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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에서 ‘미투’까지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제135호

2018.03.08

‘문화·예술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발하다. 하루하루가 충격이다. 미투 운동을 지켜보면서 떠올린 것은 2년 전 ‘미러링 논쟁’이다. 당시는 지금의 미투 운동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 지지와 다르게 논쟁이 분분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메갈리아’ 활동가들이 활용하는 미러링은 잘못된 방식이라고 지적했고 일부 여성들도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1년 전에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논쟁을 낳았다. 여성들은 이 사건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혐오’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생각했지만 남성들은 가해자의 조현증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은 조용히 연대하며 서로를 보듬어 주었다.

그리고 올해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충격과 공포로 한국사회의 민낯을 대하고 있다. 자신만의 소왕국을 일군 한국 사회의 ‘가부족장’들은 여성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재물로 삼고 있었다. 문단 방송계 영화계 음악계… 연극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논쟁의 여지는 적어지고 반성의 여지는 커지고 있다. 메갈리아 논쟁 때 거셌던 남성들의 목소리는 이제 눈에 띄게 잦아졌다.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에서도 댓글에 여성을 타자화 하는 댓글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 여성은 어떤 기분이었겠나’라며 여성에게 공감하는 댓글이 제법 올라온다고 한다.

소왕국의 가부족장이 그런 짐승의 짓을 할 때 우리는 공범이거나 방관자였다. 가부족장으로부터 티끌만한 권력을 나눠받은 자들은 가해자가 편하게 범행을 벌일 수 있도록 주변의 공기를 정돈해 주었다. 그리고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할 때 이를 외면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어떤 면에서 ‘집단 성폭력’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 또한 이전의 논쟁 때는 논쟁이 되는 이슈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미투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계속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기억을 뒤돌아보니 부끄러운 일이 분명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상황을 내 중심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얼마나 남성 중심의 세계에 길들여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참담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었다.

미투 운동은 한국 남성들에게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남성중심적 자기합리화를 이제 멈춰야 한다. 2년 전 미러링이 이슈가 되었을 때 이 칼럼란에 아래 내용을 쓴 적이 있다. 미러링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미러링이 나타나게 된 맥락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유효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모두 뼛속부터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때 글을 옮긴다.

“미러링은 우리가 성평등 사회로 가는 ‘통과의례’와 같은 일이다. 미러링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없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미러링은 거울이다. 원본이 사라지면 반사경도 사라진다.

여성들이 겪는 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쩌면 아직 진짜 미러링은 겪어보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같은 과 여학생들을 성적대상으로 놓고 보는 남학생들의 카톡 대화가 공포스러운 것은 그들이 입에 담는 것이 언제든 실제 상황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대 의대생들이 그랬다. 흑산도 사례처럼 학부모들이 여교사에게 달려들 수도 있다. 남성들이 여성들의 미러링에 대해서 겪는 것은 감정의 문제지 이런 공포는 아니다.

진짜 현실 미러링이 나타날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신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의대 선배와 동기들을 마취시켜서 거세시키는 의대 여대생이 나온다면? 화장실 비데에 황산을 넣어 불특정 다수의 남자를 겨냥한 테러를 가한다면? 지금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일들을 남성들이 실제로 겪어본다면 어떨까? 언어의 극단이 아니라 행위의 극단으로 갔을 때는 이미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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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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