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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전

[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박해성_연출가

제148호

2018.09.20

몇 달에 한 편씩 줄지어 개봉하는 마블 영화가 나올 때면 온 세계가 마블 유니버스다. 마블 만화 한 편 본 적도 없는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들이 화수분처럼 끝없이 줄서서 나오는 것도 신기한데 그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영화에 교차되어 등장하고, 급기야는 스물 몇 명이 떼로 나와 5분 10분씩 분량 나누어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 같은 영화도 나온다. 전 세계 관객들의 취향을 수치로 계량한 듯 기획해서 제작되는 낯설음에 처음엔 데면데면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으레 그렇듯 막상 하나를 찍어 경험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느 샌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엔딩을 보며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고, <데드풀2>를 보며 깔깔대다 허를 찌르며 흘러나오는 "Take on Me"를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역시 으른들 말대로 뭐든 미제가 최고인가.

잔망 데드풀 선생(출처: foxmovies.com)

어렸을 적 으른들이 종종 "‘극장구경’ 간다"는 표현을 썼던 기억이 나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말이다. 아니 하려면 영화를 구경할 일이지 극장을 구경할 일이 뭐가 있을까. 하긴,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극장에 가본다면, 극장에 가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서 도회지까지 나가 이백 미터 줄 서서 혹은 암표까지 사서 본 <킹그콩그>나 <별들의 전쟁>은 주말의 명화에서 같은 영화를 본 나와는 다른 총체적 경험이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동네마다 똑같은 인테리어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고 손 하나 까딱하면 집에서건 지하철에서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다이빙할 수 있는 세상에 "극장 구경"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마블 영화를 특별한 경험으로 만드는 것일 테고, 그래서 아이맥스네 골드클래스네 3D네 4D네 하는 서비스들이 “저요, 저요”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들 역시 비용만 더 내면 언제든 경험할 수 있을 테니, ‘극장구경’까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극장구경’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그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총체적 경험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60억 인류를 붕어빵 취향으로 만든 마블 영화를 튼다면 적어도 <아이언맨> 옆자리에서 콜라 하나를 빨대 두개로 나눠먹게라도 하던가, 아니면 그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어디 뒷골목 지하실 같은 데서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조악한 자막의 해적판 비디오테이프로 틀어주던 90년대 초 씨네마테크들은 음습한 공간이 그 영화들을 더 특별하게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10여 년 전만 해도 몇몇의 극장은 아무 때고 그 극장에 걸려있는 아무 영화나 봐도 보통 이상의 경험을 주곤 했다. 물론 대부분 다른 극장에선 보기 힘든 영화였고, 그런 특정한 취향과 성향의 영화만을 골라서 프로그램으로 엮는 게 그 극장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멀티플렉스에서 그 역할까지도 자임하면서 그 몇 안 되던 극장들도 거의 사라졌지만.

사당동 지하실에서 충격적으로 "극장구경"했던 <아키라(1988)>(출처: 네트의 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연극이야말로 "극장구경"에 최적화된 장르이다. 본질적으로 그 순간 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시간, 특정 극장에 가지 않으면 그 연극을 경험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극장구경’인가. 그러고 보니 돌이켜보면 창작자로서, 관객으로서 지난 20여 년간 스쳐갔던 여러 극장들에는 저마다의 ‘극장구경’이 있었다. 20년 전 봤던 어떤 작품의 정확한 제목은 가물가물해도 극장은 대부분 기억이 난다. 극장까지 가던 길, 객석에서 공연 시작을 기다리던 시간, 두 시간 공연보고 나면 목이 뻣뻣해지는 객석 구조, 공연의 흥미로움 혹은 지리멸렬함, 끝나고 향했던 인근 술집 등등 모든 기억이 극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경험이다. 모든 극장은 구조와 운영에 있어서 저마다의 성향과 특징이 있고, 그 특징들과 특별한 공연들이 만나 관객 개인의 취향, 개인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극장전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부터 그런 특별한 극장들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모든 창작자들이 이상적인 창작공간으로 생각했던 어떤 극장은 관객 수를 확보하려고 객석간격을 좁게 고정시키는 바람에 그 자유로운 구조가 사라져 특징이 사라졌다. 한국에서 가장 깊은 무대를 자랑했던 어느 극장은 앞에 기업이름이 붙으면서 특별한 깊이가 사라졌다. 어떤 극장은 묵직한 벽돌벽이 고유한 공간성을 만들어냈지만, 미끈한 차음벽으로 덮여버렸다. 많은 공공극장은 관객의 개인적인 취향과 경험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품성과 흥행성의 두 마리 토끼를 굳이 동시에 잡고야 말겠다는" 어벤져스식 목표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많은 중극장은 대관 위주로 운영되고, 대관공연은 익숙한 안정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많은 민간소극장 역시 치솟는 임대료로 인해 고유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여력을 잃어갔다. 결국 관객과 창작자들은 특별한 극장과 특별한 공연, 특별한 극장구경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전은 한 명 한 명의 관객, 한 명 한 명의 창작자의 경험이 서로 얽혀 오래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소중한 이야기이다. 그 많은 극장전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다양하게 공존해왔다면 어땠을 지 상상해본다.

출처: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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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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