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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말, 당신의 ‘모든’에 포함되지 않는 것

유선_인포숍 카페별꼴 매니저

제181호

2020.06.18

2012년 노동절에 나는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서자(Stop the City Take the Street)“라는 피켓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과 서울 명동에 서 있었다. 도로를 점거하고 빌딩과 백화점 앞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그만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와서 같이 걷자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도 빌딩에서 뛰쳐나오지 않았지만 삐걱거리며 쉴 새 없이 생명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만 굴러가는 이 도시와 시스템을 잠시나마 멈춘 것 같았던 그런 순간이, 그 이후에도 일 년에 몇 번씩은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전 세계 도시가 한꺼번에 멈춰버리는 날이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2020년에 이렇게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세상이 멈추리라고는 아마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일 카페에서 음료 만드는 일을 비롯한 다종다양한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새 SF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 내 중요한 일과였다. SF에서 상상하는 온갖 디스토피아 미래가 둥둥 머릿속을 떠다니는 밤과, 그런 갑작스러운 변화나 혁명이나 움직임이나 아니면 뭐라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지난한 낮이 번갈아 지나갔다. 세상이 끝나게 되는 다양한 SF적 사례와 그것의 해결 방법이 '실제로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무의미할 만큼 현실감이 없는 것이었다. 인류는 갑자기 터진 핵폭탄이나 핵발전소 때문에 우주로 피난을 간다, 기후변화로 홍수, 쓰나미, 지진, 폭염 등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갑자기 태양의 성질이 변해 햇빛을 받는 즉시 죽는다, 사이보그의 반란이나 인공지능의 공격, 좀비와 외계인의 침공을 겪지만 다시 희망을 찾아 어떻게든 생존해 미래로 나아간다.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만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거나, 아니면 특별한 면역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도움과 우연들이 겹쳐 인류는 또 근근이 새로운 세상을 재건한다...
그러다 2020년 초여름에, 아직 완전히 망하지는 않은 멸망의 끄트머리에서,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이 수천만 명이 자기 집에 격리되어 사는 이야기를 현실에서 볼 줄이야.

‘격리’라는 방식으로 세상이 멈춰버리고, 가장 보수적이었던 사람들을 포함해 대부분이 지금의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으다니. 갑자기 나를 비롯한 내 주위 친구들은 일자리를 잃었고(대부분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기보다는 서서히 일감이 사라졌다), 공공 공간은 폐쇄되고, 거짓말처럼 미세먼지가 사라져 하늘이 맑아지고, 마스크 쓴 사람들이 러시아워에도 버스정류장에서 서로 밀치지 않고, 만지지 않고, 말하지 않고, 함께 먹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아프면 일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를 실제로 적용하라고 한다. 광화문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에는 무지개 깃발, 성조기와 함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매일이 혼돈 그 자체인 와중에 나는 평생 이렇게 한가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이 집에서 여름 동치미를 한 통 담그고, 넷플릭스에 올라온 마샤 P. 존슨의 다큐를 보다가 이 글을 쓴다. 나만 멈춘 게 아니라 세상이 같이 멈춰서 조금 안심이 된달까.

세상이 정말 바뀌려고 하다 보니, 그간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사람들의 언어나 구호가 앞뒤 없이 다 섞여서 튀어나오는 것 같다. 이 시스템은 실패했으니 이제 유효하지 않다는 동의가 있으나 아직 새 시스템을 아무도 예측하지도 만들지도 못하는 와중에, 이전 시스템에서 제대로 해결된 적 없었던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다. 그렇지만 대체로 섬세하지는 못한 방식으로. 예전에 읽었던 장자의 혼돈 이야기가 떠오른다. 혼돈에게 은혜를 갚고 싶은데 뭘 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던 숙과 홀은, 혼돈에게는 인간의 눈, 코, 귀, 입 등 7개의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 인간처럼 만들어주기로 한다. 하루에 구멍을 한 개씩 뚫어 결국 7일째가 되자 혼돈이 죽어버렸다는 좀 이상한 이야기.

똑똑하고 지배적인 사람들이 새 시스템을 고안해내기 전에 나는 이 혼돈을 최대한 유예시키고 인간중심주의적 구멍을 대충 뚫는 것에 미약하게나마 저항을 해야겠다. 사회의 약한 고리, 혹은 사회적 소수자라 불리는 내 주변 사람들은 코로나19로 폐쇄된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하루하루 답답해하기도 하고, 갑자기 일이 사라져 우울해하기도 하고, 면역력이 약한 탓에 감염이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이 멈춰서 학교에 가지 않게 되어 행복해하는 친구 아들이 있고(급식만 좀 주면 좋겠다), 스스로를 돌볼 시간과 여유를 난생 처음 가져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이렇게 된 거 행복하게만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친구들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좋아하는 우리집 고양이와 갑자기 풍성해진 우리집 식물들이 있다. 모든 것을 일단 멈추고 살아간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코로나19와 언택트와 초연결사회가 데려다 준 개인의 시간. 개인이 혼돈 속에서 스스로의 삶과 세계의 연결에 관해 생각할 시간.

2020년 6월 2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시위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출처: time.com/5853325/)

나는 며칠 전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의원 9명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진 흑인 남성을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한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말은 마치 ‘원하는 옷을 마음대로 입고 다닐 자유’처럼 실제로 불가능한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명제처럼 들리지만, 마음대로 옷을 입고 다닐 자유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제대로 보장되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너무도 용감하게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었던 혁명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거리에서 지금도 살해당하고 있는 수많은 흑인 트랜스들이 있다.(#blacktranslivesmatter #흑인트랜스의생명도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반드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말이 가지는 무게에 대해 섬세하게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 당신의 ‘모든’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 관해 물어야 한다. 당신의 ‘모든’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것, 너무도 멀리 있는 것, 당신과 너무도 달라서 아무 상관이 없고 평생 마주치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러나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서 당신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기왕에 세상이 멈추었으니 여기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가장 섬세한 눈으로 ‘모든’이라는 말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새로운 시스템이 어디까지를 ‘모든’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1979년에 흑인이고 레즈비언이고 여성이며 페미니스트, 시인, 엄마, 교사, 암 투병 생존자, 활동가였던 오드리 로드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 하나 지배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차이들이 상호의존할 수 있어야, 우리는 혼돈 가득한 지식 속으로 안전하게 내려갔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정한 비전을 가지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긴 힘을 통해 그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가 우리 각자의 힘을 벼려 낼 수 있는 강력한 연결점이자 원료입니다.
미래도 없고 비전도 없이 살아왔지만, 내 주변의 차이와 상호의존에 대해서라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섬세하고 느리게 해왔던 사람들에 대해서. 그러니 당신도 멈춘 김에 같이 생각을 좀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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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유선
노들장애인야학 낮수업 교사이지만 한 번도 교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르칠 수도 없고 가르치기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비장애인 교사의 권위에 대해 생각한다. 인포숍카페별꼴의 매니저 7인 중 1명이며, 3명으로 구성된 다이애나랩에서 33.3%의 일을 맡고 있다. 아기를 낳고 커밍아웃이 어려워진 팬섹슈얼, 비건, 고양이 추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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