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너 연극반 한번 들어가 봐라

이정환

제175호

2020.01.23

나는 대학교 학생공연 마니아다. 지금껏 본 학생공연(이하 학공)만 130개 이상이다. 학공들이 많이 올라가는 학기 초가 되면 나는 연일 대학가들을 돌아다니며 학공을 본다. 처음부터 내가 연극과 학공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등학생 때까지는 연극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고 연극이란 장르의 존재조차 잘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말을 들었다.
“너 연극반 한번 들어가 봐라”
대학에 합격한 후 아버지께서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특별한 재주도 없었고 마땅히 들어갈 동아리를 찾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의 추천에 따라 대학교 연극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전에는 연극을 잘 알지도 못했지만, 연극반에 들어간 이후엔 4년 내내 연극 공연을 올렸고 지금은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연극반 생활을 했던 것은 정말로 소중한 추억이다. 겨울 방학 때 첫 연습을 하러 눈길을 걸으며 연습실로 향하던 추억, 배우로서의 첫 공연 직전에 객석 아래에서 엄청나게 긴장을 했던 추억, 마지막 공연 이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술집에서 밤을 새우던 추억, 전국 연극 경연 대회에 나가 상을 탔던 추억까지. 잘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생 시절 그 무엇보다 열정적이고 즐거웠었다.
대학교 학생공연, 그 중에서도 전공생이 아닌 학생들이 올리는 공연은 다른 일반 공연들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는 내가 학공을 좀 더 아끼고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공은 아마추어들의 공연이다. 연극반에서 하는 공연은 연극을 처음 접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모여 올리는 공연이다. 그러다 보니 완벽하지 않다.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 내 차례인지도 모르고 멍하니 있다가 대사 몇 줄 건너뛰기도 한다. 무대를 직접 만들다 보니 마감이 서툴게 되어서 벽지가 뜬 적도 있다. 또한 무대가 공연 중간에 무너진다거나 음향이 엉뚱한 타이밍에 틀어지는 등 돌발 상황에 대한 에피소드도 가득하다.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연극반 사람들은 한정된 능력과 자원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아쉬운 부분이 있을지라도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즐겁게 하는 것이다.
돈이 안 들어가는 공연이 없듯이 학공 또한 그러하다. 나의 경우에는 공연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수천 통의 우편을 발송하거나 예식장에서 서빙을 하기도 했다. 공연비가 부족해 기획이 본인의 대학 등록금을 부모님 몰래 공연에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사연이다. 물론, 학공은 다른 일반적인 공연들보다 돈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다. 출연진에 대한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고 각종 무대 자재들이나 소품들은 직접 제작하거나 대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연극반 공연에서 가장 큰 목표는 ‘우리가 재밌는 공연을 하기 위해서’가 될 수 있다. 상연작 또한 프로에서는 자주 올라가지 않는 작품이나 연극반 단원들이 직접 창작한 것을 올리는 등 선택에서도 자유롭다. ‘관객들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우리가 올리고 싶은 작품’을 공연한다는 점에서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서강연극회 제105회 정기공연 <82년생 김지영>포스터 (2017)(출처:서강연극회 페이스북)

적지 않은 수의 공연에 참여했지만 더 즐기지 못했고 더 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졸업한 이후에는 취업이라는 현실의 문제 때문에 더 이상 연극을 올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극 공연을 올리면서 느꼈던 즐거움이 그리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다른 학공들을 관람하고 그 후기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학공’이라는 문화 자체를 좋아한다. 완성도가 높은 학공을 관람하면, 내가 그 공연을 올린 것 마냥 기쁘고 뿌듯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학공을 보면 내가 참여하지 않았어도 아쉬운 감정을 느낀다. 연극을 할때는 다른 학교의 공연에 대해 경쟁의식을 가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은 옅어지고, 어떤 연극반이든 좋은 공연을 올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일반 상업 공연들은 전문적으로 리뷰와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일반 관객들도 블로그나 예매 사이트 등에 리뷰들을 많이 남긴다. 하지만 학공은 그런 리뷰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공연 기간도 3일에서 5일 정도로 짧고, 가족과 지인 등이 주된 관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에 대한 피드백이 있어야 이후 공연에서 개선될 수 있고, 각각의 연극반 역시 자신들의 공연에 대한 피드백을 원할 것이라 생각해서 나는 학공을 관람한 후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봤던 공연들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리뷰를 적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단지 학공을 좋아하기 때문에 리뷰를 작성하게 되었다. 수많은 학공을 본 지금은 학공을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학공에서의 ‘리뷰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채 나는 각 대학의 연극반들이 어떤 공연을 올릴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학공을 보러 각 대학교의 극장에 가고, 티켓을 받아 입장을 기다릴 때 내 마음은 설렘의 감정으로 가득하다. 이 공연을 위해 해당 연극반은 지난 시간동안 어떤 노력을 했을까. 설령 그 결과물이 실망스러울지라도 나는 학공을 관람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소중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지금도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반 프로공연 못지않은 완성도를 가지고 감동을 주는 학공을 만나게 되면 너무나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 나는 또 다시 대학가 극장으로 향하게 된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이정환

이정환 블로거
서강연극회 출신. 연극반에서 <쥐덫> 배우, <지평선 너머> 기획, <어느 계단의 이야기> 연출, <사쿠라가든> 조연출, <루나자에서 춤을> 음향감독, 기획팀 등 총 14번의 공연에 참여함. 지금은 단지 학공을 좋아하는 인터넷 블로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