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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 기생하기

최서윤

제177호

2020.03.26

2020년 2월 이후 ‘기…’와 ‘봉…’만 들어도 기계적인 반응이 나왔다. <기생충>의 오스카 4개 부문 수상 전후,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영화와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3월 하순 발행될 이 칼럼에, 굳이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기생충>은 와이파이조차 이웃에 기생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 위기에 처한 ‘반지하 가족’이 언덕 위 저택(design by 남궁현자)에 사는 부자 가족에 ‘침투’하며 생기는 일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키득거리거나 탄식을 내뱉을 소재가(짜파구리, 대만카스테라, 미세먼지 등) 마구 튀어나오고, 블랙코미디, 스릴러, 호러를 넘나들며 장르적 쾌감을 전한다.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음악·미술·연기·촬영·편집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서 경지에 이른 전문가의 솜씨를 감상할 수 있고,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지금 시대의 구조적 모순을 포착하는 시선은 날카롭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가진 영화는 명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 마음이 향하지 않는 영화일 뿐이다. 머리로 숱한 단점을 인지하면서도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이 있고, 수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이 거부하는 작품이 있는데, 내게 <기생충>은 후자에 가깝다. 비평은 거리감을 확보할 때 가능한 것. 나는 그동안 이 훌륭한 영화에 대해 어떤 말도 얹을 수 없었다. 영화의 결말에 지독히도 상처 입었던 것이다. 일 년 가까이 지나고서야 간신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기생충>은 파국으로 향한다. 저택에는 지금의 주인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고, 파국의 단초가 됐다. 비밀은 반지하보다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이 사회에서 ‘없는 존재’가 된, 오직 배우자 문광의 돌봄으로 생존해 온 근세다. 관리인으로 일하던 문광이 반지하 가족의 침투로 저택에서 밀려나자 그의 생존은 위협받게 됐다. 비 오는 날 주인이 부재한 저택에 돌아온 문광은 자신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충숙에게 진실을 밝히고, 비용을 지불할 테니 근세를 먹여달라 애걸한다. 이때 서로를 도왔다면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충숙은 밝혀진 진실에 희게 질리고, 근세에 대한 혐오감에 선 긋기를 택한다. 그리고 와르르. 엿듣던 가족들이 쏟아지자 문광의 눈초리는 날카로워진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반지하 가족과 ‘지하 가족’의 대립은 폭우에 의한 귀환을 알리는 ‘주인 가족’에 의해 일단락된다.

들키지 않고 ‘바퀴벌레처럼’ 저택을 빠져나온 반지하 가족의 아버지 기택, 아들 기우, 딸 기정은 폭우를 뚫고 한참을 하강한다. 모든 것이 고이는 곳에 그들의 집이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다 수재민 대피소에 몸을 누인다. 다음날 그들을 깨운 것은 비 온 뒤 날씨가 맑으니 파티를 하자는 ‘사모님’의 전화다. 초대의 탈을 썼지만 일당을 지급받으며 거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 초대가 아니었다. 지친 몸을 일으킨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난장은 파티에서 벌어진다. 지난밤, 급하게 상황을 덮으려다 벌어진 사고로 문광이 앓다죽었고, 근세는 오열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기우에 의해 지하에서 풀려난 근세는 기정을 칼로 찌르고, 충숙에게 제압당한다. 쓰러진 기정은 아랑곳 않고 차 키를 달라 독촉하며 근세의 냄새에 질겁하는 사장을, 기택은 우발적으로 찔러 죽이고 사라진다. 몇 년 뒤 기우는 저택을 관찰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기택의 행방을 알게 된다. 기택은 주택의 지하에 숨어든 것이었다.

기우는 편지를 쓴다.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요. (...) 돈을 벌면 그 집부터 사겠습니다. 이사 들어가는 날에 저는 엄마랑 정원에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성공한’ 기우가 계단을 오른 기택과 포옹하는 따사로운 풍경을 비추던 카메라는 추락하고, 눈발 날리는 겨울의 반지하 방에서 시린 얼굴로 편지를 맺는 기우가 포착된다. 그리고 암전. 내내 냉소적이던 영화는 마지막까지 차디찼다.

냉소와 풍자는 영화를 ‘쿨’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말까지 그래야만 했을까? 카메라가 추락할 때 마음이 철렁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양지바른 대저택은커녕 공동주택 한 호도 자력으로 매입하기 어려운 것이 대다수 청년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그렇기에 주택 매입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기우에게 냉담한 태도는 다른 청년들에게도 상처 줄 수 있음이었다. 남은 것은 절망뿐. 그 때문일까? <기생충>은 계급 간 격차와 대립을 선명히 그렸지만,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낱낱이 분석하고 정보를 공유했지만, <기생충>이 그려낸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토론은 활발하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 촬영지였던 슈퍼 ⓒ베이비뉴스 김재호
정치권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기생충>은 현실개선보다 관광상품 개발에 영감 주는 존재가 된 듯 보였다. <기생충>의 국제영화제 수상 뒤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영화 촬영지를 배경으로 한 관광코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그곳에 삶이 있는 주민들을 위한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폭우로 동네가 물에 잠기는 장면을 촬영한 지역에서는 ‘체험관광시설’을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해당 시퀀스의 처절함은 관광시설로 재현되고 소비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발상이 놀라웠다. 게다가 남의 가난과 불행을 ‘재미’로 구경하고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해도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설 일은 아니지 않을까.

다가오는 총선에 다시 <기생충>을 생각한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코로나19로 반지하 단칸방에서 자가격리해야 하는 상황을 헤아리는 글을 봤다. 건강하던 사람도 피부병이나 호흡기 질환에 걸릴 수 있는 게 반지하라는 주거환경이다. 정을 붙일 수 없는 주거 공간에 몇 주간 ‘갇혀’ 지내야 한다는 게 주거 취약계층에게 어떤 의미일까. 거기다 좁아서 ‘홈트레이닝’이 어렵고, 음악 감상 · 독서 등 문화생활도 어렵다면…. 그런데 거기 달린 댓글이 가관이었다. “단칸방이어도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 보면 될 듯합니다^^” 웬만하면 정치인 중에 이런 사람 없으면 좋겠다. 남다른 공감능력으로 일상 속 불평등의 디테일을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하면 좋겠다. <기생충>이 거둔 성과에 신나서 숟가락 올리기보다, 영화가 그린 현실에 아파하며 고민하는 사람이면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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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최서윤
말하고 싶은 것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전하는 법에 관심 많다. 그러다 보니 가지가지 하게 됐다. 2012년 창간한 잡지 <월간잉여>는 5년째 휴간 중이며, 대신 저서 『불만의 품격』, 공동 저서 『미운청년새끼』를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단편영화 <망치>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볼 수 있다. 가지가지 하는 창작자는 대충 작가라고 하는 게 룰인 것 같아 자기소개 때마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영 어색하다. 좀 더 적절한 직함을 제안하고 싶다면 facebook.com/monthlying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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