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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면 비극, 가까이 보면 희극

대선주자 정치 퍼포먼스 감상법

고재열_시사IN문화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11호

2012.11.01

  • 그것은 주로 1인극이다. 종종 2인극일 때도 있다. 가끔은 3인극일 때도 있다. 1인극일 때는 대부분 훈훈하다. 2인극이 되면 긴장이 흐른다. 3인극이 되면 난장판이 된다. 무엇이? 대선주자들의 정치 퍼포먼스가 그렇다. 정치의 계절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대선 드라마다.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고대 그리스극의 주연배우.
극적 작품의 중심인물
  • 대선주자들은 지독한 프로타고니스트다. 그래서 그들의 퍼포먼스는 철저한 1인극이다.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은 엑스트라일 뿐이다. 선대위원장이니 특보니, 책사니 멘토니, 다 허망하다. 모든 것은 대선주자 1인에게 수렴된다. 그의 입을 통해야 정책은 날개를 달고 그가 한 마디 거들어야 네거티브도 힘을 받는다.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자기 도취자
  • 그들은 또한 대책 없는 나르시시스트다. 그래서 마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일생을 살아온 것처럼 연기한다. 모든 기억은 재구성되고 모든 업적은 부풀려지고 모든 흠은 핑계를 찾는다. 그런 그들을 추종자들은 종교보다도 더 숭상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급조된 신화가 완성된다.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
  • 이 과대망상 1인극이 상대를 만나면 긴장이 흐르는 2인극이 된다. 스스로 프로타고니스트이면서 상대방의 안타고니스트인 이들의 물밑 주인공 싸움이 벌어진다. 의자는 나란히 준비되지만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고, 누구에 대한 반응이 더 뜨거웠는지를 놓고, 혹은 오지 않은 나머지 한 명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진다.
  • 3인극이 되면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이때부터는 보이지 않는, 아니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세 대결’이 시작된다. 밀리면 끝장이다(사실 끝장날 일 전혀 없는데), 라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들이댄다. 권력이란 벨벳 장갑 속에 무쇠 주먹을 숨기고 있다가 미소 지으며 한 방 먹이는 것이라 했던가, 후보들이 미소 지으며 서로 인사하는 동안 참모들은 뒤에서 할퀴고 꼬집고 깨물고 난리다.

    캠프의 스태프들은 매일 새로운 1인극을 기획한다. 쉬운 건 아니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이슈가 되는 현장이지만 후보의 철학과 맞아야 한다. 공약을 언급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후보의 성향과도 맞아서 자연스러워야 한다. 돌발 사고의 위험이 없어야 하고 기자들의 동선도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 몰려도 문제지만 안 몰리면 더 문제다. 불러라도 와야 한다.

    무엇보다 그림이 되어야 한다. 방송뉴스에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해야 한다. 미국 백악관의 공보직 종사자들은 대통령의 동선을 정할 때 ‘원 샷 원 키워드 원 에피소드’에 따른다. 필요한 한 컷의 그림이, 한 마디의 워딩이, 그럴듯한 한 편의 에피소드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만큼 철저하지는 않지만 답사와 리허설을 거쳐 관객 동원계획까지 마치면 일일-1인극이 확정된다.

    이 퍼포먼스의 특징은 국민을 매우 단순한 관객으로 설정하고 공연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호남에 가면 호남 민심을 잡고 영남에 가면 영남 민심을 잡는단다. 민심이 들판의 곡식처럼 그저 가서 거둬들이면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물들 드리우면 떼로 걸려드는 고기떼인 모양이다.

    아무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대선 캠페인에는 반대로 적용된다. 멀리서 보면 비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 가까이서 보면 웃기지도 않는데, 멀리서 보면 제법 그럴듯하다. TV로 보면 더욱 그럴 듯하다. 정말 그 제스처로 민심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지치면 슬쩍 힐링 일정을 끼어 넣는다. 안철수는 대학을 찾아 강의를 하고, 박근혜 는 보수단체를 찾아 빨갱이를 잡고, 문재인 후보는 군복을 입고 특전사를 추억한다. 자기만족이지만 이런 일정이 중간에 끼어 있어야 자신감, 아니 자만심이 충전된다. 대선은 자만심 정도가 없고서는 치를 수 있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렇게 힐링을 마치면 후보는 바보가 된다. 박근혜는 아빠밖에 모르는 아빠바보가, 문재인은 노무현밖에 모르는 친노바보가, 안철수는 국민밖에 모르는 국민바보가 되어 유권자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건성과 건성이 모여 진심이 되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성적표가 매겨진다. 정치가 무르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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