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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있는 심판, 품격있는 경기

대선을 앞둔 언론의 역할

고재열_시사IN문화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9호

2012.10.04

12월19일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날이다. 이제 채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사람은 위급할 때 성격이 나오는 법이다. 큰 이득을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수준이 노출된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의 수준은 언론의 수준과 비슷하고, 그 언론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과 비슷하다.

  • 12월19일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날이다. 이제 채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사람은 위급할 때 성격이 나오는 법이다. 큰 이득을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수준이 노출된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의 수준은 언론의 수준과 비슷하고, 그 언론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과 비슷하다. 대선을 앞두고 드러난 대한민국의 수준은 어떤가?

    박근혜 캠프의 신임 대변인으로 내정되었던 김재원 의원이 기자들에게 술자리에서 한 막말부터 들여다보자. 그는 자신이 같은 자리에서 한 시간 전 쯤에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명예를 위해 정치를 한다”라고 했던 말이 언론사에 정보보 고 되고 그 사실을 자신이 전달받자 "야 이 병X 새X들아 너희가 기자 맞냐 너희가 대학 나온 새X들 맞냐 병X들아 이렇게 정보보고 한다고 특종할 줄 아냐"라고 윽박질렀다.

    김재원 의원이 생각이 있네 없네를 논하기 전에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할 구석이 있다. 일단 기자들을 박근혜 캠프의 하수인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술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은 대부분 박근혜 캠프에 우호적인 언론사의 기자들이었다. 김 의원의 하대는 기자들이 캠프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할 객체로 보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언론을 하청업체 정도로 보는 이런 모습은 재벌기업 간부들에게도 나타난다. 저널리즘은 권력과 자본의 시녀가 되었다.

    일선 기자들만 문제가 아니다. 데스크(간부 기자)들은 더 문제다. 현장 기자들이 김재원 의원의 문제 발언을 정보보고 한 것을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캠프로 고자질한 언론사 간부가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기자들은 비굴했고 데스크는 비겁했다. 기자들의 이런 요지경 행태를 특종보도했던 조선일보는 기사에 '자사 기자는 없었다'라고 명기했다.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에 자신들은 관여되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대선 때가 되면 일군의 기자들이 펜을 버리고 대선캠프에 몰려간다. 지난 대선 때는 언론인들의 대선캠프 참여가 ‘구국의 결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사를 쓰고는 그 기사를 마지막으로 사표를 내고 캠프에 들어간 기자도 있었다. 언론인들이 캠프에 참여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어제까지 심판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선수로 뛰겠다며 그라운드로 뛰어든 꼴이다. 당연히 그가 심판이었을 때 판결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것은 기자들의 드러난 정치적 행보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실제 대선캠프에서는 기자들이 캠프에 합류하기 보다는 소속 언론사에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일하면서 후보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는 것을 더 선호한다. 기자들이 ‘사실상’ 선거 운동원이 되는 것이다. 진실보도의 사명과 독자에 대한 의무를 져버린 채 대선캠프에 공을 세울 기회만 엿보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엔 이렇게 언론사에 속해 있으면서 후보를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렀다. 서로 다른 언론사에 속한 다섯 명의 기자들이 자신들끼리 폐쇄 그룹을 조직해 이 후보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서 붙여준 별명인데, 박근혜 캠프 주위에는 6명의 기자들이 비슷한 역할을 해서 ‘6인방’으로 불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들만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이너서클inner circle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 난 기자들도 많다는 사실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기자들이 캠프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이슈의 왜곡이다. 대선 이슈 중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달리할 수 있는 상대적인 이슈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이슈가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정략적으로 판단한 ‘정치기자’들이 여론을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간다. 이럴 때 흔히 등장하는 것이 바로 양비론이다. 양비론 뒤에 숨어서 편파보도를 일삼는 사례가 많다.

    여기에 활용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이비 정치평론가다. 이전에 정치를 했거나 특정 정당에 공천까지 신청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정치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언론을 통해 선거에 훈수를 둔다. 비유하자면 언론이 심판이라면 이들은 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판이 정치를 하니 부심들도 정치를 한다. 이들은 편파적인 언론에 기생해 편파적인 코멘트를 하면서 특정 정파를 거들며 이슈를 왜곡한다.

    이슈의 왜곡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투표시간 연장문제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주요선거 투표율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투표율을 늘리는 문제는 우리 민주주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투표율을 늘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증명된 것은 바로 투표시간 연장이다. OECD 선진국들은 대부분 8시 이후까지 투표를 하고 있고 아니면 일요일에 투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40년 넘게 저녁 6시로 제한되어 있다(재보궐 선거만 8시까지).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여가 유리하니, 야가 유리하니, 정치공방으로만 보도하는 언론사들이 많다. 분명 유리한 쪽도 있을 것이고 불리한 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인데, 이 부분을 생략한다. 특히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많은 상황에서 절대적인 조치인데 외면한다. 그리고 공무원들이나 들이댈 핑계인 예산문제를 구실로 내세운다.

    좋은 대통령을 뽑아서 국가의 품격을 높이려면 그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부터 국가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대선이 혼탁해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할 언론이 대선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고 있다. 국민의 이성적 판단을 위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홀리고 마취시켜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언론, 우리 언론의 통절한 반성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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