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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전

[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박해성_연출가

제150호

2018.10.25

가끔씩 너무나 당연한 일에 새삼스레 깜-짝 놀라는 때가 있다. 기차 타고 어디 먼 데라도 가면서 창밖으로 산 너머 산, 들 너머 들을 보다보면 이 나라가 이렇게 넓었던가 생각이 든다. 내 일상의 세계가, 도시가 얼마나 좁았는지, 그런데도 이 나라 를 두고 "좁아터진 땅"이라고 함부로 말해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도시는 작은가. 한강 다리라도 건널 때 보이는 수많은 아파트, 수많은 집을 보면서 이 도시에 집이 저렇게 많은데 왜 내 집은 없나 생각하면서도, 저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대출과 이자와 인생이 걸려있을까, 저걸 그냥 "부동산"이라고 퉁쳐도 되나 싶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얼굴과 사연을 품은 채 꽉꽉 들어찬 풍경을 보노라면, 이들을 그냥 "대중"이라고 뭉뚱그려도 되나 생각도 든다. 이렇게 세상은 늘 우리 생각보다 크고 넓으며, 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이 많은 집들 중에 내 집이 604채밖에 안되다니" - 부산의 어느 60대 임대사업자. (출처: 뉴시스DB)

공연의 계절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 제작극장마다 엄선하여 투자를 아끼지 않은 주력 기획공연들이 줄줄이 등판한다. 국제공연예술제다, 아트마켓이다, 각종 페스티벌과 기획프로그램들도 봇물처럼 쏟아진다. 제작극장과 기관뿐 아니라, 각종 지원을 받는 극단들에서도 회계연도 11월까지가 당해의 사업을 마무리하는 시기이다. 지원과 상관없더라도 이 시기 많은 창작자는 극장 아니면 연습실에 있다. 공연이 하도 많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대부분 놓칠 정도이다. 바야흐로 공연계의 메인 시즌, 공연계의 축제 기간이다. 이런저런 프러덕션의 시파티 쫑파티를 쫓아다니며 지내다 보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 크고 넓은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사람은 가을에 이렇게 공연이 많이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오늘 저녁 우리의 "관객"은 어디에 있을까. 공연이 많은 만큼 관객도 많을까. 그 많은 객석은 얼마나 찰까. 이 공연의 계절은 누구에게 축제일까.
그 흔적을 찾기 위해서 지난 몇 년간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or.kr)"이 구축되었다. 현장 여건상 저인망 빅데이터라고는 보기 힘들지만, 예매사이트가 실질적인 독점구도이고 그 독점사의 통계가 포함되어있는 전산망이기에 조심해서만 읽는다면 표본데이터로는 어느 정도 작동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2018년 9월 월간리포트를 훑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는데, 전년 동월에 비해 연극의 개막 편수는 2/3로 줄었으며 매출액은 두 배로 늘었다는 점이다. 예매율 박스오피스에는 위에서 언급한 제작극장들의 주력 기획공연들이 골고루 자리하고 있다. 결국 이 표본을 통해 "예매"시장을 읽자면, 연극은 제작극장과 대형기획 위주로 재편되어 매출 규모가 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예매 시장의 특성상 예측 가능한 레퍼토리이거나 권위가 보장하는 기획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을 때, 이러한 기획은 점점 효율성을 찾아가고 있으며 관객"대중"과의 접점을 잘 찾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월간리포트 2018.09.중 공연통계 및 예매율 박스오피스 (출처: gokams.or.kr)

그런데 이 예매통계로 오늘 저녁 우리의 관객을 짐작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못내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우선은 예매율이라는 것이 (공연기간)X(객석좌석수)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다양한 형식과 규모의 공연을 모두 포괄할만한 기준이 되긴 어렵다는 점, 그리고 kopis에 포함되는 자체예약시스템을 갖췄거나 앞서 언급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예약사이트에 집중 홍보가 가능한 프러덕션 위주로 데이터가 모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자체예약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공연은 현장 결제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이 데이터는 kopis에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데이터는 관객을 "대중"으로 퉁쳐서 읽는 용도로만 작동하고, 그 개별성의 흔적을 찾기에는 역부족이랄 수 있겠다. 그러면 다시 우리가 그 수많은 극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공연과 객석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수밖에 없는가.
공연의 계절, 연극의 축제 기간에는 수많은 공연이 올라간다. 눈에 띄는 공연들은 효율적인 홍보와 제작이 이루어진 대형기획 위주일 것이고, 대중의 호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공연들은 이런 기획들 사이에 묻혀서 조용히 올라가거나 입소문만으로 홍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 공연들의 객석은 개별적 취향 혹은 복불복으로 자리 잡은 소수의 관객, 혹은 동료 창작자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고, 더러는 빈 객석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이제 막 공연이 무르익고 관객이 들려는 기미가 보이면 막공날이 되고야 마는 건 소규모 프러덕션의 흔한 풍경이다. 이런 공연들은 대중의 일원으로서 다 같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그때 그 장소에 있었던 각자의 개별성과 취향으로 경험한 순간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취향저격의 감동의 순간이건 지뢰를 밟은 고통의 순간이건.
어쩌면 공연의 축제는 꽉 찬 객석에 앉아있는 "대중"의 축제가 아니라, 듬성듬성 채워진 객석에 앉은 관객 한명 한명의 축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시에, 그 넓은 세상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개별성으로 존재하는 관객 한명 한명을 만나고야 만 창작자들의 축제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개별성이 다양하게 만개하는 것이 축제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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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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