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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할 것인가, 기념할 것인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고재열_시사IN문화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7호

2012.09.06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특집 기사 취재를 위해 베트남에 다녀왔다. 나의 관심은 소통이었다. 한국은 베트남과 일방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기사를 기획했다. 한국에게 베트남은 현대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전을 통한 경제 개발, 도이모이(개혁 개방) 정책을 활용한 기업 진출, 그리고...

  •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특집 기사 취재를 위해 베트남에 다녀왔다. 나의 관심은 소통이었다. 한국은 베트남과 일방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기사를 기획했다. 한국에게 베트남은 현대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전을 통한 경제 개발, 도이모이(개혁 개방) 정책을 활용한 기업 진출, 그리고 최근의 한류와 베트남 신부까지, 모두 일방적이었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는 것인지 베트남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왔다.

    일주일 동안 직접 보고 겪은 베트남과 베트남인은 우리가 아래로 볼 나라와 민족이 아니었다. 특히 현대사에 세 번의 전쟁을 겪으며 열강을 이겨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1945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와 독립전쟁을 벌였고, 1960년부터 1975년까지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싸웠고 다시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중국과 싸웠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의 최후 승자는 베트남이었다. 프랑스 최정예부대도, 미국의 막강한 화력도, 중국의 인해전술도 베트남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진짜 대단한 것은 그런 전쟁에서 승리한 것보다 그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베트남인들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과시적이지 않고 성찰적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조사했던 구수정 박사와 함께 전쟁증거박물관(War Remnants Museum)을 다녀왔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전쟁기념박물관(War Memorial Museum)이 아니라 전쟁의 상흔과 아픔을 전시했다.

    전쟁증거박물관의 입구에는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베트남어와 영어로 쓰여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갖고 행복추구권을 갖는다’고 말하는 미국인들이 베트남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밀라이 학살’ 증거 사진들을 통해 그들이 표방한 가치가 지켜지고 있는지 묻는다. 미국의 논리로 미국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 전쟁증거박물관은 베트남 통일전쟁이 끝나던 해 바로 만들어진 것이다.

    밀라이 학살을 자행한 후 미군은 학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밀라이 마을을 1년 동안 거의 매일 폭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백 수천 톤의 폭탄도 학살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학살 장면을 찍었던 사진기자가 만년필 통에 몰려 숨겨 나온 필름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학살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미국은 막대한 달러폭격을 가했다. 밀라이 마을과 그 주변에 학교며 병원이며 온갖 시설물을 만들며 환심을 샀다.

    이와 대비되는 것은 한국군과 한국의 행태다. 밀라이 학살에 희생된 베트남인 숫자는 5백여 명이다. 그런데 구수정 박사가 파악한 한국군 학살 희생자는 1만 여명 규모다. 베트남 정부가 공식적으로 파악한 숫자(1차 파악)만도 5천여 명이 넘는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에서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에 관한 조사 자료가 발견되었다. 한국군 주둔지역에는 수많은 ‘증오비’가 만들어져 한국군의 범죄를 증거하고 있다.

    한국군은 베트남전 당시 양민 학살을 부정한다. 대부분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들이 한국군으로 위장해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한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낮은 단계의 사과를 하기는 했다). 민간단체들이 쌈짓돈을 모아 피해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위령비를 건립하고 지원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소규모다(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베트남에 학교를 지어준 적이 있다).

    베트남은 한국을 용서한 것일까? 오늘을 위해 과거를 조용히 묻어두는 것일까? 미군 폭격이 쏟아질 때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비가 오면 우물이 생길 것이다. 그 우물에 메기가 자라면 그 메기를 먹고 우리 아이들이 자라 그들과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성할 시간을 주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전쟁증거박물관에는 프랑스와의 전쟁 자료도 전시한다. 프랑스와의 전쟁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프랑스 최정예부대를 격퇴하면서 베트남의 승리로 종료되었다. 이 전쟁에 대해 그들은 승리에 주목하지 않고 프랑스와 싸운 이 전쟁이 사실상 미국과 싸운 전쟁이었다는 것을 논증하는데 주목한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이 지원한 전비와 전쟁물자 지원규모와 비율을 통해 또 하나의 적, 미국과 싸웠던 전쟁이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디엔비엔푸 전투에 패배하고 프랑스 사령관과 부관들은 베트남군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전쟁증거박물관에는 이 사진이 전시되어 있지 않다. 비록 졌지만 장수로서 위엄을 잃지 않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런 제스처는 베트남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여유 있는 자세로 그들은 한국의 반성과 사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는 전쟁을 기념하고 있다. 용산전쟁기념관(War Memorial of Korea)에서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용맹을 과시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고 베트남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전쟁이 기념할만한 것일까? 우리가 기념할만한 승전을 기록했었나?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지 않으면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 된다. 우리가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과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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