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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극in을 맞이하며

김일송_공연칼럼니스트

제155호

2019.03.14

발문만 몇 번째 고쳐 쓰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고사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깨달음은 늘 늦다. 거절해야 했다고 깨달았을 때는 다른 필자를 수배하기에 너무 늦은 때였다. 청탁 전화를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했지만. 고민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고민은 편집진이 교체된 후 첫 칼럼이라 더욱 가중되었다.
한두 줄이라면 모르나, 나에겐 장황하게 축하 인사를 쓸 글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새로운 기획 방향에 대해 대신 설명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개편에 대해서라면 편집진이 더 정확하고 상세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 내 글은 장님 코끼리 더듬는 격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새로운 편집진과 사적 인연이라도 깊었다면 그들의 면면이라도 소개했을 텐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으니 글 쓰는 일이 여간 고된 게 아니다. 앓는 소리 하는 건 다 면피용 변명이다. 미욱한 글에 대해 미리 양해를 부탁드린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를 꺼내 보고자 한다. 먼저, 마지막 인사 한 마디 남기지 않고 떠난 전 편집진들의 발자취를 독자로서 정리해보려 한다. 그것을, 한편으로 새로운 편집진에 대한 당부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파심이겠으나. 그들에게 거는 기대와 축하 인사는 그 뒤에 붙여도 될 듯싶다.
개인적으로 기존의 ‘연극in’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대상 독자를 꼽고 싶다. ‘연극in’을 읽는 주 독자층은 이 분야에 종사하거나 종사를 희망하거나, 혹은 연극을 꾸준히 관람해왔던 관객들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연극의 장르적 특수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환경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연극in’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은 이 분야에 오랫동안 애정을 품어왔던 이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일회성으로 연극을 관람하는 이들을 껴안으려 하면서 충성도 높은 관객을 잃는 일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근거는 기사 콘텐츠에 있다. 그동안 ‘연극in’에서 소개했던 인물들부터가 그렇다. 스크린에서 만날 기회는 많지 않지만 대학로에서는 종종 마주치게 되는 배우들, 소극장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무대 언어를 찾아 시도하는 연출들, 깊은 내공에서 비롯된 필력으로 넓은 울림을 주는 작가들. 혹은 다른 지면에서는 만날 수 없는 제작진들까지. 연극에 대한 관심이 여간하지 않다면 알 수 없을 인물들이 주 인터뷰 대상자들이었다.
마찬가지다. 작품도 그랬다. 기존의 ‘연극in’에서는 천 석 이상의 대극장 작품보다는 백 수십 석, 더 적게는 수십 석의 소극장 작품들을 주로 소개해왔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조명하는 문제적 작품들, 결핍의 빈 무대를 참신한 상상력으로 채우는 기발한 작품들, 화려하지 않은 뭉근한 감동으로 관객을 울리는 가슴 뭉클한 작품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분명, 티켓 예매사이트 예매순위 10위 안에 드는 작품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가지고 보았던 기사는 기획연재물 ‘극단적인 연극사(私)’이었다. 2014년 4월부터 연재되었던 이 기획을 통해 신진부터 중진까지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극단들이 소개되었다. 2015년 2월까지 총 20개 극단이 소개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충분치 못한 수라고 생각한다. 그건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아무튼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로 여럿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주요했던 이유는 다른 데서는 보기 어려운 속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사들은 잉크가 아닌 알코올로 쓰였다. 그 밤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건 물론, 취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기사도 있었다. 2차, 3차로 이어졌을 그들의 술자리에 끼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적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내밀한 대화는 친밀한 관계가 전제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코너인 ‘연극데이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벽이 없어서였을까. ‘연극in’의 인터뷰에는,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는 보기 어려운 농밀한 이야기가 있었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연극in’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기존 ‘연극in’의 성과를 꼽을 때, ‘10분희곡릴레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의 공모가 중단편을 대상으로 하는 탓에 볼 수 없었던 단편, 초단편들이 이 공간을 통해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일부는 공연의 형태로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전임 편집진과 서울연극센터의 노력 덕이었다고 생각하며, 늦었지만 그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서 새로운 편집진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특히 구성원들을 보면, 이러한 기대가 헛되지는 않을 것이란 신뢰가 간다. 새로운 웹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편집위원들의 면면이었다. 강보름, 고주영, 김방옥, 김신록, 김지수, 정진세, 유혜영. 총괄 에디터인 정진세를 제외하고 새로운 구성원 모두가 여성이란 사실은 따로 복기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남녀를 구분지어 여성의 참여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건 근대적 발상이다. 하지만 성차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아직 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구성은 유의미하고, 그래서 복기해 놓을 만하다.
인적 구성에 있어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다양한 세대가 참여한 점이다. 이전의 ‘연극in’이 3-40대 젊은 연극인의 목소리에 집중해 힘을 주었다면, 새로운 ‘연극in’은 연극평론가 김방옥 선생의 참여로 보다 넓게 확장된 느낌을 준다.
분야 또한 다양하게 구성하였다. 극작, 연출, 연기, 기획, 평론, 제작까지. 분야와 관련해 또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그들 대부분이 하나의 분야에 갇히지 않고 둘 이상의 활동을 겸한다는 점이다. 총괄에디터인 정진세는 극작, 연출, 비평 등 전방위에서 활동 중이며, 고주영은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 중인 독립 프로듀서이다. 김신록의 경우 활동반경이 넓다. 활동의 중심은 연기이지만, 외에도 그는 창작, 워크숍 리더, 연기비평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편집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한 이는 극단 애인의 김지수 대표였다. 스스로 ‘재미있는 연극하고 싶은 휠체어 탄 사람’이라 소개하는 그는, 장애인들을 주축으로 ‘에이블 아트(Able art)’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극단 애인의 대표다. 편집진으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참여로 이상적인 조합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일반’이라는 인식의 틀에 가두어지기 쉬운 웹진의 지평을 넓혀 주리라 기대한다.
지난 ‘연극in’은 ‘관객을 좋은 연극으로 안내하는 네비게이터’를 자처한다고 했었다. 이를 통해 흥미롭고 가치 있는 콘텐츠로 연극을 선택하는 관점을 제시하려 했다. 그리고 새로운 ‘연극in’은 ‘연극을 다양한 감각으로 인식하게 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여러 콘텐츠로 연극에 대한 확장된 관점을 제시하려 한다.
일단 적시된 표현만으로 판단하면, 이전 ‘연극in’이 ‘가치’를 중심에 두었다면, 이번 ‘연극in’은 ‘감각’을 우위에 두는 느낌이다. 더해 새로운 ‘연극in’은 큐레이팅의 기능을 축소하려 하는 느낌이다. ‘가치’를 중심으로 ‘좋은’ 작품을 선별하기보다는, ‘감각’을 우위로 ‘모든’ 작품을 포괄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당장은 알 수 없다. 진면목은 웹진을 통해 확인하는 게 옳을 듯싶다. 새로워진 ‘연극in’이 겨우내 소멸했던 나의 감각을 봄의 기운으로 깨워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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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송

김일송 ‘이안재’ 대표
서강대 불문학과 졸업. 문학(희곡)전공으로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무대예술을 소개하는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 과 서울무용센터에서 발행하는 무용웹진 [춤:in] 편집장을 역임했다.
ilsong75@gmail.com / 페이스북 Il-Song Raphae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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