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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만나는 과정으로서의 공연

김원영

제169호

2019.10.10

대학교 1학년 때 성신여대 근처에서 공연을 봤다. ‘공연예술의 이해’라는 1학점짜리 교양수업의 기말과제를 위해서였다. 1학년 1학기 ‘아싸’였던 나는 수업을 혼자 들었다. 공연을 같이 보러 갈 사람도 마땅히 없어서, 오랜 친구에게 연락해 시간을 잡았다. 나는 당시 막 운전을 시작했고(운전을 하지 않으면 휠체어를 타고 이동은 거의 불가능했던 때다), 성신여대 골목 어딘가에 아주 불안한 주차를 했다. 차를 빼달라고 전화가 올 가능성이 95% 정도 되어 보였다. 어쨌든 친구와 나는 차를 세우고, 공연장까지 갔다.

예상 가능하듯 공연장은 지하에 있었다. 나 외에 친구 혼자였고, 친구가 나를 업거나 안고 내려가기는 무리였다. 어떻게 관객과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 소극장 아래로 내려갔다. 공연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불안하게 주차를 하고 지하 계단을 내려오느라 이미 완전히 지쳐있었다. 휴대폰을 꺼야 했지만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끄지 못했다.
기말보고서를 썼다. 공연장 진입부터 관객으로서 나의 감수성은 완전히 부서졌고, 그 때문에 그 공연이 나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를 서술했다. 결국 엉망진창인 글을 제출했지만 나름 새로운 시도라며 뿌듯해했다. 당시 나의 주장은 비평 대상이 된 연극이 장애인에게 접근 불가능한 장소에서 공연되었으므로 그 공연을 좋게 평가할 수 없다는, 그런 ‘윤리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계단을 업혀 내려가는 동안 나의 감각이 완전히 부서졌으며, 그 부서진 마음으로 만난 공연이 불안하고 불분명했다는, 말하자면 ‘미적인’ 주장이었다.
공연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는 작품 ‘외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관객의 ‘부서진 마음’도 작품 외부의 문제일까? 관객들은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사정들을 각자 겪은 채 공연장에 온다. 그날따라 감기에 걸렸거나, 지원했던 대학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거나 연인과 헤어진 후에 ‘하필’ 그날의 공연을 본다. 그의 정서와 조응할 때 어떤 공연은 더 가치 있게 빛날 것이고, 어떤 공연은 더욱 최악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주관적 정서를 공연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고려할 방법은 없으니, 작품에 대한 비평에 관객의 정서를 반영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주장일 것이다(비평가는 공연과 무관한 원인에서 비롯된 자신의 주관적 정서에서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서와 달리 우리의 ‘마음’이 모두 주관적인 것은 아니라면 어떤가?

내가 공연을 보러 갔던 2003년은 한국사회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대학생이 된 나는 그 집합적 실천의 효과를 대학사회 안에서 만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들려서 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나에게 그다지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3년에 나의 ‘마음’에는 그 순간의 창피함이나 불편함의 ‘정서’를 넘어서는, 집단적 권리 운동에 수반된 분노나 부정의에 대한 감각이 구축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마음’이라면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미리 만나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지난 호 까지 ‘연극in’에서는 ‘과정으로서의 공연’을 기획으로 다루었다. 나는 연재된 논의들을 읽으면서, 어떤 작업의 ‘과정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일’이 특정 시공간의 ‘마음’을 만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우리는 한 개인의 영웅적 천재성이나 카리스마에 복종하는 예술 공동체, 거대한 원리와 규범에 종속된 작업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진정성의 예술도 좋은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관객의 ‘마음’을 창작의 과정에서 살피고, 그것과 만나는 일이야말로 영웅적 인간에 대한 복종도, 개인의 내면에 대한 천착도 지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주차된 차를 빼달라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공연예술의 이해’ 과목에서 나는 C+학점을 받았고 3년 후 재수강을 했다. 당시 그 공연의 창작과정에 내가 참여했더라도 공연장을 내려가는 계단이 없어졌을 리 없지만, 적어도 마음은 꽤 달라졌을 것이고, 작품도 아주 약간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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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김원영 작가, 변호사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희망 대신 욕망>을 쓴 저자이고, ‘법무법인 덕수’에 소속된 변호사다.
연극 프릭쇼(2014년 변방연극제) 등을 기획했다. 장애예술, 그 중에서도 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체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탄다. 한겨레신문, 비마이너, 시사인 등에 글을 썼고 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DisabilityTheoryAnd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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