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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 것이다

최서윤

제183호

2020.07.23

상상컨대, 굳이 내가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가급적 일찍 죽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재 같은 사건사고로 모든 기록과 함께 지구에서 일찍이 소멸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2014년 전후 더럽게 얽혔던 구남친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그는 기록에 대한 강박과 통제광적 성향이 있었다. 데이트 중에도 너무 열심히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아직도 안 지웠을 것 같아 기분 더럽네?) 더 지긋지긋한 일은 내 랩탑을 빌려준 뒤 벌어졌다. 그가 오래된 전자기기로 인한 작업의 어려움을 칭얼댔고 호구처럼 나는 랩탑을 무상 임대해주었다. 기기에 소셜미디어 자동로그인이 돼 있었나 보다. 한참 뒤에야, 그는 내 계정의 모든 내용을 훔쳐봤으며 샅샅이 기록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그 후로 수틀릴 때마다 기록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전시하겠다고 협박했다. 선의로 한 행위가 이토록 거대한 악의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니? 심지어 그 랩탑 끝까지 안 돌려줬잖아? 랩탑과 함께 연소되면 좋겠는 게 솔직한 심정….

그 밖에도 그가 생각하는 ‘성녀’에 부합하지 않고 ‘모성’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비난과 행동 통제가 있었다. 그럼 그냥 포기하고 내 인생에서 꺼질 것이지 계속 징징대고 모욕을 퍼부으며 주변을 맴돈 게 그 뒤로도 1년이 넘는다. 휴대전화 번호 차단하면 페이스북 메시지를, 그렇지 않으면 블로그 등에 공개적으로 협박성 메시지를 남기며 내가 상대적으로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을 악용했다. 게다가 집 주소도 알고 있었다!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죽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경찰서에 찾아갔다. 형사에게 고소 의사를 밝히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피고소인의 접근이 확실히 금지될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고, 괜히 ‘빨간 줄’ 긋게 했다가 그 원한으로 또 무슨 파괴적인 짓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고소를 포기했다.

그리고 2015년 ‘메갈리아’가 태동했다. 당시 ‘메갈’의 ‘미러링’ 전술을 흥미롭게 봤던 나는 이를 그에게 적용하기로 했다. 그가 연락 올 때마다 그의 언행을, 정도가 더 심하게 미러링했다. 모욕과 욕설의 양과 질이 그를 압도했다. 한 번만 버튼 눌러도 음료수 캔이 와르르 쏟아지는 고장 난 자판기처럼 퍼부었다. 그 부분만 캡처 해보면 악당은 나다. 기죽은 기색으로 그가 남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 메갈이냐?”

미러링 전술과 자택 이사로 가까스로 그에게서 해방됐다…고 생각했지만, 때때로 불안감과 울분이 솟구쳤다. 정서적 해방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첫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다. ‘영화인’이었던 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 고발적인 목소리를 내면 후련할 것 같았다. 결과물은… 지금 보면 부끄러운 부분이 많다. 생각을 전달하려는 의욕이 앞선 투박한 대사들, 열악한 자원으로 하루 만에 끝낸 두 주연 배우와의 촬영 등 여러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관객과 대화하며 공감과 지지를 받았고, 원한 바를 이뤘다고 생각했다.
영화 <영화학개론>(감독 최서윤)중 한 장면 (영화 티저영상 유튜브 캡처)
얼마 전, 많은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여성중심 서사창작물을 썼다는 소식이 내게 도달한 것이다. 그의 인터뷰를 본 친구의 제보였다. 그래, 남자도 여자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지. 그런데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동료 여성창작자들을 낮추어 평가하며, ‘페미코인’ 운운하며 페미니즘을 조롱했던 네가? 그새 그가 여성을 존중하는 시선을 갖게 됐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괴롭힘 당했던 입장에서 볼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점점 어떤 부정적인 것들이 내 안에서 팽창했다.

가끔 이런 상태가 된다. 어떤 순간들이 복기되며 그때의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다. 2015년 한국사회에 페미니즘 담론이 폭발한 뒤부터는, 때때로 최초 경험 시 느꼈던 감정보다 더욱 진하고 복잡한 심경이 찾아온다.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재구성된 관점은 고고학자의 붓처럼 저편에 묻었던 기억마저 쓸고 닦아 뚜렷이 만들고, 그렇게 길어 오른 기억은 재해석된다. 괴로운 일이다.

모든 게, 나를 같은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대학에 다니던, 20대 초 교제한 구남친의 시험 기간에 있었던 일을 종종 생각한다. 먼저 시험이 끝나 응원하러 그의 학교 앞에 찾아갔더니 비디오방에 데려가 작은 성기를 보여줬다. 한참 실랑이 뒤에야 도망칠 수 있었는데, 몹시 두렵고 수치스러웠다. 어두운 골목에서, 뿌리치지 못하게 팔목을 거세게 잡던 그 두껍고 축축한 손길도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난다. 도대체 왜 싫다는 말을 한 번에 듣지 않지? 가장 화나는 것은 ‘여친’이라는 트로피가 필요하면서도 ‘가성비’는 알차게 챙겨야 했던, 먼저 사회에 진출했음에도 20대 초반의 대학생에게 참으로 박하게도 굴었던 그가… 너무나 못생기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그런 녀석에게 오래도록 나를 함부로 대할 권리를 쥐여줬다는 게 매우 분하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으로서 목격하고 경험한 여성을 사회적 동료로 존중하지 않는 문화들…. 열거하다 보면 끝도 없다. 이하 생략.

그러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통한’만을 느끼는 건 아니다. 더 많은 담론을 접하고,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가 쌓일 때마다 나의 행동도 곱씹게 된다. 나는 평등을 저해하거나 억압을 재생산한 적 없는가? 질문 앞에 느끼는 건 부끄러움이다. 나 역시 사회의 편견을 흡수해 그대로 내뱉던 적 있지 않은가. 게다가 웃기고 싶은 욕망도 강한 사람이라 ‘아무 말’ 참 잘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맞아 아파하거나 짓궂은 놀림에 모욕감을 느낀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테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 사람들에게 떠올리면 괴로운 사람 아닐까?

적어도 ‘저 인간… 되도록 빨리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생각하며 노려보게 만드는 이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과거 부당한 폭력의 기억에 더해, 최근에는 바뀐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해 퇴행적 소음을 내뱉는 늙은이들을 보며 하는 다짐이다. 한국사회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2015년 이후 성폭력·성희롱 신고 건수가 해마다 증가했다는 통계는 의미심장하다. 권력자의 성추문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만큼 피해 입은 여자들이 가만있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인데 웬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논거를 찾아 전근대적 개소리를 하는지…. 이들에게 남은 미래는 도태뿐이다.

이 글에 서술한, 내게 고통을 준 이들에게 청부업자를 보내거나 법정 공방을 벌여야겠다는 생각은 (현재로선) 없다. 다만 그들보다 나은 창작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계속 배우고 귀담으며 성찰하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는 나를 기록해야지. 그러니까, 오래 살아야겠다. 비 오면 저리고 쑤시는 환부처럼 지난 기억들은 종종 나를 아프게 하겠지만, 살아있으니까 아픈 것 아닐까? 거듭 스스로를 갱신하고, ‘그놈들’보다 오래 살아남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남깁시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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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최서윤
말하고 싶은 것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전하는 법에 관심 많다. 그러다 보니 가지가지 하게 됐다. 2012년 창간한 잡지 <월간잉여>는 5년째 휴간 중이며, 대신 저서 『불만의 품격』, 공동 저서 『미운청년새끼』를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단편영화 <망치>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볼 수 있다. 가지가지 하는 창작자는 대충 작가라고 하는 게 룰인 것 같아 자기소개 때마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영 어색하다. 좀 더 적절한 직함을 제안하고 싶다면 facebook.com/monthlying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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