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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자유와 하우스, 그 사이에서

윤소희_남산예술센터 하우스 어셔

제167호

2019.09.05

하우스 어셔로서 근무한 지 3년 반, 이즈음 되니, 종종 “하우스 매니저를 진로로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연극을 공부했고, 또 공부하고 있지만 애초에 하우스에 큰 뜻을 품고 어셔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또 유사 직종으로 볼 수 있는 예술경영이나 기획, 홍보/마케팅 등을 나의 길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오랫동안 하우스 어셔 일을 하고 있나? 이렇게 물으신다면 아마도 하우스 어셔의 독특한 위치, 그리고 그 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시선 때문일 것이다.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일하며 만난 작품이 오십여 편을 훌쩍 넘었다. 객석에서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객석 뒤편 어둠 속에서 만난 이미지들은 아직도 다 기억에 남는다. 남산예술센터는 창작 초연 제작극장이고, 삼일로창고극장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극장이라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전통이 꼭 구시대적이고, 새로운 시도가 늘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동시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에 올라온 작품 각각에 대한 이야기도 좋겠지만, 이 짧은 글에서는 조금 비켜선 이야기를 하려 한다. 바로 창작자와 하우스, 그 사이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하우스 어셔는 사전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들을 하우스 매니저에게 전달받고 그대로 이행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창작자와 마주할 일이 없다. 남산예술센터에서는 기존 업무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공연들도 있었지만, 하우스매니저가 중간에서 조율을 하고 많은 스태프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업무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지는 않다. 반면 삼일로창고극장은 대관 공연이 대다수이고, 남산예술센터에서 시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는 하우스매니저 없이 어셔들끼리만 업무를 수행해야 하다 보니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작년 6월에 재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매우 소규모이지만 색다른 가능성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극장의 기본 출입구 외에 백리프트나 비상구 등 독특한 출입구들이 있고, 극장 공간 외에도 테라스-스튜디오-갤러리로 공간이 이어져 있다. 이 때문에 삼일로창고극장에 들어오는 공연팀들은 전체 공간을 무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재미난 시도를 하며 공간을 확장시킨다. 창작자가 머릿속에 그린 세계가 잘 구현되는 것은 극장 스태프로서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극장의 스태프로서 하우스팀 역시 창작자의 작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성실히 지원하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공연 팀은 지나치게 자신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집중해 하우스 팀을 그 그림의 일부로 대하는 일도 있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업무를 매니저를 통하지도 않고 어셔 개인에게 요구하기도 하고,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이유로 하우스 팀의 업무를 연출이 조정하기도 한다. 또 극단 측의 일원이 해야 마땅한 일을 하우스 팀에게 부과하는 일도 있었다. 하우스 어셔가 극장에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계약되어 있긴 하지만, 하우스 팀은 극단의 일원이나 예술가는 아니지 않은가? 하우스 어셔는 관객과 관계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창작자와의 새로운 부딪힘은 무성한 질문을 남겼다. 창작자의 예술적 자유가 어떠한 업무보다 상위에 있을 수 있을까? 또 창작자의 자유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 것일까?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례를 기술하면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를 혹은 어떠한 일을 특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은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한 일도, 또 누군가 대단히 몰상식해서 벌어진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대단히 권위적으로 군 것도 아니며, 반대로 연극 경험이 전무한 것도 아니었다. 나의 감각으로는 그들은 그저 그 일들을 ‘하우스 어셔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고 생각한다.

자유에 대한 문제는 늘 어렵다. 과연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에 와서 다시 일련의 일들을 돌이켜봐도 그 요구(혹은 부탁)는 해야 할 일도 아니었고, 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도 아니었다. 당시 상황에 따라 일부는 창작자의 요구(혹은 부탁)를 들어주기도 했고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창작자의 자유를 대단히 지켜줬다거나 침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창작 문법들이 만들어지는 요즈음에 극장과 창작자는 단순히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관계 이상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디테일을 세세히 기록해 매뉴얼북으로 만든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하우스 어셔로 일하지 않았더라면 쉽게 감각하지 못했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위치지어지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 또한 감각하지 못하는 또 다른 영역이 있을 것이다. 연극이라는 것을 쉬이 논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연극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작업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에서 자신과 타인의 위치를 가늠해 보는 것은 기본적인 출발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우리 모두가 각각의 영역을 다 체험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에 우리는 꼭 직접적인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짧고 투박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사진제공: 삼일로창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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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윤소희
2016년부터 남산예술센터에서 하우스 어셔로 근무하고 있다. 2018년부터 삼일로창고극장에서도 함께 근무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sohee.you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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