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평양올림픽’ 특수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제133호

2018.02.08

참 희한한 올림픽 특수다. 올림픽을 준비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올림픽을 훼방 놓고 재를 뿌리는 사람들이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있다. 왜 선수촌에 내걸린 국기 중 북한 인공기가 가장 크냐고, 왜 남북단일팀을 만들어서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냐고, ‘평화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주목을 받는다. 남북단일팀 출전 반대 서한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보내는 정치인까지 주목을 받는데, 이러려고 올림픽을 유치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남북단일팀을 시작으로 평창올림픽에 시비를 거는 것이 여론을 자극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보수언론은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한 종합편성채널은 지난해 여름에 했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인터뷰를 최근 한 것처럼 방송해 마치 선수들이 남북단일팀에 강하게 반대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남북단일팀 구성 전에 우리 선수들과 협의를 했기 때문에 실제로 선수들과 인터뷰를 했다면 반응이 완전 달랐을 것이다.

선수촌 아파트에서 북한 인공기가 가장 크게 내걸렸다고 왜곡하는 언론도 있었다. 북핵과 미사일 실험에 지친 우리의 ‘인공기 포비아’를 자극하는 일이다. 인공기가 커졌으면 하는 마음이 인공기를 카자흐스탄 국기보다 더 크게 보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 조작은 현장에 가서 직접 검증한 시민들의 고발로 바로 드러났다. 이렇게 흠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은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북한 측 선발대를 지원하는데 몇 억이 들어갔다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올림픽이 끝나면 ‘올림픽 퍼주기’ 프레임을 덮어씌울까 우려스럽다.

하지만 이런 묻지마 헐뜯기는, 뜯어보면 논리가 없다. 한 정치인은 남북단일팀 반대 서한을 IOC에 보낸 것에 대해 “북한 선수단이 오는 것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반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석하자면, 북한 선수단이 오는 것은 반대하지 않으니, 와서 경기는 뛰지 말고 구경만 하고 가라는 것이다. 남북단일팀은 지난 정부에서 올림픽 유치할 때 추진한 것이고 당시 여당이었던 지금의 야당이 주도한 일이다.

보수정당과 보조를 맞추는 보수언론은 신묘한 재주를 선보인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재주다. 한 입으로는 북미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아 미국이 ‘코피작전’이라는 제한전쟁을 수행할 의지가 강력하다며 걱정하면서, 같은 입으로 이 북미갈등 해소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에 추임새를 넣는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위협에 자국 선수들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나라들이 있었는데 그런 우려를 잠재운 것이 바로 북한 선수들의 출전이다. 그들은 이런 긴장완화 효과를 애써 외면한다.

이런 올림픽 특수를 누리는 사람이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평양올림픽’의 원저작권자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다. 도쿄도는 북한 미사일 위협을 과장하며 가장 호들갑을 떨고 있는 곳으로 지난 1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가정한 도심 대피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고이케 도쿄도지사를 비롯한 많은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실눈을 뜨고 남북단일팀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옆 나라 잔치에 샘을 내서 한 이들의 말을 우리 정치인들이 반복하고 있다.

물론 남북 단일팀이 통일의 초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앞서나가는 것도 위험하다. 제비 한 마리가 여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정치에서의 프레임 전쟁을 강조한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명제를 빌린다면 지금은 ‘통일은 생각하지마’라고 선을 그어야 할 국면이다. 통일을 강조하면 임박한 위기가 잊힌다. 지금 관건은 위기다. 그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조명 받을 수 있다. 통일은 멀다. 섣부르게 통일의 공을 다투면 화를 키울 수 있다. 위기는 가까이 있고 당장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사고는 임박한 위기와 연관해서 해야 할 것이다. ‘통일 특수’는 이르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