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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땅을 강에게 - 1

박은선_리슨투더시티 디렉터

제180호

2020.06.04

모-래
리슨투더시티는 2012년 변방연극제 참여작으로 한강 세빛둥둥섬 앞에서 “모-래”라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원래 강 모래로 끝없이 뒤덮여 있던 한강이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한 여의도 윤중제 공사와 영동 개발, 강변도로 개발 등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지금은 모래 한 톨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한강에 모래를 돌려주자는 것이 주된 취지였다.

우리나라 강변의 땅은 공유수면법 때문에 공통재(the commons)가 아니라 국가 소유이고,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강의 범람터와 강변을 개발할 수 있다. 당시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현금이 필요했고 자금을 만들기 위해 시와 국가가 앞장서 강의 모래를 퍼올리고 범람터를 아파트로 만들어 부동산 사업을 했다(손정목, 2003). 그렇게 강변의 범람터는 아파트가 되기 시작했고, 강은 홍수가 나지 않도록 직선화하고 모래사장을 없애 버리기 시작했다.

2012년 변방연극제 참여작 모-래 엽서, 한강은 원래 끝없는 백사장이었고 사람들이 강수욕을 즐기던 곳이었다.

2012년 당시 내성천에서는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시작된 영주댐을 짓기 위해 한참 준설(강에서 모래를 파올리는 작업) 중이었는데, 강 모래는 끝없이 퍼올려져 어디론가 팔려가고 강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었다. 강이 파괴되는 그 모습은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끔찍한 풍경이었다. 이 모습을 어떻게 도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디론가 팔려가는 모래의 존재를 도시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 한강의 콘크리트가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에게, 원래 강은 구불구불 흘러야 하며 강물을 정화작용을 하기 위해서 모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었던 셈이다.

대규모 준설 중인 내성천에서 24.5톤 트럭에 백만 원 정도의 모래를 사서 세빛둥둥섬 앞으로 가져와 콘크리트 강변 위에 붓는 것이 목표였다. 그 모래를 강에서 준설해서 서울까지 가져오는 과정을 라이브로 방송하고,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은 콘크리트 강변 투어를 하고 왜 도시 강이 다 사라지게 되었는지 토크쇼를 기획했다. 큰 퍼포먼스를 처음 해보는 데다 홍수 시즌에 비까지 적지 않게 내리고, 한강 관리사무소와 소통도 미숙해서 정말 말 그대로 허둥지둥했다. 연극이 끝난 후 강변 콘크리트 공원 위에 뿌려진 모래는 한 톨도 남김없이 다시 담아서 강변의 준설장에 보내야 했다. 한강 관리소에서는 강물에는 모래가 물에 흘러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맘씨 좋은 관객들은 공연이 좋았다고 했지만 당시에 고생하신 협력자분들, 출연자분들, 변방연극제 스태프분들께는 아직도 미안함이 남아있다.

다시 강에 대한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면 전혀 다르게 구성하고 싶다. 연극 한 편을 만드는데 준비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특히 야외 현장의 연극의 경우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기술이 어떤 건지 당시에는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강에는 자연이 준 정화 필터이자 생명을 길러내는 모래가 필요하다는 것, 강에는 홍수가 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홍수가 나지 않는 강이 문제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하수가 아니라 강물을 식수로 이용한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강, 산, 나무와 사람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지만 도시 속에서 그러한 연결점을 인식하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우리는 자연과 우리의 생명을 연결할 상상력과 언어와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참고문헌] 
맥컬리패트릭, 2003. 소리 잃은 강지식공작소.
손정목
, 2003. 서울도시계획이야기한울.
피어스프레드, 2010. 강의 죽음브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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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리슨투더시티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미술과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환경공간정보 및 재난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listentothecity.or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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