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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소리 좀 그만!

최서윤

제179호

2020.05.14

우연히 본 TV 시사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출연해 토론하는 코너였다. 출연자의 반은 정부와 여당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역할로 보였다. 그날의 비판은 ‘기부 강권 분위기’였다. 할 수 있는 얘기긴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당신들에겐 그게 제일 중요해?

때는 재난지원금 관련 2차 추경안이 통과된 직후였다. 소득 하위 70%에 지급한다는 방침을 수정해 전 국민에 지급하기 위해 예산 규모를 늘렸다. 재난지원금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 쓰이는 시간을 줄여 최대한 신속하게 지급하자는 취지다. 다만 재정 지출이 부담이라, 자발적 기부로 일부 충당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일부 언론 및 야당이 국채발행을 통한 예산 충당에 반발하여 나온 절충안이었다. 그런데 국채발행을 반대한 측이 방송에 나와 기부를 눈치주네마네 웅얼대니 ‘그럼 도대체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태도였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이 재난 상황에서도 먹고 살만한 사람이고,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만 있어서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선택적 공감’ 때문에 많은 문제가 빚어진다. 다수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은 갈라진 두 진영의 갈등을 목격하고, 자신이 둘 중 하나에 속한다고 느낄 때 공감능력이 크게 자극받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편을 정하면 해당 집단의 시각을 갖게 돼 내집단에 대해서만 강한 공감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한다. 타인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 뇌가 자극되며 공감이 일어난다는 것이 전통적인 개념이었으나, 현실에서는 기존의 관점을 강화하고 다른 집단에 대한 공감은 차단해버리는 ‘공감의 어두운 면(Fritz Breithaupt)’이 커져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난지원금 기부 논의에 반감을 표한 패널도 마찬가지였을까? 진영에 속해있다고 인식하며 정치적 계산을 기반으로 공격의 기회를 노리다 보니, 특정 집단에 더욱 공감능력을 발휘하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공무원들은 아마 전부 자발적 기부를 할 것 같다. 연말에 세액 공제를 받을 때, 총무과 같은 데에서 기부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런 구조에서 기부를 안 할 수 있겠냐”고 그는 걱정했다. ‘눈치 보기’ 문화가 불러일으킬 문제에 대한 세심한 상상력이었다. ‘같은 편’의 패널이 덧붙인 말은 더 나아갔다. “나처럼 지역이나 사회에 얼굴이 알려진 사람은 오프라인에서 신청하기 낯 뜨거울 것이다.” 이 정도면 자의식 과잉 아닌가? 마스크 쓰고 가면 못 알아볼 것 같은데….

물론 기부는 자발적이어야 하고 강제돼서는 안 된다. 단지 지금 상황에서 최대 고민이 (강제된 것도 아니고) ‘눈치 보임’이라면, 그 사람은 그래도 살만한 편에 속한다는 방증 아닐까. 지금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기부에 대해 눈치 볼 여력도 없다. 재난지원금을 받아 생존과 관련된 소비를 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방송에서 그토록 섬세하게 논의된 ‘살만한’ 집단에 비해,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치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절충안으로나마 전 국민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돼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만 70% 선별지급 논의 시 지적받은 부분을 쉬이 잊지 않고, 문제의 근본을 바꿔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사회보장 부문에서 특히 취약한 프리랜서와 자영업자의 문제를 강조하고 싶다.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선별한 70%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초기 계획은 건강보험료 책정 방식에 대한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켰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소득 대비 지나치게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는 이들이 많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다. 재난 상황에서 특히 취약한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는 대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고,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제외되기 쉽다는 점이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한 선별 지급의 주요 문제 중 하나였다.

건강보험료가 예전 소득을 근거로 책정된다는 점도 수입이 들쑥날쑥한 이들에게 고통을 준다. 수입이 뚝 떨어졌는데 보험료는 쑥 올라 알아보면, 현재 건강보험료는 2018년 소득을 근거로 한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이 경우, 프리랜서는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일회성 작업에 대한 해촉 증명서를 일일이 발급하여 증명해야 한다.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다. 게다가 소득이 급격히 줄어도, 업무가 줄어서일 뿐 거래업체와의 계약이 해지된 게 아니라면 보험료를 줄일 방도가 없다. 건강보험료 때문에 긴급재난지원금까지 못 받는 변은 생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지원금은 선별적으로 지급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일정이 취소돼 어려움을 겪는 예술계를 위한 지원금이 신설됐으나, 건강보험료 납입 내용을 통해 가난을 증명하거나 명시된 문서로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면 받기 어렵다. 행정 편의를 위해 정해놓은 기준이 ‘지금’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걸러내는 것이다. 이에 예산을 늘리고 지원 기준을 완화해 더 많은 예술인이 직접지원의 대상자가 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240억 원 규모의 관람료 지원과 같은 대책은 간접지원 방식이며, 언제 올지 모를 ‘코로나 이후’를 위한 예산 편성이다. 이처럼 언제 쓸지 모르고 실효성도 분명하지 않은 예산으로 지금 당장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는 예술인을 직접지원 하자는 주장은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나도 공통점이 많은 이들에게 더욱 공감능력이 발휘돼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공공선을 위한 정치가 직업인 사람에게 폭넓은 공감능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더 많은 현장의 사람을 만나 귀담아듣길 기대한다. 한가한 소리 좀 그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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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최서윤
말하고 싶은 것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전하는 법에 관심 많다. 그러다 보니 가지가지 하게 됐다. 2012년 창간한 잡지 <월간잉여>는 5년째 휴간 중이며, 대신 저서 『불만의 품격』, 공동 저서 『미운청년새끼』를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단편영화 <망치>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볼 수 있다. 가지가지 하는 창작자는 대충 작가라고 하는 게 룰인 것 같아 자기소개 때마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영 어색하다. 좀 더 적절한 직함을 제안하고 싶다면 facebook.com/monthlying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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