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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아닌 사람을 남겨야 한다

극회출신 관객의 학공관극기

이정환

제182호

2020.07.09

학공을 보러 다니다 보면 몇몇 눈에 띄는 공연이 있다. 공연진이 10명 내외로 아주 적은 공연이다. 그런 공연에서는 배우가 무대감독도 겸하거나, 조연출이 조명감독도 겸하는 등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 팸플릿을 보고 공연진이 턱없이 적은 것을 확인하면 그들이 고생했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단체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든다.

연극을 올리는 데에는 어느 정도 숫자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특히 아마추어인 대학생 공연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연극에 아주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기보다는 분담을 통해 각각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더군다나 무대를 직접 만들 때나, 무거운 자재들을 옮길 때 등 물리적인 힘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대학생 시절 정기공연을 올릴 때 20명 남짓한 공연진 수를 보고 “겨우 이 숫자의 사람들로 어떻게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했던 적이 있다.

연극 동아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극을 잘 올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동아리에 남기는 것이다. 하나의 공연만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는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리는 다르다. 공연을 하나 끝냈어도 다음 공연이 있고, 또 그 다음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그렇게 1년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대여섯 번 공연을 올리면서 동아리는 유지되고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미래의 공연에 사람이 많이 참여해서 좀 더 재밌고 수월하게 올릴 수 있기 위해 현재의 공연에서 사람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연극 동아리는 공연을 통해 사람을 남긴다. 연극 동아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연극에 관심이나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다. 들어온 이후에는 공연 올리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마지막 공연을 올린 후에는 체력적인 고생 때문에 연극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연을 준비하고,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박수 받는 그 즐거움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결국 연극의 재미를 잊지 못해 다시 공연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이 여러 공연을 거치면서 선배가 되어 후배들을 지도하게 되고, 그 후배들이 다시 선배가 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연극 동아리들이 수십 년 이상 지속되어 온 것이다.

“연극을 프로처럼 잘 올리고 싶다” 간혹 학공을 올리는 사람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작품을 완성도 높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학공을 올리는 대학생들은 아마추어 연극인이다. 그들에게 아마추어 이상의 결과를 내놓으라 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학생들이 이해하기에 힘든 희곡을 고르고,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배우나 스태프에게 역정을 내고, 무리한 연습과 공연 스케줄을 밀어붙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연진은 지치게 되고 서로 간의 갈등도 생기게 되며 공연을 통해 재미를 느끼기보다 어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질 것이다.

최악은 공연이 끝나고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거나 동아리를 탈퇴하는 사람이 나오는 경우다. 오랜 시간 동안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든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이때 사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완성도만 우선하게 되면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공연진 간 불화가 생길 수도 있고, 불화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공연에 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 요인들을 공연을 하면서, 또는 공연 뒤에 가지는 쫑파티 등에서 털어내고 갈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공연이 끝나면 동아리를 나가버리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게 된다.

공연을 잘 올리려고만 하다 보면 사람 챙기는 것을 놓치기 쉽다. 당장 연습 한 번 더 하는 것이 중요하고 스태프들을 닦달해서 좀 더 좋은 결과물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공연진의 체력 소모는 심해지겠지만 공연의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보상되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연극 동아리에 들어오는 이유는 연극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싶은 것이지, 연극을 프로 수준으로 잘 올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 기대가 배신되는 순간 공연 올리는 재미를 느끼기가 힘들고 동아리에 남아있을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

완성도에 눈이 멀어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연극 동아리는 연극을 통해 단체를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지, 하나의 공연을 잘 올리고 문 닫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품이 많이 들어간 공연을 올리는 것이 보람과 뿌듯함을 가져다줄 수 있고, 너무 미숙하게 완성된 공연은 동아리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사람을 남기지 못했을 때 맞이하게 될 결과가 더 심각하다.

동아리원들이 연극과 동아리에 애정을 붙이도록 해야 한다. 먼저 연극이란 매체에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이해하기 쉽고 공감이 잘 가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난해하거나 대학생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은 흥미를 붙이기 어렵다. 대학생들이 이해하고 표현하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연극을 좋아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아리 자체에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연극 동아리를 하다보면 연극이란 장르보다 연극 동아리라는 단체에 더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친한 사람이랑 연극을 올리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 더 추억이 되고 마음에 남는 것이다. 연습할 때만 만나서 연습만 하고 헤어지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연극 동아리가 수십 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동아리는 동문들이 아닌 재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재의 재학생들이 동아리를 이어가지 못한다면 역사가 아무리 길었더라도 동아리는 쇠퇴할 것이다. 연극에 대한 인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연극 동아리 또한 그렇다. 현재 동아리원들이 더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게, 연극을 잘 올리고 싶은 마음이 아닌 친한 사람과 같이 공연을 올리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 연극 동아리가 앞으로도 생존해갈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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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이정환 블로거
서강연극회 출신. 연극반에서 <쥐덫> 배우, <지평선 너머> 기획, <어느 계단의 이야기> 연출, <사쿠라가든> 조연출, <루나자에서 춤을> 음향감독, 기획팀 등 총 14번의 공연에 참여함. 지금은 단지 학공을 좋아하는 인터넷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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