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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특혜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제147호

2018.09.06

자, 질문의 시작은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축구 한국대표 주장으로 활약하며 한국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공으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자신의 특기 분야에서 34개월 종사, 544시간의 특기 봉사활동 요함)만 하면 되는 손흥민의 병역 특례 혜택, 기회는 평등했나? 과정은 공정했나? 결과는 정의로웠나? 그가 몸을 갈아서 축구하는 모습을 지켜 본 국민들이라면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이나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공정한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로 꼽히는 그들의 국위 선양 효과는 결코 한국대표팀의 아시안게임 축구 우승에 뒤진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빌보드는 가장 공신력 있는 대중음악 차트로서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조건을 두루 만족시킨다. 그런데 병무청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세 번째 질문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축구 대표팀에서는 20명이, 야구 대표팀에서는 24명이 병역 특례 혜택을 보았다. 그런데 야구는 축구와 조건이 많이 달랐다. 야구에서는 우리 한국대표팀은 프로 선수가 주축이었지만 대만은 실업팀이, 일본은 사회인야구 출신으로 팀을 구성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이었으므로 우리가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야구팀에도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이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네 번째 질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축구 한국대표팀이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을 치를 때, 김기희 선수는 2대0으로 앞선 후반 44분에 교체 출전해 불과 4분간 뛰고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것은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개인 종목이 아닌 단체 종목에서는 이런 식으로 ‘업혀서’ 병역 특례 혜택을 볼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남아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야구 한국대표팀의 오지환 선수가 이런 사례로 지목받았다.

현행 병역법에 따르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올림픽 3위 이상 입상자 ▲아시아경기 1위 입상자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 등이다. 여기에 세계선수권 월드컵 WBC 등의 대회는 포함되지 않는다. 순수예술이 아닌 대중예술 장르의 순위 역시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병역 특례 규정은 그때그때 다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자 ‘월드컵축구대회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 고쳤다. 2006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자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4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이란 조건이 추가되었다가 시비가 일자 2007년 12월에 관련 시행령을 삭제했다.

다섯 번째 질문이다. 그럼 이런 병역 특례 제도를 어떻게 고쳐야 할까? 병역 특례 제도의 공정성 시비에 대한 대한체육회와 국방부의 처방전은 상반된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아시안게임보다 더 큰 대회가 세계선수권이다. 그런데 세계선수권에는 병역 혜택이 없다. 세계선수권까지 포함해, 마일리지를 쌓아 일정한 수치에 도달하면 혜택을 준다면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반면 국방부는 아예 예술·체육 분야 병역 특례를 포함한 대체복무제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자 이제 여섯 번째 질문이다. 앞의 질문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는 어떤 임무를 주고 어느 정도 기간이면 적당할까?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지뢰 제거 임무를 시키고 복무 기간은 일반 현역병에 비해 두 배의 기간 정도로 하자고 제안한다. 바꿔 말하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해서 더 오래, 더 위험하게 복무하는 ‘징벌적 병역 특례’ 제도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대한민국 청년에게 병역은 징벌인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징벌적 병역 특례’ 제도를 두자는 것은 병역을 징벌로 보는 전제가 깔려 있다.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는 것도 상으로 병역이라는 징벌을 벗어나는 혜택을 준다는 발상이다. 병역 특례 혜택 관련 논의가 공전하는 이유도 병역에 대한 이런 인식 때문이다.

추가 질문이다. 병역을 징벌로 보는 이런 관점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 주목할 것은 시대의 변화다. 예전에는 병역에 대해 다른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었다. 병역 비리가 횡행했고 남북 관계는 점점 더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투명성이 높아진 지금 시점에서, 남북 관계가 화해 무드인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병역이라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풀기 위해 축구 한국대표팀은 사력을 다해 뛰었고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뤄냈다. 그런 기세면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른 장르에도 이런 기세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여러 문화예술상이 침체되어 있는데 병역과 연결된다면 바로 활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하겠지만, 이런 시대면 한 번 도모해 볼 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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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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