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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의 사회학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제149호

2018.10.11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조성 프로젝트를 위해 '광화문광장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화두가 된 것은 바로 세종대왕 동상의 존속 문제였다. 오세훈 전 시장 시절(2009) 광화문광장을 새로 조성할 때 세종대왕 동상이 새로 들어서자 졸지에 이순신 장군이 보초병이 되어버렸다는 말이 나왔다.
세종대왕 동상이 부담스러운 크기로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사방이 차도로 둘러싸여 고립된 광화문광장에 대한 평가는 처음부터 박힜다. 광화문광장의 문제를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은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광장에 대한 상상력은 방향의 문제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국민이 청와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구축되어 있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육중한 세종대왕 동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종대왕을 활용해서 권력이 일종의 ‘알박기’를 한 셈이다.
2016년 촛불집회는 광장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모여 앉아 함성을 외쳤다. 촛불의 물결은 큰 파도를 만들어 냈고 이윽고 권력의 배를 뒤집어 엎었다. 그것을 통해 광장의 주인은 리더가 아니라 시민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위원회가 등장해 광화문광장 조성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국민이 광장을 되찾았다는, 상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광장은 권력의 선전과 통제의 욕망이 민중의 감시와 혁명의 욕망과 부딪치는 곳이다. 역사는 광장에 시민을 동원하는 권력과 탐욕스런 권력을 끌어내리기 위해 광장에 모이는 시민의 도전과 응전이었다. 그렇다면 광장을 되찾은 국민을 위해 권력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촛불 집회 때 언제 어떤 방향으로 앉았는가를 생각하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참 불편하게 앉아 찬바람을 맞으며 청와대를 바라보았다. 광장을 되찾은 지금은 편하게 앉아서 서로의 일상을 응시할 수 있다. 지배와 반지배가 아니라 일상의 눈으로 광장을 바라볼 시기다.
이제 광장은 여유의 상징이어야 한다. 촛불집회 전까지 광화문광장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곳이었다. 그래서 광장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세월호 유가족 등 광화문광장엔 빼앗긴 권리를 외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광장을 지나치는 사람이 들리게 말하려니 목소리가 커지고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광화문광장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있고 일상의 여유를 만끽한다면 작고 낮은 목소리로도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앉아서 말하고 앉아서 듣는 광장은 우리 사회 성숙의 지표가 되고 광장을 지나는 외국인들도 여유를 즐기는 우리의 모습에서 '빨리빨리 한국인'이 아니라 '여유자적한 한국인'의 모습을 볼 것이다.
광화문광장 조성 프로젝트는 광장을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으로 나누어 설계될 예정이다. 이중 역사광장으로 부르는 위쪽 광화문 주변은 사실 외국인들의 공간이다. 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에 들고 나는 외국인을 수시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외국인과 만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포함해야 한다.
경복궁을 찾는 외국인에게 우리는 문화재만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외국을 여행할 때, 광장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한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광장 주변의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현지인을 보며 우리는 여행자의 정취를 느끼곤 한다.
광화문광장을 재설계할 때 노천카페가 들어설 여지를 주었으면 좋겠다. 광장에 앉아서 우리 스스로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말이다. 역사광장 양쪽 날개 부분은 시야에서 가려지는 부분이다. 이곳에라도 편안한 의자를 가져다 두었으면 좋겠다. 시민위원회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광장의 문 열쇠를 시민에게 주었다. 시민위원회의 첫 번째 고민은 광장에 시민을 어떻게 앉을 수 있게 할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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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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