이 트위터 멘션으로 온 민원을 바로바로 해결해 주고 있다는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개 멘션을 보냈다. 이런 내용이었다.

“@wonsoonpark 박원순 시장님 세빛둥둥섬에 대한 단호하고 합리적인 조치,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잘못하면 왜 예술인들이 피해를 봐야 할까요? 세빛둥둥섬 앞 둔치에서 일요일 공연하려던 변방연극제 작품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네요.”

“@wonsoonpark 한강 세빛둥둥섬 앞 둔치에서 15일 공연하려던 변방연극제 <모-래>는 무분별한 한강 개발에 대해 성찰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강사업본부에서 일방적으로 취소하였다네요. 왜 공무원들은 시청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나요?”

효과가 있을까? 있었다.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연락이 왔다. 변방연극제 측에서 들은 바를 전했더니 한강사업본부에 연락해서 알아보겠다고 했다. 서울시가 직접 연락을 했는지, 아니면 트위터 멘션을 모니터링하다 발견했는지 서울문화재단도 곧 상황을 파악하고 변방연극제 담당자와 연락을 취했다.

비서실로부터 곧 연락이 왔다. 비서실은 한강사업본부의 입장을 전했다. 폭우로 한강둔치가 침수되었고 팔당댐이 방류되어 추가 침수 위험이 있고 주말에 비가 예상되어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공연에 사용하려는 모래의 양이 25톤이나 되는데 세빛둥둥섬 측과 주변 준설문제로 다투고 있는데 공연에 쓰인 모래가 유입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절충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 토요일이 되어 다시 연락이 왔다. 앞서 말한 위험성은 있지만 공연팀이 이에 대비하고 공연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보상한다는 약속을 하면 허락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공연팀은 이를 수용했고 일요일 저녁,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비가 조금 내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공연으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공무원이 기침하면 예술가는 폐렴을 앓는다?

트위터에 이런 내용을 전했다. 자칫 서울시와 세빛둥둥섬 사업자의 갈등 와중에, 변방연극제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을 당할 뻔한 내용을 전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빠르게 대처해 공연을 성사시켰다고 칭찬했다. 공무원들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진행했기 때문에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변방연극제 측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왜 서울시를 홍보해주느냐는 것이었다. 변방연극제의 입장은 당연히 공연되어야 할 내용이 서울시의 공연한 트집으로 취소될 뻔 했다가 다시 공연된 것일 뿐인데 그것이 칭찬할 만한 일이냐는 것이었다. 변방연극제 입장에서는 그런 지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같은 서울시에 속해 있지만 비서실 입장 다르고 한강사업본부 입장 다르고 서울문화재단의 입장이 다르다.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책임져야 할 내용도 다르다는 것이다. 시장의 민원해결 의지도 중요하고, 시민의 안전과 공공재산 보호도 중요하고, 예술단체 지원도 중요하다. 각기 다른 입장의 조직이 책임 떠넘기기를 하지 않고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여준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 마땅하다고 보았다.

예술정책은 마인드의 문제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그 마인드가 재정립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서울문화재단의 경우 이명박 시장 재임시절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위해 급조된 재단이다. 이벤트 기획 위주로 재단이 꾸려져서 중후장대한 서울시 문화정책의 허브가 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큰 길로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문화예술인 지원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 계속 분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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