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아닌 밤중에 양승은 모자

맥락읽기

고재열_시사IN문화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6호

2012.08.16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오심 심판과 함께 가장 많은 욕을 먹었던 사람은 아마 MBC 양승은 아나운서였던 것 같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괴상한 모자패션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가져간 17개의 모자는 패션의 아이콘이 되지 못하고 ‘패션 테러리스트’의 상징이 되었다.

  •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오심 심판과 함께 가장 많은 욕을 먹었던 사람은 아마 MBC 양승은 아나운서였던 것 같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괴상한 모자패션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가져간 17개의 모자는 패션의 아이콘이 되지 못하고 ‘패션 테러리스트’의 상징이 되었다.

    양승은 아나운서 올림픽 코디 컨셉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영국에서는 주로 야외 결혼식에서 모자를 쓴다). 검정색의 장례식 정장 복장에 모자를 쓰고 나와 충격을 주더니 급기야 누리꾼들이 '딤섬 찜통모자'라 별명을 붙인 황색 필박스를 쓰고 나와 쏟아지는 비난에 모자를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다.

    실험적인 패션에는 늘 위험이 따르지만 양승은 아나운서만큼 실패하기도 힘들 것 같다. 왜 그녀의 패션은 비난을 받았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맥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양 아나운서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으려는 나라에 ‘밀리터리룩’을 입고 간 모델과 같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양 아나운서의 모자는 영국 귀족문화에 대한 오마주다. 최근 영국 여성들의 모자패션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었다. 각양각색의 모자가 인상적이었다. 영국 여성들에게 모자는 야외 행사에서 패션에 마침표를 찍는 중요한 소품이다. 양 아나운서의 모자에서 맥락을 찾자면 아마 이 결혼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실내에서는 주로 모자를 쓰지 않고, 일할 때는 모자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이 런던올림픽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은 대영제국의 영광이 아니다. 그 영광의 뒤안길에서 새롭게 세계인의 친구로 거듭난 ‘오늘의 영국’이다. 그 화두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개막식이다. 아일랜드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북서부 랭커셔 등 변방에서 자라고 <트레인스포팅>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 뒷골목 세계를 표현한 영화를 주로 연출한 대니 보일 감독이 총감독을 맡은 개막식은 화려한 스케일의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달리 다양한 가치를 보여주었다.

    대니 보일은 셰익스피어, 해리 포터, 비틀스 등 영국에서 발원한 세계적인 콘텐츠를 활용하되, 이것의 위대함을 애써 부각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영화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템페스트> 구절을 낭송하게 하고, 소설가 조앤 롤링이 <피터팬>의 첫 구절을 낭송하게 하고, 영국 육상선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불의 전차> 주제가를 ‘미스터 빈’의 희극배우 로완 애킨슨이 익살스럽게 연주하게 하는 식이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의도한 것은 산업혁명의 발생지였지만 그 영광과 폐해를 뒤로하고 오늘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며 사는 ‘경이로운 영국’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니 보일은 이를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캘리번의 대사 “두려워하지 마라, 섬 전체가 즐거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로 집약해서 표현했다.

    대니 보일은 평범하고 있는 그대로의 영국을 보여주는데 주목했다. 보통의 영국 가정의 모습이라고 보여준 장면에서는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부부로 등장했다. 평범한 신세대의 모습도 흑인 남녀로 설정했고, 자본가 그룹을 보여준 장면에는 흑인과 아시아인이 끼어 있었다. 인종주의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미는 영국 드라마 중에서 최초로 동성 간 키스신을 방영한 드라마 <브룩사이드>의 일부분을 방영한 것이었다.

    자, 다시 양승은 아나운서의 모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개막식에서 영국이 보여주려 했던 것은 화려한 귀족문화와 대영제국의 영광이 아니었다. 그런데 양승은 아나운서는 자신의 영국 로망을 모자에 담아 화려한 귀족문화를 오마주했다. 런던올림픽의 맥락을 읽어내지 못했고 시청자들에게도 이물감을 주었다. 그리고 ‘아닌 밤중에 양승은 모자’는 혹독한 비판을 들어야했다.

    영국은 런던올림픽을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치렀다. 억지로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재활용할 것은 재활용하고 아낄 것은 아꼈다. 그러면서 다양한 가치를 보여주는데 주목했다. 성화 봉송 주자가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설 때 경기장을 지은 건설노동자 500여 명이 입구에서 맞이한 것이나, 아동병원 간호사들을 직접 출연시킨 무용극으로 무상의료의 가치를 환기시킨 것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양승은 아나운서의 모자는 서양문화 오독의 대표적 사례다. 있는 그대로의 서양이 아니라 우리가 읽고 싶은 대로 읽어버리는 독해법의 표본이다. 아나운서 한 명의 의상에 대해 너무 가혹한 평가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의 방송 수준은 여기까지였다. 개막식을 중계하면서도 영국이 보여주려는 다양한 가치는 읽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떨치려 한 대영제국의 영광만 읽어냈다.

    무분별한 동경과 어설픈 모방은 우리를 우습게 만들 뿐이다. 이것이 많은 서양 희곡을 번안하는 연극계에서 한 번쯤 양승은 아나운서의 모자 파동에 대해서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이유다. 무조건 동경하고 어설프게 모방하면 우스워질 뿐이다. 작품의 맥락을 읽어내고 오늘의 우리에 맞게 잘 차용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열대야 속에서 매일 밤 런던올림픽을 지켜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